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8화 〉218화
수정구에 비쳐 보이는, 한바탕 난리를 다 치고서는 곧장 무서운 속도로 내달리고 있는 초월자를 보고서.
“...겨우 일주일인가요.”
그렇게 중얼거리고선, 루시아네스가 한숨을 내쉬었다. 자매들과의 내기, 초월자를 자신이 정한 대로 움직이게 하는 것…
그러한 주제로 모두가 협력해서 움직였고, 자신은 그중에서도 '여러 정치적 요인으로 초월자의 발을 묶는다'라는 방식을 골랐다.
상대가 나름대로 세력을 갖춘 자, 그 수장 격이라는 것이 이유였다.
그래서, 루시아네스는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서 내기에 임했다.
크리샤네아가 이끄는 드워프들을, 자신의 영지에서 살고 있는 요정향의 엘프들을, 아샤와 아냐의 영지에 인접해있는 왕국인 란자카를, 인어들을 움직였다.
하나하나, 수를 놓는 것처럼. 꼼꼼히. 인간들의 제국을 옭아맸다. 결과적으로는, 초월자의 발을 묶기 위해서.
그녀가 움직일 수 있는 수단을, 하나하나 차례대로 없애고... 하나하나, 그녀의 발을 묶어둘 굴레를 만들었다.
인간들의 정치란 것을 배우거나 한 적은 없었지만, 새로운 지식은 언제나 환영이었다. 꽤 재미도 있었고... 하지만, 결과는 일주일이었다.
고작 일주일정도 밖에, 초월자의 발을 묶어둘 수밖에 없었다.
아직 여러모로 미흡한 부분이 많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상대가 너무 까다로웠다.
요정향의 엘프를 좀 더 적극적으로 썼으면 어땠을까?
단지 제국에게만 사절단을 보내는 것이 아니라, 주위의 다른 소국, 나라에게도 동시에 사절단을 보내서 압박했었더라면 어땠을까.
황제가 아니라, 드네아 가, 초월자의 세력을 직접적으로 타격을 주었더라면?
아니, 지금 소식을 듣고서 머리를 쥐어뜯고 있는 초월자의 반려라는 자를 보면 그것도 별 효과가 없었으려나.
그러한 가정들이 머릿속에 피어났다가, 이내 사그라졌다. 어차피 이미 지난 일이었다.
'다음'은 없다. 그러니까 잊기로 했다.
머릿속에서 수많이 떠오르는 것들을 지우고서, 루시아네아는 수정구를 주시했다.
휙휙, 뒤집어 쓰게 했던 굴레를 억지로 벗어던진 초월자가, 빠른 속도로 슈페리아를 향해 질주하고 있었다.
지형의 장애라던가, 건축물이라던가, 인간들이 세운 관문 같은 건 아무런 방해도 되지 않는 것처럼.
물리의 한계를, 육체로 관철한 초월자의 질주는 전속력으로 질주하는 말의 수배를 뛰어넘고 있었다. 속도만으로 따져서 그런 것이지 하늘을 날다시피 '뛰고' 있는 초월자라면 그보다 서너 배는 더 빠른 속도로 달리고 있다고 봐도 좋았다.
이래서야 하루가 채 되지 않아서 슈페리아에 도착하고 말게 분명했다.
말을 타고서도 일주일은 걸릴 거리를 하루라...
“역시 귀찮은 존재기는 하네요.”
선대를 비롯한 드래곤들로부터, 통제되지 않는 초월자가 어째서 귀찮게 여겨졌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초월자가 지니고 있는 힘, 그런 것은 딱히 문제가 되질 않았다. 개인이 지닌 것치고는 강력한 힘이었지만, 드래곤에 비한다면 세발의 피.
하지만 그 외의 것이 문제였다.
한 종으로써의 한계를 초월해서 그런지, 지나치게 독선적이고, 독보적이며, 이기적이었다. 오만하고, 또 탐욕스럽게 자신의 위주로 모든 걸 판단하는 존재였다.
거기에 '주변'에서는 감당할 수 없는 힘까지 지닌, 무력계의 초월자이다보니 얽맬만한 것도 별로 없었다. 인간들의 제일 권력자인 황제조차 두들겨 패는 작자이니 어쩔 수 없는 것이다.
