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23화 〉223화
아샤네오나와 아냐세오스. 물의 보옥을 지배하는, 쌍둥이... 청색용.
이 세계에서, 제각각 유일하게 남아버린 다른 드래곤들과는 달리 유이하게 남은 존재.
그녀들은 특별하다면 특별한 존재들이었다.
단지 숫자가 둘이라는 것 이상으로, 아니, 바로 그렇기 때문에 특별한 존재들이었다.
하나의 알에서, 둘의 드래곤이 태어났으니까.
본래는 하나였던 존재, 하나여야만 했던 존재였으니까.
현재, 이 세계에 남아있는 드래곤들은, 제각각 선대의 드래곤들의 환생체, 혹은 전생체로써 태어난 존재였다. 제각기 하나의 알에서 태어난, 하나의 드래곤들이었다.
아샤네오나와 아냐세오스 역시, 마찬가지였다.
아드리아의 이름을 이어준, 존재는 하나의 드래곤이었다.
그런 존재에게서 비롯된 것이, 두 드래곤이라니 말도 되지 않았다.
헌데, 그런 말도 안 되는 일이 이루어진 거였다.
그녀들 자신이기도 하고, 과거의 본인이였으며, 또 그녀들의 부모이기도 했던 존재조차도 예상하지 못했던 사고.
하나밖에 준비되어 있지 않았던 이름은, 바로 그 증거였다.
세르데오나 아드리아, 영광된 푸른 바다라는 이름의, 자신을 이을. ‘아드리아’의 주인에게 점지되었던, 하나만이 준비되었었던 이름.
그것을... 에루나는 두 이름으로 나누었다. 갓 태어나서, 물려받은 힘과 지식에도 불구하고 아기처럼 울었던 두 존재를, 품에 안아들고서.
하나밖에 존재하지 않았던 이름을, 둘로 나누어서 그녀들에게 붙여주었다.
본래 바다로 태어났던 것을, 이름과 함께 두 존재로 나누었다.
아샤네오나, 영원의 강물과 아냐세오스, 끝없이 흐르는 유수라는 존재로.
강은 흐른다.
흐르고, 흐른 끝에 유수가 되어 하천을 타고 내려가, 도달하는 곳은 바다였다.
영원히 흐르는 강물과, 끝없이 흐르는 유수는 비로서 영광된 푸른 바다가 된다.
어느 것 하나도, 빠지면 바다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하나로는 부족한 것이었다.
그녀들은, 하나로는 부족했다.
본래 이어받아야했던 지식도, 힘도, 둘로 나뉘어져서, 그녀들은 물려받았다.
‘힘’쪽은 언니인 아샤네오나가, ‘지식’쪽은 동생인 아냐세오스가. 양분된 힘과 지식은, 그렇게 조금씩 차등을 주며 나뉘어졌다.
그것뿐만이 아니라... 그녀들은 같이 태어나다시피 한 다른 자매들에 비해서 무척이나 더딘 성장을 보였다.
배우는 것도, 보옥을 지배하게 되는 것도, 어느 쪽도 더뎠다.
샤르비오나를 제외하고선, 아직도 유체에 가까운 모습을 하고 있는 것도, 바로 그런 이유에서였다.
특이(特異)하면서도 특이(特二)한, 두 존재. 그녀들이 다른 드래곤들로부터도 ‘특별’취급을 받는 것은 그러한 이유이기도 했다.
하지만... 단지, 꼭 그렇기 때문인 것도 아니었다.
크리샤네아로부터 신호 마법을 받은 아샤네오나가 고개를 갸우뚱하다가, 마찬가지로 같은 신호마법을 받았을 아냐세오스를 보며 입을 열었다.
“벌써 우리차례야?”
“그러게, 생각보다 다루기 어려운 인간인가 봐.”
우물우물, 탁상에 놓여있는 산해진미를 하나하나 집어다가 입에 넣고 있던 아샤네오나의 말에 아냐세오스가 그렇게 대답했다.
그러고선, 아냐세오스는 손에 든 과육을 입에 넣고, 앙하고 씹었다. 주륵하고 피처럼 붉은 과즙이 달콤하게 입 안에 퍼져나간다.
이거 마음에 드네, 그런 생각을 하고서. 아냐세오스가 입을 열었다.
“크리샤가 보낸 신호대로라면, 지금 당장은 기다려야겠네.”
