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252화 〉252화 (252/370)



〈 252화 〉252화

여차저차 한바탕 소동이 있었지만, 여자저차 어떻게든 무사히 끝나고서. 모두가 떠나가고서 휑하니 텅 비어버린 것만 같이 조용해진 식당에서. 에루나가 들고 온 얼음을 수건으로 감싸며 말했다.


“수고하셨습니다, 주인님.”

그렇게 말하며 에루나가  오른뺨 위로 차갑게 얼린 얼음을 감싼 수건을 가져다댔다. 체온보다 낮은 차가움이 아린 뺨을 스쳐오자 통증이 조금은 가라앉는 기분이 들었다.

뭐, 기분이 들었다는 거지 나은  아니라서 여전히 화끈거리긴 했다. 하지만 한결 편해진 것도 사실이라, 나는 내 뺨에 수건을 대고 조심스레 문지르고 있는 에루나에게 말했다.

“고맙다, 에루나.”

그런 내 말에 에루나 역시 태연한 얼굴로 대답했다.

“그런 말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시종으로써 당연히 해야  일이니 말입니다. 그보다... 정말로 치료하지 않으실 생각이십니까?”

“그래, 내가 잘못한 거니까. 뭐, 흉터가 생기는 것도 아닐 테니까 괜찮지 않아?”

“예, 상처가 난 것은 아니니 흉은 생기지 않을 거라고 생각합니다만...”


“그럼 됐지.”


그렇게 말하고서 에루나에게서 수건을 받아들여서 내 뺨에 가져다댔다. 꾸욱, 하고 에루나가 조심스레 문지를 때랑 달리 힘을 주어 뺨에 댄 수건으로부터 한층 더 차가움이 느껴졌다. 그런 나를 올려다보던 에루나가 입을 열었다.

“하지만...”


에루나 뭐라고 말하려는지 알았다. 그렇지만 정말로 굳이 그럴 필요를 느끼지 못해서 그런 거였다. 그래서 나는 그런 에루나의 말을 자르며 말했다.


“괜찮아, 덕분에 크리샤 생각도 나고 좋은데.”


“...그렇다면 됐습니다만.”

내 말에 하는 수 없다는 듯이 에루나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서도 계속해서 내 뺨을 주시하는 것이 내가 생각보다 대단한 몰골인 듯 싶었다.

하긴 아프긴 진짜 아팠지...

루시아가 결국 조건부로 찬성하자 내 뺨을 비틀 듯이 쥐어짜냈던 크리샤의 손속이 그만큼 매우긴 했었다.

하지만 그것도 결국 내 업보였다.

맞을 짓을 해서 맞았다는 거였다. 요즘 들어 고생이 많은 내 뺨에 심심찮은 애도를 표하며, 나는 에루나에게 받은 얼음 수건으로 열심히 화끈거리는 뺨을 달랬다.


그러고 있자니 그런 나를 지켜보던 아샤와 아냐가 말했다.

“정말로 괜찮아, 오빠?”

“에루나 대신에 아냐가 치료해줄 수도 있는데?”


둘이 보기에도 내 뺨이 꽤나 대단한 꼴인지 걱정스레 묻는 그 말에는 평소와는 달리 장난기라고는 없어보였다. 저 개구쟁이들이 보기에도 장난칠 때가 아니라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하지만 이번에도 역시 고개를 저었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이건  업보였다. 까놓고 말해서 내 욕망을 한껏 드러낸 결과였다.

한 달에 한 번씩, 그리고  명씩. 아샤와 아냐를 제외하면, 그런 식으로 밖에는 서로를 만날 수 없는 작금의 현실을 거부하고서, 모두와 함께 있고 싶다는 내 욕심을, 그녀들의 걱정을 싸그리 무시한 채로 표로한 결과였다.

루시아나 크리샤, 아르카가... 그녀들이라고해서 나랑 같이 있고 싶지 않아서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었다. 나와 떨어지고 싶지 않은 것은 그녀들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그러기엔 너무 위험하니까, 스스로도 제대로 억누를 수 없는 드래곤들의 본성 탓에 그러고 있었을 뿐이었다.

