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251화 〉251화 (251/370)



〈 251화 〉251화
“저희 모두가 천공성에 계속 머물면서... 요일별로, 인가요?”


내 제안을 들은 루시아가 확인하듯이 묻는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이자 옆에 앉아있던 크리샤가 쭈욱, 몸을 앞으로 빼서는  뺨을 잡아당겼다.


꽈악, 하고 그냥 잡은 것도 아니고 회전의 묘리를 넣어서 틀어쥔 뺨이 아팠다.


“아파, 크리샤.”

“아프라고 한 거니까. 너, 미쳤어?”


미쳤냐고 묻는 크리샤의 말에 고개를 저으려다가, 그러면 더 아프다는 걸 깨닫고서 입만 열어서 대답했다.


“미치진 않았는데...”


그 말에 크리샤가 무척이나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그렇다면 더 상태가 나쁘다는 소리네. 머리가 어떻게 되어버린 걸지도 모르겠어. 그 뿔이 뇌라도 찌르고 있는 거 아니야?”


내 이마에 돋아난 뿔을 보며 그렇게 말하는 크리샤의 말에 쓴웃음을 지었다. 심한 말이었다. 하지만 이해가 가능한 반응이기도 했다. 그래도 마냥 꼬집히는 것도 그래서 도움을 청하듯 아르카쪽을 바라봤다. 그러자 그런 내 시선에 아르카가 고개를 끄덕이고서 말했다.


“이번만큼은 크리샤의 말이 옳은  같네에. 아무래도 우리들의 남편씨가... 어딘가 맛이 가버린 모양이야아.”

이쪽도 심한 소리를 하고 있었다.  연인들은 하나같이 독설가인가... 혹시나 싶어서 루시아 쪽을 봤지만, 루시아 역시  좋지 않은 표정이었다. 정녕 내 편은 아무도 없는 건가...

그런 생각을 하며, 씁쓸하게 웃고 있을 때였다.

“오빠 말대로라면 전처럼 다들 같이 지낼  있다는 거지? 그럼 아샤는 찬성이야.”

“언니가 찬성한다면 아냐도 찬성이야. 그쪽이 더 재밌어 보이고.”


아샤와 아냐가 개구쟁이 같은 표정을 지으면서 그렇게 말해왔다. 정보창을 보지 않더라도 그 둘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있을 것만 같았다. 별 생각 없이 즐거우면 그만이지, 하는 생각을 하고 있을  뻔했다.

하지만 적어도, 지금은  편이였다.


아무튼 덕분에 이걸로 2대2, 아직 의견을 말하지 않은 루시아와 샤르, 카르네를 제외하면 동수였다.


하지만 그게 그렇게 쉽게 될 리가 없었다.

“나도 반대~ 또 다 같이 지내라고? 안 그래도 이렇게나 좁은 곳에서? 그런   딱 질색이거든~?”


천공성이 그렇게 좁은 곳은 아닌데... 카르네가 반대하는 말을 하는 것을 보고서, 샤르쪽을 보자, 무표정한 얼굴로 그런 내 시선을 받아낸 샤르가 천천히 입을 열어 딱 잘라서 말했다.

“...보류.”

찬성도, 거부도 아닌, 참 애매한 말이었지만 가장 샤르다운 말이었다. 그렇게 말하고서 가만히 이쪽을 응시하는 은빛의 눈동자를 마주본 내가 입을 열었다.

“그럼, 이걸로 찬성이 아샤와 아냐로 둘, 거부가 크리샤랑 아르카, 카르네로 셋이네? 맞지?”


“아샤랑 아냐의 의견은 하나로 하는 게 맞지 않아~?”


“뭐? 카르네, 나도, 아냐도 엄연한 드래곤이거든?”

“맞아, 언니랑 나랑 싸잡아서 하나로 치는 짓은 하지 말아줄래?”

“...아, 그래. 알겠으니까~ 그렇게 쳐다보지 마~”


어깨를 으쓱이는 카르네가 항복을 표시하자 뾰루퉁하니 팔짱을 끼는 아샤와 아냐가 보였다.


어쨌거나... 이걸로 카르네의 반대와 샤르의 보류로 반대 3, 찬성2. 그리고 보류 1이 되어버렸다. 루시아가 아무리 찬성하더라도 반반이 된 셈이었다.


결국 내 제안을 받아들일지 말지 정할 사람이 된 루시아에게로 모두의 시선이 향하자, 금색 빛으로 반짝이는 두 눈동자가 나를 바라봤다.

