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5화 〉215화
“로로, 들어가도 될까?”
안쪽에서 느껴지는 로로의 기척에 대뜸 그렇게 물어보자, 곧 대답이 들려왔다.
“응… 상관 없어.”
작은 목소리. 원래도 그런 편이었지만 조금 기운이 없어보이는 목소리에 고개를 갸우뚱했다가, 시간이 시간이다보니 졸려서 그런건가 싶었다.
어쨌거나… 내심 싫다고 거절하는 것도 생각해뒀는데 다행이었다. 그야, 한창 때의 사춘기 소녀들이 다 그렇듯이 자기 방에 누굴 들이는걸 싫어하니까. 로로도 그런 것이 아닐까 싶었기 때문이었다.
최근 나와 멀찍이 떨어지는 이유가 각성으로 성장한 덕분에 찾아온 사춘기 때문이 아닌가 싶었는데, 그건 아닌 모양이었다.
“그럼…”
문을 열려고 하려고 했을 때, 그보다 먼저 문이 열렸다.
안쪽에서 로로가 연 것이였다.
그리고…
새하얀 나신의 로로가 그런 내 눈에 보였다. 불그스름한 두 뺨과, 약간 지친 듯한 모습이 의아스러웠지만 딱히 몸에는 문제가 없어보였다.
상처 하나 없이 매끄러운 곡선을 그리는, 이제는 어렴풋하게 여자라는 느낌이 드는 소녀에서 여인으로 넘어가는 단계의 몸이 보였기 때문이었다.
그야 알몸이니까 보일 수 밖에 없었지만.
잠깐 할 말을 잃었지만, 당황하지 않고 내가 물었다.
“…왜 알몸인지 물어도 될까, 로로야?”
그런 내 물음에 로로가 고개를 갸우뚱하다가 말했다.
“…땀이 나니까?”
땀이 나서 알몸이였구나.
그랬구나.
“일단… 들어가자.”
하고 싶은 말이 많았지만, 꾹 참고서 그런 로로의 손을 붙잡고 방 안으로 들어갔다.
로로의 방 안은 꽤나 삭막했다.
소녀틱한 걸 바라지는 않았지만, 천공성에 있는 빈 방 어느 곳과 비교해도 지금의 로로의 방과 크게 다른 점은 없어보였다.
즉, 방을 받고나서도 그대로 사용하기만 했을 뿐이란 거였다. 아예 마개조되서 방 안에 숲이 통째로 자리잡고 있는 에오시스 자매들의 방과는 딴판이었다.
뭐 로로답다면 로로다운 방이었지만…
그래도 나름 청소는 부지런히 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개인에게 내준 방인만큼, 에루나가 청소해줬을리도 없는데 무척이나 깔끔했다.
거기에 달짝지근한 향도 나는 것이 뭔가 뿌리고 있는 건지도 몰랐다.
“…그런데 왜 왔어?”
이게 무슨 향이지, 하고 방 안을 둘러보고 있던 나를 올려다보면서, 로로가 그렇게 물었다. 덕분에 내가 온 목적을 떠올렸다.
“그 전에 옷부터 입지 않을래? 로로야.”
로로가 아직 알몸이란 것도.
“......”
그런 내 말에 빤히 나를 바라보는 로로가 보였다. 그러다가 고개를 끄덕인 로로가 옷장으로 향했다.
연갈색, 건강한 피부빛의 아직 어린 티가 남아있는 엉덩이가 내 눈에 들어왔다.
물론, 성욕은 일지 않았다.
애당초 로로에게 그런 감정을 품은 적도 없었다. 아르카한테 쥐어짜인 탓도 있을 지 모르겠지만, 그게 아니더라도 그럴 마음은 들지 않았을 거라고 스스로에게 단언할 수 있었다.
그런 내 눈에 주섬주섬 옷을 입고 있는 로로가 보였다. 그런 그녀를 보다가, 입을 열었다.
“팬티도 입어야지, 로로야.”
