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231화 〉231화 (231/370)



〈 231화 〉231화

한바탕 일을 마치고 대욕탕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저번처럼 아르카와 함께가 아니라 나 혼자서.


“씻겨드리러 왔습니다. 주인님.”

그리고 대욕탕에 들어서자마자 보인 것은, 알몸으로 기다리고 있는 에루나였다.


“...온  아니라 기다린  같은데?”


“조금 빨리 왔을 뿐이니 그게 그거 아닙니까?”


그런가.


고개를 끄덕였다.

논리가 이상했지만, 그걸 따져 물을 상대가 아니었다.  연보랏빛 머리카락의 시녀는 항상 논리를 궤변으로 만들고 궤변을 논리로 만들었다.


게다가… 어차피 에루나를 부를 생각이었고. 따지고보면 에루나의 말대로, 조금 빨리 왔을 뿐인 거였다.

“그럼 부탁할게.”


그렇게 말하고서 나는 옷을 벗고서, 바로 욕탕에 몸을 눕혔다.


그런 내 몸을, 에루나가 정성스레 젖은 수건으로 닦아냈다. 마법을 통해 몇 번이나 청결하게 하는 몸이었다. 때같은 건 나오지 않았지만, 에루나가 몸을 문질러오는 손길이 무척이나 기분 좋았다.


덕분에 느슨하게 눈을 감으며, 그런 에루나의 봉사를 즐기다가 입을 열었다.

“...이제 그 목걸이, 전부 떼어내도 되지 않아?”

예의 로리화 목걸이에 대한게 문득 떠올라서 에루나에게 묻자, 잠깐 멈칫하고 손을 멈췄던 에루나가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내일이면 아샤 아가씨와 아냐 아가씨도 계시고, 주인님께서도 익숙해지셨으니 그렇게 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래, 덕분에 엄청 익숙해지긴 했지.”

쓴웃음을 짓고서 에루나의 말을 받았다. 너무 익숙해져서 탈일 정도지… 너무도 자연스레 어려진 에오시스 자매들을 안는 내가 그 증거였다.

그거뿐이면 다행이겠는데… 덕분에 마야나 니아조차도 몸에 닿는 순간 드래곤 슬레이어가 반응해와서 문제였다. 내가 그럴 생각조차 안해도, 지 멋대로 말이다.

덕분에 니아가 내가 안아주지 않아서 귀를 축 늘어뜨리고 실망하는 모습을 보는건 꽤 고역이었지…


그런 나에게 에루나가 말했다.

“주인님, 잠시 실례하겠습니다.”

그렇게 말한 에루나가,  등에 수건을 얹었다. 그런 에루나가 움직이기 편하도록 조금 자리를 비켜서자, 내 등을 수건으로 닦아내며 에루나가 말을 이었다.

“그런데, 주인님.”

“...엉?”

에루나가 몸을 닦아주는 손길에 슬며시 감았던 눈을 도로 뜨고서 대답하자, 여전히 내 등을 닦아내면서 에루나가 말했다.

“이번에는 제가 아르카 아가씨를 모시지 않아도 된다고 하셨습니다만, 괜찮으시겠습니까?”

에루나가  말하려는지, 대충 알 것도 같아서 그런 그녀의 말을 자르며 대답했다.


“괜찮을 거야. 이미 가르쳐줄  가르쳐줬잖아. 크리샤랑 달리 태교라던가 신경도 안쓰는 모양이지만.”


“그렇습니다만, 그래도…”


“아르카는 그냥 하지 않을 뿐이니까. 해야할 건 잘 하잖아. 혼자서도 잘 할거야.”


에루나가 고개를 끄덕이는 것이 느껴졌다.


“그렇긴 합니다.”

그녀가 뭘 걱정하는지 알고 있었다.


이제 내일이면, 아르카의 영지인 브란시아에서도 떠나야했다. 그 말은... 아르카 역시,  아이를 가진 채로 혼자 남겨지게 된다.

하지만 이번에는 크리샤때랑 달리, 아르카의 곁에 에루나를  생각이 없었다. 하지만… 아마 괜찮을 거라고 생각했다.

여러모로 불안정했던 크리샤랑 달리, 아르카는 무척이나 안정되어 있었다.

원체 성격이 느긋해서 그런 걸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이미 아르카와도 얘기해뒀고 그녀 역시 동의한 데다가 문제가 없다고 말했으니 나는 그런 아르카의 말을 믿으면 됐다.

“...그런데 말이야.”

나는 귀에 걸려있는 편린이 담긴 귀걸이를 매만졌다. 아르카가 임신한 이후로, 당연히 내 시간의 대부분을 차지했던, 아르카와의 섹스가 없어진 나머지 이 녀석을 어떻게 해볼 시간이 참 많았다.

로로랑도 자주 만나기도 했고, 에네스타나 에오시스 자매들의 도움을 받아서 이것저것 시도해보기도 했다. 혹시 몰라서 내 마력이나 아르카의 마력을 담아보기도 했다.

하지만 그런 모든 시도의 결과는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는 거였다.

