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20화 〉220화
검주의 감지능력은 수백 미터 밖에서도 자신을 노려보는 궁수의 시선을 눈치 채고, 도리어 쏘아진 화살을 잡아챌 수 있는 수준이다.
인지를 아득히 뛰어넘는, 예지에 가까운 직감과 직관능력. 야생동물이 갖고 있는 초감각을 닮은, 자각능력이 있었다. 검주에게 기습이란 것이 일반적으론 통용되지 않는 이유기도 했다.
하물며 초월자, 앨리시스는 그러한 검주의 감지능력을 월등히 뛰어넘었다. 마찬가지로 초감각 역시도 마찬가지였다.
드워프들의 마을, 아니 도시인 테 베르나를 향해 달리던 앨리시스는 금방 육감을 통해 느껴지는 어마어마한 숫자의 몬스터들의 기척을 알아챘다.
“이런 이야기는 듣지 못했는데.”
황제와, 천신교의 추기경이 이 일대를 한 번 조사했었다. 그렇다면 이만큼의 숫자의 몬스터를 알아차리지 못했을 리가 없었다.
황제가 자신에게 정보를 감춘 것이든, 아니면 추기경이 감춘 것이든... 그게 아니라면 갑자기 몬스터가 솟구쳐 나왔다든지.
후자의 경우에는 신빙성이 없는 소리였지만... 이미 딸아이의 실종부터가 신빙성이 없는 이야기였다.
검주와 고위 마법사들로 이루어진 집단에서, 그들조차 기억하지 못하는 사이에 딸아이만이 실종된 것이니까.
거기에...
“추기경 말로는, 몬스터의 습격이랬었지.”
딸아이와 함께 갔던 이들도, 하나같이 몬스터의 습격을 받았다고 주장했었다. 또 그 근처에서 발견된 많은 숫자의 몬스터들의 흔적들이 있었다고 들었다.
그런 주제에 멀쩡하게, 딸을 제외하고서 몸 성히 돌아온 녀석들을 보고서, 말도 안되는 핑계를 댄다고 여겼지만...
만약 갑자기 솟아났다가 갑자기 사라지는 몬스터의 무리가 있다면... 모든 이야기가 얼추 맞물리게 된다.
“흥!”
어차피 확인해보면 그만이다.
이제까지 해왔던 것처럼.
앨리시스는 속도를 낮추지 않고, 도리어 가속해서 달렸다.
고블린, 오크.
그리고 오우거.
거리가 가까워질수록 더욱 정확하게 상대를 파악해내는 초월자의 기감이 앞에 있을 적들의 정보를 알려주었다.
숫자는... 대략 삼만.
“많네!”
하지만 별 일 아니다. 좀 더 검을 휘두르면 그뿐인 일이었다.
대규모 몬스터 토벌 같은 건, 이미 딸아이들의 나이일 적에 수도 없이 홀로 해왔었다.
아직 초월자가 아닌 시절해도 했던 일을, 지금에 와서 못할 이유는 전혀 없었다.
아니, 오히려 이런 일을 한다는 것이 그때로 돌아가는 기분이 들어 꽤나 기꺼웠다.
씨익, 하고 입 꼬리를 들어올렸다.
그리고.
초월자, 앨리시스가 검을 뽑았다.
투기가 솟구쳐, 근육에, 신경에, 그보다 더 작은 마디마디에 깃든다.
더 작은 단위, 자신을. 육신을 이루고 있는... 가장 작고, 작은 단위에 까지 힘이, 투기가 깃들기 시작한다.
앨리시스는, 인지를 초월한 인간들의 초월자는, 그것을 ‘업이라고 불렀다.
단련하고, 쌓아 올려서 이룩하는 ’업‘.
변치 않는, 절대적인 근거.
그 누구도, 이것만큼은 건드릴 수 없다는, 자신만의 신념으로 이루어진 것. 절대적으로, 자신을 이룬다고 확신할 수 있는 것.
그것이 업이었다.
초월자가, 모든 것을 초월할 수 있는 이유.
그것은 광오할 정도로, 모든 것을 배척하는 ’확신‘을 근거로 한다.
자신보다도 더한 존재는 존재치 않는다. 자신은 이세계조차도 억누를 수 없다. 그러한 확신에서 비롯된 힘.
“하하하하ㅡ!”
투기가 깃들기 시작한 신체가 폭발적인 '힘'을 끌어내는 것이 느껴졌다. 본래 근육이 낼 수 있는 힘, 본래 신경이 전달할 수 있는 정보, 그것이 전부 큰 폭으로 증가한다.
하지만 거기서 멈추지 않는다.
투기가 둘러진 몸에, 또 다른 것이 깃들기 시작했다.
단련하고 단련된 업.
자기 세뇌에 가까운, 오직 일관된 힘의 주장. 관념을 뛰어넘은 신념이 몸에 깃들자, 몸을 두른 투기가 다시 한 번 폭발하듯이 솟구쳤다.
이것이 나다.
