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241화 〉241화 (241/370)



〈 241화 〉241화

“성녀님...! 성녀님 대체 어디에 계십니까...!”


아아, 하고. 검은 성녀가 바깥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복수의 달콤함, 그 편린을 즐기던 찰나에 찾아온 방해자의 목소리에 순간 짜증이 솟구쳤지만... 검은 성녀는 그 짜증을 참아냈다.


아직 때가 아니었다. 저 목소리의 주인은 아직 쓸모가 있었다. 한낱 짜증 때문에 처리하기엔 너무도 아까웠다.

“그르르...”

그런 자신의 짜증을 느끼고, 이를 드러낸 채로 고름을 뚝뚝 뿌리는 괴물을 보고서, 검은 성녀가 입을 열었다.

“조용히... 조용히, 어둠 속에 숨어들렴.”


“구루루룩...”


그녀의 말에 거지였던 괴물이 답지 않게 검은 성녀의 허벅지에 뺨을 부비며 애교를 부리더니 그림자 속으로 스며들 듯이 사라졌다. 사라져버린 괴물을 보고서, 검은 성녀는 손가락의 끝을 끄득하고 씹었다.

주륵... 하고 핏방울이 망울져서 바닥에 떨어졌다. 이윽고, 검은 성녀만이 남은 좁은 단칸방의 한 곳에... 정확히는 방금 전까지 거지가 누워있었던 자리에 부글부글하고, 살점들이 끓어올랐다.


그녀가 흘렸던 피의 주위로. 한때 거지가 토했던 피와, 구토, 오물... 그리고 온갖 잡스런 것들이 모여서, 뒤섞이더니... 이윽고 거지의 모습으로 바뀌었다.

창백하고, 비쩍 마른 껍데기뿐이었지만.

그런 거지의 손을 부드럽게 감싸며 검은 성녀가 낮게 중얼거렸다.


“아직은... 조금만 참아주세요, 나의 아버님... 지금은... 좀  힘을 기를 때니까요...”

아직은, 아직은... 당장 목을 졸라 죽이고, 뼈와 살점을 손수 하나하나 분리해서, 골수까지도 빨아 마셔 없애고 싶은... 덩치만 커다란 도마뱀들에게 들킬 때가 아니었다. 그들의 눈에 걸려서는 안됐다.

비록 수백 년, 이 땅에 소환되고서... 턱없이 적은 마기를  공기에 익숙해지고, 천신교라는 이름의 종교를 세우고, 그들이 바치는 거짓된 신을 향한 신앙을 마시며 힘을 길러왔었다지만... 아직 그렇다고 해도, 마계에서 자신이  수 있는 힘의 절반 정도에 불과했다.

도마뱀 셋, 그 정도라면 쓰러뜨릴 수 있겠지만... 모두와 함께 대적하는 건 아직 무리였다.

“그러니...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사랑하는 나의 아버님.”


속삭이듯이, 이미 죽은 자를 떠올리며 검은 성녀가 말하고서.

천천히 거지의, 껍데기뿐인 그 형상의 뺨에 손을 얹었을 때였다.

헐레벌떡, 문을 열고서... 기름이 줄줄 흐르는 땀을 이마 위로 흘리며, 새하얀 백의를 그 몸에 두른 자가, 살이 통통 찐 것이 꽤나 먹음직스러운 남자가 들어왔다.


“여, 여기 계셨나이까? 성녀님...! 대체 어째서 이런 비루한 곳까지 오신 겁니까?!”


바로 얼마 전에, 엘리시스에게 목숨을 위협받았던 천신교의 추기경. 발렌시아였다. 발렌시아는 그 몸으로 상당히 뛰었는지 온몸이 젖어들어서, 마치 육수에 젖은 돼지의 꼴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발렌시아를 본 검은 성녀는 웃지 않았다.


자신의 손 위에서 놀아나는 어릿광대가 우스운 것이야, 거짓된 신을 신앙하는 저들이 웃겼던 일이야 하루 이틀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런 검은 성녀의 마음을 알길이 없는 발렌시아는, 어렵사리 구해낸... 자신의 구명줄이나 다름없는 성녀가 이렇게나 낙후되고, 험한 곳까지 호위도 없이 혼자 왔다는 사실에 식은땀을 흘리며 입을 열었다.

“제가 성녀님께 드린 성기사들은 대체 어디에 두고, 홀로 이런 위험한 곳에...”

