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221화 〉221화 (221/370)



〈 221화 〉221화

미소를 지으면서, 초월자는 생각했다.

단순히 협조가 아니라, 명확한 위계질서와 명령체제까지 갖췄나. 날아오는 화살과 창들의 세례를 바라보면서, 초월자는 생각을 이었다.

무수의 창, 무수의 화살들.

그것이 내려온다면, 인간의 여린 살가죽은 쉬이 찢기고, 쉬이 무너지게 되리라.

개인의 인간은 무리를 상대할 수 없다. 개인의 인간은 군대를 상대할  없다.


위계질서와 명령체계를 갖춘, 눈앞에 있는 괴물들의 무리는.

그야말로 군대.

군단이라고 칭할 수 있는 존재들이었다.

일개의 몬스터 무리라고 판단하는 것을 지워없앤다.


이들은 군대다. 개체가 아닌, 모두가 모여서 하나인 족속들이다. 수많은 몬스터를 베어죽이고, 수많은 몬스터들을 토벌한 초월자는 알고 있었다.


개체의 몬스터와, 무리를 이룬 몬스터의 차이를.

하물며, 눈앞에 있는 몬스터는 무리조차 넘어선 군대였다.


이토록 많은 몬스터를, 그것도 이성을 갖춘 오우거마저 그 군대의 일부를 담당하게 할 만한 존재가 과연 있는가.


없었다.

아니, 있었지만 지금은 없었다고 해야 하는 것이 옳으리라.

초월자, 앨리시스가 알기로는 단, 하나 뿐인 존재였으니까.


“마왕인가. 400년 만에, 내 대에서 마왕이 탄생한 건가.”

딸아이의 실종과, 그런 딸아이와 함께 갔다가... 홀로 돌아왔던 시녀의 말이 떠올랐다.

아리스가, ‘마왕’이 어쩌니 저쩌니했었다는 것을.

헛소리라고 치부했었지만, 이렇게나 명확한 증거를 들이대보이면... 더 이상 헛소리라고 치부할  없게 되어버린다.


“재밌잖아, 마왕이라니.”


영웅왕, 제임스가 베어넘겼다고 알려진 마왕.

그것을, 그 후대의 자신이 베어넘긴다면... 그건 아주 재밌는 이야기가  것이다.

그렇게 생각한 앨리시스가 검을 휘둘렀다.


퍼퍼퍼퍼퍽!


달려들던 오우거 다섯이 베어 넘겨졌다. 그리고, 휘몰아치듯이 수천의 칼날들이 그런 오우거들을 덮쳐들었다.

그걸로 끝.


사방으로 튀는 살덩이들과, 오우거들의 머리, 핏물들을 보며 초월자는 광소했다.

“아하하하핫ㅡ!”


그런 초월자의 위로, 무수한 화살과 창의 소낙비가 쏟아져 내렸다. 하지만... 그런 것으로는 초월자가 펼친 투막을 뚫을 수가 없었다.

티티티팅, 투기로 이루어진 막에 가로막혀서 바닥으로 떨어지는 창과 화살들을 보면서, 앨리시스는 이죽거렸다.

“하지만, 이래서야 마왕도  거 없네.”


과거, 수십 개의 왕국이 뭉쳐 보냈던 수십만의 병사와 수만의 기사들을 죽이고, 모조리 마물로 만들었다는 마왕의 군세라고 하기엔... 많이 부족했다.


기껏 눈에 띄는 정도라고는, 좀 똑똑해 보이는 오우거가 끝이었으니 말이다. 그리고, 그마저도 단 한 번의 휘두름으로 전소해버렸다.

이래서야 기록 속의 마왕이라고 하기엔 상당히 미흡했다.

“안으로 들어가면 더 튀어나오려나?”


그 전에 일단 이 녀석들부터 정리할까. 그렇게 생각하고서, 남아있는 오크들과 고블린을 바라보는 순간이었다.


찌릿, 하고.

육감이 위험신호를 보내왔다.

“읏?!”

황급하게 검을 휘둘렀다. 그리고, 그런 검에 대체 언제 다가왔는지 모를, 피투성이의 오우거들의 주먹이 부딪혔다.