“이지경님도 잘 아실 거라고 생각해요. 어째서 저희들이... 무척이나 귀찮은 방식으로 이지경님과 지내는 날을 나누는 지.”


그건 무척이나  알고 있는 바였다. 드래곤의 질투심, 독점욕, 탐욕. 그것은 언제나 좋지 않은 결과를 낳아왔었다.


마룡의 탄생, 국가의 멸망,  밖에도 여러 재해들.


사랑에 눈이  드래곤들이 저질렀던 일들에 대한 거라던가, 경고라던가, 주의라던가는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어왔었다.

“그런데... 그걸 알면서도... 저희 모두와 같이 지내고 싶다고 말씀하시는 건가요?”

루시아의 말에 내가 말했다.

“그래, 물론 당장 그러겠다는 건 아냐. 하지만 적어도, 한차례씩 순번이 돌고 난 뒤에는 그러고 싶다는 거지.”


적어도 아샤와 아냐를 안고, 또 카르네와 샤르를 안게 된 이후에야 그렇게 하고 싶다는 뜻이었다.

아무리 빨라도 3개월은 더 나중의 일이라는 거다. 하지만 고작 3개월밖에 남지 않은 나중의 일이기도 했다.


한참을 말없이 나를 응시하던 루시아가 입을 열었다.


“무언가... 방법이 있는 건가요?”

“아직은. 하지만 감은 잡히고 있거든.”

드래곤들은 질투가 강하다. 그리고 그들이 가지고 있는 힘도 무척이나 강하다. 그들이 수틀려서 움직이는 것만으로도, 단지 남들은 다할법한 투정조차도 위험할 정도로. 하지만 슬슬 그런 그녀들의 질투심을 다루는 법을 알 것도 같았다.

그야...


“응?”

“왜 그래 오빠?”


내 시선에 이쪽을 보며 고개를 갸우뚱하는 쌍둥이, 아샤와 아냐가 보였다. 쌍둥이, 아무리 꼭 닮았다고는 하더라도 그녀들은 성격도, 하는 행동도 조금씩 다른 드래곤들이었다.

아무리 쌍둥이라고 하더라도 완전히 같을 수는 없는 법이었다. 좋아하는 음식이나, 옷의 취향, 잠버릇, 그 외에도 여러 가지로. 그녀들은 분명히 달랐다.


하지만 여태껏, 그녀들은 나와 지내는 동안 다투거나 하는 일은 없었다. 원체 그녀들이 사이 좋은 것도 이유겠지만... 꼭 그것만이 이유인  아니였다.


때때로 어느 한쪽을 우선할 경우, 다른 한쪽이 질투하는 경우는 종종 있었다. 물론 이유가 나 때문인 경우였다. 내가 좀 더 아샤를 칭찬하거나, 내가 좀 더 아냐를 귀여워하거나, 그런 식의 차별을 둘 때면 어김없이 둘은 토라지고는 했었다.

하지만 해결책은 있었다. 꽤나 쉽고, 무척이나 명료한 해결책이 말이다.


그건...  모두 만족할 때까지 어울려줄 수 있으면 그만이었다.


아주 단순하고, 아주 간단한 해결책이었다.

하나를 온전하게 하나로 갖지 못하면 만족할 수 없는 것이 드래곤이라면, 그 하나가 무척이나 커다랗고, 대단하면 그만이었다.


그야말로 모든 드래곤들이 나눠갖더라도 모두가 만족할 만큼. 아무리 욕심이 많은 드래곤이라고해도, 혼자 독차지하기엔 너무나도 버거울 만큼 대단해지면 그만이었다.

물론, 그게 나라는 게 문제긴 했다.


“하아...?”

내 설명에 어이없다는 듯이  뺨을 잡아당기고 있던 크리샤가 말했다.

“그게 무슨 바보 같은 소리야? 너 정말로...”

머리가 도르신? 톡 까놓고 말해서 그렇게 묻는  같은 크리샤의 시선을 받으면서 내가 말했다.


“크리샤도 싫을  아냐? 지금 방식으론...  달을 같이 지내면 다시 보려면 수개월은 참아야하는데?”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안되는 건 안되는 거잖아. 거기에 네가 말한 제안도 터무니없는 소리고. 당장에, 나랑 루시아가 싸우면... 네가 말릴 수 있어?”


“없지.”

