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244화 〉244화 (244/370)



〈 244화 〉244화

그녀의 목 위로 생겨난 목줄에서 뻗어 나온 쇠사슬을 손에 감자, 아리스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크리샤가 아리스의 몸에 새겨 넣은 고위 저주, 내게 예속된 아리스가 목줄을 꺼내든 지금, 더 이상 저항하는  사실상 불가능했다.


“그냥 좋게 말로  때 하지? 그게 좋을 텐데.”


아주 살짝, 목줄을 잡아당기는 것과 동시에 와락 얼굴이 일그러지는 아리스가 저항하려는 듯 꾸욱하고 주먹을 움켜쥐자 아리스를 향해 투기를 뿜어내며 내 뒤에 있던 바록과 바쿠가  앞으로 나왔다.


그리고  곁에 있던 로로가 허벅지에 달고 있던 단검을 꺼내서 손에 쥐는 것이 보였다.

에네스타 역시, 천천히 검 위에 손을 얹었다.


바록과 바쿠를 앞세우고, 그런 바록과 바쿠를 상대로도 우위를 점하던 로로가  옆에 있었다. 거기에 아리스보다도 더 높은 경지에 있는 에네스타까지 있었다. 마력에 대한 문제가 아직 덜 해결되어, 여전히 조금 어린 상태기는 했지만. 도리어 그 덕분에 훨씬 팔팔해진 에네스타가 말이다.


너무 팔팔해서 탈이긴 한데... 아무튼 아무리 아리스가  어떻게 하려고 한다고 하더라도, 목줄의 저주를 받아 목숨을 잃는 것을 각오한다고 하더라도  가신들을 넘어서야했다.


그리고 나도 이번에는 그냥 당해줄 생각도 없었다.

꿈틀거리는 그림자의 손의 주위로... 다시 한 번 무럭무럭 자라난 나무줄기들의 둘러졌다.

아르카에게서 흡수한 마법으로 ‘급속 생장’으로 만들어낸 나무줄기가, 아르카보다는 느릿하지만 순식간에 뻗어 나와서, 그림자의 손 위로 둘러지기 시작했다. 이윽고 마치 건틀릿처럼 완전히 그림자의 손을 나무줄기들이 감싸자, 한층 위풍당당해진 내 그림자의 손이 내 주위를 맴돌았다.


이걸로  그림자의 손에게 부족했던 위력이나 내구성 문제는 해결된 셈이었다. 숫자야 적겠지만 지금의 그림자의 손은 크리샤의 것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였다.


가신들만으로도 과다할 정도의 전력이었지만, 아르카에게서 흡수한 급속 생장 마법이 더해져서 강화된 그림자의 손까지 옆에 있으니 든든하다 못해서 자신감이 샘솟았다.


편린이 깃들어있던 천검이 없는데다가 마력까지 홀랑 빨려버린 아리스에게 칼빵을 맞을 일이 완전히 봉쇄되어 그런 걸지도 모르겠다. 나는 괜히 욱신거리는 가슴을 매만지다가, 턱짓으로 아리스가 들고 있는 원경의 구슬 짝퉁을 가리키며 말했다.


“어서 해.”


“아, 알겠어요...”

내 ‘명령’에 목을 졸라오기 시작한 목줄에 신음을 토한 아리스가 천천히, 원경의 구슬 짝퉁에 그나마 남아있던 마력을 불어넣기 시작했다.


찔끔찔끔, 날 경계하는 듯이 조심스레 마력을 부어넣는 아리스의 마나력이 줄어드는 것이 보였다.


그리고...

“어, 어머니...?”

필요한 만큼의 마력이 불어넣어지자 구슬에 비쳐 보이기 시작한 인물에, 엘리시스의 모습에 아리스가 경악하는 것이 보였다.


혹시라도 다들 착각했던 거라는 대환장쇼를 염두에 두어두기도 했는데 그런 일은 불행히 일어나지 않았다.


