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57화 〉257화
평소답다면 평소답고 문란하다면 문란했던 일주일이 지나고, 귓가에 알림이 들려왔다.
[플레이어 ‘이지경’님의 특성 ‘독서가’가 대상 ‘아리스 드네아’의 특성 ‘마왕의 저주’의 해석을 완료했습니다.]
[해석된 정보를 열람하시겠습니까?]
아리스에게 있던 의문의 특성. 이미 존재하지 않을, 나 이외의 마왕이란 이름으로 내려진 저주의 해석이 끝났다는 알림이. 조금 더 걸릴 줄 알았는데, 일주일 정도면 충분했던 모양이었다.
“그래, 어디 뭔지나 볼까.”
대체 뭐기에 그토록 꽁꽁 감춰져 있었는지. 또 마왕의 저주라는 것이 대체 무엇인지. 드디어 알 수 있게 됐다는 생각에, 알림의 물음에 고개를 끄덕이는 순간이었다.
[현재 플레이어가 보유한 특성 ‘독서가’로는 열람할 수 없는 정보입니다.]
...응?
‘독서가’로 해석한 정보를 ‘독서가’로는 볼 수 없다니 이게 뭔 개소리인가 싶었다. 뭐 좀 사려고 회원가입을 했더니 공인 인증서에 막혀버린 기분이였다. 그때도 무척이나 짜증났었지.
“이럴 거면 처음부터...”
투덜거리려던 찰나에, 우웅하고 귓가에 이명이 들려왔다.
알림과는 다른, 별개의 소리.
그리고 곧 그 소리가 나는 것이 귓가에 걸려있던 귀걸이라는 것을 눈치 채는 순간이었다.
[...의 파편의 소유를 확인했습니다.]
[조건이 충족되었습니다.]
[플레이어 ‘이지경’님의 의사에 의해 기능 ‘헤아리는 자’의 취득을 시도합니다.]
[이에 대한 대가로...]
“아니, 잠깐...”
익숙하다면 익숙한 알림의 폭주. 느닷없이 일어난 일에 나는 당황하면서도, 품에서 연보랏빛의 보석을 꺼내 움켜쥐었다.
“살라스 에루나 투아레.”
에루나를 소환할 수 있는 주문. 사실상 이 세계에 와서 처음으로 배운 마법이기도 한 주문을 읊자마자, 눈앞에 연보랏빛 머리카락의 소녀가 나타났다. 이제 곧 있을 아침을 준비하고 있었던 듯, 앞치마를 시녀복 위에 두르고 있는 에루나가 고개를 갸우뚱하며 입을 열었다.
“주인님?”
평소라면 부르면 불렀지, 이렇게 소환하는 일은 없었던지라 태연하던 에루나의 표정이 아주 조금이지만 의아해하는 듯이 보였다. 별로 시간이 없어서 자세한 설명은 생략하기로 하고서. 나는 다급하게 말했다.
“에루나, 지금부터 잘 거니까 아샤랑 아냐에게 대충 설명해둬.”
주시자의 눈이나, 불멸자의 심장.
두 편린을 얻게 되었을 때의 공통점 중 하나를 굳이 꼽자면... 둘 다 얻고 나서 얼마 뒤에 뻗어버렸다는 거였다.
아마, 이번에도 그럴 거다.
그리고 그런 내 예상이 맞았다는 듯이, 돌연 수마가 밀려오기 시작했다.
피로와는 다른, 항거할 수 없는 졸음에 몸을 비틀거리자, 그런 나를 지탱하듯이 껴안는 에루나의 품에 얼굴을 묻고서 중얼거리듯이 말했다.
“아아, 그래... 아샤랑 아냐한테는 오늘 하루 동안은 자유 시간이라고 말...”
해둬, 라고 말을 채 잇기도 전에.
[플레이어 ‘이지경’님의 기능 ‘주시자의 눈’, ‘불멸자의 심장’이 활성화됩니다. 기능 ‘헤아리는 자’의 취득에 동조합니다.]
귓가에 들려온 알림과 함께 의식이 뚝하고 끊겼다.
줄이 끊어진 인형처럼, 품에서 의식을 잃은 이지경을 보고서 당혹스러워했던 에루나였지만...
우우웅, 우우웅...!
빛과 함께, 그런 이지경의 몸으로 스며들기 시작하는 편린. 정확히는 편린이 깃들어져 있던 귀걸이를 보고서 상황을 이해했다.
