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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39화 〉239화 (239/370)



〈 239화 〉239화

“그 괴물들을... 한마디로 말을 따르게 하는 존재가 있다고...?”


란자카 왕국의 국왕, 카자흐 반디에세... 아무튼 카자흐는 눈앞에 엎드려 있는 궁정 요리사의 말에 그렇게 반문했다.

아니, 반문했다기보단 도저히 믿기지 않아서, 입 밖으로 생각이 그대로 내뱉었을 뿐이었다. 그러자,  빵모자를 쓴 남자가 네입, 하고 바짝하고 더더욱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훤칠하게 생긴 미남자였습니다요. 하지만 어딘지 모르게... 무척이나 두렵게 느껴지는 분이었습죠. 분명 언동은 자상했지만... 그분께서 저를 보는 순간, 온몸에 소름이  돋아서... 다리가 후달려서 혼났습죠.”


“본론만 말하도록.”


“아, 아무튼 그분께서 돌아가라고 하셔서 돌아왔는데... 이제, 저는 어떻게 되는 겁니까요? 혹시 짤린 건 아닙죠?”


“...돌아가라 했으니 돌아온 것이 아닌가? 일단 확인해야할 것이 있으니 당장은 몰라도, 다시 궁정 요리사로 복귀할 수 있을 것이다.”

혹시라도 또 그 괴물들이 찾아왔을 때, 요리의 맛이 달라진 것을 캐묻는다면... 그런 생각을 하자 오싹하고, 소름이 돋은 카자흐가 그렇게 말했다.


투툭, 하고 그런 카자흐의 머리에서 새하얗게  흰머리가 몇 가닥 떨어졌다. 그 괴물들만 생각하면 머리카락이 빠졌다. 이러다가 머리가 새는 것만이 아니라 대머리가 될 판이었다.

하지만 그런 카자흐의 고민을 모르는 지, 궁정 요리사가 넙죽 엎드리며 말했다.


“감사합니다요...! 전하!”


궁정 요리사가 황공하다는 얼굴로 그렇게 말하는 것을 보고서, 카자흐는 옥좌를 두드렸다. 요리가 마음에 들다면서 요리사를 데려가더니, 도로 다시 돌려보낸 괴물들이... 아니, 그 괴물들에게 요리사를 돌려보내도록 하게 했다는 미남자라는 자가 무척이나 신경 쓰였다.

그때, 그런 카자흐에게 궁정 요리사가 말했다.


“아, 그리고... 무서워서 잘은 보지 못했지만...  분의 이마 위에 작지만 검붉은 뿔이 있었습니다요.”

“...뿔?”

궁정 요리사의 말에, 카자흐는 옥좌를 두드리던 손가락을 멈칫했다. 그리고, 뿔... 하고 중얼거렸다.


뿔이 있는 종족은 생각보다 많았다. 몬스터까지 합친다면 더더욱 그러했다. 아마, 자신이 알고 있는 모든 종족들을 다 세워두더라도 한참은 모자라서, 그보다  많이 있을 게 분명했다.

하지만... 뿔이 있는 종족 중에서, 하나같이 전설 속에서나 나올 법한 괴물들. 크라켄과  서펜트, 리바이어던 같은 괴물들마저 복종하는 괴물 중의 괴물마저, 말 한마디에 자신들의 의사를 돌리게 할 정도의 힘을 가진 존재는... 없었다.

아니, 있긴 하지만, 없어야하는 존재였다.

터무니없는 이야기다. 말도 안 되는, 그런 이야기다.

자신이 생각한 거였지만, 웃음이 나올 정도의 바보 같은 소리인 것이다.


증거만, 눈앞에 있는... 그 괴물들을 따라갔다가 돌아온 이의 증언만 없었다면 말이다.

그때, 한 신하가 카자흐의 앞으로 다가와 말했다.

“전하! 라이어스 제국에 사신이 왔사옵니다.”

“...지금은 바쁘니, 한 시간 뒤에 다시 들라하라.”

더 이상의 복잡한 이야기는 사양이다, 머리카락을 위해서라도 조금은 쉬고 싶었다. 그런 생각으로 고개를 내저은 카자흐의 말에, 신하가 떨떠름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하오나... 사신으로 온 자가... 제국의 재상인 뮬런 드네아 대공이옵니다.”


“아니,  자가 왜?”

책상머리 앞에서 사람의 키보다 훨씬 높이 쌓아둔 서류를 처리하느라 바빠야  제국의 재상. 철혈의 재상이라고 불리는 이가 왔다는 신하의 말에 카자흐는 이마를 짚으며 그렇게 말했다.

그리고 짧게 고민했다.


아무리 자신이 국왕이라고는 하나, 일단 라이어스 제국의 제후국의 왕이다. 그리고 상대는... 낮다고는 해도 제국의 황위를 이어받을 수 있는 계승권을 가진, 대공이다.


소국의 왕과 제국의 대공이다. 왕과 귀족이라는 신분은 때때로 국력에 따라 반전되는 법이었다. 때로는 소국의 왕은 제국의 백작에게 고개를 숙이고, 존대를 해야하는 것이다. 하물며 대공이라니!