본인도 상당히 강력한 권력을 지닌 존재이기도 하고… 인간들의 권력이나 힘이래봤자 드래곤에게 미칠만한 것은 아니지만, 직접 관여하지 않는 선에서 움직이다보니까 무척이나 까다로웠다.
드래곤이 보기엔 보잘 것 없다고 하더라도, 그들이 속한 세계에서는 압도적인 힘을 지닌, 통제가 되지 않는 자라는 것은 무척이나 귀찮은 존재였다.
자신이 나름 수를 썼음에도 불구하고, 일주일 정도 밖에 발을 묶어두지 못할 정도로.
“...뭐, 별 수 없죠.”
고작 일주일이라는 게 아쉽기는 했지만, 저런 초월자들을 다른 자매들도 어쩔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자신의 계략으로 오랫동안 발이 묶여서 그런지, 더더욱 날뛸 초월자들을 감당할 만한 이는...
“크리샤랑, 카르네... 그리고 샤르정도려나요.”
아샤나 아냐는... 이런 쪽으론 많이 약하기 때문에 굳이 염두에 두어두지 않기로 했다.
게다가 그녀들이 채택한 방식은 '대화로 풀면 어떻게든 되지 않을까?'였었다.
아마 아샤쪽의 의견이었으리라. 아냐는 그런 아샤의 의견에 아무래도 좋다는 듯이 편승했을 것이고. 아샤야 어쨌건 아냐는 언제나 언니 쪽인 아샤의 의견에 따라서 '노는 것'을 좋아했으니 말이다.
뭐, 알아서들 하겠지만... 저 초월자의 성격으로 볼 때, 직접 관여하는 게 불가능한 이상 대리로 보낼 이들, 아샤나 아냐라면 인어라던가, 영지와 인접한 란자쿠의 사람이겠지만.
제국의 황제 말도 듣지 않는 초월자가 인외의, 인어라던가 타국의 사람의 말을 들을 턱이 없어 보이니 제외한 것이다.
자신이 뭔가 조언을 해준다면 이야기가 달라질지도 모르겠지만, 어디까지나 내기인 이상 그럴 생각은 없었다.
“그럼... 크리샤의 방식대로 하는 걸 구경할까요.”
자신의 차례가 끝났으니, 다음은 크리샤가 원했던 방식 차례였다.
조금 과격하다고는 생각했지만... 상대가 일반적인 인간은 아니니까 별 상관은 없을 거라고 생각하고서. 루시아네스는 크리샤네아에게 자신의 차례가 끝났다는 신호 마법을 보내고서 쭈욱, 하고 기지개를 폈다.
모처럼 놀았더니, 마치 어린 시절로 돌아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틈만 나면 크리샤네아와 다두턴 옛날을 떠올리며, 아주 살짝 미소 지었던 루시아네아가 수정구를 어루만졌다.
“일단 지켜보도록 하죠.”
수정구에 비쳐 보이는, 회색 머리의 인간. 초월자를 루시아네스는 황금색빛의 눈동자로 바라보면서.
“이런 건, 지켜보는 것도 재미있을 테니까요.”
루시아네스로부터 자신의 차례가 끝났다는 신호 마법을 받은 크리샤네아는 조심스레 몸을 일으켰다.
드래곤과 인간의 혼혈이라 그런 지,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는 것인지. 성장이 빨라서 조금이지만 부풀기 시작한 아랫배가 보였다.
배가 부풀어서, 움직이기 불편하고, 거추장스러웠다. 또 언뜻 보기엔 추하기도 한 모습이었지만 크리샤네아는 그런 걸 하등 신경 쓰지 않았다.
오히려 하루에 몇 번이나 부풀은 배를 쓰다듬을 정도로 사랑스러웠다.
자식에 대한 애정이 적은 편인 드래곤이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드래곤의 생식 방식의 태반이 의무로 인해 이어진 짝과 자식을 낳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정말로 서로 사랑하는 자끼리 맺어지기엔, 드래곤이 가진 힘도, 성격도, 특성도 어울리지 않았다.
하지만, 원인이야 어찌됐건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과 갖게된 자식은... 자신의 목숨보다도 소중하다는 것을, 크리샤네아는 스스로 체감하고 있는 중이었다.
