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268화 〉268화 (268/370)



〈 268화 〉268화

아무튼 귀족이거나 그에 준한 기사와, 그냥 칼잡이에 불과한 검사. 둘 사이의 격차가 큰 것은 당연했다. 몇 차례 질문 끝에 내가 정말로 평범한 검사라고 판단한 중년의 남성이 내게 향하던 호의가 사라진 것도 이해할 수 있었다.


당장 마차에서 내리라고 하지 않는 것도 감지덕지라고 해야 하나...

이렇게 야박하면서도 실리에 충실한 호의를 받아보는 것도 오랜만이라 나쁜 기분은 아니었다.


매번 밖으로 나갈때마다 베헤노스님, 루시아클레오, 크리샤클레오, 아르카클레오... 때때로 도바클레오(드래곤의 반려) 등등. 제각각의 호칭으로 불리며 추앙받는 것도 취향은 아니였으니까.

거기에 아무리 계산이 깔려있던 호의라고는 해도 호의는 호의였다.

나는 내게서 관심을 끄고서, 어떤 편지를 읽기 시작한 중년의 남성에게 말했다.


“마차를 태워주셨으니 나중에라도 제가 도울 일이 있으면 도와드리겠습니다.”

“허허, 그럴 필요 없으니 신경 쓰지 말...”

그런 내 말에, 그래도 심성은 좋은 양반이였는지 신경쓰지 말라고 말하려던 중년의 남성의 말이 끊겼다.


밖에서 비명소리가 들려왔기 때문이었다.

“어, 어째서 이런데 오우거가...!”

마차의 호위로 있던 검사의 비명소리였다. 그리고 그런 검사의 비명소리를 들은 중년 남성의 얼굴이 헬쓱해지는 것이 보였다.

그럴 만도 했다.

숲의 주인,  거인, 몬스터들의 제왕...

오우거.

그 이름은 그만큼, 이 세계에서 살고 있는 주민에겐 크게 와 닿는 이름일 테니까. 자고로 생물이란 자신들의 천적에게는 예민하게 구는 법이었다.


오우거는 인간들의 천적, 몬스터. 그 중에서도 가장 강한 축에 드는 대형 몬스터니까.


“오우거라...”

꽤나 외곽이긴 하지만, 라이어스 제국의 영향권에 있는 곳인데도 오우거 같은 대형 몬스터가 나타났다는 사실이 의아스러웠다가, 이내 깨달았다.


나 때문이었다.

내가 아바타 마법으로 자아를 의식해놓은 이 몸은 원래는 별  없는 골렘이었지만, 지금은  손을 거쳐서 마개조된 골렘이기도 했다.

특히 몸을 이루고 있는 골조의 대부분은, 그림자의 손으로 땜질해서 만든 거였다.

당연히 이 골렘에는 내 마력이 잔뜩 깃들어있었다.

다른 무엇도 아닌, 마왕의 마력이.


몬스터들의 제왕이라고도 불리는 오우거였지만, 실상은 단순한 몬스터 중 하나고. 정말로 몬스터의 제왕은 따로 있다는 것쯤은 상식이었다.

마왕.


진정한 몬스터들의 제왕이자, 천재지변이나 다름없는 재해. 그런 마왕의, 내 마력에 오우거가 이끌리는 것도 이상하진 않았다.

그렇다고 밖에 나타난 오우거가 호의를 가지고 온 건 아니겠지만. 아무리 내 마력이 깃들어있다고는 해도, 골렘에 깃들어있는 마력은 아주 적은 양에 불과했으니까.

하지만  탓으로 오우거가 튀어나온 건 변하지 않는 사실이니... 내가 해결하기로 했다.

그렇게 결정한 내가 중년 남성을 보며 말했다.

“...제가 나가서  보겠습니다.”

“자네 미쳤나? 오우거일세! 오우거! 검주가 아닌 이상에야...”

“마차를 태워주셨으니 보답을 해야죠.”

