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69화 〉269화
촤르르륵!
칼날들이 날카로운 금속음과 함께 채찍처럼 오우거를 향해날아갔다. 수십 개의 칼날들이 은은한 녹빛을 흩뿌리면서 뱀처럼 꿈틀거리며 날아들자, 오우거가 움직였다.
“콰아아아아!!”
포효.
드래곤의 브레스와 달리 이렇다할 속성도, 산을 무너뜨리는 위력도 없었지만 날아들던 칼날들을 움츠릴 정도의 위력을 가지고 있었다.
출렁이며 흐트러지는 칼날들을 보며, 오우거가 이빨을 드러내며 이죽이는 것이 보였다. 그러고선 내게 주먹을 뻗었다.
“쿠어어어?!”
하지만 오우거의 주먹이 내게 닿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출렁이며 흔들리던 칼날들이, 휘릭하고 꺾이며 그런 오우거의 주먹을 휘감았기 때문이었다.
츠츠츠츳!
거기서 끝나지 않고서, 주먹을 시작으로 팔을 휘감아올라가는 칼날들이 오우거의 살가죽을 찢고, 근육을, 살점을 발라냈다.
채칼에 썰려나가듯이 벗겨져나간 가죽들이 보랏빛의 핏방울과 함께 흩뿌려졌다.
하지만 통나무처럼 두꺼운 오우거의 팔을 베어낼 정도로 깊은 상처를 주는 것은 무리였다. 기껏해야 껍질을 벗겨내는 정도에 불과한 상처를 줬을 뿐이었다.
“크아아아아!”
고통으로 울부짖는 오우거가 있는 힘껏 팔을 잡아당기는 것이 보였다. 자신의 재생력을 믿고서, 팔 한쪽정도는 당분간 버리는 셈치고서 나를 날려버릴 생각인 모양이었다.
물론, 그런 오우거의 장단에 맞춰줄 생각은 없었다.
그림자의 손.
피슛!
품에서 꺼낸 것처럼, 자연스럽게 그림자의 손으로 만든 단검을 오우거에게 날려보냈다.
퍼억!
“크아아아아아아?!”
정확하게, 오른 쪽 눈을 꿰뚫은 그림자의 손과 함께 오우거가 절규를 토했다.
눈알에 박혀들어간 그림자의 손이, 뿌리를 내리듯이 오우거의 머릿속으로 파고들어가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고작 F등급에 불과한 지금의 그림자의 손으론 오우거의 근육을 뚫는 것조차 힘들지만, 고통을 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벌레처럼 눈알 속에서 꿈틀거리는 그림자의 손은 그걸로 충분히 제 역할을 다하는 셈이었다.
그 사이에, 내가 오우거를 끝장내면 그만이었으니까.
촤아악!
오우거의 팔을 감고 있던 엘라제를 회수하고서, 다시 휘두르자 뱀의 머리처럼 휘릭, 꺾인 칼날이 이번에는 오우거의 목을 휘감았다.
다시 한 번, 오우거의 살가죽을 찢고서 근육을 도려내는 칼날들이 보였다. 여전히 얕긴 했지만…
“끄으으으으윽…!”
터져나간 눈알과, 목에 감겨진 칼날에 고통스러워하는 오우거가 보였다.
멀쩡한 눈으로 나를 내려다보는 오우거의 눈빛에서 공포와 증오, 분노가 엿보였다.
날 내려다보는 것이 썩 기분 좋지 않았다. 심지어 저런 눈으로 쳐다본다니 더더욱.
“펑.”
팡!
“끄어어어어어어어?!!”
내 말이 끝나기 무섭게 오우거의 오른쪽 눈알과 함께 터져나간 그림자의 손에 오우거가 비명을 내지르며 버둥거렸다.
그때마다 오우거의 목에 감겨진 칼날들이 더욱 깊숙하게, 살가죽을 도려냈다. 고통으로 더욱 더 오우거가 몸을 뒤틀때마다, 더더욱 깊숙하게.