콰르르르!


괴력, 그 대명사인 오우거답게 어마어마한 힘이 초월자의 몸을 덮쳐눌렀다.


하지만 버틸  하다. 제법 강력하고, 마지막에 가서야 눈치 챌 정도의 기습이었지만, 그래봤자 투막을 뚫고 직접적인 타격을  정도는 아니었다.


검주의 투막이라면 몰라도, 초월자의 투막은 거대한 발리스타가 쏘아내는 철시조차도 가볍게 막아내는 수준의 방호력을 지니고 있었다.

오우거의 주먹이 아무리 무겁다고 하더라도, ‘공성병기’에 비하면 모자랐다.

하지만...

분명히 전소했을 오우거들의 반격에 의아해했던 초월자는 이내 초승달을 그리듯이 눈을 가늘게 떴다.


그리고 앨리시스는 입가를 뒤틀며, 피투성이가 된 여덟의 오우거들을 바라봤다.

“...헤에, 동료들의 몸으로 막아내면서, 그걸 뚫고  거야?”

투기의 칼날이 휘저어졌을 때, 사방으로 튄 살덩이들과 머리들, 핏물들은 거짓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들은 그런 투기의 칼날 속에서 서로 몸을 뭉쳐서, 피해를 최소화하면서 돌진해온 거였다.


서로의 몸을, 혹은 자신의 몸을.

자신을 향해 돌격할 소수의 이들을 위해 희생해서. 스스로가 방패가 되었다.

인간은 절대로 할 수 없는, 귀기어린 질주. 그 결과, 초월자인 자신에게 일격을 가했다.

칭찬해주고 싶을 정도의 집념과 의지, 투지 그 자체였다.

“그런데 이걸 어째, 너희는 죄다 죽어 가는데... 난 멀쩡, 하네!”


그렇다고, 정말로 칭찬해줄 생각은 없었다. 오히려, 일격을 허용했다는 사실에 초월자의 자존심에 금이 갔다.


고작 해봐야 오우거에게 두들겨 맞아서, 뒤로 밀려나다니.


남편인 뮬런의 말을 듣지 않고서, 혼자서 와서 다행이라고 생각하면서. 초월자가 검을 휘둘렀다.


퍼퍽!


초월자의 검이,  자체로 ‘벤다’라는 이치를 실행하는 검이 허공을 아로새기듯이 반월을 그렸다.

그리고 두 오우거가 쓰러졌다.


“아?”

일격에 모두, 피투성이로 거의 죽어나자빠지기 직전의 오우거들을 베어버릴 생각으로 베었음에도 불구하고, 겨우 두 오우거만이 쓰러지는 것을 보고 초월자가 의아해하는 순간이었다.

아른거리며...


그런 오우거의 몸에서 피어오르는 푸른 불꽃이, 초월자의 눈에 들어왔다.

“투기...?”


살아남은 여섯의 오우거들.


 몸에서 피어오르고 있는 푸른 불꽃.


그건... 명확한, 투기의 징조였다.


그리고.

“크아아아아ㅡㅡㅡ!!!”

살아남은 여섯의 오우거가 포효했다.


콰아아아, 하고 그런 오우거들의 몸에서 푸른 불꽃이 치솟아올랐다.

세상에는 두 종류의 천재가 있었다.

하나는, 이세계의 근간을 이루고 있는 ‘마력’을 타고나고,  그것을 다룰 정도의 오성을 타고난 자.


세계의 근간을 이루는 마력을 이용해서, 자신의 의지를 실현하는 자들.


그들은 마법사라고 부른다.

그리고 또 하나는, 이세계의 법칙에 놓여있는 힘, ‘투기’를 내려 받은 존재들. 투기를 다룰 수 있는 존재들.


세계의 의지에 자신의 의지를 새겨 넣는 자들.

그들을 기사라고 부른다.

두 종류의 천재는, 비슷해 보이지만 많이 달랐다.

마법사들은 말 그대로 타고나야하기 때문이었다. 처음부터 마력에 대한 소질이, 자질이 없으면 절대로 마법사가 될  없었다.