“응, 초월자가 꽤 다친 모양이니까. 그게 다 ‘나을 때’까지는 우리 차례가 아닌 거니까.”
하지만 그래서야... 자신들의 차례가 오기 전에, 이지경이 먼저 자신들의 영지에 올지도 몰랐다.
내기야 하고 싶긴 했지만, 그녀들에게는 그런 것보다 더 중요한 의무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지경, 선대의 드래곤들이 준비한 대마법진을 통해서... 이세계에서 소환한 인간 남자. 그와 아이를 만드는 것이, 현대의 드래곤들에게 주어진 가장 큰 일이었으니까.
어느 한쪽을 중시해야한다면, 당연히 내기보다는 이쪽을 더 중요시해야하는 상황이었다.
거기에, 내심 둘은 기대하고 있었다.
루시아도, 크리샤도, 그와 아이를 만들기를 하고나서 여러모로 바뀌었으니까. 심지어, 정말로 아이를 갖게 된 크리샤의 경우에는... 정말 그 크리샤가 맞는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바뀌어버렸다.
호기심이라면 호기심이라고 할 수 있었다.
대체 뭘 어쨌길래, 그 둘이 그토록... 그 인간에게 푹 빠져버린 걸까 하는, 호기심.
어쩌면 아이를 만든다는 건, 무척이나 즐거운 일인 건 아닐까. 그런 대화를 서로 나누면서 키득거렸던 것이다.
그러니까, 모처럼 자매끼리의 즐거운 내기라고 하더라도, 주어진 의무보다는 우선될 수 없었다.
하지만, 기껏 준비를 잔뜩 해뒀는데 그냥 물러서는 것도 아깝다.
“그럼... 어쩔까?”
고개를 갸우뚱하며 그렇게 묻는 언니, 아샤네오나의 말에 아냐세오스 역시 고개를 모로 꼬고서 고민했다.
무언가를 결정할 때는 언니인 아샤네오나가 하는 것이였지만, 무엇을 할지 생각하는 것은 아냐세오스의 몫이였다. 그쪽이 더 나았기 때문이었다.
이윽고 생각을 마친 아냐세오스가 입을 열었다.
“일단, 기다리자.”
“아무것도 안하고?”
“응, 어차피 초월자가 나으려면 한참 기다려야 되니까.”
크리샤네아가 초월자에게 입힌 상처, 요컨대 초월자의 ‘발을 묶은 것’은, 초월자가 다 나을 때까지. 초월자가 다시 움직일 때까지가, 기준이었다. 그렇다면 그동안은... 초월자가 다 나을만한 시간 동안은, 아직 크리샤네아의 차례인 셈이었다.
신호 마법을 통해 알게 된 정보에 따르자면 족히 이주, 길면 삼주는 기다려야했지만...
후자라면, 이지경이 오는 날짜와 겹치게 된다. 하지만, 그럼에도 기다리자고 한 아냐세오스의 말에 고개를 갸웃하는 언니, 아샤네오나를 보고서.
아냐세오스는 입을 열었다.
“우리끼리만 노는 것도 미안했으니까. 만약에, 둘이 겹친다면... 남편인 인간씨도 껴주는 거야.”
초월자, 인간인 그녀가 움직이기 시작한 이유가, 이지경이 사로잡은 인간 여자의 어미이기 때문이니까. 내기에 낄 정도는 아니더라도, 무슨 내기를 하는지 알 권리는 있었다.
“응, 그것도 그렇네.”
아냐세오스의 말에 아샤네오나도 괜찮은 의견이라고 생각했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노는 것은 다 같이 즐기는 쪽이 더 즐겁다, 라는 순수하기 그지없는 생각에서였다. 하나보다는 둘, 둘보다는 셋이서 노는 것이 훨씬 즐거우니까.
그런 의미에서, 다들 커지고 나서는 항상 둘이서만 노는건 조금 쓸쓸했던 아샤네오나였다.
그렇다면, 우리끼리만 노는 것도... 이지경에게는, 조금 불쌍한 일이었다. 모처럼이니까 같이 노는 게 더 즐거울 거다.
생각을 마친 아샤네오나가 활짝 웃었다.
“분명, 인간씨도 재밌어 할 거야.”
하고.
“그리고...”
그런 언니를 보고서. 아냐세오스가 입술을 핥짝이고서, 묻어있던 과즙을 훑으며 말했다.
“여기 음식들, 꽤 마음에 들었으니까. 당분간은 이곳에서 지내도 될 것 같고.”
