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279화 〉279화 (279/370)



〈 279화 〉279화
 봐도 답이 안 나오는 크기의 불덩어리가 떨어지는 광경을 보고서 떠올린 것은 어릴 적에 봤던 불꽃놀이였다.


밤하늘을 수놓듯 커다랗게 펼쳐지던 불꽃과 환호하는 사람들. 눈앞에 있는 불꽃의 실상은 도시를 태워버릴 듯 이글거리는 불길과 비명소리긴 했지만 어쨌든 그랬다.


저런 걸 보고서 불꽃놀이를 떠올리다니 이세계에 워낙 오래 있었더니 뭔가 감성이 이상해진 모양이었다.

아니면 현실감이 너무 없어서 그런 걸지도 모르고.

하지만 그런 나와 달리 현실감으로 충만한 다른 이들은 사정이 달랐다.


“저게 대체...”

혼란스러워 보이는 눈빛으로 하늘을 올려다보며 아연실색하는 병사의 목소리가 귀에 들려왔다.

그녀뿐만이 아니었다.

“저건... 맙소사...”


하늘에 떠있는 루시아를 응시하며 경악하는 보레아스의 목소리가.


“세상에... 이게 무슨 일이야?!”

기절했다 깨어나니 재앙의 한복판이란 걸 알게 된 용병의 목소리가.


주변에 있는 그들만이 아니였다.


활성화된 생존 본능과 함께 도시가 공포와 혼란에 빠져 웅성이는 소리가, 신음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소란 속에서 도시가 진동하는 소리를 듣고 있을 때, 이질적인 목소리가 들려왔다.

다른 이들과는 달리, 어딘가 잔뜩 신이  듯한 목소리가.


“흐응, 그 녀석의 예언이 정말로 맞았네?”


뚝뚝...

내게서 떨어진 오른팔을 주워든 채 루시아에게서 잘려진 왼팔에서 피가 흐르는 것에도 아랑곳 않고 호기심으로 가득한 눈으로 떨어지고 있는  불덩어리를 보고 있는 엘리시스의 목소리였다.


이런 상황에서 불꽃놀이나 떠올린 나도 나지만 저년도 어딘가 돌아버린 것이 분명했다.

방금  검사로써 가장 중요한 신체인  팔을 잃은 인간이라고는 보기 힘든 태도로, 되려 루시아를 호승심이 엿보이는 눈빛으로 올려다보고 있는 엘리시스를 보니 내 마음속에서 미친년이라는 것이 더더욱 확고해져갔다.


루시아와 살을 섞었던 나도 덜덜 떨리는 와중에 저러고 있다는 것도 신기하고.

하지만 그런 엘리시스를 보며 얼타고 있을 때가 아니였다.


주변의 반응을 보아하니 불행히도 지금 보이는 광경이 나만 보이는 환각 같은 것이 아니란 것은 확실히 알았기 때문이었다.


부정하고 싶지만 부정할  없는 현실임을 알았으니 뭔가 하긴 해야 했다.

“아무리 봐도 답이 안 나오긴 한데....”

어떻게 뭘 어쩌란 걸까.


나는 하늘 위를 거대한 두 날개를 펄럭이며 날고 있는 루시아를 막막한 심정으로 올려다봤다.

태양을 등에 진 것처럼 찬란하게 빛을 뿌리고 있는 연인의 모습이, 드래곤의 모습으로 오연하게 땅을 비추고 있는 황금용의 모습이 보인다.

주위를 환하게 비추고 있는, 아름답기 그지없는 드래곤의 모습이.


문제는 저 커다란 몸이 주먹만 하게 보일 정도로 높은 곳을 날고 있다는 걸까. 아까처럼 날개같은 그림자의 손을 뽑더라도, 애당초 비행용이 아니라 날지도 못하고, 내가   있는 초급 마법따위는 저기까지 닿지도 않는다.

거기에 너덜너덜해진 몸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감도 안 잡혔다. 대책도 방법도 없다.

“끄으응...”


그래도 어찌저찌 몸을 바로 세웠다.