반면, 기사... 아니, 더 정확히는 투기를 다루는 존재들. 투사들은 조금 이야기가 달랐다.


그들은 ‘힘’을 내려 받는다.

단련하고, 단련하다보면... 어느  갑자기 투기를 사용할 수 있게 된다.

그건 재능의 영역과는 조금 달랐다.

 뛰어난 검술을 지닌 자, 더 오랫동안 수련한 자, 그따위는 투기를 다루는 조건이 되질 못했다.

선천적으로, 혹은 유전적으로 다룰  있게 되는 것인가 하면, 그것도 아니었다.


아버지가 투기를 다룬다고 자식이 투기를 무조건 다룰  있는 것은, 반대로 자식이 투기를 다룬다고 아버지 또한 투기를 다룰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렇기 때문에 두 종류의 재능을 가진 자들을 모두 천재라고 부른다.


타고난 재능이 있기에 천재, 하늘로부터 부여받기에 천재.


두 천재는 일맥상통하는가 싶으면서도, 서로 다른 방향을 걷는다.

둘이 극도로 상극인 존재인 이유는, 아마 그런 이유일지도 몰랐다.


하지만, 그런건 지금 하등 상관없었다. 중요한 것은, 눈앞에 있는 오우거들의 몸을 둘러싼 투기였다.

저들이 어째서 투기를 사용하는가였다.

자신 또한 천재였다.

스물이 되기 전에, 투기를 다룰  있게 되었고, 서른이 되기 전에 검주가 되었다. 그리고, 서른이 넘었을 무렵 초월자가 되었다.

하늘로부터 부여받은, 천부적인 투기에 대한 재능.

그런 자신이, 아리스를 아끼는 이유는...

그녀는 자신보다도 더, 하늘로부터, 투기로부터 사랑받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녀가 천재였기 때문이었다.

이제  걸음마를 뗄 쯤에 투기를 내려 받고, 약관이 되기 전에 검주가 된 그녀는... 자신보다도  높은 경지까지 이를 수 있는 ‘알’이었다.


아직 부화하지도 못한 알.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제외한 그 누구보다도 뛰어난 알.


그런 그녀의 실종은 앨리시스로써도 상당히 충격이었다.

하지만... 지금 눈앞에서 펼쳐지는 광경은, 그런 충격과 거의 똑같은 정도의 충격이었다.

“...어째서 몬스터 따위가.”


투기를. 몬스터가 사용한다는 말은 들어본 적도 없었다.

어째서 몬스터들은 투기를 다룰 수 없는가?

하물며, 몬스터들 중에는 일부나마 마법을 다룰  있는 존재도 있었다. 그런데 그들마저도 투기를 다루지는 못했다.


어째서 ‘법칙’은 몬스터에게는 투기를 내려주지 않는가?

몇몇 초월자들은 이를 연구한 적도 있기는 했었다. 하지만 그들도 명확한 답을 알지는 못했다.

다만, 그중에서  가지 가설이 있었다.


투기를 내려주는 것에 조건이 있다면, 그 중에서 가장 크게 영향을 미칠 만한 것은 무엇인가 하는 이야기였다.

그건, 의지라고 초월자들이 답을 내렸다.


투기의 힘은, 자신의 의지를. 신념을 관철하고자하는 ‘힘’이었다. 법칙에 한 획을 아로새기는 행위를 부여받는 힘이었다.


초월자들이, 특히나 투기를 다루는 초월자들이 하나같이 오만의 극치를 달리는 이유 또한 그러한 이유였다.

그들의 신념은, 법칙조차도 어긋내는, 후안무치하고도 안하무인인 작자들이었다. 그래야만이 초월자가 될  있었다.

하지만 몬스터들은 그런 걸 이해하지 못한다. 필요로 하지도 않는다.

그들은 순응했다.

그들은 타고난 힘이 있었다.


오우거만해도, 인간 수백을 찢어발기고도 남는 괴력을, 오크는 인간보다도 뛰어나고, 훨씬 더 타고난 전사적 기질을, 고블린은, 웨어 울프는... 그들은 인간보다 월등히 뛰어난, 아니 인간이 아닌 엘프나, 드워프들보다도 월등한 신체능력을 지니고 있었다.