오늘도 루시아네아로부터 신호를 받지 않았더라면, 가만히 차례를 준비하면서 하루 종일 태교에 힘을 썼을 것이다.
뭐, 태교라고 해봤자 이제 첫 임신인 크리샤네아는 아직 갈피를 잘 잡지 못해서 주변의 조언을 듣고, 대충 흥얼거리듯 노래를 하거나, 좋은 음식을 먹는 정도에 불과하긴 했지만 말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편하게 쉬고만 있을 시간은 금방 끝이 나버렸다.
자신의 차례가 왔기 때문이었다.
“생각보다 차례가 빨리 찾아왔는걸.”
루시아가 고작 일주일만에 끝날 줄은 몰랐는데, 예상했던 것보다 빨리 차례가 돌아와 그런 생각을 하면서 크리샤네아는 옆에 있는 레무르에게 물었다.
“준비는 어때?”
“고블린과 오크는 충분히 잡아들였지만, 오우거는 아직...”
“몇 마리인데?”
“서른이 좀 안됩니다.”
오우거, 숲거인이라고 일컬어지는 상위의 괴물인 오우거는 일대일로는 검주정도는 되어야 잡을 수 있는 괴물 중의 괴물이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검주라도 잡을 수 있는 수준에 불과하다. 인간의 병사 수십이 달라붙으면 어느 정도 견제가 가능하고, 수백 명이면 되려 당하기도 하는, 결국 그 정도에 불과한 괴물인 것이었다.
힘은 세지만, 지능이 부족한 게 흠이라고 해야 되나... 아마 평범한 인간이 오우거만큼의 신체능력을 지녔더라면, 아무리 투기를 쓰지 못하더라도 하위의 검주정도는 이겼을 테니 말이다.
하지만 그걸 감안해도, 오우거의 능력은 뛰어난 편이었다. 단순히 신체능력만 보자면, 투기로 온몸을 두른 검주보다도 강한 것이니까.
하지만 서른이 채 안 되는 오우거는 예상보다 적었다.
잠깐 생각하던 크리샤네아가 레무르에게 물었다.
“고블린이랑 오크는? 그 둘도 모잘라?”
크리샤네아의 말에 레무르가 대답했다.
“고블린은 이만, 오크는 오천정도 잡았습니다.”
오우거랑 달리 숫자가 많은 편인 고블린과 오크는 짧은 시간이었지만 충분히 잡아들인 모양이었다.
본래 계획이었던 오십의 오우거에는 미치지 못했지만, 예상보다 빨리 차례가 돌아온 것치고는 빠른 준비기는 했다.
“으음... 되도록이면 힘쓰기는 싫었는데.”
뱃속의 아이는 마력에 무척이나 민감했다. 단순히 잘 크고 있는지 어머니인 자신이 확인하려하는 해도, 스스로 결계를 치며 거부할 만큼.
아직 태아인 아기가, 마력을 그 정도로 구사하는 걸 보면 과연 드래곤의, 자신의 아이라는 사랑스러움이 무럭무럭 피어나지만...
반대로 말해서, 자신이 힘을 발휘하는 것을 뱃속의 아이가 꺼려한다는 걸 의미하기도 했다.
드래곤은 자존심이 강하다.
그건 태아인 자신의 아이에게도 해당되는 이야기인 모양이었다.
자신보다 압도적으로 강한, 자신의 어머니의 마력에 자신의 마력이 눌리는 것을 꺼려했으니까.
하지만 숫자가 부족한 이상, 그만큼 떼우긴 해야 했다. 하는 수 없다, 조금 투정을 부리겠지만... 아직 그리 힘은 세지 않아서, 괜찮았다. 오히려 조금의 미동조차도 사랑스럽게 여겨졌으니까. 생각을 마친 크리샤네아가 말했다.
“오우거를 가둔 우리가 있는 곳으로 안내해.”
“네, 크리샤네아님.”
평소에는 마치 손녀와 할아버지처럼 티격태격하는 크리샤네아와 레무르였지만, 지금은 수직적으로 명령을 내리고 받는 중이었다.
오랜 세월을 살아온 레무르는 고개를 숙이고서, 크리샤네아를 안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