루시아를 말리는 것이 다른 누구도 아닌 내가 해야 하는 일인 것은 분명했다.


그것이 루시아를 위한 일이니까.

루시아가 소환한 저 불길이 떨어지면 얼마나 많은 사람이 죽을지는 나도 모른다.

최대로 넓혀진 감각에 잡히는 수만해도 백만에 가까운 대도시 한 가운데에 저런 것이 떨어지면 일단 개판이 나는 것은 기본이거니와, 그 백만에 가까웠던 이들이  다 증발할 게 분명했다.

피도, 살조각도 남기지 않고 전부 소각행에, 무언가 떨어졌다는 증거로 커다란 크레이터만 덩그러니 남겠지.

솔직히 과거와 달리 지금은 얼굴도 모르는 인간이 백만이 넘게 죽던, 수백만이 넘게 죽던 이렇다 할 감정이 생기는 건 아니였다.

인간으로서 당연히 느껴야할 감정이 슬슬 밋밋해졌다고 해야할까, 무덤덤해져가고 있음을  스스로도 느끼고는 있었으니까.

마룡화가 되서 그런지, 다른 이유에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전처럼 나랑 상관도 없는 사람이 몇이나 죽던 질질 짜는 일은 없을 거다.


하지만 그런 짓을 루시아가 하게 되는 꼴을 두고 볼 수는 없었다.


누구에게나 그렇듯이 자신에게도 엄격한 루시아가 그것을 감당해낼리가 없으니까.

이유는 모르겠지만, 어쨌던 내 탓일게 분명한 루시아의 분노가 사그라들고나면... 이번 일에 대한 책임을 그녀 스스로 질 거라는 것쯤은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다.

그러니까 두고 보고 있을 수는 없었다.

다른 사람이야 어찌됐건, 루시아가 상처 입는 꼴은 보고 싶지 않으니.

“베헤! 자네도 어서 도피를...”


어쩌면 좋을까, 고민하며 떨어지고 있는 불덩이를 지켜보고 있자니  팔을 잡으며 그렇게 말하는 보레아스가 있었다.


“도피라니, 대체 어디로 피하면 저걸 피할  있는데요?”


“그렇다고 이렇게 가만히 있을 수도 없지 않나?”

맞는 말이지만, 희망적이기 그지없는 말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와중에 제정신을 차리고서 내게 다가와 피신을 권하는 보레아스의 모습은 과연 기사의 귀감이라고도 할  있었다.

솔직히 도망친다고 해서 가능할지도 모르겠지만, 그런 상황에서도 다른 이를 위한다는 것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알고 있으니까. 당장 자신의 몸만 챙기고 내빼기 바쁜 이들이 수두룩한 가운데, 오늘 처음 본 나에게 이토록 신경 써줄 수 있는 것은 엄청난 거였다.


그만큼 그녀가 얼마나 강인한 의지를 지녔다는 걸 테고.


포기하지 않는 의지, 불굴하는 용기야말로 기사가 가져야하는 도리인만큼 감탄 밖에는 나오지 않았다.

얼렁뚱땅 검술을 배운 나 같은 것은 가질 수 없는 신념을 가진 보레아스를 가만히 바라봤다.


“그, 그렇게 보지 말고 어서...!”

그냥 본 것뿐인데 얼굴을 붉히는 보레아스가 보였다.

이런 성격인 그녀가 어떻게  미치광이한테서 태어난 건지는 전혀 모르겠다만, 뭘 아리스도 엘리시스나 보레아스와 달리 납작했으니까 딸이라고, 가족이라고  닮는 건 아니라고 치자.


아무튼 보레아스의 행동은 나에게도 무척이나 도움이 됐다.


덕분에 좋은 생각이 떠올랐으니까.

이게 정말로 좋은 생각인지는 두고 봐야 알겠지만, 일단 시도라도 해볼만한 것이 떠올랐으니 감지덕지하기로 했다.


“부탁이 있는데, 하나만 들어주실래요?”

“부탁이라니... 일단 여기서부터 빠져나간 뒤에 들어줄테니...”