정말로 내 마누라들이 아리스의 어머니를 판에 올려놓고 내기인지 뭐시기인지 하며갖고 논게 맞는 모양이었다. 그것도 상당히 엄한 물건을 상품으로 걸고서 말이다.

루시아나 크리샤야 뭐, 어떻게든 이해할  있겠는데 다른 드래곤들은 대체 그런 상품에 끼어든건지 모르겠다... 뭐, 그건 나중에 물어보기로 하고서, 나는 원경의 구슬 짝퉁을 손에 쥐 채 파르르 떨고 있는 아리스를 바라봤다.

한참을, 그렇게 떨고 있던 아리스가 나를 노려보며 말했다.

“어째서 어머니가...? 당신... 대체 어머니한테 무슨 짓을 하려는 거죠?!”


“아무 짓도 안할 거거든.”


괜히 내게 성질을 부리는 아리스를 보며 내가 대답했다.

적어도 나는 정말로 아무것도 할 생각이 없었다. 아무것도 안하기도 했고. 애초에 상황에 대해서 듣게  것도 바로 조금 전이었다.


하지만, 돌고 돌아서 내가 아리스를 여기에 묶어둔 것이 원인이었다. 진작에 끊어내지 못했던, 과거에 얽매인 결과물이 눈앞에 있었다.


결국 어느 정도는 내 탓이기도 하다는 셈이었다.

그러니까, 일단 아리스에게 상황부터 알려주기로 했다.

차근차근, 에루나에게서 들은 전말의 일부를 아리스에게 들려줬다. 그리고 내 말이 끝마치는 순간이었다.

[플레이어 ‘이지경’님의 악명이 올라갔습니다!]


[플레이어 ‘이지경’님의 직업 ‘마왕’에 의해 능력치가 소폭 상승합니다.]

억울했다.

거짓 없이 사실을 말했을 뿐인데 악명이 올라가버렸다. 심지어 이번엔 내가 뭔가  것도 아니었다. 억울하기 그지없는 처사였다. 뭐, 능력치는 고마웠다.

슬슬 개변자나 여러 뻥튀기 기능 없이도 기본능력치로만 100을 넘기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하면서. 황망한 표정을 짓는 아리스를 바라봤다.

이해는 간다. 나도 듣고 어이가 없었으니까.

자신을 찾기 위해서 어머니가 움직이는  막기 위해서, 자신의 조국이 사방에서 외교적인 압박을 받은 것도 모자라서,  어머니는 얼마전에 오우거한테 두들겨맞아서 중상까지 입었단다. 아무리 내 눈에는 멀쩡해보이더라도, 딸인 아리스가 보기엔 아주 그렇지만도 않은지 어떻게 어머니가... 하고 중얼거리는 것이 들려오기까지 했다.

그런 와중에, 그 내기가 아직 끝난 것도 아니었다. 내가 잠시 동결해두긴 했지만, 아직 아샤와 아냐말고도 카르네와 샤르의 차례가 남아있었다. 그 둘이 어떤 방식으로, 아리스의 어머니... 그 초월자를 막으려고할지는 모르겠지만.

이미 내가 들은 것만해도 스케일이 장난이 아니였다. 나머지가 그보다 더하면 더했지 못하지는 않을 거란 건 충분히 예상이 가능할 정도로.


당장 아샤와 아냐가 계획했던 ‘대화로 풀자’의 전말을 대충 들었을 뿐인 나도 새삼스레 드래곤과 나 사이의 상식이 여러모로 차이가 있다는  알아버렸으니 더더욱 그랬다.

대체 그게 어떻게 ‘대화’라고 할 수 있는지는 둘째치고서, 그걸 그저 장난삼아  수 있는 것이 드래곤이라는 사실에, 내 마누라들이 터무니없는 존재들이란  다시 한  일깨우게 됐다고 해야 할까...


나중에 부부싸움이라도 났다가는 장난이 아니겠는걸,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내 눈에 아샤와 아냐가 아리스에게 다가가는 것이 보였다.

둘의 정보창을 통해서, 별다른 일은 없을 거라고 판단한 나는 그런 둘을 말리지 않았다.