그렇게 말을 잇던 발렌시아가 주륵... 하고, 검은 안대 밑으로 흘러내리는 소녀의 눈물을 보고서 멈칫했다.

그리고 입 밖으로 꺼내들려던 말을 삼켰다. 그 모습을, 안대 너머로 훤히 들여다보던 검은 성녀가 천천히... 거지의 껍데기를 손을  부여잡고서, 그 뺨을 어루만지며 입을 열었다.

“...방금 막... 이곳에 있던 가여우신 분이... 제 품에서 인간으로써의 삶을 마감하셨어요.”


비루한 인간의 몸을 벗어던지고, 자신의 노예가  거지가 그림자 속에서 꿈틀대며 애교있게 가르릉거리는 것이 느껴졌다.

그래, 이제  이상 거지는 인간이 아니었다.

그러니, 인간으로써의 삶을 마감했다는 그 말은 거짓말이 아니였다.

아무리 발렌시아가, 거짓말을 알아차리는 홀을 손에 쥐고 있더라도, 그 사실을 알아낼 수 없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거짓말... 아니, 거짓말이 아닌 검은 성녀의 말에, 거짓을 꿰뚫는... 추기경의 홀을 꾸욱 쥔 발렌시아가 입을 열었다.


“...그렇, 습니까.”


아직도 식지 않은 고름이, 진득하니 흘러나오는 거지의 손을 꼭 부여잡고 눈물을 흘리는 소녀. 청초하면서도, 아름답고, 또 육감적이기까지 한 몸매를 한 장의 두루마기 같은 하얀 천으로 둘러싼 소녀를 보고서... 발렌시아는 음심조차 느끼지 못했다.

아니, 꼴은 이래도 발렌시아는 꽤나 신심이 깊은 자였다. 그 탓에... 검은 성녀의 모습을 오히려 성스럽다고 여겼다.

그도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녀가 흘리는 눈물이, 뚝뚝하고 거지의 몸에 닿는 순간, 이미 죽어있는 사체의 몸이 새하얗게 빛나며... 말끔해져가는 것이 보였기 때문이었다. 묵은 때가 벗겨지듯이, 살갗이 뽀얗게 변해가는 것이 보였기 때문이었다.

그것이 거짓으로 만들어진 껍데기가, 정말로 녹아내리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을 전혀 모르는 발렌시아의 눈에는, 검은 성녀의 눈물로 시체가 정화되는 것으로만 보였다.


눈물만으로 죽은 자의 육신을 위로하고, 정화한다니. 그것은 그야말로 신의 기적, 그 자체였다. 그러니 발렌시아도 신관의 몸으로써 성스럽다고 여기지 않을 수가 없었다.


과연 성녀...


과연, 기적을, 신의 기적을 일으킨 자다운 그 모습에, 발렌시아는 낮은 목소리로 죽은 자를 애도하는 기도를 드리고서 말했다.

“허나, 이곳은 위험한 곳입니다. 성녀님... 불쌍하고, 비루한 자들을 구제하고 싶다는 그 자비로운 마음은 분명 숭고하오나...”

당신은 그보다도 훨씬 더, 중요한 곳에서  많은 생명을 구해야하는 분이시지 않느냐고, 그렇게 말하는 발렌시아의 말에 검은 성녀가 몸을 일으켰다.

“그랬었죠... 하지만... 정말 제가 할  있을까요? 이 가여운 분의 목숨조차도 구하지 못하는 소녀의 몸으로... 정말로 그ㅡ”


구하지 못했다는 것 또한 거짓이 아닌 진실. 구할 생각이 전혀 없었던 건 둘째치고, 그녀는 누군가를 치료하는 방법을 몰랐다.


따라서, 거짓을 꿰뚫는 홀은 반응하지 않았다. 하지만 발렌시아는 그런 검은 성녀의 말이 끝나기 전에 기함하며 말했다.


“그 이름을 섣불리 말하시면 아니 되옵니다, 성녀님...!”

혹시라도, 그 자가 자신을 뜻하는 그 호칭이 불렸을 때 알아차릴 지도 모른다. 하물며 성녀의 입으로 그런 말을 내뱉어진다면...


