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6화 〉216화
쾅!
콰쾅!
무언가가 터지듯이 연쇄하며 폭발하는 듯한 소리가 들렸다. 대충, 눈 한 번을 깜빡할 정도의 시간을 두고서 말이다.
이것이 어느 날 갑자기 일어난 일이였더라면 대경하며 놀랐을 일이었지만... 안타깝게도 그런 일은 아니었다.
차라리 누가 반란을 일으켜서 이런 소란이 일어난 거였다면 좋았을 텐데.
그런 생각마저 들었지만 아니었다.
콰직!
눈앞에서 바라보고 있던 문이 박살나서는, 파편이 튀어 날아왔다. 얼굴을 향해 날아오는 파편들을 옆에 있던 작은 단검을 휘둘러 쳐냈다.
이래봬도 라이어스 제국에서 자랑하는 제국 검술을 익히고, 검주는 아니더라도 그 바로 밑의 검사들, 검성들에 맞먹는 검술을 지니고 있었다.
제 몸 하나 정도는 지킬 정도의 힘은 있다는 거였다.
애당초 호위로 거느리고 있는 '칠검주'들을 뚫고서, 이곳까지 올 사람은... 한 사람을 제외하면 없지만 말이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황제는 오늘도 박살나버린 대전의 문을 바라보면서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뚜벅, 뚜벅하고. 먼지가 휘날리고 있는, 풍비박산이 나버린 입구를 통해 들어온 자를 바라봤다.
분명히, 이 소란의 범인일 것이다.
직감이고 자시고 할 것도 없이 보면 알 수 있었다. 그리고, 만약... 그 소란의 범인이 전혀 모르는 자였다면... 당장 호위의 ‘칠검주’들을 불러 잡아들이라고 명했겠지만.
그럴 수도 없었다.
아까도 말했지만, 호위의 검주들을 뚫고서 여기까지 올 수 있는 이는 한 사람 밖에 없었으니까.
그리고, 그 말은... 여기까지 도달했다는 거 자체가 이미 그 호위들이 뚫렸다는 소리였다.
아무리 검성 수준의 실력을 지니고 있다고 하더라도, 검주를 하나도 아니고 일곱이나 뚫고온 이를 막아낼 방법은 없었다.
더군다나, 상대가 상대인 만큼 더더욱.
지끈지끈, 아파오는 머리를 움켜쥐고서. 황제는 자신에게 걸어오는 이를 바라봤다.
감히 황제가 거하는 궁전, 그 문을 박살낸 자를. 무척이나 낯익은 모습을 말이다.
뒤로 거칠게 묶어 넘긴 회색빛의 머리카락, 가느다랗고 여리해보이는 여인의 몸. 그리고 자신보다도 서너 살은 많은 주제에, 온갖 보약과 포션으로 관리받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슬슬 주름살이 생기고 있는 자신보다도 훨씬 앳되보이는, 미모의 여성이.
오늘도 여실 없이 박살낸 대전의 문을 발로 차고서는 말했다.
“형편없는 문인걸. 가볍게 찼을 뿐인데 박살났잖아. 이래서 안심하고 집무를 볼 수 있겠어? 응, 우리 귀여운 동생씨.”
황제가 거하는 궁전이었다. 그리고 마지막 보루라고도 할 수 있는, 대전의 문이었다.
당연히 형편없는 문일 리가 없었다.
오히려 그 반대였다.
고위 마법사들이 걸어낸 보호마법들이, 칠중으로 걸려있는데다가 그 자체만으로도 아다만티움이 섞여, 제 아무리 전설 속에서 나오는 드래곤이라고 해도 쉽게 뚫을 수 없다고 여겨지는, 황실의 자랑하는 문이였다.
거기에 시간이 지나면 자동으로 복구되는 마법까지 걸려 있는데다가, 복구되고 난 뒤에는 이전보다 더 단단해지는 마법까지 걸려 있었다.
하지만, 그런 문이 벌써 몇 번이나 박살났다.
그것도 막 고쳐질 쯤 때마다 쳐들어와서 깽판을 치는 족족, 박살을 낸 것이었다.
혈압이 치솟아서 그대로 십 수 년 전 돌아가신 아버지의 곁으로 승천할 것 같은 기분을 느끼면서. 황제는 입을 열었다.
