〈 280화 〉280화
“이거 일 났는데.”
그거뿐이라면 상관없는데 주변에 있던 건물이며 나무며 온갖 것들이 마력이 쪽쪽 빨려서 무너지고 있었다.
대규모 황폐화.
이미 한차례 크리샤의 영지에서 일어났던 재해. 마왕만이 일으킬 수 있는 재해가 이곳에서 다시 일어나고 있었다.
마왕의 특성이기도 한 포식자가 루시아가 소환한 불덩이 말고도 주변에 있는 마력을 먹어치우고 있는 탓이었다.
이 세계에는 그 무엇이던 가지고 있는 마력을 마구잡이로 포식하는 결과, 먼지처럼 분해되기 시작하는 주변을 보고 있자니 골렘인데도 식은땀이 나는 기분이었다.
이러다가 벼룩 잡느라 초가삼간을 다 태워버리는 꼴이 날 것 같았다.
죄다 불태워 없어지나, 마력을 쪽 빨려서 먼지가 돼 버리나 그게 그거기도 하고.
하지만 아직 포식자를 멈출 수도 없었다.
구겨지며 사라지고는 있지만, 루시아가 소환해낸 불덩이가 워낙에 너무 컸다. 아직 짧은 시간동안 절반 가까이 포식자에게 먹혀버린 불덩이였지만 남은 것만으로도 도시 하나는 가볍게 날려버릴 크기였다.
아예 없애던, 피해를 최소화하려던 아직은 좀 더 포식자를 활성화한 상태로 유지해야 된다는 소리였다.
콰드드득!
“그 전에 내가 완전히 먹혀버릴 것 같지만...”
루시아의 마법을 전부 먹어치우려면 족히 1분은 더 걸릴 것 같은데, 그것도 못 버티고 내 몸이 포식자에게 완전히 먹혀버릴 것 같았다.
워낙 막 쓰다시피 한 골렘의 몸이 한계에 다다른 것이 원인이었다. 억지로 계속해 늘려서 쓰고는 있지만 이미 진작 고철덩어리가 됐어야 했을 몸이니까.
삐걱삐걱...
포식자에게 먹히지 않아도 흔들거리는 주변의 마력만으로 부서져가는 몸을 보고 있자니 쓴웃음만 나왔다.
완전히 주체를 이쪽으로 옮겨버린 지금, 사실상 본체는 이쪽이나 다름없는 상황이었다. 일시적이긴 하더라도 이쪽이 완전히 파괴되면 그냥 의식을 심어둔 골렘에 불과했던 이전과는 다를 것이 분명했다.
어찌됐건 지금의 주체는 확실히 이쪽이니까. 완전히 무너지고 나면 영혼에 타격을 입게 되버릴게 분명했다.
덕분에 상당히 쫄리는 상황이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조금 사리면서 하는 거였는데...”
엘리시스와 맞붙을 때 너무 무리했던 것을 떠올리며 뒤늦게 후회했다. 어차피 한 번 쓰고 버릴 작정으로 있는 거 전부 다 써가며 막 다뤘더니 진보스가 튀어나올 줄 누가 알았겠냐마는.
그리고 그 진보스가 분노한 마누라일 줄도 상상도 못했다.
이래서 확실한 게 아니면 죄다 털어내면 안되는 거였는데. 너무 방심했다.
“웁...”
쿨럭, 하고 검게 타버린 마력수가 입 밖으로 새어나왔다.
그리고 급하게 땜질해놓은 것치곤 오래 버텨주던 핵에 다시 금이 가는 것이 느껴졌다. 그와 동시에 시큰하고 가슴 주변으로 통증이 느껴진다.
주체를 옮겨버렸더니 통증도 딸려온 모양이었다. 심장이 있어야할 곳에 대신해서 존재하는 핵에 금이 가는 순간순간, 머리가 새하얗게 변할 정도로 고통스러웠다.
깨진 틈새로 새어나오는 마력이야 그렇다 쳐도, 통증 때문에라도 포식자를 유지하는 것도 의식을 제대로 붙잡고 있는 것도 힘들었다.
그리고 그럴수록, 단지 마력으로 이루어졌을 뿐인 몸의 붕괴도 빨라져만 갔다.
마력의 결집이 흩어질수록 붕괴가 빨라져가고, 그럴수록 심해지는 통증에 더욱 결집이 무너져가는 악순환이었다.
“으득...”