중년의 남성은 내가 지닌 검을 보고 내가 기사인 줄 알고서 호의를 사기 위해 태워줬던 모양이지만, 어쨌거나 호의는 호의였다.

호의에는 호의로 갚아줘야 마땅하다.


“금방 끝날 겁니다.”


“...그래, 금방 끝나겠지. 으으, 이제 난 끝이야. 딸과 아내에게 유해는 전해질는지 모르겠군...”

절망에 빠진 중년의 남성에게 그렇게 넋두리를 흘리는 것을 뒤로하고서 밖으로 나오니, 마차의 호위로 있던 세 남자가 검과 창을 꺼내들고서 덜덜 떨고 있는 것이 보였다.


일단 그들의 정보창을 확인해봤다.


하나같이 상태가 공포에 절망이였다.

그럴 만도 했다.

당장 세 명만 해도, 마야나 니아의 선에서 정리가 가능한 수준이였으니 말이다.

 가신 중에서도 제일로 약한 마야조차도  세 명이라면 저녁 찬거리로 손질할  목을 비틀듯이 가볍게 몸과 목을 분리시켜놓는 것이 가능할 것이다.


제일 높은 능력치를 지니고 있는 검사도, 최고로 높은 능력치가 고작 해봐야 C급이니, 굳이 목을 비틀 것도 없이 마야가 포효를 한 번 내지르면 심장이 멎을지도 몰랐다.

그런 주제에 남성의 직업이 상급 용병이라는 것이 의아스러웠다. 상급 용병이면  쎈거 아닌가? 근데 왜 저렇게 약한거지...


...아, 혹시.


“나 생각보다 쎘구나.”


용병이 약한 것이 아니라 내가 강한 것이라는 결론에 이른 내가 그렇게 중얼거렸다.


집에서는 항상 마누라들과 에네스타, 딸처럼 여기는 로로에게 두들겨 맞았는데 밖으로 나오니 여포였던 것이다.

주변에 있는 이들이 죄다 치트라도 쓴 듯한 괴물들이라서 그냥 인간 중에서 가장 쎌 뿐이라도 인간일 뿐이였던 여포는 쩌리에 불과했던 거다.

그도 그럴 것이, 당장 천공성에서 열심히 아샤의 안에 정액을 싸질러넣고 있는 내 전력의 반도  못내는 이 골렘만 해도 여기에 있는 누구보다도 강했기 때문이었다.

“...정보창.”





「정보창」
「이름 : 베헤」
「칭호 : 그림자 골렘, 재구성된 골렘, 섹스 돌, 마왕의 하수인」
「성별 : 남성」
「기동시간 : 6년」
「직업 : 검사, 골렘, 섹스 돌」
「종족 : 그림자 골렘」
「근력 : 77(B)」
「민첩 : 72(B)」
「체력 : 89(A)」
「지력 : 88(A)」
「마력 : 32(D)」
「매력 : 92(A)」
「행운 : 9(F)」

「내구도 : 890/890」
「마나력 : 320/320」
「지구력 : 87%」


「고유 특성 : 강건한 육체(B), 그림자 재생(C), 철권(C)」
「보유 특성 : 마왕의 하수인(B) 검사(C), 섹스 돌(D)」
「보유 기능 : 마력 공급(B), 베헤노스 검술(B), 과부하(C), 강력(C) 그림자의 손(F)」




무척이나 간소해진 정보창이 눈앞에 떠올랐다. 지금 내가 몸으로 쓰고 있는 골렘의 능력치가 한 눈에 들어왔다. 골렘답게 가장 높은 능력치는 체력이고, 그 다음은 지력과 근력 순이었다.

매력이야 본체를 닮게 만들어서 그냥 높은 거고.

어쨌거나... 무기도 겨우 쥔 채 벌벌 떨고 있는 세 명보다는 지금 내가 쓰고 있는 몸 쪽이, 골렘쪽이 훨씬 강했다.

살다보니 이런 날도  있구나 싶었다.

뭐, 아무리 내가 여기서 가장 쎄다고 해도, 지금의 몸으로 오우거를 상대한다는  자살행위였지만.