따로 투기란 힘을 필요로 하지 않을 정도로, 선천적인 ‘힘’이 있었다.


그들은 그 힘으로 사냥을 한다. 그 힘으로 사냥을 한 것을 잡아먹는다. 그것만으로 만족한다.


그러니까 필요로 하지 않는다. 그보다 더한 힘은 그들에게는 ‘아무런 가치도 없었다.’ 따라서, 투기 역시 그들에게 내려지지 않는다.


가질 의지가 없는 존재에게는 힘이 부여되지 않는다는 이론이었다.


하지만, 몬스터들이 모두 그런 것은 아니다. 그들 중에는 때때로 힘을 강하게 원하는 자들도 있었다. 그런 이들 마저 투기가 내려지지 않았기 때문에, 이러한 가설은 무시됐었다.


허나, 눈앞에 여태까지의 가설들을 뭉개는 존재들이 태어나고 있었다.


투기를 다루는 여섯의 오우거.

힘을 필요로 하고, 그래서 하늘로부터 부여받은 여섯의 투사들.


“위험...”

위험하다.


이들은 위험하다.

만약 이 오우거들이, 단순한 ‘전조’라면...? 그렇다면 더더욱 많은 몬스터들이 투기를 일깨우기 시작한다면?

오싹하고.

초월자가  이후로 한 번도 느껴본 적이 없는 소름에, 앨리시스가 검을 움켜쥐었다.

“...지금 지워야 돼.”

하나라도 살아남는다면, 어떤 식으로 되돌아올지 모르는, 거대한 위험인자. 하나라도 살아남는다면, 그 씨앗이 널리 퍼지고, 어느샌가 그것은 ‘인류’의 위협이 된다.

초월자들의 가치는 ‘자신’을 위주로하고, ‘자신’에게 비롯된다. 하지만, 앨리시스는, 초월자는 안하무인하고, 후안무치하며, 오만하고, 탐욕적으로 자신만 알고 있더라도 ‘인간의 절멸’을 바라는 것은 아니었다.

 말은, 자신의 가족들.


뮬런과 딸들의 죽음을 방관한다는 소리였으니까.


판단을 내린 초월자가 오우거를 향해 검을 휘둘렀다.

그리고...


팟, 하고...

그런 초월자의 검을 붙잡은 오우거가 붉게 빛나는 두 눈을 부릅뜨고서, 초월자를 바라봤다. 투기가 둘러진 우악스러운 오우거의 손에 붙잡힌 초월자의 검은 꼼짝도 하지 않았다.

투기를 다루는 존재는, 그렇지 않은 자보다 훨씬 어마어마한 신체능력을 발휘한다.

투기가 두 배에서, 많게는 수배까지 신체능력을 끌어올려주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만약, 투기가 없는 상황에서도, 투기를 다루는 검주와 맞먹는... 혹은 그 이상의 신체능력을 가진 오우거가 투기를 발휘하게 된다면.


그래서,  능력이 몇 배로 뛰어버린다면 어떻게 될까.

“...크아아아아아아!!”

오우거가 포효했다. 움켜쥔 검째로 초월자를 들어올렸다. 초월자가 허리춤에 있던 단검을 꺼내들고서, 휘둘렀다.

수천의 투기로 이루어진 칼날이 그런 오우거를 향해 휘둘러졌다.


파파파팟!

투기의 칼날이, 투기를 두른 오우거의 가죽에 흠집을 냈지만. 베어내지는 못했다. 이를 안 초월자가 검을 놓고서, 다리를 휘둘렀다.

콰드득!

옆에 있던 오우거가 그런 초월자의 다리를 붙들어 잡았다. 빠져나오려고 한다면 빠져나올 수 있었다.


하지만, 그래서는 너무 늦어버린다.

“이런... 씨...”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초월자가 휘둘렀던 칼날들을 없애버리고, 투기를 전부 몸에 둘렀다.

콰직!


오우거의 주먹이 초월자를 향해 내리쳐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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