어금니가 흔들릴 정도로 꽉 악물고 버텨도 이젠 한계였다. 악물고 있을 어금니마저 금이 가서 바스라져버렸으니까.
그리고 이 이상은 무리라고, 그렇게 생각했을 때... 루시아의 입이 열렸다.
ㅡ바오 디 살라스.
“꺄아악?! 모, 몸이!”
“...어머니!”
그리고 모든 사람들이 주변에서 하나둘 사라지기 시작했다.
보레아스도, 멍하니 하늘을 올려다보던 병사도, 패닉에 빠졌던 용병도. 그리고 엘리시스도.
희뿌옇게 변하더니 눈 깜짝하는 사이에 눈앞에서 사라졌다.
그들만이 아니었다.
예민해진 내 감각에, 점점 줄어들기 시작하는 인기척이 느껴졌다.
내 주변만이 아니라, 한 번에 수천, 수만씩 사라지는 기척이 말이다.
그리고 이게 무슨 일인지 금방 알 수 있었다.
광역 소환 주문...
루시아는 지금 이 도시에 있는 인간들 전부를 어딘가로 소환해버리고 있는 거였다.
그게 어딘지는 나도 모르겠다.
특정한 장소가 아닌, 무작위로 날려버리고 있다는 것만 알 수 있을 뿐이었다.
나는 그저, 한 번의 주문으로 백만이 넘는, 대도시에 거주하고 있는 모든 인간을 어딘가로 날려버리고 있는 루시아의 마법에 전율할 수밖에 없었다.
위대한 존재. 그 별명에 걸맞은 어마어마한 마법이었다.
이쪽은 고작 하나의 마법으로 허덕이는 와중에 루시아는 무려 두 개나 되는 고위마법을 마음대로 구사하고 있었으니 당연한 감상이였다.
그리고...
“어...”
우웅, 하고 내 몸 역시 희뿌옇하게 변하는 것이 보였다.
“자, 잠깐만! 루시아?!”
나도 날려버릴 생각인가?!
설마 소환주문에 나까지도 휘말릴 거라곤 생각 못해서 당황한 내가 엉거주춤해하는 사이에 번쩍하고 눈앞의 풍경이 바뀌었다.
끔뻑, 두 눈을 깜빡였다.
하늘.
시퍼런 하늘이 보였다.
그리고 내 밑으론 황금빛의 깃털이 보였다.
그 중에서 유난히 기다란 깃털을 붙잡아봤다. 사르르륵, 손에 착 감기는 이 느낌.
어디선가 많이 느껴본 감촉이었다.
이건... 루시아의 머리에 있는, 유난히 길었던 머리카락의 감촉과 매우 똑같았다.
지금은 이걸로 몸을 전부 덮을 만큼 거대하긴 했지만, 확실했다.
“루시아?”
어째선지 루시아의 머리 위로 소환된 내가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그 순간, 머릿속에 스쳐지나가듯이 루시아의 모습들이 떠올랐다. 내가 모르는 루시아, 알 턱이 없는 루시아의 모습들이.
홀로 고뇌하고, 홀로 고통 받는 루시아가 눈앞에 보였다. 과거를 보여주는 주시자의 눈이 내게 보여준 루시아의 모습들이었다.
덕분에 알 수 있었다. 내 나름대로 생각해서, 그녀들을 위한다고 숨겼던 것들이 되려 그녀들에겐 고통만 됐을 뿐이란 걸.
ㅡ...죄송해요. 이지경님.
그런 내 귓가에 루시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대체 무엇을 사과하는 걸까.
그녀의 목소리를 듣고서, 의아해하던 찰나에.
스르륵, 하고 그런 내 눈에 사그라지기 시작하는 불덩이가 보였다. 루시아가 스스로 마법을 중단한 것이었다. 거대한 불길이, 포식자로도 전부 흡수하는 것이 무리였던 불길이 순식간에 사라져갔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거대한 불덩어리에서 떨어져나간 불똥으로 태워졌던 건물이, 나무들이 다시 원상 복구되는 것도 보였다.
사라져가는 불덩이가 지닌 마력이, 무너졌던 건물과 바스라졌던 나무였던 먼지들에 다시 깃들어서.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마치 시간을 거꾸로 되감는 것처럼.
“시간 마법...”
예전에 크리샤도 사용했던 마법이었다. 아예 통째로 공간을 분리시키고, 그 공간에서만 시간을 한없이 늘렸던 크리샤 때와는 조금 달랐지만, 본질적으론 같은 마법이였다.