발렌시아가 몸을 떨었다. 초월자의 살기를 몸으로 받아냈을 때와 같이, 공포에 떨면서. 그야 그럴 수밖에 없다. 초월자의 살기는 바로 몸으로 느꼈던 공포 그 자체였지만... 마왕의 존재는 그보다 더한, 더 큰 공포, 재앙 그 자체였다.

하물며 신을 모시는, 신관으로써는 더더욱 그러했다.


마왕은 그야말로, 신에게 대적하는 존재나 다름없었으니 말이다. 그런 발렌시아의 반응에, 검은 성녀는 꾸욱하고, 무섭다는 듯이 가슴 위로 손을 그러모으며 입을 열었다.

“...알았어요. 하지만, 저는 두려워요. 꿈에서도, 몇 번이나... 몇 번이나... 그 자가 저희들을 죽이는 것을 보고 있을 정도로... 발렌시아 추기경님... 저는...”

가엾고, 작은 소녀다.

성녀로 택해졌다지만, 아무리 신의 기적을 받은 몸이었지만, 결국 작은 소녀에 불과하다.  사실에 발렌시아가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


“...괜찮을 겁니다. 이미 황제폐하께서, 그리고 교황께서도 여러 국가에게 마왕의 도래를 이야기하고, 그에 대한 대비를 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그러니...”


“...그래요, 믿도록 할게요. 아뇨, 믿어야만 하겠죠.”


그렇게 말한 검은 성녀가 거지의 손을 놓고는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입술을 달싹였다. 그리고 그런 검은 성녀의 손이 꾸욱, 하고 겹쳐져 다물어졌다.

“아버지, 저를 굽어 살피시길...”


신에게 기도하는, 성녀의 그 성스러운 모습에 발렌시아가 오오, 하고 마주 기도했다.


“만물의 아버지시여, 가엾은 저희를 굽어 살피소서...”


감동한 듯, 몸을 부르르 떨며 기도하는 발렌시아를 보며, 검은 성녀는 쉬이잇, 하고 그가 들리지 않게 중얼거렸다.


“...먹이는, 이따가 줄 테니 지금은 참으렴... 착하지? 귀여운 아가...”

스르륵, 하고 그런 검은 성녀의 말에 발렌시아의 발밑에서 꿈틀거리던 괴물이... 아니, 괴물들이 가라앉았다.

“아직은... 때가 아니란다... 이 하잘것없는 인간의 힘을 빌려야하니 말이야...”

속삭이듯 말하는  목소리를, 감동에 떨며 기도하고 있는 발렌시아는 듣지 못했다.

“...그럼, 잃어버린 검을 대신할 것을... 찾으러 가볼까?”


그렇게 중얼거린 검은 성녀가 아직도 오오, 하고 기도에 빠져있는 발렌시아에게 말했다.


“...그 분이, 마왕의 첫 침공을 홀로 막아내신 영웅께서, 크게 다치셨다는 말을 들었어요.”


발렌시아가 그 말에 퍼뜩 놀라서 물었다.


“아니, 대체 어디서 그런 소식을...?”


“......”


말없이, 자신을 바라보듯 고개를 올리는 성녀의 모습에 발렌시아가 납득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과연... 예지이십니까...? 하긴, 그 자가... 현 인류 중에서는 가장 강한... 용사에 가까운 자이긴 합니다만... 하지만, 그 자는 무척이나 광포하고, 오만하옵니다. 아무리 성녀님이라 할지라도...”


“구원은, 모두에게 있어야하는 법이에요. 제가 맡은 소명이, 바로 그것이 아니었나요? 추기경.”

강직하고, 굳건한... 방금 전까지 거지의 손을 잡고 슬퍼하던  소녀가 맞는지 의심스러운 그 말에, 발렌시아가 눈을 붉혔다.

그 말대로였다.

아무리, 그 자에게 목숨의 위협을 받았을 지라도, 그가 가장 강대한 ‘인간’임을 틀림이 없었다. 거기에, 무려  영웅왕, 마왕을 베었다고 알려진 영웅왕의 핏줄이 섞인... 라이어스 제국의 분가!


그야말로  시대의 용사, 그 자체라고 할 수도 있었다. 아무리 그 자가 오만하고, 광폭한 자라할지라도, 그 자를 살림으로써 구할 수 있는 인명은 어마무시하다.


“맞습니다. 오오, 고귀하신 분이시여... 당신의 뜻대로, 자비하신 우리들의 신께서 바라시는 뜻대로 하소서...”