그녀들의 강함은, 그녀들 자신에게로도 향할 수 있는 날카로운 양날검이였으니 말이다. 통제되지 않는 이성은, 본능에만 앞선 드래곤은 그만큼 위험했다.


그걸 조금이라도 억누르기 위한 것이 지금의 형태였다. 어쩔 수 없는 필요에 의한 최선의 결과물이었다.

그런데 그 어쩔  없는  무시한 채로 제대로 된 대책도 없이 그런 말을 했으니  뺨이 새빨갛게 변하게 된 것도 어쩔 수 없는 결과였다.

나야 정말로 가능할 거라고 생각하고는 있지만, 허무맹랑하고 말도  되는 헛소리로밖에 들리지 않는 것도 사실이긴 사실이니까.

터무니없는 소리를 지껄이며, 자신의 말을 무시하는 연인을 보고 토라지는 것은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었다. 크리샤가 내 뺨을 쥐어뜯는 것 정도는 이해할 수 있는 범주의 가벼운 투정에 불과하다는 거다.

적어도 나는 거기서 대차게 뺨을 얻어맞을 각오도 해뒀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고작 뺨을 꼬집혀서 부은 걸로 끝났다. 크리샤가 드래곤들을 대표로,  뺨을 조금 세게 꼬집는 걸로 끝난 것이다. 그걸... 고작 뺨이 부은 정도로 안 그래도 적어진 에루나의 마력을 써서 치료를 받는다거나, 아샤나 아냐의 도움을 받는 것은 너무 어리광을 부리는 거였다.

나로 인한 결과는 오롯하게 내가 짊어지는 것이 마땅했다.


하지만 그걸 에루나나 아샤와 아냐가 납득하지 못하는 것도 이해할 수 있었다. 조금만 마법을 쓰면 멀쩡해지는 걸 가지고 괜히 얼음주머니를 뺨에 댄 채로 끙끙대고 있는 꼴을, 특히 아샤와 아냐는 이해할  없다는 듯이 보고 있었으니 말이다.


내가 지금 무슨 생각을 하는 지, 어떤 감정인지, 어렴풋하게 알  있는 에루나와 달리 그 둘은 내가 멀쩡해질  있는 것을 가지고서 앓고 있는 것만으로 보일 테니 말이다.


알고 있다.

그녀들의 이해할  없음이 어디까지나 나에 대한 걱정에서 비롯되고 있다는 것을. 그러니까 나는 괜스레 기분이 좋아졌다.


남에게 걱정을 받는다는 것은, 그리 나쁜 기분이 아니었다. 그 말은 그만큼 상대가 나를 생각한다는 뜻이니 말이다. 그렇다고 계속 걱정하게 두는 것도 그랬다. 그 말은 그만큼 나를 생각하는 상대를 괜히 괴롭히는 거나 다를 바 없었다. 그러니까, 나는 별 수 없이 아샤와 아냐에게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살짝 아린 게 생각보다 기분 좋기도 하고, 그렇게 걱정하지 않아도 돼.”

“...오빠가 그렇게 말한다면야 상관없는데.”

“그렇게 말하니까 조금 변태 같아 오빠.”


그런 말을 하며 조금 멀찍이 내게서 떨어지는 둘을 보고서 쓴웃음을 지었다. 드디어 둘한테도 변태소리를 듣는 구나 싶어서. 어쨌거나, 덕분에  이상 아샤와 아냐가 나를 걱정하는 일은 없어졌다. 조금, 나에 대한 평가가 낮아진  싶었지만. 뭘, 변태 소리를 듣는 게 한  번도 아니니  상관없었다.


아무튼, 그런 둘을 보다가 입을 열었다.

“그보다 아냐, 아샤.”

“응? 왜 불러, 변태 오빠?”

“왜 그래? 변태 오빠.”


나는 장난치듯이 변태를 연호하는 아샤와 아냐를 바라봤다.