세 번째 편린이, 드디어 주인님에게 반응한 것이었다. 어떤 이유에서, 어떤 원리로 그렇게 된 것인지는, 드래곤들이 만들어낸 마도공학의 절정체이기도 한 에루나조차도 이해할 수 없었지만.
중요한 것은, 주인님이였다.
그리고.
“ㅡ아가씨들이 꽤나 투정부리시겠군요.”
지금부터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이해했다. 매일같이 몸만 겹치지 않았을 뿐이지 주인님과 어울렸던 아샤와 아냐를 어떻게든 해야 한다는 것을. 오히려 그래서 그럴까, 더더욱 주인님께 떨어지길 싫어하는 두 아가씨를 어떻게든 해야 한다는 사실을 말이다.
“...일단 주인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할까요.”
얼마나 오래갈지는 모르겠지만.
그렇게 중얼거리며. 에루나는 자신의 품에서 잠에 든 이지경의 뺨을 어루만졌다. 거의 몇 주 만에 잠에 든, 자신의 주인의 뺨을.
“...그동안은 편히 주무시길. 나의 주인님.”
얼마나, 두 아가씨께서 참으실 수 있을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그때까지만이라도, 아무쪼록.
《무구한 두 괴물, 아샤네오스 아드리아, 아냐세오스 아드리아.》
물의 보옥을 지배하는 쌍둥이 청색용.
태어나는 순간부터 지금까지, 원하는 것이 있다면 무엇이든지 가질 수 있었고 할 수 있었던 쌍둥이 소녀는 최근에 한 가지 불만스러운 것이 생겼다.
원하지만 가질 수 없고, 아무리 바래도 구할 수 없는 그런 것이. 불충분, 불만족이란 말은 그녀들에게는 해당되지 않을 것만 같았던 일이었지만, 최근의 며칠은 언제나 그런 느낌이었다.
이걸로는 부족하다. 좀 더.
그렇게 생각해도, 그 좀 더는 좀처럼 이뤄지지 않았다. 채워지지 않는 깊은 우물처럼, 점점 더 강해질 뿐인 욕구만이 느껴질 뿐이었다.
분명, 오늘이 어제보다 훨씬 기분이 좋았더라도. 아니, 오히려 그러면 그럴수록. 계속해서 무엇인지 모를 불만족이 조금씩 쌓일 뿐이었다.
그리고 그만큼 하나, 둘씩 늘어나기 시작해서 어느 덧 양 팔로도 전부 들 수 없을 만큼 늘어난 장난감의 사용빈도만 늘어났을 뿐이었다.
하지만 그것도 그때뿐만 조금 가라앉을 뿐이지, 결과적으로는 언제나 부족하다는 느낌이 떠나가질 않았다.
그래도 둘은 참았다. 어쨌거나, 다소 불만족스럽긴 하더라도 언제나 같이 놀아주던 오빠 덕분에 즐거운 건 즐거운 거였으니까.
평소 둘이서만 영지를 지켜왔던 때보다 더욱, 지금이 즐거운 것은 사실이였으니까.
그렇지만 오늘. 그 불만이 극에 이르게 되는 일이 생기고야 말았다.
그도 그럴 것이, 오늘은 그녀들이 오빠라고 부르는 유일한 존재. 다른 세계에서부터 소환된 이지경이 그녀들에게 자유 시간을 줬기 때문이었다.
말이 자유롭게 지내란 시간이었지, 매일 같이 이지경의 옆에서 지내던 둘에게 있어선 사실상 방치나 다름없었다. 더군다나, 그런 말조차도 본인이 아닌, 에루나의 입을 통해서 듣게 되니 더더욱 그런 느낌을 버릴 수가 없었다.
그래도 이거라면, 하고 조금씩 불만스러웠던 것을. 웬일로 조르지 않고 열심히 참아왔던 아샤였지만 이번만큼은 참을 수가 없었다. 안 그래도 불만족스러웠던 것이 한층 배가 되어 부풀어 올라 터질 지경이었다.
그런 심정을 표현하듯이.
침대에 걸터앉고서 부우, 하고 뺨에 바람을 넣고 부풀린 채 불만스레 두 다리를 까딱거리던 아샤가 입을 열었다.
“심심해~ 재미없어~ 우으으!”
버둥거리며 뒤척이던 아샤가 이윽고 입을 쩍 벌렸다. 지평선 너머로 뻗친 푸른 바다처럼 반짝이던 동공이 한곳으로 모이더니, 세로로 찢어졌다.
그리고.
“ㅡㅡㅡ!!!”