그때랑 다른 점이 있다면, 시간을 늘리던 그때랑 달리 지금은 되감고 있다는 것과… 지금의 루시아는 그보다 훨씬 광역으로, 심지어 자신의 영지도 아닌 곳에서 사용하고 있는 중이란 거였다.
그게 얼마나 부담이 되는 일인지, 또 그런 부담을 가진다고 하더라도 시간마저 자신의 마음대로 다룰 수 있는 것이 얼마나 대단한 일인지. 마법의 마도 모르는 어린이가 봐도 알 수 있을 것이다.
아무튼 그런 루시아의 마법에 덕분에 어딘가로 날아가 버린 도시의 사람들이 돌아왔을 때, 폐허가 된 도시만 남는 일은 없어졌다.
비록 그 사람들이 언제 돌아오게 될지도 모를 일이 돼 버리긴 했디만…
하지만 그런 것보다.
ㅡ...잠시, 냉정을 잃었었던 것 같네요.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이런 일을 벌이다니... 정말로, 정말로... 죄송해요.
착 가라앉은 목소리, 떨리는 그녀의 목소리를 듣고서.
뒤늦게 루시아의 정보창을 확인한 내 눈에 그녀의 생각이, 감정들이 보였다.
혼란, 죄책감, 후회...
빠르게 뒤바뀌는 사고 속에서, 그녀의 감정 역시 빠르게 바뀌어가는 것이 보였다.
그리고 두려움.
상실에 대한, 나에 대한 두려움을 읽어내고서. 나는 그저 한마디의 말밖에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미안.”
단지 그런 말 밖에 할 수 있는 말이 없었다. 그렇게 말하고서, 나는 그저 손을 뻗었다.
흠칫, 내 손이 닿자 루시아가 움찔하는 것이 느껴졌다. 그런 루시아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다른 누구도 아닌, 루시아가 이토록 떨고 있다는 사실에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곤 그 정도가 다였다.
마음 같아선 안아라도 주고 싶은데 껴안기엔 지금의 루시아가 너무 크기도 하고, 한쪽 팔이 없기도해서 무리였다.
그런 내 눈에 텅 비어버린 팔이 꾸물거리며 재생되는 것이 보였다.
“...아.”
그제야 떠오른 포식자를 다시 비활성화시켰다. 모처럼 제대로 포식하던 녀석이 몸을 비틀며 거부하는 것이 느껴졌지만 억지로 억눌렀다.
반항이 심할 줄 알았는데 다행히도 녀석은 금방 얌전해졌다. 그럭저럭 만족할 수준으론 먹어치웠다는 걸까. 이유야 아무래도 좋았기에 더 이상 신경 쓰지 않기로 하고서 여전히 떨고 있는 루시아를 바라봤다.
그토록 강하게만 여겨졌던 루시아였다. 아니, 지금도 무척이나 강한 루시아였다. 그런 그녀가 단지 떨고만 있었다.
눈앞에서 떨고 있는 연인을 안아줄 수도 없다는 사실에 참담한 기분을 느끼면서, 내가 입을 열었다.
“네가 미안해할 필요 없어. 전부 내가 잘못했으니까. 그러니까 돌아가자. 루시아.”
ㅡ...네. 그럼 저는 다시 영지로 돌아갈게요.
“아니, 거기 말고. 천공성으로 가자.”
ㅡ...네?
의아해하면서 되묻는 루시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렇게나 커다랗게 되었는데도 어투라던가, 억양이라던가 확연하게 느껴진다는 것이 신기하다고 생각하면서도, 각오를 다졌다.
뭐가 어떻게 되던, 이젠 확실히 해야 할 때란 걸 알았다. 불확실하다느니, 위험하다느니 뭐니 할 때가 아니란 것도. 확실하게.
뭘, 이미 가지고 있는 능력도 전보다 더 강해졌다. 그리고 어떤 시련이라도 어떻게든 될 거다. 눈알이 맛탱이가 간다던가, 심장이 터진다던가, 산채로 몸이 지워져본다던가, 뭐 그런 것도 당해봤는데, 설마하니 복상사 엔딩은 아닐 테니까.
요는, 죽지만 않으면 된다는 거다. 어차피 좀 더 고생하면 그만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마음이 편해지는 기분이었다. 그래, 당장 좆되는 건 내가 아니라 어차피 미래의 나일테니까.
그렇게 각오를 다진 내가 씨익, 웃으면서 말했다.
“아기 만들러 가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