“이거 진짜 편린 맞아?”

그렇게 말했지만, 사실 이게 편린이 깃든 물건이란건 확신하고 있었다.


말 그대로 온갖 시도 중에는, 이 귀걸이에 마법을 담아서 마도구화하는 식의 시도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마저도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귀걸이가 마도구화되는 일도, 드래곤인 아르카의 마력을 감당하지 못해서 부서지는 일도, 전부 일어나지 않았다.


그 말은 이게 평범한 귀걸이는 절대로 아니란 소리였다.

근데 도통 어떻게 사용해야하는진 여전히 모르겠다.

“…혹시, 다른 편린의 능력은 아직도 돌아오지 않았습니까?”


그런 에루나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불멸자의 심장은 도중에 한  돌아오긴 했지만, 금방 다시 비활성화상태로 바뀌었고, 여전히 주시자의 눈도 돌아오지 않았다.

나는 아무런 빛도 비쳐보이지 않는 오른쪽 눈 위를 손으로 덮었다.


덮으나 마나 보이는  똑같다. 짙고, 깊은 어둠뿐이다.

주시자의 눈이 돌아온다면, 마력의 흐름이라도 보였겠지만 지금의 이 눈으로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이젠 익숙해져서 딱히 불편하다는 느낌은 없지만, 한쪽 눈의 시력이 아예 맛탱이가 갔다는 건 꽤 큰일이긴 했다.


…생각해보니 맛탱이가 간건 눈알만이 아니었다.

나는 천천히, 가슴 위로 손을 올렸다. 전혀 고동이 느껴지지 않았다.  대신 좀 더 밑으로, 단전쪽으로 손을 옮기자 이번에야말로 두근두근, 뛰고 있는 심장이 느껴졌다.


아리스의 검에 찔려 터져나간 심장을 대신해서, 뛰고 있는 두 번째 심장. 불멸자의 심장이었다. 더 정확히는… 내가 이 세계에 소환됐을 당시에 몸에 만들어뒀던 제 2의 심장과, 에루나가 내게 바친 드래곤 하트가 섞여서 만들어진 심장에, 불멸자의 심장의 힘이 깃든 거긴 했지만 말이다.

덕분에 이쪽은 여전히 불멸자의 심장이 비활성화  상태에서도 잘만 뛰고 있었다. 안뛰면 곤란한 건 내쪽이긴 하지만.


심장이 멈춘다면 죽을테니까. 기억을 더듬어봐도 제 3의 심장같은  만들어본 적은 없으니 이것마저 어떻게 되면 그대로 사망확정이었다.


“내 예상이기는 한데.”

정말 터무니없는 이야기여서, 아직 시도도 못해봤던 일이지만. 에루나라면 그런 내 말조차도 진지하게 생각하고 판단해줄거라고 믿으면서, 입을 열었다.

“뭐 하나 맛탱이가 갈때마다 편린이 흡수됐는데, 이것도 그런 거 아냐?”


처음에는 눈을 잃었고,  번째는 심장을 잃었다.

 대신 마력과,  마력을 통해 과거에 있었던 '사실'을 보는 주시자의 눈과 불멸자의 심장이라는 이름의 심장을 얻었다.

덕분에 생각한 거였다.


뭐 하나 맛탱이가 가면, 편린이 거기에 깃드는 건 아닌가하고.

근데 시도는 할 수 없었다. 만약 내 예상이 틀리면, 그냥 이미 멀쩡하지도 않은 몸에 장애가 하나 더 생겨버리는 거니까.

게다가 눈 다음에는 심장이었다. 만약 매번 편린을 얻을 때마다 맛탱이가 가야하는 것이 더욱 큰 무언가여야 한다면… 다음은  희생해야될지는 감도 안잡혔다.


“……가능성은 있습니다만, 시도해보는 건 좋지 않을 것 같습니다.”

한참 고민 끝에, 에루나가 그렇게 말했다.

“애초에 주인님께 편린을 준 이유는, 주인님을 지키기 위해서입니다. 그걸 사용하기 위해 주인님의 몸에 상처를 줘야한다면 본말전도입니다.”

“그렇긴 한데…”


 이상 용화, 마룡화하는 것도 문제인데... 아샤나 아냐, 그게 아니더라도 그 다음인 카르네까지가 마룡화를 억누를 수 있는 마지노선인만큼 이제 정말 시간이 없었다.

확신만 있다면야, 장기라던가 신체의 하나 둘 정도야 냅다 포기할 생각을 하고 있는 나 스스로가  증거였다.


인간적으로, 할 만한 생각이 아니니까.


문득, 나를 소환하기 위한 대마법진을 만들기 위해… 동족에게 심장을 달라한 선대 드래곤들의 일이 생각났다.


그리고 선뜻  가슴을 갈라서 드래곤 하트를 꺼내, 그들에게 넘겼던 고룡의 모습도.


필요만 하다면, 자신의 목숨조차도, 동족의 심장조차도 거리낌없이 사용하는 드래곤들, 그 영향이 확실하게 내게 미치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나도 나 자신의 몸정도야, 필요하다면 얼마든지   있다고 여기고 있었으니까.