“부족한  다른 걸로 메우면 그만이지.”


그렇게 중얼거리며, 허리춤에 손을 가져갔다.

촤르르륵, 소리를 내며 뽑아든 검이 햇빛에 비춰져 번쩍번쩍 빛났다. 수십 가닥으로 이루어진 칼날을 가진 검이, 아름답게 출렁거리며 허공을 날다가 바닥에 늘어지는 모습은, 마치 별가루가 흩뿌려지는 것만 같았다.

휙휙, 검을 휘둘러보자 작은 칼날들이 연결된, 마치 채찍 같은 검이 출렁이며 흙바닥을 음푹 패는 것이 보였다.

루시아가 내게 세 번째로 선물해줬던, 통짜 미스릴을 드워프가 직접 두드려 만든 검, 요정검, 엘라제.


요정들의 왕이라는 이름의 검이었다.

물론 선물 받기만 했지, 광휘와 달리 써본 적은 얼마 없는 검이었다. 아니, 사실 이번이 거의 처음이었다.


하지만 대충 어떤 식으로 쓰면 좋을 지는 방금 몇 번 휘둘러본 걸로 이해할  있었다.


베헤노스 검술(B)의 효과 덕분이였다. 본신이 가지고 있는 기능보다는 한 단계 아래로 취급되고는 있지만, 베헤노스 검술은  자체로 검의 심득, 검리를 포함하고 있는 검술이었다.

처음 써보는 검이라고는 해도, 금세 익숙해지는 것 정도는 지금의 등급으로도 가능했다.


“쿠어어어어!!”


내가 나타나자, 곧장 눈앞에 있던 세 명의 용병보다 내가 위험하다고 여겼는지 오우거가 포효했다. 쩌렁쩌렁, 귀청이 떨어질 정도로 커다란 오우거의 포효에 용병들이 다리가 풀린 듯 풀썩  주저앉는 것도 보였다.


하지만 난 멀쩡했다.


애당초 이 몸은 골렘이었다. 생명을 가진, 오우거보다 약한 자들에게 절대적인 피어조차도, 공포라고는 느낄 수 없는 몸인 골렘에게 통할 리가 없었다.


거기에 아무리 내가 골렘이 아니였다고 해도, 드래곤들과 살을 섞으며 지내온 내가 고작 오우거한테 쫄 리가 없었다. 저게 아무리 눈앞에서 이빨을 드러내고 소리를 지르던 말든, 수백미터는 떨어져있는 크리샤나 아르카가 삐져서 째려보는 쪽이 훨씬 더 무서우니까.

오우거의 분노따위, 드래곤들의 질투에 비한다면 애교에 불과하다는 거다.


그런 내가, 공포에 질리지 않고서 오연하게 자신을 보고 있는 내가 불쾌했는지 오우거가 나를 노려봤다.


하지만 곧바로 덤벼들진 않았다.

내 몸에서 느껴지는 마왕의 마력 때문이리라. 아마 오우거가 보기엔 내가 꽤나 강한 몬스터로 보였을 것이다. 하지만 상대는  거인, 또는 숲의 주인이라고 불리는 대형 몬스터였다. 숲 하나를 통째로 영역으로 삼는 괴물 중의 괴물.

그에 앞에 선 나는, 그런 괴물인 오우거도 위협을 느낄 만한 존재... 마왕의 마력을 지닌 골렘이었다.

오우거가 자신의 영역을 침범 받은 맹수처럼, 그르렁거리며  눈치를 봤다. 싸우면 이길  있을지, 아닌지 확인하는 듯 나를 훑어보는 시선이 느껴졌다.

이윽고... 내가 만만하다고 여겨졌는지 나를 노려보던 오우거가 그 커다란 몸으로 돌진해왔다.


쿵쿵쿵!


발소리를 크게 울려대며 달려드는 오우거를 바라봤다.