가만히 짓궂은 미소를 띠고 있는 아샤와 아냐를 응시하자, 나를 올려다보던 둘이 무언가를 느꼈는지 표정이 바뀌어갔다. 장난기가 많은 어린 소녀의 얼굴과는 어울리지 않는 음란함이 깃든 여자의 표정으로.


어린 소녀로밖에는 보이지 않는 아샤와 아냐가 짓기엔 어울리지 않는 표정을 하고서 한껏 기대어린 눈으로 나를 올려다보고 있는 둘을 보면서. 내가 입을 열었다.

“낮에 내가... 밖에서 놀다가 돌아오면 선물을 준다고 했었지?”


아리스와 단 둘이 남기 위해서 내걸은 미끼였지만 어쨌든 약속은 약속이었다. 그런 내 말에 화악, 하고 밝아진 얼굴로, 일순간 보였던 그 표정이 거짓말처럼, 장난기로 가득한 소녀의 얼굴로 아샤와 아냐가 대답했다.

“응, 그랬어. 오빠.”

“이번에는 무슨 선물이야?”

단지 그녀들이 원하는 선물이란 것이, 장난기가 넘치는 소녀가 원하는 선물과는 거리가 멀다는 점이 조금 옥의 티였다.


그나저나... 이번에는 정말로 뭘 줘야하나.


곰곰이 고민해봤지만, 별다른 게 떠오르지 않았다. 사실  이상 아샤와 아냐에게 줄 만한 것들도 없었다. 애널 비즈며 로터며 이미 종류별로 잔뜩 줬었으니 말이다. 준다고 하더라도 기껏 해봐야 그것들의 연장선에 불과한 거다. 조금 모양이 다르거나, 조금 다른 기능이 있다거나, 뭐 그런 거.


물론 만들려면 좀 더 대단한 것들도 잔뜩 만들 수야 있겠지만...

 영역에 들어서면 너무 본격적이였다. 여러모로 경험을 쌓기는 했다지만, 그래도 아직 처녀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둘에게 선물하기엔 조금 그런 물건들이란 소리였다.

하지만 그건 이번에 준... 예의, 드래곤 슬레이어를 본따서 만든 그것들도 마찬가지긴 했다.


이왕 이렇게 된 거, 하고 내가 입을 열었다.

“모처럼이니까, 오늘 줬던 그거. 사용하는 방법 알려줄까?”

“이거?”


아샤와 아냐가 그런 내 말에 내기의 중단의 대가로 받아낸 것을 허공에서 꺼내들어 손에 쥐고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어린 소녀로밖에는 보이지 않는 둘이 손에 들고 있기엔 엄한 물건인데... 그 녀석의 원본인 드래곤 슬레이어를 물고 빨았던 아샤와 아냐에게 그거 그렇게 들면  된다고 말하기도 조금 그랬다.

“그래, 그거.”

어찌됐건, 흥미가 생겼는지 눈을 반짝이는 아샤와 아냐가 보였다.

그런 우리를 보고서 하아, 하고 한숨을 내쉬는 에루나가 보였다. 그 한숨에 언뜻 엿보이는 부러움의 감정을 무시한 채로. 나는 아샤와 아냐에게 손짓했다.


그러자 폴짝 뛰듯이 달려온 두 소녀가, 나란히 내 품에 안겼다.

아샤와 아냐를 가볍게 안아들은 내가 말했다.

“우선 침대로 가자.”


카자흐 어쩌고.


아샤와 아냐에게 취미용 수집품이었는지 아니면 실제로 쓰려고 모아뒀던 건지는 알 수 없지만. 아무튼 간에 이른 바 남자가 좋아할 법한 물건들을 죄타 털린 불쌍한 란자카의 국왕 덕분에 얻게 된 야한 속옷들은 오늘도 유용하게 쓰이게 됐다.

물론 쓴다는 게 내가 사용한다는 소리는 당연히 아니였다. 여성용의, 그것도 야한 속옷을 입는 취미는 내게 없었으니까. 어디까지나 아샤와 아냐에게 입혔다는 의미에서 사용했다는 거다.