당당하게 대답하자, 크리샤가 꿀먹은 벙어리가 돼서 나를 끔뻑끔뻑하고, 두 눈을 깜박이며 바라봤다. 이윽고, 눈살을 찌푸린 크리샤가 말했다.

“그래놓고서 우리들이랑 전부 같이 지내겠다고?”

“하지만 내가 아니라, 다른 드래곤들이랑 같이 말린다면 말릴 수 있겠지.”

이해득실이나 대가에 민감한 드래곤들이었다. 그녀들에게 합당한 대가를 치룬다면... 설령 분노해서 날뛰는 크리샤나 루시아도 기꺼이 말려줄 거다. 물론 내가 고생해야겠지만.

그랬다. 내 제안은 결국, 드래곤들끼리 서로 견제하면서도, 나를 중심으로 모두가 화합하게끔 하게 하는 방법이었다.

“...아무리 그래도, 결국 문제가 터질 거야. 그러니까, 나는 반대.”


크리샤의 거듭되는 반대에, 내가 시선을 돌려 아르카를 바라보며 말했다.

“아르카, 너도 그렇게 생각해?”

“흐으으응, 그러니까아... 네 말은 우리 전부가 만족할 수 있게 해줘서... 우리가 서로 다투는 일이 없게 하겠다아, 뭐어 그런 뜻이야아? 설령, 우리끼리 다투더라도... 네가 그 사이에서 중재할 거고?”


“뭐, 그렇지.”


그런 내 말에 할짝, 하고 입술을 핥은 아르카가 말했다.

“재미있겠네에, 하지만 정말로, 말도 안되는 소리기는 해애. 그치만... 다른 누구도 아니고, 네가 하는 말이니까아. 뭐, 남편의 말을 믿는 것도 아내의 역할이라고 했던가아? 좋아. 그럼 나도 보류.”


“...뭐야, 그럼 내가  바보 녀석의 아내로는 부족하다, 뭐 그런 말이야?”

“꼭 그렇다는 말은 아닌데에? 어디 찔리기라도 해애?”


찌리릿, 하고 아르카와 크리샤의 사이에 불꽃이 튀는 것만 같아 보였다. 대충 그런 둘을 말리고서. 나는 루시아를 바라봤다.

어찌됐건, 아르카도 거절에서 표를 돌려서 보류로 바꿨다. 그래도 찬성이란 건 아니니까, 결국은 찬성 2, 거절 2, 보류 2였다. 아직 확실히 정해진  아니란 소리였다.

“그래서? 어떻게 할래? 루시아. 이전처럼... 억지를 부리는 건 아니니까, 솔직하게 말해줘.”

내 말에 루시아가 가만히 나를 바라보다가, 이윽고 눈을 감았다.





《광휘의 꽃, 루시아네스 파라모아.》

그건 무척이나 달콤한 유혹이자, 무척이나 위험한 선택의 권유였다.


적어도 루시아네스는 그렇게 생각했다.


자신에게로 모인 자매들의 시선을 받으며, 루시아네스는 대답을 기다리듯 가만히 이쪽을 바라보는 이지경과 눈을 마주쳤다.

그가 바뀌었다는 것.

그가 아주 많이 바뀌었다는 것.

그것은... 아주 잠깐 동안의 만남과 대화, 해후를 통해 충분히 알 수 있었다. 이해할 수 있었다. 그가... 자신과 떨어진 잠깐, 아주 잠깐 사이의 시간동안 많은 것이 바뀌었다는 것을.


그것은, 크리샤의 영향을 받아서일지도 몰랐다.

그것은, 아르카의 영향을 받아서일지도 몰랐다.

그것은... 내가 모르는 다른 누군가의 영향을 받아서 일지도 몰랐다.


한가지 확실한 것은, 우유부단하고, 상냥하고, 어리숙했던 자신의 연인은, 자신의 눈밖에서, 자신이 모르는 곳에서 많은 것이 바뀌어서, 다시 자신의 앞에 있다는 것이었다.

그 변화에 씁쓸함과, 서글픔, 그리고 사랑을 느끼는 것은 어째서일까.


변해버린 그의 모습조차도 사랑스럽다고 여기는 것은, 자신이 그에게 그만큼 빠져버렸다는 것일까.

그가 이토록 성장한 것이, 그가 이토록 바뀐 것이 오롯하게 자신의 덕분이 아니란 것에 가슴이 아리는 것을 느끼면서도, 그가 이토록 성장한 것이, 그가 이토록 바뀌어서... 드래곤들 사이에서 한발도 물러섬없이 자신의 의견을 토로하고, 하나둘씩 설득해나가는 모습을 보는 것이 무척이나 사랑스럽게 여겨지는 것은.