길게 늘어진 칼날이, 오우거의 목을 단단히 구속한 채… 마치 목줄처럼 늘어졌다.
그 목줄의 끝을, 엘라제의 손잡이를 쥐고서 내가 말했다.
“너한테 딱 맞는 목줄이구나. 안 그러니?”
그리고 그런 목줄을 손에 쥐고 있는 나는, 목줄이란 걸 어떻게 쓰면 좋은지 무척이나 잘 알고 있었다.
밤마다 애용하고 있으니 당연히 잘 알고 있었다. 가끔은 낮에도 애용하고.
“자, 이리온.”
검을 휘두르자, 오우거의 몸이 이쪽으로 당겨졌다.
“크오오오오오?!”
쿠우웅!
고통에 몸부림치고 있던 오우거가, 갑작스레 잡아당기듯 검을 뒤로 빼내자 엉거주춤하며 내게 다가오다가 앞으로 엎어졌다.
단순하게 근력만 따지면, 아무리 과부하와 강력을 쓰고 있는 나라도 오우거를 넘어뜨리는 건 불가능했다. 오우거의 괴력은 골렘의 강력을 훨씬 뛰어넘고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지금은, 오우거가 겁에 질린 탓에 그게 가능했다.
자기 목에 칼날이 잔뜩 달린 목줄을 쥔 사람이 갑자기 줄을 잡아당기면 목이 베이기라도 할까봐 겁에 질리기 마련이었다.
일반적인 검이라면 오우거의 가죽을 베는 것도 불가능하고, 당연히 오우거도 어지간한 칼날이라면 두려워하지 않겠지만…
안타깝게도 내 검은 일반적인 검이 아니였다. 드래곤인 마누라가, 루시아가 내게 선물한 이 세계에 존재하는 명검 중의 하나였다.
아무튼 그렇게 뛰어난 성능을 가진 검은 톡톡히 제 역할을 해냈다.
엘라제의 칼날에 몇 번이고 상처입은 오우거는 내게 공포를 느끼며 엉거주춤하다가, 결국 제 발에 걸려 엎어진다는 망신을 당한 것이다.
“계속 그러고 있을 거야? 덩치가 아까운걸.”
엎어진 채로 부들거리고 있는 오우거에게 그렇게 말해봤다.
“우어어어어어어어!!”
내 이죽거림에 오우거가 포효하며 몸을 일으켜세웠다. 한낱 먹이에 불과한 인간에게 공포를 느꼈던 것을 잊으려는 듯. 거대한 포효와 함께 일어난 오우거의 두 팔 근육이 꿈틀거리며 팽창하는 것이 보였다.
이윽고, 오우거가 목에 감겨져있는 칼날도 아랑곳하지 않고서 두 손으로 잡고서 칼날을 끊어내기라도 하겠다는 듯 잡아당기기 시작했다.
끄르르륵…!
손에 쥐고 있는 엘라제가 오우거의 괴력을 감당해내느라 덜덜 떨려댔다.
그리고 나는…
“…진짜로 대가리가 비었구나.”
오우거가 텅 비어있는 대가리에 감탄했다.
조금 도발했다고 칼날을 맨 손으로 잡고서 잡아당길 줄은 몰랐다. 지금도 손에서 피를 철철 흘려가고 있는 오우거를 보면 더더욱 감탄밖에 나오질 않았다.
무식하고, 너무나도 무식한 오우거를 보면서.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저러니까 그런 힘을 가지고서도 고작해봐야 몬스터 취급을 받는 것이리라.
…응, 이제 슬슬 질렸다.
오랜만에 실전이라 꽤 기대했는데, 그다지 재미가 없었던 탓이였다. 무엇보다도 오우거가 너무 시시했다.
“자, 목줄을 풀어주마.”
촤아악!