 바록이나 바쿠를 보는 것만 같은 돌진이었다. 눈앞에 있는 오우거랑 비교하면 머리 하나 정도는 작지만, 바록과 바쿠 역시 키가 3m가 넘는 거인이였으니까.


하지만  둘과 비교하기에도 미안할 정도로 무식한 돌진이었다.


적어도 그 둘이 내게 돌진해온다면, 이렇게 여유있게 바라볼 시간따윈 없이 곧바로  몸은 허공을 날고 있었을 테니까.


그저 자신의 몸만 믿고, 돌진했을 뿐인 오우거랑은 비교할 수 없었다.


“자, 그럼...”


쿵쾅거리며 내게 달려드는 오우거를 바라보면서.


차례대로 몸을 일깨웠다.

불멸자의 심장을 활성화시키는 감각으로. 피가 아닌 마력수가, 근육이 아닌 금속으로 이루어진 골렘의 몸을 하나하나 깨우기 시작했다.

부르르, 내 의지에 따라서 온몸이 공명하며 떨리는 것을 느끼고, 내가 필요한 만큼, 지금의 몸을 이루고 있는 그림자의 손들을 다시 조율했다.


삐걱삐걱삐걱...

골렘의 금속들이 들썩이며 움직이는 것이 느껴졌다. 근육에, 뼈에, 새겨져있는 그림자의 손들이 들썩이며 모습을 바꾸고, 변화하고 있었다.

눈앞에 있는 정보창에서, 지금의 내 몸인 베헤의 근력과 민첩 능력치가 기하급수적으로 상승하기 시작하는 것이 보였다.


재조율된 골렘의 능력치가 보다 전투에 용이하게 바뀐 것이었다. 거기서 멈추지 않고, 나는 기능을 활성화시켰다.

과부하, 평소보다 무리해서 한계보다  강한 힘을 내게 하는 골렘만의 기능.


후우우욱!

몸에서 열기가 뿜어져 나오는 것과 동시에 상승하고 있던 능력치가 다시 한 번 가파르게 치솟아올랐다.

91, 92... 치솟던 근력이 정확히 98에서 멈췄다.

거기에...


꾸우욱, 검을 쥔 팔의 근육이 부풀어 올랐다.

강력.

일시적으로 근력이 좀 더 상승하는 기능까지 활성화했다.


다시 한  상승한 근력이, 마침내 100을 넘어서는 것이 보였다.

몸이 달라서 그런지, 알림은 들리지 않는 건  좋았다. 안 그랬으면 귀가 따가웠을 만큼 많은 알림이 들려왔을 변화가 단시간에 이루어졌으니까.


어쨌거나.


준비를 마친 내가 아직도 몇 걸음이나 떨어진 오우거를 쳐다봤다.

오우거가 느린 것이 아니라 내가 빠른 거였다.


몸이 아니라, 정신 쪽이지만. 살아있는 몸이 아니라 그런지 조금 무리하면 의식의 한계를 계속해서 확장하는 것도 가능했으니 말이다.

지금의 나는 평소보다 10배는 빠르게 사고하고 있는 중이었다. 덕분에 한창 천공성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 내쪽의 감각도 10배로 빠르게 전해져왔다.


아무튼 그것도 이제 끝.

확장된 의식을 도로 고쳐놓자 아까보다 10배는 빠르게 달려드는 오우거가 보였다.


“써보는  처음인데...”

라이어스 제국 검술과 시오니스 검술이 합쳐져서, 나라는 존재에게 최적화되어 다시 태어난 검술.


이 세계에서의,  이름을 딴 검술.

베헤노스 검술.


바뀌고 나서는  번도 써본 적이 없는 검술이였지만, 어떻게 하면 되는지는 머릿속에서 잘 떠올랐다.


지금의 검으로는, 어떤 식이 가장 효율적인지부터, 눈앞의 오우거를 어떻게 유린하면 좋을 지까지.

마치 가이드처럼 머릿속에 떠오르는 검로 대로, 나는 달려들고 있는 오우거를 향해 쥐고 있던 검을 휘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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