“언니, 괜찮아?”


“이거 마시면 기운이  날거야.”


“고, 고마워요... 저 마왕과 전에 본... 그 여자랑은 달리 둘은 무척이나 상냥하군요.”


하도 아리스가 힘들어보였는지 그렇게 말을 건네며 포션을 주고 있는 쌍둥이 드래곤이 무슨 짓을 저지르려고 했는지 알았더라면, 아리스가 그런 아샤와 아냐에게 고맙다는 표정을 지을  있었을까.


그런 생각을 하기는 했지만.

뭐, 모르는 게 약이었다. 나도 몰랐을 적으로 돌아가서 아샤와 아냐의 가슴이나 주무르고 싶었다.


그때, 아샤와 아냐가 건넨 포션으로 어느 정도 기운을 차렸는지 심호흡을 하는 아리스가 보였다. 그러다가, 입술을 꽉 깨물던 아리스가 입을 열었다.


“...이제 알았어요, 제가... 목적이었던 거죠?”

“...엉?”

뭔가 단단히 착각한 것 같은 아리스가 말을 이었다.


“저를 굴복시키기 위해서 어머니와, 아무런 관계도 없던 사람들의 목숨을 가지고 협박하다니... 역시, 당신은 사악한 마왕이었어요.”

그거 참... 대단한 상상력이었다. 어떤 점에서 대단하냐면, 자신에게 족히 수백만은 넘지 않을까 싶은 제국의 사람들을 위협해가면서도 굴복시켜야만 하는 ‘가치’가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점에서 대단했다.

놀랍도록 뻔뻔하다고 해야 할까. 한숨을 내쉬고서, 그런 아리스에게 뭐라고 한 마디 할까 생각하던 중에 아샤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말했다.


“와, 그랬던 거구나! 오빠, 대단하네!”


거기서 네가 그러면  되지, 아샤야... 아샤의 발언으로 자신의 생각이 맞았다고 생각했는지 아리스가 각오를 다지는 표정을 지었다.


“...좋아요... 제  몸을 희생시켜서 다른 사람들을 구할 수만 있다면... 제 몸을 가질 수 있더라도, 제 마음만큼은 절대로 당신한테 굴복하지 않을 거에요!”


박수라도 치면 좋을까 싶을 정도로 완벽하게 마왕에게 붙잡힌 여기사 같은 대사를 내뱉은 아리스를 보고서 얼굴을 찡그렸다.

“뭐, 좋아.”

하지만 그것도 잠깐뿐이었다.

지가 그러겠다는데 말릴 생각은 없었다. 그게 아리스가 바라는 거라면야 얼마든지.

“에네스타, 아샤랑 아냐를  부탁할게.”

“네, 나의 주. 아샤네오나 아가씨, 아냐세오스 아가씨.”

내 말에 고개를 숙이며 대답한 에네스타가, 아샤와 아냐를 보며 그렇게 말하자 뚱한 표정을 짓는 아샤가 보였다.


“에, 이쪽이 더 재밌어 보이는데... 그리고, 이거 끝나면 같이 놀아준다고 했잖아 오빠.”

“맞아, 금방 끝날거라고 해놓고서...”

불만어린 아샤와 아냐의 말에 내가 말했다.

“에네스타 말 잘 들으면 이따가 선물을 줄 생각이었는데... 그렇다면야 할 수 없지.”

“선물?”


“정말로?”

내 말에 반색이 돼서 그렇게 되묻는 아샤를 보고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던 아샤와 아냐가 활짝 웃으며 말했다.

“그렇다면   없지~ 오빠가 하는 말이니까 특별히 들어주는 거야!”

“오빠, 나는 부웅부웅하는 것보단 찌걱찌걱하는 게 좋아~”


“아, 나도나도.”

“부웅부웅...? 찌걱찌걱?”

아샤와 아냐의 말에 고개를 갸우뚱하는 아리스가 보였지만, 굳이 그녀에게 설명해줄 필요성은 느끼지 못했다. 어차피 곧 알게 될테니 말이다.