지금도 그런데, 여기서  심해져서 그런 드래곤… 아니, 그런 드래곤만도 못한, 마룡이 되어버린다면 대체 어떻게 될까.


한 가지 확실한건… 크리샤와 아르카 사이의 아이들에게 이름을 지어주는  같은 건 할 수 없게 될거라는 거였다.

이성조차 잃고, 마구 날뛰게 될 가능성도 배제할  없었다.

그럼 제일 먼저 희생되는 게 누구일지도 뻔했다.


“절대 그러면 안되지…”

차라리 그냥 죽어버리면 죽었지. 혹시라도 마룡이 되버릴 징세가 느껴지면, 그대로 내 심장을 꿰뚫도록 배 위에다가 인벤토리 마법진과 광휘의 사출 마법을 연계시켜놨으니까 어떻게든 되지 않을까 싶지만.


내가 원해서 한 일인데다가, 루시아의 이빨로 벼려진 광휘다. 차원을 넘는 자가 발동되는 일도 없이, 내 살갗을 뚫고 심장을 단번에 부서버릴  있을 게 분명했다.

혹시 모르니까 자살 준비까지 철저하게 갖춰두는 것도 용화의 영향이겠지…?

이렇게 보니 심각하긴 한가보다.


“주인님.”

“걱정마, 그 전에 어떻게 할 생각이니까.”

내 감정을 읽은 에루나가 뭐라고 말하려는 것을 자르며, 내가 밀했다.


“그렇다고  너한테 해결해달라고 맡길 생각도 없거든? 또 어디서 뭐 꺼내서 나한테 주려고 하거나… 그런 생각하지 마라?”


저번이야… 예비용의 신체가 있었다지만 이젠 아니었다.  저번처럼 마왕이 될 뻔한 나를 위해 스스로 희생한다던지 뭔지를 했다가는… 에루나는 정말로 그걸로 끝인거다.


그렇게 둘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영원토록 내게 봉사하겠다며, 그럼 영원토록  옆에 있어야지. 안그래? 에루나.”


멈칫, 하고 내 등을 닦아내던 에루나의 손이 멈췄다.

그리고, 그렇습니까하고 대답한 에루나가 말을 이었다.


“…실례하겠습니다. 주인님.”

어느 새 등을 전부 닦았는지 그렇게 말한 에루나가  안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드래곤 슬레이어 위에 걸터앉았다.

“…앞은 내가 닦아도 되는데?”

내 말에 에루나가 천천히 입술을 열었다.

하아, 하고 어쩐지 무척이나 들뜬 숨을 내뱉으면서. 에루나가 말했다.

“저도 몰랐습니다만.”

어쩐지, 평소의 유혹때랑은 달리… 무척이나 요염해보이는 에루나가 눈에 들어왔다.

쿡쿡, 하고 그런 드래곤 슬레이어가 점점 발기하면서 에루나의 엉덩이를 찌르는 것이 느껴졌다.

에오시스 자매와 아르카 덕분에 아침부터 세 번이나 사정한 드래곤 슬레이어였지만… 아무래도 아르카의 안에 매일같이 열 번이 넘도록 사정했을 때랑 비교하면 부족하기 그지 없었다.

그렇다고 에오시스 자매나 에네스타에게 성욕을 풀기엔… 소모되는 마력이 아까웠다. 아르카랑은 당연히 섹스도 못하는데 괜히 나만 성욕을 해소하면, 마찬가지로 금욕중인 아르카에게만 미안한 짓을 하는 셈이었다.


그래서 그래도 일단 이게 어디냐고 참았다. 확실히 크리샤때보다는 훨씬 나아진 상황인만큼 불만을 가지는 건 좀 그랬다.


그런데…


스윽, 하고 에루나가 천천히 허리를 움직이자, 그런 아르카의 균열이 드래곤 슬레이어를 훑기 시작했다.

기분? 당연히 좋았다.


욕탕의 물로 이미 젖어든 에루나의 균열이 부드럽게 드래곤 슬레이어를 문질러오는데 기분이 안좋을리도 없었다.

그래서 위험했다.

그만 됐다고, 그런 에루나를 말리려고 하는 손을 뻗자, 그런 내 손을 양손으로 그러쥔 에루나가,  손가락 끝에 입술을 맞추며 말했다.


“영원히 곁에. 주인님께서 그런 말씀을 하실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아니, 그거…”

니가 맨날 하던 말이잖냐, 그렇게 말하려다가. 에루나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붉게 홍조를  뺨과, 호오하고 내뱉는 요염한 한숨. 태연한 표정을 지으면서 여느 때처럼, 나를 골탕먹이던 시녀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아무래도 골렘인 저라도… 그런 말을 들으면 발정하나봅니다.”

그렇게 말한 에루나가 여전히 손에 쥐고 있던 내 손을 천천히 자신의 허리에 얹으며 말했다.


“책임져 주시겠습니까? 주인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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