제국의 대공이 온 이상, 바쁘다는 핑계로 물리는 것은  수 없었다.

“...들라하라.”

괴물들의 말을 거스를 순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라이어스 제국의 심기를 건드리는 것도 할  없다. 카자흐는 결국 자신이 직접 상대하기로 다짐하고서 그렇게 말했다.


신하가 고개를 숙이며, 그런 왕의 말을 따랐다.


이윽고, 제국에서도, 아니 란자카 왕국에서도 유명하다면 유명한 이가, 찔러도 피 한 방울은커녕 끓인 놋쇠물이나 포션이 흐르는 게 아닐까, 그런 소문마저 있는 자가 대전으로 들어왔다.

“반갑소, 제국의 철혈의 재상이라는 자를 보게 되다니 영광이오. 정말로 인간이었구려?”

“태어날 때부터, 지금까지 인간이었습니다. 전하.”


다소 무례하기도 한 인사를 태연하게 받아낸 뮬런이 고개를 모로 꼬며 입을 열었다.

“헌데 전하께서는 고민이 많으셨나봅니다. 듣던 것보다 많이 피로해보이시옵니다. 혹, 보신이 필요하다면 좋은 보약이 있으니 조금 나눠드리겠습니다.”

빙 돌려서 삭아 보인다는 말을 들은 카자흐가 하하, 하고 웃었다. 속으론 쁘득, 하고 이를 갈았지만 어쨌든 웃었다. 일국의 왕으로써의 대범한 미소를 지은 카자흐가 입을 열었다.


“고마운 말이군, 대공이 좋다는 보약이라, 기대가 되오. 음, 이제 이런 얘기는 그만두고, 본론으로 가지 않겠소?”


그런 카자흐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뮬런이 말했다.

“가기 전에  첩 두고 가겠나이다. 그럼, 이런 이야기는 이제 그만두고 본론으로 가겠습니다.”

그렇게 말한 뮬런이 주변을 둘러보더니, 말을 이었다.

“중요한 말이 있사오니,  사람을 물려주실 수 있겠습니까?”

“...독대를 하고 싶다는 말이오?”


“전하께서 정말로 신뢰하는 자가 있다면, 남기셔도 좋습니다.”

뮬런의 말에 카자흐가 눈썹을 찌푸렸다. 다짜고짜 독대를 원하는 사신이라니... 무례한 말로 툭하니 찌른 말에 대놓고 망치로 머리를 후드려까는 무례로 대응할 정도로 간땡이 땡땡 부은 자다웠다.


과연, 제국의 재상답다고 해야 되나.


하지만, 아쉬운 것은 카자흐였다. 그 점을 제외하고도 눈앞에 있는 재상이, 일인지하 만인지상의 직위에 있는 자가 직접 여기까지 온 이상...  더욱 그랬다.


'생각보다 제국의 사정이 좋지 않은가 보군...'

어느 정도 직위가 낮은 자가 사신으로 왔다면 방금 전의 대화를 빌미 삼아 축객령이라도 내렸겠지만, 그럴 수도 없으니 입맛을 다신 카자흐가 일단은 한발 물러서기로 하고서 말했다.

“모두 나가도록.”

“하오나, 전하...!”


“본왕은 이래봬도 검성정도의 실력은 갖추고 있다. 거기에 이 한 몸 지키기 위해 비싼 돈을 들여 두른 여러 마도구도 있지 않느냐? 그러니 걱정할  없다.”

그런 카자흐의 말에 신하들이 고개를 숙였다. 그 말대로, 카자흐는 나름대로 강한 자였다. 거기에  나라의 국왕이다. 그를 지키기 위한 여러 보호마법이 갖춰진 마도구가 존재했다. 필사의 일격이라도 한 번은 막아내는 벨트에, 귀에 찬 귀걸이는 안전한 곳으로 즉시 전이하는 마법을 구사할  있는 마도구였다.


독대라면, 눈앞의 재상이... 투기라고는 전혀 느껴지지 않는 이가 국왕을 어쩔 방법은 없다고 여겼다. 하지만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였다.

왕과 독대라니! 그것도 약속도 잡지 않은 상태로, 다짜고짜 독대를 청하다니! 그건 왕국과 제국이라는 차이가 있더라도 큰 무례였다.


“전하...!”


신하들이 재고를 바란다는 듯한 눈빛으로 카자흐를 쳐다봤지만, 카자흐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아니면 본왕이, 재상조차도 이기지 못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냐?”


그 말에 신하들이 송구하다는 듯이 고개를 숙였다.


하지만 카자흐의 말은 신하에게만  말이 아니었다. 내가 마음만 먹으면 너 정도는 가볍게 목을 베어버릴 수도 있다고, 뮬런에게 위압을 준 셈이었다.

그런데도 태연한 얼굴로 서있는 뮬런을 보고서, 눈을 찌푸린 카자흐가 다시 한 번 말했다.

“모두 물러서라. 어명이다.”

모든 신하들이 물러가고서, 카자흐가 옥좌에서 몸을 일으켜 세웠다. 그리고 뮬런에게 다가가며 말했다.