어쨌거나, 침실로 오고 나서 내가 건네준 속옷으로 갈아입은 아샤와 아냐가 히히, 하고 어린 아이 특유의 짓궂은 표정을 지으며 나를 올려다보고는 말했다.

“오빠, 어때? 아샤 귀여워?”

“아냐는? 아냐도 귀엽지?”

“그래그래,  다 아주 예쁜걸.”


그렇게 말하며 둘을 끌어안자, 꺄르르하고 웃던 아샤와 아냐가 간지럽다는 듯이 몸을 움츠리며  포옹을 받아들였다. 그런 둘을 번쩍 들어 올리고서, 내가 씨익, 하고 웃으며 말했다.

“너무 예뻐서, 당장 잡아먹고 싶을 정도야.”


“응? 아샤는 먹을 수 없는데?”

“아냐도 맛없을 걸?”

말이 그렇다는 거지. 내게 안겨진 채 고개를 갸우뚱하는 둘을 보며 쓴웃음을 지었다. 아직 때 묻지 않은 듯한 둘의 반응을 볼 때마다 내가 정말로 몹쓸 짓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팍팍 들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였다.


나는 안고 있던 둘을 냅다 침대 위로 던졌다.

“꺄아~♥”

“꺅~♥”

사랑스러운 비명을 지르며 침대 위로 던져진 아샤와 아냐가 통, 통하고 푹신푹신한 침대 위에서 몇 번인가 튕기고는, 그대로 자빠져서는 나를 올려다봤다. 그러고는 입가에 미소를 띠며 말했다.


“오빠, 눈이 야해~”

“언니, 오빠가 정말로 우리를 잡아먹을 것 같은데?”


“그거 큰일이네 아샤!”

키득거리며 웃고 있는 아샤와 아냐의 푸른 눈동자와 마주쳤다. 푸른 물결처럼 일렁거리는 그 두 쌍의 눈망울에 비쳐 보이는 기대와, 너무 일찍 배워버린 욕정의 기색을 보고서. 천천히 내가 다가갔다.

나를 올려다보며 어린 소녀의 외모와는 어울리지 않는 표정을 짓고 있는 둘을 내려다보고 있으려니 아샤가 슬쩍, 하고 네글리제의 끝자락을 들춰 올리며 말했다.

“어쩔 수 없네, 언니가 희생할 테니까. 아냐라도 살아남아야해?”

그런 아샤를 보고서 아냐 역시 질 수 없다는 듯이 네글리제를 들어 올리며 말했다.

“아니, 아냐가 희생할 테니까 언니가 먼저 도망쳐.”

장난치듯이, 유혹하듯이, 살랑살랑 짧은 네글리제의 끝자락을 잡고 흔드는 둘을 보고서. 이미 후회하기엔 한참이나 멀리 왔다는 것을 새삼스레 깨달았다.


나는 새하얀 백지와도 같이 순수했던 두 소녀가, 이미 얼룩져서, 더 이상은 순백이라고 하기엔 어려워졌다는 걸 알아버렸다. 나로 인해 남자를 알게 되고, 나로 인해 쾌락을 배워버리고, 지워지지 않을 얼룩이 생겨버린 쌍둥이 소녀를 보며...

입가를 비틀며 말했다.

“둘이 사이가 너무 좋으니... 같이 잡아먹어야겠는 걸?”

씨익, 하고 웃으며 그렇게 말하자 아샤와 아냐가 말했다.

“오빠는 욕심쟁이네.”

“그러게, 어쩔  없네. 언니?”


그렇게 말하며, 서로 마주본 아샤와 아냐가 생긋하고 웃고는, 네글리제의 끝자락을 서로 집어 들춰 올렸다.


네글리제 밑으로 아직 어린 균열을 서로 자랑하듯이 내비치며. 아샤와 아냐가 사랑스럽게 미소 짓고는 말했다.

““그럼... 아프지 않게 먹어야 돼? 오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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