고작 한 시간.
아침을 먹고서, 에루나를 통해 이지경의 전언을, '오늘은 자유 시간으로 할테니까 하고 싶던 일들 해도 돼'라는 소리를 듣고서 방으로 돌아온 지 한 시간 만에 터져 나온 포효였다.
그것도 그냥 소리를 내지른 것이 아니라, 마력이 깃든 드래곤의 포효 말이다. 쩌적, 하고 아무리 어리더라도, 힘만큼은 이미 성룡을 넘어선 아샤의 포효에 천공성의 천장이 흔들렸다.
하지만 무너지진 않았다.
애당초 드래곤이 사는 전제하에 건축된 천공성이 마법에 직격으로 맞은 것도 아니고 포효만으로 무너질 리가 없었다.
그런 것치고는 여러 번 수리가 필요할 만큼 박살이 난 적이 있긴 했지만, 어디까지나 상대가 검주 중에서도 최상위의 에네스타나, 드래곤인 크리샤나 아르카가 진심으로 화가 났을 때 그랬을 뿐이지 그 외에는 크게 무너진 적이 없었던 천공성이다.
겨우 포효만으로 무너지진 않는다는 거다. 조금 금이 가기는 했지만... 저 정도라면 굳이 복구하지 않더라도 자동으로 수복해서 금세 멀쩡해질 게 분명했다.
“흥...!”
괜히 그런 천장마저 짜증스러웠던 아샤가 한참을 애먼 천장을 노려봤다. 마음 같아선 이대로 마법을 사용해서 천장에 구멍이라도 내주고 싶었다. 상쾌한 바람이라도 들어오면 기분이 좀 나아질 지도 모르니까.
하지만 그럼 분명 득달같이 달려올 에루나와... 아마 또 다시 화를 낼 이지경을 떠올리고서 참았다.
그래도 짜증이 나는 건 그대로라 쭈욱, 하고 팔을 머리 위로 들어 올리며 우갸악, 하고 소리를 내지른 뒤, 그대로 뒤로 널브러진 아샤가 자신의 옆에서 책을 읽고 있던 아냐의 허리춤을 끌어안았다.
와락, 하고 두 팔로 허리를 안자 옆에서 아샤가 포효를 내지르던 버둥거리던 신경 쓰지 않던 아냐가 그제야 흘끔하고 이쪽을 돌아봤다.
'왜, 뭔데?'
그렇게 묻는 듯이 이쪽을 보는 푸른 눈동자를 마주보면서 아샤가 말했다.
“심심하다니까~ 아냐! 책은 나중에 읽고 같이 놀자아. 응? 아, 마야랑 니아랑 같이 밖에서 노는 건 어때?”
자신과 마찬가지로 짜증나고, 심심할 게 분명할. 상징적인 의미가 아니라 정말로 자매 사이인 아냐에게 그렇게 말한 아샤였지만...
“음... 이따가.”
짤막하게, 그렇게 대답하고서 도로 읽고 있던 책으로 시선을 옮기는 아냐가 보일 뿐이었다. 잠깐 충격 받은 듯이 입을 떡 벌렸던 아샤였지만 이내 눈을 빛냈다.
평소라면 책을 읽는 쪽보다는, 자신과 노는 쪽을 선택했을 동생이 자신을 거절했다는 것은 분명 충격적이긴 했지만, 그보다 호기심이 앞섰기 때문이었다. 아냐가 저토록 관심을 가지고 읽는 책이 대체 뭔지 하는 호기심이 말이다.
처음에는, 심심풀이로 아무 책이나 읽는다고는 했지만... 장난감을 가지고 놀았던 자신보다도 더 오랫동안 버티고 있는 아냐의 모습에 그제야 관심이 생기기 시작한 거였다.
적어도 지금보단 덜 지루해질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서, 아샤가 빼꼼, 하고 아냐의 옆으로 얼굴을 내밀어 책을 들여다봤다.
...뭔가 복잡한 글자들이 많이 잔뜩이었다. 쓰잘데기없이 꼬부랑거리는 것이... 인간들이 쓰는 문자였다.
힘과 지식. 그 중에서도 힘을 물려받은 아샤는 질색하며, 흥미롭다는 듯이 책을 들여다보고 있는 아냐를 바라봤다.
쌍둥이.
그것도, 본래는 하나였을... 하나만이 태어났어야할 알에서 함께 태어난 자신의 여동생, 아냐. 본래는 같은 존재이고, 하나였을 존재인 여동생이였지만 이렇게 보면 자신과 아냐가 많이 다르다는 것을 새삼스레 자각하고 말았다.