“그대가 이런 외진 곳까지 오다니... 제국도 사정이 많이 좋지 않은가 보오.”

우리도 안 좋은데, 톡 까놓고 그런 식으로 일단 밑밥부터 깔고 본 카자흐의 말에, 뮬런이 쓴웃음을 지었다. 그리고 말했다.


“이상하군요. 제가 알기론 란자카 왕국은 생각보다 사정이 좋은 듯 한데 말입니다.”

“...본왕이 거짓말을 했다는 말이오?”

그런 뮬런의 말에 카자흐가 눈살을 찌푸렸다. 대놓고 자신의 말을 부정하는 말을 하는 뮬런에게 무례를 느꼈기 때문이 아니었다. 어디까지나 아픈 부분을 찔렸기 때문에, 그 점을 숨기기 위해 짐짓 화가 난 척을 한 것이었다.

 말대로, 현재의 란자카 왕국은 생각보다 사정이 좋았다.

란자카 왕국의 백성들은 대부분 어부였다. 그야 사방이 바다인, 여러 섬으로 이루어진 왕국이다. 당연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괴물의 얼토당토 않는 말과 항구에 나타났던 전설 속의 괴수들 때문에 어부로써의 일은커녕 다들 겁을 먹어서 바다를 향해 얼굴을 향하지도 못하는 실정이었다.


그런데도 생각보다 사정이 좋다, 그 말은, 뒷구멍으로 무언가가 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것을 뮬런이 언급했다는 것은... 이미 어느 정도의 정보를 눈앞에 있는 제국의 재상이 파악했다는 거였다.

정보가 어딘가로 새고 있다, 그 사실이 이를  물은 카자흐가 더더욱 눈을 찌푸렸다. 어디인가? 그 사실은 나중에 조사하기로 하고서. 카자흐가 입을 열었다.

“제국에게도 전한대로 우리나라는 지금 어업에 전혀 종사하고 있지 못하고 있소. 그런데도 그런 말을 한단 말이오?”

어업으로 먹고 사는 란자카 왕국이 어업을 못한다는 것은 쫄딱 망해서, 사방에서 우는 소리가 나와야할 판이다. 그런 것치고 란자카 왕국은 무척이나 조용했다.

이유는 별거 없었다. 그 괴물들과 함께 왔던 인어들 덕분이었다.

그들이 매일 한나라를 먹여 살릴 만큼 막대한 물고기들을 잡아다주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란자카 왕국에서만 사용할 수 있을 정도의 물고기들이었다. 라이어스 제국과의 교역은 생각할 수도 없는 것이다.

그러니 제국에게는 당연히 비밀로 할  밖에 없었다. 헌데 그걸 콕 집어 말하는 것이 제국의 재상이었다.


꾸욱, 하고 주먹을 그러쥔 카자흐가 뮬런을 노려봤다.

...그걸 달라고 한다면, 자신은 당연히 거절해야만 했다. 타국을 먹여 살리기 위해, 자신의 백성들을 굶기는 왕은 왕이라고 할 수 없으니까.


언뜻 살기마저 담긴 그 시선에, 뮬런은 하하... 하고 쓴웃음을 지었다. 투기라고는 전혀 느껴지지 않는 이가, 검성급 기사의 실력을 지닌 자신의 살기에도 멀쩡하다고?

정말로 철혈, 피가 흐르지 않기라도 한다는 건가. 카자흐는 그런 뮬런을 떨떠름하게 쳐다봤다.


혹 독대를 받아들인 것이 실수였던 걸까? 그런 생각을 하면서.


그야 알 수 없을 것이다. 뮬런의 마누라가 검성은커녕, 검주조차도 가볍게 뛰어넘은 초월자를 마누라로 삼아서, 이십 년 가까운 세월을 지냈다는 사실을.


카자흐의 살기정도야 뮬런에게는 엘리시스가 살짝 눈을 찌푸리는 것보다 무섭지 않았다.


...그 엘리시스가 지금, 병상에 누워있긴 했지만.


그 일을 떠올리자, 뮬런은 표정이 굳었다. 그리고 입을 열었다.

“아니, 그런 뜻으로 한 이야기가 아닙니다. 단지... 아닙니다, 오늘은 그런 일 때문에 온 것이 아니니 이만하겠습니다.”

자신이 여기까지 온 이유를 말하기 위해서.


그리고 그런 뮬런의 말에, 이번에는 카자흐가 안색이 굳었다.


그런 일이라고?

제국의 사정은 카자흐 또한 알고 있었다.


란자카 왕국에서 보내는 막대한 양의 물고기가 없으면 제국의 식량 사정이 무척이나 나빠진다는 사실을 말이다.

하지만 그걸 ‘그런 일’이라고 치부한다고?

국정을 담당하는, 제국의 재상이라는 자가?

“...무슨 일이오.”


뮬런이 독대를 하자고 무례할 정도로 갑작스레 말을 꺼낸 이유가, 심상치 않은 일이라는 것을 직감한 카자흐가 목소리를 낮춰 그렇게 물었다.

그리고 그런 카자흐의 말에 뮬런이 대답했다.


“전하, 마왕이 나타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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