그래서 그럴까, 언제나 올곧하고, 언제나 이성의 괴물, 드래곤답게 모든 것을 판단하던 루시아네스의 생각에 아주 약간의, 그저 그를 위해서 움직이고 싶다는 마음이 섞여든 것은.


아주 살짝, 조금은 양보해서. 그를 믿고 싶다고 생각한 것은.

“증명...”


한숨을 내뱉으며, 루시아네스는 욕망에 몸을 적셨다. 그와 함께 있고 싶다. 그와 떨어지고 싶지 않다. 그 말은 차마 내뱉지 못한 채, 드래곤들의 로드로써... 최소한의 일선을 지키면서. 그것이 최후의 보루인 것처럼 말을 꺼냈다.

“지금 당장은, 저는 거절할 수 밖에 없어요. 하지만... 나중에, 이지경님의 말대로... 그 제안처럼, 저희들을 통제할 수 있다면... 그렇다면 저는 찬성할게요.”

그것이  효과적일 테니까요, 하고. 마지막에 마지막에 가서야, 다시 가면을 쓴 채로 말했다.

“그거면 충분해.”

그런 자신을 보며, 이지경은 활짝 웃었다. 믿고 있었다는 듯이, 그렇게 말해줄거라고 생각했다는 듯이. 아이처럼, 해맑게 웃는 그 미소에 루시아네스는 하복부가 욱신거렸다.


다시 그에게 안기고 싶다.


당장에 그에게 안기고 싶다.

나도... 크리샤와 아르카처럼, 그의 아이를 갖고 싶다. 그런 욕망이 무럭무럭 피어올랐다. 그것은, 자신이 경계하던 질투였다. 그것이 피어올랐다.

어째서 나만.

어째서 나만이.


검고, 질척하게... 자신의 순서가 조금만 늦었더라면. 자신이 이지경과 함께 있었던 시간이 조금만 길어더라면, 하고. 계속해서, 계속해서, 검게 물든 감정이 가슴 속에서 들끓었다.

그것을, 정말로... 정말로 그가 감당할  있을까?

자신의 사랑하는 연인이, 정말로 이 감정을, 아주 한순간... 이성을 놓는 순간 모두를 물어뜯고서, 오로지 자신만이 그의 연인으로 남고 싶다고 생각하고마는 감정을 그가 정말로 감당할 수 있을까?


드래곤으로써의 이성이 그건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여자로써의 감정이 그래도 그라면 믿어볼 수 있다고 말한다. 또... 이지경에게 안기면서 깨어난 암컷으로써의 기쁨을 알게  루시아네스는, 그건 아무래도 좋고, 그에게 안기고 싶다고 말한다.


혼재하고, 혼돈스러운 감정들이었다.


강하디 강한 이성으로 억누르지 않는다면, 아니 그렇게 하더라도 언제 터질지 모르는 그런 감정들이었다.


하지만... 루시아네스는 그저 조금만, 그에게 경고할  밖에 없었다.

“하지만... 정말로, 정말로 위험한 일인건 아시고 계시겠죠?”


자신의 감정을 최대한 숨긴 채로, 그렇게 경고한 말에 그녀의 연인이 웃으며 말했다.


“알고 있어. 그렇지만... 일 년에 몇 주만 보고 마는 건 너무 쓸쓸하잖아?”

이를 드러내며 웃어 보이는 이지경을 본 루시아네스가 포옥, 한숨을 내쉬었다.


그것은, 그의 말이 어처구니가 없어서도 아니고, 너무 유치해서도 아니였다.

그저, 그런 그의 말에 동조하고 마는 자신의 모습이 한심스럽고, 무척이나 어이가 없어서 나와버린 한숨이었다.


스스로 위험한 선택지를 권하는 것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감이ㅡ 한편으론 오만할 정도로ㅡ 넘쳐나는 모습이 너무나도, 너무나도 사랑스럽다고 여기고 마는 자신이, 무척이나 어이가 없어서 그런 거였다.

어쩌다가 내가 이렇게 되어버린 걸까, 하고. 루시아네스는 씁쓸하게 미소 지었다.


그렇지만...


“믿어주라, 응? 루시아.”

결국은 더욱 반한 쪽이 지는 법이었다. 자신을 믿어달라 말하는, 연인의 모습에 루시아네스는 고개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네, 저는 이지경님을 믿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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