그렇게 말한 아냐세오스가, 발을 까닥이고서는 말을 이었다.
“응? 그래도 되지?”
그러자, 그런 그녀의 발밑에 엎드려있던 한 노인... 아니, 새허옇게 머리가 새어버린 중년 정도의 사내가 시퍼래진 안색으로 납작 엎드리며 대답했다.
“무, 물론입니다... 얼마든지, 얼마든지 머무르셔도 되니까...”
부디... 아무쪼록.
그렇게 대답한 남자의 머리 위에 있는 ‘왕관’을 잡아채고서, 그것을 장난스레 머리에 쓴 아냐세오스가 말했다.
“그렇다니까, 당분간은 여기서 놀자, 언니.”
“응, 나도 여기 음식, 꽤 마음에 들었으니까 상관없어.”
그런 그녀의 말에, 콕하고. 커다란 고깃덩어리를 포크로 찍어 입에 넣은 아샤네오나가 말을 이었다.
“인간들은 참 맛있는 걸 만드네. 하나나 둘 정도는, 우리 영지로 데려갈까?”
“그것도 괜찮네, 인간씨도, 인간들이 한 요리가 마음에 들지도 모르니까.”
그럼 그럴까?
그래, 그러자.
그렇게 대화하는 두 존재를, 아샤세오스와 아냐세오나의 말을 들으며. 인간 남성... 란자카 왕국의 국왕은 벌벌 떨었다.
돌연, 갑자기 왕성을 찾아온 두 유녀.
그렇게밖에 보이지 않았던 소녀들은, 왕국의 기사단을 포함한 병사, 수백 명을 손도 대지 않고서 쓰러뜨리고서, 왕실에 눌러앉았다.
그리고 말하기를.
‘라이어스 제국? 아무튼 거기랑 교역을 전부 끊어버려.’
‘이유는, 응. 고기가 안 잡힌다는 걸로 하면 좋겠지.’
란자카 왕국의 요체, 그건 바로 ‘어업’이었다.
어물을 거둘 때마다, 만선이라는 축복받은 바다에 자리잡고 있는 란자카 왕국의 모든 국민들은, 대부분 어업을 종사하고, 주 수입 역시, 그 어업을 통해... 라이어스 제국과의 교류로 얻었다.
그러한 것을, 갑자기 끊어버리라는 소녀들의 말에, 말도 되지 않는다, 그렇게 말하던 대신은 하반신이 날아갔다.
그저, 슥 하고.
두 소녀들의 시선이 그 대신을 향하는 것만으로.
대신의 하반신이 통째로 날아가 버린 것이었다.
‘아차, 죽이면 안됐는데.’
‘그럼 살리면 되지.’
그렇게 하반신을 날려버리고서, 대화한 둘은... 상체만 남은 채로 죽어가는 대신을 ‘살려버렸다.’
평생 하반신 불구가 되어버리긴 했지만...
그리고 그 모습을 보고서, 란자카의 국왕이었던 사내는, 두 소녀의 정체를 ‘의문의 쌍둥이 소녀’에서 ‘알 수 없는 괴물들’로 바꿔버렸다.
어째서 이런 괴물들이 자신들의 왕국을 찾아왔단 말인가.
그런 의문도 잠시, 지도자로써의 역량은 충분하게 넘쳤던 란자카의 국왕은 고개를 낮게 숙이며 소녀들의 모습을 한 괴물들에게 말했다.
‘명분만으로는, 제국과 거래를 끊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그러자.
‘응, 그러면, 정말로 안 잡히면 되겠네.’
‘그럼 그렇게 하지 뭐.’
그렇게 대화한 둘의 말과 함께, 그것이 실현됐다.
무구의 괴물들.
전설 속에서나 존재했다고 알려진, 바닷속의 제왕들.
그것들이 돌연, 한날, 한시에, 그들의 항구 앞에서 모습을 드러내고서 포효했다.
거대한, 여덟의 촉수를 마구잡이로 휘두르는 크라켄이, 기나긴... 섬을 통째로 감아버릴 만큼 거대한 레비아탄이, 전설 속의 드래곤, 그것의 유래가 아닐까 하는... 하지만, 그 존재 자체도 이야기 책 속에서나 나왔던 씨 서펜트까지.
하나만으로도, 국가를 위태롭게 할 만한 괴물들이.
그리고 그런 괴물들과 함께, 물 밖으로 모습을 드러낸 종족들.