“그럼 너무 늦으니까 안돼요. 아무튼 마력 좀 빌릴게요.”


그렇게 말하고서. 꽉, 내 팔을 잡아당기는 보레아스의 손을 역으로 잡고서 입을 열었다.

“아주 조금 어지러울 테니까 참으시고.”

그리고 그대로 보레아스의 마력을 흡수했다.

“읏?! 이게 무... 흣...”


쭈우욱, 빨리는 마력에 몸을 뒤로 빼려던 보레아스였지만 깍지까지 끼자 도망칠 수 없었다.

찌릿찌릿, 보레아스의 손을 잡자 뒤통수가 조금 짜릿해지긴 했지만. 있는 힘껏 무시하고서 마력을 빨아들이자 결국 최소한의 마력을 제외하곤 전부 탈탈 털려버린 보레아스가 휘청, 하고 주저앉는 것이 보였다.

숨을 헐떡이면서, 보레아스가 나를 올려다봤다.


의문과 경악. 그리고 혼란스러워보이는 보레아스의 얼굴을 보고서 마침 떠올린 것이 있어서 말했다.

“아, 아까 전에 했던 말... 마음은 고마운데 이미 결혼한 몸이라 다른 좋은 사람이나 찾아보세요.”

마누라들 마음 고생시키는 나 같은 놈보다 좋은 사람이야 많을 거다.

그렇게 말하고 몸 상태를 확인해봤다.


검주인 보레아스에게서 마력을 흡수했지만, 투기를 다루는 그녀에게서 얻어낸 마력은 쥐꼬리만 했다.


투기와 마력은 상성이다. 검주에 이른 보레아스의 마력을 아무리 흡수했다쳐도 그 양도, 질도 그다지 좋은 편은 아니란 거다.

하지만 이거라도 얻는게 어딘가 싶었다. 당장 주위에 있는 녀석들의 마력을 일일이 빨아들인다고해도 얼마 되지도 않고, 그럴 시간도 없었다.


아무튼 우선 얻어낸 마력으로 급하게 부서진 핵부터 해결했다. 그리고 조금 남은 마력으론 몸도 어떻게 고쳐봤다. 이리저리 땜질하듯이 대충 구멍만 메꾸는 식이긴 했지만...


괜찮다. 깨지고 구멍이 났더라도 밑이 뻥 뚫려서 줄줄 새거나 도중에 엎어지는 것보단 나았다.


“음, 이젠 당장 바로 쓰러지진 않겠네.”


자, 어쨌거나 이걸로 준비는 끝났다. 남은  나중에 잔소리를 들을 각오를 해두는 거였다.


“에루나한테 또 혼나겠네.”

쓴웃음을 지은 나는 보레아스의 마력으로 어떻게든 복구해낸 팔을 하늘 위로  뻗었다.

“그래도 이거 말곤 별  없으니 어쩔  있나.”

좀 더 고민해보면 다른 좋은 방법이 있을지도 모르지만, 당장 떠오르는 건 이것뿐이니.


“......”

그때 스윽, 하고 루시아의 시선이 나에게로 향해졌다.


수천 미터는 떨어져 있는 듯 한 하늘에서 밑을 바라보듯 눈동자가 움직였다.

태양빛으로 반짝이는 듯한 황금색 눈동자가 날 비추는 것을 보고, 나 역시 그녀를 바라봤다.

그리고 씨익 웃었다.


루시아도 뭔가 이상한 것을 느낀 모양이었지만, 조금 늦었다.


이쪽이 먼저 준비를 마쳤으니까.


나는 지금 사용하고 있는 몸을 통째로 인벤토리나 마찬가지인 상태로 바꿨다. 저장공간, 하지만 다르게 말하자면 다른 어딘가로 연결된 통로나 마찬가지인 마법을 사용해서.


그리고, 그렇게 연결시킨 것은 다름아닌 천공성에 있는 나였다.

주체라던가, 뭐라던가 에루나가 했던 말이 이제는 어렴풋이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서로 다른 두 곳에 있는 나를, 하나의 통로로 연결하는 순간. 마찬가지로 두 개로 나뉘어져있던 의식이 하나가 되는 순간.