고개를 낮게 숙이며 그렇게 말하는 발렌시아를 보며 검은 성녀는 입술을 비틀었다.



“...아까부터  귀가 간지럽지?”

아까부터 뭔가 간질간질하게 귀가 간지러워서 귀를 후벼봤지만 귀지는커녕 먼지하나도 안 나왔다.

그래도 긁으니 조금 개운해지긴 했다.

그리고 그때였다.


띠링~

[플레이어 ‘이지경’님의 악명이 증가합니다! 직업 ‘마왕’의 효과로 모든 능력치가 소폭 증가합니다. 마물들에 대한 지배력이 소폭 증가합니다.]

[행운이 감소했습니다.]

“...아니, 왜?”


내 집에서 가만히 귀를 후비다가 올라가버린 악명과 안그래도 낮아졌는데 한층  낮아져버린 행운에 얼탱이가 나가서 그렇게 중얼거렸다.


그때 아샤와 아냐가 방에 들어왔다.


네글리제, 카자흐... 뭐시기, 아무튼 아샤와 아냐가 선물로 가져왔던 야한 속옷들을 입은 쌍둥이 소녀들이 나를 보고 활짝 웃으며 다가왔다.

“오빠, 오빠! 오늘도 가슴이 커지도록 도와줄 거지? 응?”

“오늘도 아냐랑 같이... 기분 좋은 거 잔뜩 해줄 거지, 오빠?”


천진난만한, 어린 아이 같은 미소를 띠며 달려와서 내게 매달려오는 둘을 바라봤다. 하아, 하고 조금은 뜨거운, 숨결을 토하며. 벌써부터 기대된다는 듯이 내 팔에 뺨을 부비며  눈을 치켜뜬 채로 올려다보는 쌍둥이 소녀의 얼굴은 불그스름하게, 이미 달아오른 상태였다.

그런 둘의 얼굴을 보고서 내가 말했다.


“...또 하고 왔구나?”

내 말에 에헤헤, 하고 멋쩍은 듯이 웃어보이던 아샤가 말했다.


“들켰네... 하지만 하고 온  아니야, 오빠.”

그 말에 고개를 갸웃거리자, 이번에는 아냐가 키득키득하고 웃으며 말했다.


“오빠가 열심히 할수록 가슴이 커진다고 했잖아, 그러니까...”


부우웅, 하고. 그런 그녀들에게서 작게 진동음이 들려왔다. 그런 소리와 함께 내게 안겨온 둘이 미묘하게 허벅지를 비비적거리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반투명한 네글리제 너머로, 그런 아샤와 아냐의 허벅지를 타고 흘러내리며 반짝이는 액체가 보였다.


“너희 설마...”

내가 그렇게 중얼거리는 순간이었다. 아샤와 아냐가 폴짝, 하고 내게서 떨어지더니. 네글리제의 끝자락을 잡고 살짝 들어올렸다.

아주 살짝, 하지만 워낙에 짧은 네글리제 너머로 감춰져있던 어린 균열이 내 눈에 비쳐보였다. 우우웅, 하고 그 위에서 찰싹 달라붙은 채 진동하고 있는... 내가 선물해줬던 은색의 로터도.


“...낮에, 천공섬, 베헤모아로 놀러간다고 하지 않았었어?”


“응, 코볼트들이랑, 페어리들이랑, 그리고... 아무튼 잔뜩 같이 놀았었어.”

“...그런 옷차림으로?”

내 말에 에에, 그럴 리가 없잖아! 하고 말하는 둘을 보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을 때였다.


“당연히 외출복이였지! 오빠가 선물해준 장난감을 차고 있긴 했었지만.”


“오빠가 선물해준 다른 것들도 보여주니까 다들 신기해 했어!”


 말에 할 말을 잃고서, 두 소녀가 내게 보이는 광경을 보고 있자니, 푸른 머리카락을 살랑 흔들며, 아샤와 아냐가 만면에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는 입술을 핥으며 나를 바라봤다.


“그보다 어서...♥ 오늘도, 기분 좋은 거 잔뜩 하자, 오빠?”


“잔뜩 기분 좋게 해줘야 해, 오빠♥”


소악마처럼, 나를 올려다보며 웃는 둘의 미소를 나는 가만히 바라보다가, 고개를 끄덕이고서 납득했다.


악명이 오를만 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