인어들이, 두 소녀들을 보고서 고개를 숙이는 것을 보고서.
란자카의 국왕은 생각하는 것을 포기하고서, 순순히 라이어스 제국과의 교류를 모두 끊어버렸다.
그러지 않으면, 제국의 창칼에 왕국이 무너지기도 전에, 저 두 소녀의 손에 왕국이 지워지리라는 생각이, 본능적인 감각이 알려왔기 때문이었다.
다행히, 그 괴물들은... 잠깐 모습을 드러냈을 뿐, 금방 돌아가기는 했지만... 한때 항구에서 모습을 드러낸 괴물들의 존재에, 당연히 제대로 물고기를 잡을 수 있을리도 없어서, 나중에 이유를 따져물으러 왔던 제국의 사신들에게 할 말도 있었고 말이다.
하지만, 그런 일들을 모두 벌이고서도, 결코 떠나지 않는 두 소녀 때문에... 아직 마흔이 채 되지도 않은 젊은 국왕의 머리가 새하얗게 새어버린 것이었다.
“저기? 듣고 있어?”
“핫?! 네, 넷!”
생각 따위를 하느라, 괴물의 말을 미처 듣지 못했다는 사실에 란자카의 국왕은 식은땀을 뻘뻘 흘리며 황급히 대답했다.
게슴츠레한 눈으로, 이쪽을 보고 있는 푸른 눈동자에, 오금이 저리고, 무심코 실금을 할 것 같은 것을 간신히 참고 견뎌낸 란자카의 국왕을 보며. 아냐세오스가 말했다.
“이거랑, 이거랑 이거... 요리한 인간들, 우리가 데려갈까 싶은데, 상관 없지?”
요리사를 데려가서, 대체 어쩌려고. 그렇게 묻지도 못한 채. 헬쓱한 얼굴로, 란자카의 국왕은 고개를 내리며 대답할 수 밖에 없었다.
“네, 기꺼이. 원하시는 대로 하십시오...”
특이(特異)하면서도 특이(特二)한, 두 존재. 그런 그녀들이, 드래곤들 사이에서도 특별하게 대우되는 이유는...
그녀들이 아직 ‘어리기’ 때문이었다.
다른 자매들과 비교해서, 발육도, 성장도, 그리고... 자아도. 어느 것 하나 ‘성숙’하지 못한 채로, 휘둘러지는 순수하기 그지없는 ‘힘’은, 드래곤들로써도 어떻게 감당하기 버거운 종류의 것이었다.
악의라고는 일말의 여지도 찾아 볼 수 없는, 순수한 힘은, 피아를 구분하지 않는다.
그녀들의 ‘장난’은, 그녀들이 갖고 있는 힘처럼. 장난의 범주를 아득하게 넘어서서, 동족과 자매들조차도 어떻게 대처할 수 없는, 경우 밖의 일들이었다.
심지어, 두 드래곤이라는 숫자의 이점까지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더더욱 그러했다.
단일의 드래곤으로써 최강은, 분명 어디까지나 크리샤네아였지만, 둘이서 보옥을 다루고, 제각각 다른 마법을 행사하는 아샤네오나와 아냐세오스는의 장난에 때때로 물먹는 일도 잦았으니까.
아무리, 물려받은 힘을 둘이서 나누었다고 하더라도. 그녀들은 드래곤이었다. 적어도 하나 이상의 드래곤의 힘은, 아득하게 넘어선 힘을 지닌 존재들.
그런 둘의 행사는, 크리샤네아도, 그녀들을 키운 에루나도 두 손 두 발을 다 들었다.
그러니까 ‘특별’취급을 받는 쌍둥이는, 란자카의 국왕의 말에 만면에 미소 지으며 말했다.
“잘됐네.”
“응, 잘됐네, 언니.”
하고. 무척이나 기쁘다는 듯이.
“분명, 인간씨도 기뻐하겠지.”
“맛있는 요리를 싫어하는 사람은 없으니까, 분명 기뻐할 거야.”
키득거리며 웃는 두 드래곤의 대화 속에는 인간에 대한 이해따윈 추호도 없었다.
오직 자신만이, 자신들만을 생각할 뿐인, 순진무구한 폭거.
가장 순수하기에, 가장 드래곤다운 두 소녀는...
"빨리 시간이 됐으면 좋겠다."
"응, 그러게."
한껏 기대하면서, 때를 기다리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