뚜렷하게 나라는 자각이 미치는 순간에.


띠링~


[플레이어 ‘이지경’님의 능력을 대상 ‘베헤’에 이전합니다.]

[일시적으로 플레이어 ‘이지경’님의 모든 능력을 ‘베헤’가 사용할 수 있게 됩니다.]

귓가에, 골렘인 몸으로는 들리지 않았던 목소리가 들렸으니까. 그와 동시에 몸속에서 충만히 차오르는 마력을, 전이라던가, 다른 어줍잖은 것이 아닌 직통으로 연결되서 쏟아져들어오는 마력을 느낄 수 있었다.


끄드득, 간신히 구멍만 메운 그릇이 순식간에 마력으로 가득 찬다.


그걸 되레 모조리 쏟아 부으면서 입을 열었다.


“자, 밥 먹을 시간이다.”


쩌어어어억!

내 말이 끝나는 것과 함께, 활성화된 포식자가 입을 벌렸다.




포식자.

이세계에 소환되고, 여차저차 인연이라곤 없었던 마왕이란 것이 되면서 생겼다가, 그 직후에 에루나가 자신의 본체의 동력으로 사용하고 있던 드래곤 하트로 봉인해버린 특성.

그럼에도 불구하고 날 무진장 고생시킨 특성이었다.

어디까지나 봉인되어있는 주제에, 정보창에도 나오지도 않는 주제에 엄청 문제가 많았던 녀석이기도 했다.


그래도 어떻게든 감당은 됐다.

마력만 충분히 공급받으면 얌전했으니 말이다.


얌전하다는 게 매일같이 일반적인 드래곤도 감당하기 힘든 양의 마력을 받아내는 거긴 했지만.


다행히도  연인들은 하나같이 일반적인 드래곤이 아니라 괜찮았다.

부모 세대의 드래곤의 힘을 그대로 물려받아서, 마력의 양만은 1+1인 수준에 보옥들의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자신들의 영지 안에선 거의 무한대에 가까운 마력을 지닌 로드급들의 드래곤들이었으니 말이다.

그래서 여태까지 별 문제도 없었고, 지금도 급한 김에 사용하기는 하더라도 큰일은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근데 그게 아니였다.


“워우...”

활성화도 돼 있지 않은 상태에서 드래곤도 감당하기 버거울 만큼의 마력을 꾸역꾸역 삼켜대던 포식자를 너무 얕봤던 모양이었다.


꾸드득.


떨어지고 있던 거대한 불덩어리가 알루미늄 호일마냥 구겨지며 사라져가고 있었다.

어마어마한 마력으로 이루어진 고위 마법이 허무하리만치 빠르게 사라져가고 있는 것이다. 이대로라면 완전히 없애는 것도 시간문제나 다름없었다.

그런데 사라져가는 불덩이랑 비례해서 이쪽의 상태도 안 좋아지고 있었다.

콰직!

덜렁덜렁 어떻게 달려있기는 했던 팔이 루시아의 마법과 마찬가지로 구겨지며 사라졌다.


주변의 마력을 닥치는 대로 포식하고 있는 포식자가 나까지 먹어치우고 있었다.


대부분의 신체가 그림자의 손으로,  마력으로 갈아치워진 탓인지 아주 잘 먹히고 있었다. 아니, 오히려 이쪽이 먹히는 속도가 더 빨랐다.

포식자의 취향이 아무래도 루시아보단 내 마력 쪽을 선호하는 모양인지 훨씬 빠른 속도로 내 몸이 사라지고 있는 탓이었다.


영지에 있는 한, 무한하게 마력을 공급받는 아샤와 아냐를 위 아래로 끼고서 빠는 족족 마력을 가져다바치며 보충해대고 있는데도, 마력을 복구하는 쪽보다 포식자에게 빨려나가는 쪽이 훨씬 빨랐다.

다르게 말하자면, 셋이나 되는 드래곤들의 마력도 모자를 정도로 엄청나게 빨아먹고 있다는 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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