다시 검을 휘두르자, 오우거의 손가락들과 함께 핏방울이 허공으로 튀었다. 꾸아아아악, 하고 단숨에 도라에몽같은 벙어리 손을 갖게 된 오우거가 고통에 찬 비명을 내지르는 것을 보였다.
그러길래 왜 그걸 맨 손으로 붙잡고 그러냐, 그런 생각을 하면서.
나는 피를 철철 흘리는 손을 움켜쥐고서 꺼이꺼이, 울부짖는 오우거를 향해, 그대로 검을 내리그었다.
“세상에… 오우거 슬레이어라니. 그것도 투기조차 쓰지 않고…”
경악과 경외 어린 시선으로 미간 사이로 칼날이 박힌 채로 죽은 오우거와 나를 번갈아 쳐다보던 용병이 중얼거렸다.
그렇게 놀랄 만한 일인가 싶었다가, 다시 생각해보고 오우거가 검주나 되야지 정면으로 상대할 수 있는 대형 몬스터라는 걸 기억해냈다.
오우거를 잡기 위해 검주가 직접 나서는 일은 없었지만 좌우간 정면으로 오우거를 막기 위해선 검주나 나서야 했다.
그런데 그걸 내가 투기도 쓰지 않고 잡은 거였다.
한가지 용병이 착각한 것이 있다면, 내가 투기조차 쓰지 않고서도 오우거를 잡은 것이 아니라, 투기를 쓸 수 없었을 뿐이지만.
뭐, 결과적으론 그게 그거였다.
아무튼 그렇게 생각하니 용병이 놀랄 만도 했다. 그가 검을 사용하는 검사이기에 더더욱 그럴 것이다.
용병의 눈동자에 동경의 빛이 비치는 것을 본 나는 고개를 돌렸다.
순전히 템빨로, 루시아가 내게 선물해준 지나치게 뛰어난 검의 성능빨로 이긴거나 다름없었지만, 그걸 알려줄 생각은 없었다.
더욱이 저렇게 동경의 눈빛을 보내오는 용병에겐 알려주고 싶지 않았다.
아마 오우거도 엄청 억울할 거다. 자기가 순전히 템빨로 처참하게 죽었음을 알게 되면 억울해서 눈도 못 감을 거다.
그도 그럴게 자기가 붙잡았다고 생각했던 칼날이, 루시아가 검에 걸어놓은 귀속 마법 덕분에 잡은게 잡은 것이 아니였을 줄 오우거가 알았겠는가.
당연히 잡힌 적도 없었던 엘라제의 칼날은 내가 휘두르자마자 손쉽게 오우거의 손아귀에서 빠져나왔다.
두터운 오우거의 가죽도 단숨에 찢어발기는 칼날은 곱게 빠져나오지 않고 겸사겸사 주인도 아닌 주제에 자신을 함부로 붙잡은 오우거의 손가락들을 잘라냈고.
칼날을 붙잡기 위해 있는 힘껏 손에 힘을 준 것이 되려 해가 된 셈이었다.
이해할 수 없다는 얼굴로 잘려나간 손가락을 보며 울부짖던 오우거의 얼굴이 떠올랐다.
미간을 칼날이 꿰뚫기 직전까지도, 자신의 손가락이 잘려나간 이유를 알 수 없다는 듯이 바라보던 오우거의 얼굴이.
마지막까지 무식한 놈다운 최후였다.
너무 무식해서 조금 안쓰러울 정도로. 하지만 불쌍히 여기진 않았다. 먼저 덤벼온 것도 오우거였고 쓰러트리지 않았으면 저기에 나자빠져있는 건 나랑 여기에 있는 인간들이였을 테니까.
나야 골렘이 파괴되봤자, 한창 아샤와 아냐와 아이만들기를 하고 있는 진짜 나로 돌아갈 뿐이지만. 저들은 정말로 죽는 것이었다.
내 탓으로 찾아온 오우거에 저들이 죽었다면, 천공성으로 돌아가서도 찜찜해서 한동안 밥맛이 없었을 거다.