“그럼 아샤네오나 아가씨, 아냐세오스 아가씨... 저번에 보고 싶다고 하셨던, 주의 동상이 세워져있는 곳으로 가볼까요?”

“응, 좋아!”


“빨리 가자, 에네스타!”


“잠깐, 야.”


 골라도 하필이면 거길 고르냐고 묻고 싶었지만, 이미 아샤와 아냐가 에네스타의 팔을 잡고  밖으로 나가버렸다. 그런 그녀들을 굳이 다시 붙잡아 세울 수도 없어서 한숨을 내쉬고서, 내 눈치를 살피고 있는 바록과 바쿠에게도 말했다.


“...너희도 이제 괜찮으니까 나가봐.”


“하지만 주인님...”

커다란 몸집의 두 덩치가 그런 내 말에 머리를 긁적이는 것이 보였다. 나보다 몸통 하나는  큰  거인이 그러고 있자니 참 대단한 광경이었다. 하지만 바록과 바쿠의 앞에서 할 생각은 추호도 없는 내가 그 둘을 보며 말했다.


“요즘 너희들이랑 사이가 좋은 산악 엘프들이 있다는 소리 들었거든. 오늘 하루 동안은 쉬어도 좋으니까 걔네나 보러 가던가.”


호리호리한 몸매와 미인들로 유명한 엘프의 아종. 산악 엘프와 키만 3미터를 넘어가는 반 거인족인 바록과 바쿠가 어쩌다가 눈이 마주쳤는지는 모르겠지만. 에루나에게 듣자하니 사이가 좋다는 걸 넘어서 사귀고 있는 거나 다름없는 관계 같았다.

여러모로 체격차가 심하게 나기는 했지만, 뭘... 사랑 앞에서는 어떻게든 극복할 수 있는 문제에 불과했다.


“나도 한 번쯤은 보고 싶으니 나중에 소개시켜주고.”


일단 바록과 바쿠 역시, 가신인 것과 동시에 자식처럼, 아들처럼 여기고 있는 아이들이었다. 그런 둘에게 사귀는 여자가 생겼다는 건, 내게 있어서도 여러모로 많은 의미가 있었다.


딸로 여기고 있는 니아나 마야, 로로에게 남자친구가 생기면 자지를 뽑느니 뭐니 해놓고 바록과 바쿠에게 여자 친구가 있다는 소리는 아무렇지도 않게 여기는 게 차별이 아닌가 싶기도 하지만.


낸들 어쩌냐, 솔직히 열 손가락 전부를 깨물어보면 덜 아픈 손가락이 있을 수도 있는 법이었다. 바록과 바쿠는 내게 있어서 그런 것뿐이었다.


뭐, 그렇다고 정말로 그렇다는 건 아니여서  번쯤 저 두 근육덩이에게 반해버린 눈이 요상한 산악 엘프들을 보고 싶기는 했다. 대체 무슨 취향을 갖고 있길래, 제 몸보다 두 배는 커다란 거인에게 반해버린 걸까.


농담이고... 내가 여러모로 도움을  수 있을지도 모르니까 그런 것뿐이었다.

“자, 모처럼 내가 휴가를 주겠다는데 계속 여기에 있을 거냐? 빨리 안 가도 돼?”

내 말에 부끄럽다는 표정을 짓던 바록과 바쿠가 이내 조심스레 고개를 숙이고는 방을 나섰다. 이윽고 쿵쿵하고  덩치들이 달리는 소리가 밖에서 들려왔다.


할 일 끝났으니 여자 친구나 만나러 가랬더니 냅다 뛰는 거 봐라.

“...아버지.”


그리고 그런  옷소매를 꾹 잡아당기며, 내 곁에 마지막까지 남아있던 로로가 나를 올려다봤다.

단 둘이, 아니 아리스를 제외하곤 보는 눈이 없어지자 나를 아버지라고 부르며, 더 이상 아무런 말도 없이 그저 올려다보고만 있는 로로의 머리 위로 손을 올렸다.

“로로, 너도 이만 가보도록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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