“...또 무슨 일이오? 누님.”
“무슨 일이긴, 몰라서 묻는 건 아니지?”
웃는 낯으로, 그렇게 말한 여인이. 황제에게 누님이라고 불릴 수 있는 유일한 존재. 앨리시스 드네아가 가볍게 산책하듯이, 발을 떼는 순간이었다.
휘엉청, 하고.
시야가 거꾸로 돌았다.
아니, 실제로는 시야가 거꾸로 돈 것이 아니라...
“...이, 이게 무슨 짓이오?! 누님!”
가냘프기 그지없는, 앨리시스의 손에 붙잡혀서. 그대로 거꾸로 들어 올려진 황제가 발버둥치자, 그런 황제와 시선을 맞추며. 앨리시스가 말했다.
“뭐긴 뭐야? 반란이지. 나, 오래 참았다? 딸아이에 대한 조사는 지진부진에, 내가 직접 하겠다고 하니까 안된다, 기다려달라, 그래서 기다려줬더니… 이젠 내가 오는 것도 막아? 이제 됐어. 내 남편이 황제 할 테니까, 오늘로 너 그냥 황제 하지 마.”
“막은 건, 누님이 올 때마다 이런 일을 벌이니까 그러는 게 아니오? 거기에 뮬런을 황제로 삼겠다니...? 그는 평민 출...”
“내 남편이야, 말 똑바로 해. 주둥이에 있는 이빨, 다 털리기 싫으면.”
서슬 퍼런 앨리시스의 말에 황제가 입을 닫았다.
“그리고... 평민이니 뭐니 그러면, 어디 진짜 족보 한 번 까볼까? 과연 적통한 드네아 가의 가주인 나, 앨리시스의 남편인 뮬런이 더 계승 서열이 높을지, 아니면 바람둥이 영웅왕, 제임스가 발랑 까져서 아직 어린 나이에 지 동네 누나한테 싸질렀던 사생아 출신의...”
“그만...! 그만...! 누님, 내가 잘못했으니 그만...”
앨리시스의 말에 황제가 기겁하며 만류했다.
이 이야기는 황실 최고의 비사이기 때문이었다.
영웅왕 제임스.
400여년전, 이 땅에 소환된 마왕을 베고 당시 아직 왕국이었던 라이어스 왕국의 일곱 왕녀들과 결혼한 것은 유명한 이야기였다.
마왕을 베었기에 영웅, 그리고 왕녀와 혼인하여… 그 적통성으로 왕이 되었기에 영웅왕.
그는 일곱 왕녀들과 슬하에 많은 자식을 두었는데… 그를 뿌리로 두고 있는 것이 현 라이어스 제국의 황실과, 드네아 가였다.
하지만 여기엔 숨겨진 비사가 있었다. 영웅왕과 왕녀 사이에는 많는 자식이 있었고, 그중 아들이 셋. 딸이 서른이 넘는 어마어마한 비율을 자랑했지만… 사실 그건 거짓말이었다.
딸만 마흔이 넘었던 것이 진실이였다.
아들로 알려진 셋, 훗날 삼왕자라고 불리던 이는… 그 중 한 명은 왕녀 중 하나가 외도로 낳은 자식이었고, 나머지 둘은 영웅왕이 어렸을 적에 낳았던 사생아였다.
본래 평민이었던 영웅왕은 왕녀들과 결혼했기에 왕이 된 것이었다. 헌데, 그 영웅왕이 아직 평민이던 시절, 평민인 여인과 관계를 맺어 얻었던 자식을… 굳이 찾아와 왕자로 삼은 이유는…
마왕의 저주 때문이었다.
후손들은 오직 여자들만 태어나는 마왕의 저주. 하지만 아직 그 저주를 받기 전, 영웅왕의 핏줄을 이은 자식은 그 저주에서 벗어나 있었다.
고민 끝에, 당시 왕실은 그들을 데려다가 왕족으로 거둔 거였다. 일단 반절은, 이제는 왕이 된 영웅왕의 핏줄이였으니 적통성엔 하자가 있더라도 문제는 없었으니 말이다.