몸을 두르고도 남는 방대한 투기가, 사방으로 뻗쳐 검을 이루었다.
푸른 불꽃처럼 일렁거리는 무수의 검들이, 검을 들고 달리는 앨리시스의 주변으로 계속해서 생성되기 시작했다.
그녀가, 앨리시스가 단련하고, 단련해서 쌓은 업이, 형태를 이루어낸다.
초월자로써, 그녀가 얻어낸 힘이, 이 땅에 아로새겨진 법칙에 일획을 그어 넣은 괴리가, 요동치듯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우오오오오...!
그리고 갑자기 거대하게 증폭된 초월자의 기운을 저쪽도 느꼈는지 흉포한 몬스터들의 괴성이 울려퍼졌다.
그 순간.
초월자는 검이 되었다.
인간의 몸을 벗어던지고서.
벤다.
거기에 깃든 이치만을 이루기 위한 검이 되었다.
살과 근육을, 지방을 가르고 뼈를 깎아, 도려내고, 장기를 찢어발긴다는 '업'
검이 마땅히 해야 할, 근본이자, 존재의 근거가 되는 이치.
발을 뻗는다.
훅, 하고. 순식간에 괴물의 무리 앞에 도달한 초월자가 미소 지었다.
“안녕?”
갑자기 튀어나온 인간을, 자신을 보고서 곤혹스러운 표정을 짓던 오크가 이내 흉포하게 울부짖으면서 들고 있는 창을 뻗어 보냈다.
“꽤 좋은 걸 쓰네. 어디서 주웠어?”
오크 따위가 만들었다고 하기엔, 지나칠 정도로 품질이 좋은 창을 보고서 고개를 갸우뚱했던 초월자가.
“뭐, 상관없나.”
검을 휘저었다.
초월자가 달려오는 동안 세상에 새겨진, 잔흔들이.
수천의 투기로 이루어진 검들이, 그런 초월자의 검과 함께 휘둘러졌다.
콰과과과과!!
휘몰아치는 칼날들이 괴물의 무리를 도려낸다. 초월자의 검에, 수십의 오크들이 베어지고, 초월자가 휘두른 투기에 수백의 오크와 고블린들의 일거에 지워졌다.
“너희들을 이끄는 녀석은, 저 녀석인 것 같으니까.”
단숨에 수백을 베어 넘긴 초월자가, 이쪽을 응시하고 있는 오우거를 바라보며 입가에 미소지었다.
“맞지? 응? 조금... 묘해 보이는 오우거씨.”
“크아아아아아아아아!”
오우거 여섯이, 그런 초월자를 향해 달려들었다. 오우거의 돌진에, 길을 비키듯이 자리를 비우기 시작하는 오크들과 고블린을 보고서, 초월자의 눈이 빛났다.
“헤에, 서로 협력하고 있는 거야?”
오우거가 그 밑에, 소규모의 몬스터들을 이끌고 다니는 것은 그리 드문 일은 아니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휴대용 먹이 같은 느낌에 불과했다. 지금처럼, 오우거의 돌진에 오히려 치여 죽거나, 반대로 오우거는 그들의 몸에는 아무런 상관없이 흉성을 내지르며, 오히려 앞에 있는 것들을 방해된다는 듯이 처죽이며 돌진하는 것이 일쑤였다.
하지만 이들은 달랐다.
이제 막 연계된 것처럼 조잡스럽지만, 분명히 서로 협력하고 있었다.
이렇다 할 방진조차도 없다. 하지만 서로가 서로의 움직임의 방해가 되지 않게 움직이는 것을 조율하고 있었다.
고대의 방진.
그 기초를 보는 듯한 모양새.
“재밌네?”
그러한 것을 본 초월자는 이죽거리듯이 말하고서 발을 튕겼다. 파파팟! 바닥에 떨어져있던 창들이 솟구쳤다. 그를 순식간에 잡아챈 초월자가, 그대로 자신을 향해 돌격해오는 오우거들을 향해 던졌다.
슈슈슈슛!
모두 여섯, 묘기에 가까운 재주로 쏘아져나간 창들은. 가볍게 던진 듯한 초월자의 모습과는 달리 공기를 찢어발기며 오우거들을 향해 날아갔다.
“쿠아아아아아!!”
그러자, 한 오우거가 흉성을 터트리며 날아드는 창들을 향해 몸을 던졌다.
퍼퍼퍼퍽!
모두 넷, 오우거들을 향해 날아들던 창들을 한 몸으로 받아낸 오우거가 피를 쏟으며 절명했다. 하지만, 그 덕분에 하나 정도의 창이 꽂힌 오우거 둘을 제외하고서, 멀쩡한 세 오우거가 더욱 속력을 내서 달려왔다.
“거기에 자기희생까지... 너희, 그냥 오우거가 아니구나.”
명백하게, 지성을 갖추고 있다.
지성을 갖추고 있다는 것은, 단순해보이지만 엄청났다. 몬스터와 이종족, 그를 판별하는 기준이 ‘이성의 존재 유무’인만큼, 당연하다면 당연했다.