성격도 비슷하면서도 다르고, 좋아하는 음식이라던가, 취미 역시 조금씩 달랐다.
적어도 자신은, 아냐가 흥미롭게 읽고 있는 글자들을 보고서. 일말의 재미조차도 느끼지 않고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혼자 멍하니 있어봤자, 아까랑 똑같을 뿐이고, 다시 장난감을 가지고 놀기도 그래서 그런 아냐를 보며 입을 열었다.
“대체 뭔데 아까부터 그렇게 열심히 읽는 거야? 아냐.”
“응, 이거?”
고개를 갸우뚱하던 아냐가 고민하는 것이 보였다. 어쩐지 그 모습이, 대체 뭐라고 설명하면 좋을지 생각하는 듯한 모양새라 아샤는 쀼루퉁하게 입술을 내밀었다. 확실히 자신에 비한다면, 아냐가 지식을 더욱 물려받은 만큼 더 아는 것이 많은 건 맞지만. 그래도 저러는 것을 보니 뭔가 기분이 언짢았기 때문이었다.
서로 알고 있는 지식만 조금 차이날 뿐이지, 자신이 아냐보다 못한 것은 아니니 말이다. ...가슴은 조금 작은 모양이었지만, 그래도 키는 자신이 더 컸고, 가슴도 금방 커질 거다. 응, 분명 그럴 거다.
괜히 떠올라버린 가슴 생각에 조금 우울해하던 아샤였지만...
“어디보자 여기 있었는데... 아, 찾았다. 자, 이거 봐. 언니.”
이내 책을 펼쳐서, 어느 한 페이지를 골라 펼친 아냐를 보고서. 정확히는 그 펼쳐진 책에 있는 그림을 보고서. 아샤는 쀼루퉁하게 내밀었던 입술과, 우울했던 감정을 도로 집어넣었다.
그리고 눈을 빛내며 아냐가 펼쳐보인 페이지를 바라봤다.
“이건...”
알몸의 남녀가 서로 껴안고 있는 그림.
그 그림은 방금까지 먼지 한 톨만큼도 없었던 책에 대한 흥미를 단숨에 상승시키게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이거, 오빠랑 하던 놀이랑 똑같네?”
처음에는 가슴이 커지는 마사지였던 것이 이러저러 바뀐 끝에, 어느덧 일상의 일부분이 되어버린 기분이 좋아지는 놀이와 책 속의 남녀들이 하고 있는 것과는 무척이나 똑같았다.
“응.”
다시 짤막하게 그렇게 대답하고서 도로 책을 보기 시작하는 아냐를 보고서, 아샤는 이번에는 기분 나빠하지 않고서, 그런 아냐의 옆에서 얼굴을 내밀고 책을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별로 관심이 없었을 때는 몰라도, 관심을 갖고 읽기 시작하자... 확실했다.
오빠와 했던 놀이와 똑같은 것을, 책에서 나오는 남녀가 하고 있었다. 조금 다른 감이 없잖아 있기는 했지만... 적어도 중간까지는 똑같았다. 흥미롭게 책을 보던 아샤가 입을 열었다.
“어디서 난 거야?”
“전에 오빠 선물로 챙겨왔던 것 중에서, 몰래 하나 챙겼어.”
“전에? 아아. 그때 그거?”
기뻐해줄 거라고 생각했는데, 대부분을 돌려보내게 된, 예의 남자들이 좋아할 법한 물건 중의 하나에 포함됐던 책인 모양이었다.
그러고보니 그때, 그 아저씨한테 나중에 또 보자고 했었는데... 오빠가 만류로 무기한으로 중단되어버린 내기를 떠올린 아샤가 고개를 갸우뚱했다. 뭐, 아무래도 좋은 일이라 금방 머릿속에서 지워버렸다.
아샤의 관심은 지금 그런 것이 아니었으니까.
새로운 장난감을 발견한 악동처럼 눈을 빛내며, 아냐가 읽고 있던 책을 뒤에서 보던 아샤가 입을 열었다.
“아, 아냐. 나도 읽을 거니까 처음부터 보자. 응?”
“난 아직 덜 읽었어.”
“뭐 어때, 처음부터 봐도 괜찮잖아~”
“그럼 나 다 읽고 나서 보지 그래?”
“그럼 너무 늦잖아!”
그렇게 둘은 티격태격하면서, 계속해서 책을 읽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