그 때문에, 현 제국의 황족들은 사실… 영웅왕 제임스의 후손인 것은 맞았지만, 그치들이 그토록 자랑스러워하는 1000년이 넘는 역사를 가진 '라이어스'의 혈통은 아니었다.
반면에…
영웅왕과 왕녀들 슬하의 자식들. 진짜로 라이어스 왕국 시절의 왕족의, 적통한 혈통을 가진 딸들은 대부분 마왕의 저주를 퍼트리지 않기 위해 독신으로, 수녀로 살다 죽었지만. 그 중에서도 후손을 남기고 세력을 일궈낸 것이 드네아 대공가였다.
적통한 라이어스 왕실의 피와, 영웅왕의 피를 모두 이은… 현 황실보다도 훨씬 적통한 존재들인 거였다.
당연히 알려지면 절대로 안되는 최고 비사 중의 비사. 그걸 아무렇게나 꺼내든 앨리시스의 말에 황제가 기겁할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런 황제를 보고서 앨리시스가 말했다.
“그렇게 기겁하지 마. 어차피 듣는 사람도 없어.”
다 때려눕혔으니까, 그렇게 말하는 앨리시스흘 보고서 황제가 외쳤다.
“고조 할아버지이자, 영웅왕이신 분을 욕보인 건 누님이잖소!”
“욕 먹을만한 짓을 하긴 했잖아?”
오히려 뭐 잘못됐냐는 듯이 그렇게 묻는 앨리시스를 보고서 황제는 아연실색했다.
아무리 뻔뻔하기 그지없는 이긴 했지만 설마 자신의 뿌리조차도 모욕하는 걸 꺼려하지 않을 줄은 몰랐다.
과연, '상식'에서 초월한 초월자답다면 초월자다운 모습이긴 했지만… 아무리 그래도 도가 지나쳤다.
“아무리 그렇다고 할지라도 후손이 된 자로서 그런 망발이 대체 어디에 있소?!”
거꾸로 매달린 채,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더니 눈앞이 핑그르르 도는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황제는 말했다.
비록 지금 자신의 꼴이 이렇다할지라도, 자신은 천하제일. 제국의 황제였으니까.
말 한마디에 수만의 병사와 수천의 기사, 수십의 검주를 움직이게 할 수 있는 절대권력자.
무소불위의 황제 말이다.
아무리 앨리시스라고 하더라도, 그러한 황제의 적통성을 모욕하는 발언은 용납할 수 없었다. 아니, 용납해서는 안됐다.
권력이란 나눌 수 없는 것이었다. 하지만, 손쉽게 없어지기도 하는 것이었다. 적통성이란, 그런 것이었다.
적통성을 잃으면 하물며 황제라고 하더라도 자리를 보전하는 게 위태롭게 된다. 아니, 자신은 몰라도 이후의 황제들, 즉 자신의 자식들의 위지가 흔들리게 된다.
머리에 피가 몰려서 그런지 냉정을 잃은 황제가 말을 이었다.
“거기에 내가 분명 조금만 기다려달라고 말하지 않았소? 그런데 대체 왜 하루가 멀다하고 허구헌날 이 지...”
이 지랄을 떠냐고, 황제가 입에 담기엔 참 저렴하다싶은 욕지거리가 튀어나오려던 것이 가로막혔다.
짝!
하고, 황제의 입이 오른쪽으로 돌아갔기 때문이었다.
동시에 새하얀, 건강하기 그지없어 보이는 치아 서너 개가 날아갔다.
“억...”
나머지 이빨들도, 겨우 붙어있을 뿐이지. 깨지고 비틀려서. 피가 주르륵 흘러내리는 입을, 그마저도 턱이 어떻게 돌아갔는지 다물어지지 않는 입을 떡하니 벌린 황제에게. 앨리시스가 말했다.
“내가 경고했었지? 이빨 털리기 싫으면 말 똑바로 하라고.”
쿵, 하고. 그대로 집어 던져진 황제가 바닥에 쓰러지자 그런 황제를 내려다보면서 앨리시스가 말했다.
“이제 네가 말려도, 내 마음대로 할 거니까 그렇게 알아둬. 우선, 아리스가 사라졌던 장소… 테 베르나라고 했었나? 그 근처부터 직접 조사해볼거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