거기에 단지 지성을 갖추고 있는 것만이 아니였다. 몬스터에 따라서는 지성을 지닌 몬스터는 꽤나 흔했다. 하지만 이들이 여전히 몬스터라 불리는 이유는, 그들이 개체로써 활동하는, 일개의 존재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눈앞에 있는 무리는 달랐다.
서로 간의 유대. 협조, 조직을 위한 희생까지. 마치 군대와 같았다. 집단으로써 움직이는 군집체다.
“아주 재밌어.”
초월자가 검을 들었다. 그리고 베었다.
써거억, 하고 크게 반원을 그리며 허공을 벤 검에, 달려들던 세 오우거의 목이 날아갔다.
“정말로, 재밌어.”
초월자는 몸을 멈추지 않았다. 감탄은 감탄이지만, 해야할 것은 했다. 반원을 그리며 휘두른 검을 그대로 일자로 내리긋자, 팔과 몸에 창이 박힌 채로 달려오던 오우거 둘마저, 몸이 반으로 갈라져서 바닥에 엎어졌다.
피를 쏟으며, 내장이 흩뿌려졌다. 가볍게 검을 튕기자, 수십 미터 밖에서 휘둘러졌음이 분명한 검 끝에 새겨진 핏방울이 허공에 튕겨졌다.
검의 길이조차 무의미한 경지.
초월자의 검술은, 거리마저 초월한다.
제자리에서 오우거들을 베어낸 초월자는 입을 열었다.
“그래서, 이제 어쩔 거야?”
자신에게 미처 다가오지도 못한 채, 한참이나 떨어진 곳에서 무참하게 죽어버린 오우거들을 바라보면서. 재미있다는 듯이 입가를 일그러뜨린 초월자가.
여전히 이쪽을 응시하고 있는 오우거에게 물었다.
“난, 너희들이 정말로 궁금해져서... 살려줄 생각이 전혀 없어졌거든.”
동족이 죽었다.
여섯이나.
그것만이 아니라... 그분께서 내어주신, 동포들이 죽었다.
오백, 아니 그보다 많은 숫자가.
종족이 다를지언정, 결국 그분의 명을 따르는 동료들인 그들의 죽음에, 슬퍼할 새도 없이. 오우거는 초월자를 바라봤다.
인간.
아니, 과연 인간인가.
개인의 인간은 약하다. 약하기 그지없는 존재이다. 여린 살가죽, 무른 이빨, 가냘픈 팔다리. 그들은 어느 것 하나, 자신들의 가죽을 뚫고, 상처를 줄 만한 요건을 가지지 못한 약체들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두려운 존재였다.
인간의 두려운 점은, 그들이 뭉친다는 점이었다. 그들이 도구를 쓴다는 점이었다.
군대를 이룬 인간은 두렵기 짝이 없다. 두꺼운 가죽을 베어내는 무장을, 도구를, 마법을, 기술을 가지고 있는 군대의 인간은 두려운 족속이었다.
하지만, 눈앞에 있는 인간은 대체 무엇인가.
개인인데, 개인이 아니었다.
수천의 검이 개인의 주위를 휘몰아치고 있었다. 다르게 말하면, 저 인간은 개인이지만, 동시에 수천이었다.
그것도...
한 몸이 되어 움직이는 수천이었다.
한 개인의 의지에 따라서, 동시에 베어지는 수천 개의 칼날을 도대체 어떤 존재가 막을 수 있는가.
마치 하나의 군집체저럼, 육신을 갉아내고, 살점을 도려내는 무리의 칼날이다. 오우거를 사냥하는 인간이 군대인 것처럼.
저 개인은 스스로가 군대를 이루고 있었다.
“크르르...”
허나, 내려진 명령은 오직 ‘저 인간을 막는 것’이었다. 막을 수 없더라도, ‘막아야만’ 했다. 설령, 이 몸이 죽어 넘어진다고 하더라도.
명령은 이루어야만 한다.
나의 동족을 위해서.
“크르르르...!”
낮게 울음소리를 내자, 주위에 있던 오크들이 창을 꼬나 쥐었다. 그리고 포효했다. 주변에 있던 고블린들이 들고 있던 활들을 들었다.
그리고 쏘았다.
쏴아아아아!
인간의 검에, 주위가 일소된 탓에. 그런 인간의 주위에는 거리낄만한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수백의 오크들과, 수천의 고블린들이 쏘아대는 화살과 창들이, 인간을 향해 날아갔다.
그리고.
“그어어어어어어어어어!!!”
포효와 함께, 남은 오우거들이 질주했다. 근육이 부풀어 올랐다. 땅을 박치고, 땅을 내딛을 때마다 거인들의 진격은 어마어마한 압력과 함께, 쇄도했다.
“하핫!”
그리고 그런 오우거를 본 초월자가 만면에 미소 지었다.
기다렸다듯이, 재미있다는 듯이. 입꼬리를 들어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