안그래도 맛있는 식사란 중요한 법인데, 밥맛을 떨어뜨릴 생각은 없었다.
뭐, 어쨌거나 지금 중요한 건… 막 잡은 오우거의 사체였다.
“어디보자…”
뒤적뒤적, 오우거의 머리를 헤집어낸 끝에 뽑아낸 검붉은 보석같은 걸 챙겼다.
오우거의 주름이 적은 분홍빛의 말랑말랑한 뇌 대신에, 두개골 속 비좁은 공간을 대부분 차지하고 있는 녀석이였다.
오우거의 힘의 근원이기도 한 마석… 이라고 하면 될거다. 조금 다르긴 하지만, 힘의 근원인 점은 마찬가지였다.
아무튼 오우거의 마석을 챙긴 나는 다시 검을 휘둘러서 오우거의 하반신에 달려있던 생식기도 잘라냈다.
이렇게 챙기는 이유는 별 거 없었다. 평소 에루나가 정력에 좋다고 챙겨줬던 보약 중에, 오우거의 마석이나 생식기를 달인 약 같은 것도 있었기에 챙긴 거였다.
지금은 아무리 먹어도 근력이나 체력같은 능력치가 오르진 않지만, 그래도 지구력 회복은 여전히 쏠쏠한 보약이었다.
이제 더이상 이런걸 챙길 필요가 있을까 싶기도 하지만… 뭘, 내가 필요없다면 그 반대로 마누라들이 먹는 방법도 있었다.
아무튼 좋은게 좋은거니까 챙겨둬서 나쁠 건 없었다.
“생으로 먹으면 조금 달라지려나?”
오우거의 마석과 생식기를 보던 중에 문득 떠오른 생각에 그렇게 중얼거렸다. 생각해보니 전부 에루나가 요리하거나 달여온 약의 상태로 먹어봤지 생식은 해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 궁금했다.
호기심이 마구 샘솟았다. 뭘, 자고로 약은 생으로 먹는게 제일이라는 말도 있었다. 이것도 그럴지도 몰랐다.
아무리 그래도 오우거의 생식기를 생으로 먹을 생각은 없었기에, 대신 아직 뇌수가 묻어있는 마석을 옷으로 대충 닦아내고서 입에 넣었다.
씁쓸하면서도 비릿한 냄새가 입 안 가득 퍼졌다.
최악의 맛이였다.
내가 대체 왜 이걸 입에 넣었을까 하는 후회가 절실하게 밀려드는 맛이었다.
“아.”
생각해보니 지금 먹어봤자 정력이 올라갈리가 없었다.
골렘이니까. 가랑이 사이에 드래곤 슬레이어도 없는데 정력이 좋아져봤자 쓸모도 없었다. 아무튼 입에 넣었던 마석을 서둘러서 뱉어냈다.
“으응…?”
아까보다 크기가 조금 줄어든 것 같은데…
기분 탓이겠거니 하고 품에 마석을 챙겨넣고, 오우거의 생식기도 대충 오우거가 허리춤에 감고 있던 헝겁데기로 감싸서 챙겼다.
이따가 에루나한테 달여달라고 부탁해야겠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고개를 돌린 내가 눈앞에서 이루어진, 아직 오우거의 뇌수가 묻어있던 마석을 먹방했던 나를 보고서 헛구역질을 하고 있던 용병들에게 말했다.
“아, 오해마세요. 이게 몸에 좋거든요. 그보다…”
내 말에 미심쩍어하면서도, 내가 보인 능력을 떠올리고선 납득한 듯한 기색의 용병들을 보며 말을 이었다.
“가죽을 좀 나눠드릴 테니까 이거 해체하는 것 좀 도와주실래요?”
이렇게나 커다란 걸 나 혼자서 해체할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그렇다고 버리고 갈 생각도 없으니… 놀고 있었던 용병들의 손을 좀 빌리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