내 말에 뚱한 표정을 지었던 로로가 이내 속옷까지 꺼내 입기 시작하는 것이 보였다.
다른 애들도 이젠 익숙해졌는지 잘만 입는데 유독 로로만 팬티에 무슨 억하심정이 있어 저리 싫어하는지 모르겠다.
다시 로로가 옷을 입는 것을 지켜봤다. 귀찮은 기색으로 팬티에 다리를 집어넣고 올리고 있는 로로의 표정이 보였다.
아주 예전에, 처음 천공성에 도착했을 때 독기어린 눈으로 날 바라보던 로로의 모습은, 차갑게 굳어있던 로로의 모습은 더이상 보이지 않았다.
딱딱하게 굳어있던 표정도, 감정도 다양해졌고… 문득 아이는 눈 깜박할 사이에 큰다는 말이 떠올랐다.
로로는 정말로 눈 깜빡하니까 커지긴 했다만.
“다 입었어.”
“아, 그래. 잘했…”
그렇게 말하며, 로로를 칭찬해주려던 내 눈에 치맛단을 들어올려서 내게 팬티를 보여주는 로로를 보였다.
“는데… 굳이 안보여줘도 되니까.”
그런 로로의 치마를 도로 내려주고서 머리카락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응? 알겠지. 로로야. 나야 괜찮지만, 혹시라도 다른 사람한텐 그러지 마라? 특히 남자는 다 짐승이니까 그러다가 큰일날 수도 있어.”
검주인 에네스타와도 맞상대하는 로로라면, 대부분 상대가 큰일이 나겠지만. 일단은 그렇게 얘기했다 .
“…그럼 괜찮아.”
그리고 그런 내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서 그렇게 말한 로로가 말을 이었다.
“어차피 보여주는 건 주인님뿐이니까.”
“…로로야.”
뭐랄까 참 난감했다.
나라니까 괜찮다고 말하는 로로의 말에 감동을 해야 하나, 아니면 나한테도 그럼 안된다고 로로에게 말해줘야 하나, 정말이지 난감했다.
커서 아빠랑 결혼할거라는 딸아이의 말을 들으면 이런 기분이려나, 그런 간질간질한 느낌의 복잡한 심정이었다.
하지만 곧 로로를 생각한다면 말해야한다는 판단이 섰다. 그래서 그런 로로를 보며 내가 말했다.
“…그런건 나중에, 로로가 좋아하는 사람이 생기면 보여줘야 하는 거야. 아니지, 좋아하는 사람이 생겨도 보여주면 안되고 일단 그 놈팽이 자식이 어떤 놈인지 내가 먼저 확인하고서...”
감히 로로를 꼬신 놈이 대체 어떤 놈인지 내가 먼저 보고 기준 미달이면 좆을 뜯어버려야지, 그런 생각이 들었다.
딸바보라고 욕해도 상관없었다.
일단 로로는 내 아이, 그렇게 여기고 있었으니까. 그렇다면 어찌저찌 로로는 드래곤의 아이인 셈이기도 했다. 나는 로로의 아버지기도 하지만, 드래곤들의 반려이기도 했다.
내 아이니까 드래곤들의 아이이기도 한 셈인거다. 뭐, 이건 다소 해석의 차이가 있겠지만.
그게 아니더라도 나 자신도 일단은 마왕이었다.
로로는 마왕의 딸인 셈이다.
그런 로로를 어줍잖은 녀석이 기웃거리면, 당연히 그 새끼의 목숨이나, 좆대가리 정도는 걸어야 하지 않을까.
응, 완벽하고 논리적이었다. 무려 드래곤과 마왕의 딸을 건드릴 용자라면 그 정도는 해야 했다.
그렇다고 정말로 기준에 맞는 놈팽이가 있으면…
음…
“…나는 주인님을 좋아하는데? 그래도 안 돼?”
그럴 땐 어째야하나 고민하고 있던 나를 빤히 바라보던 로로가 그렇게 말했다.
무심코 하반신을 바라봤다.
…나는 내가 생각하는 기준에 미달하는가 아닌가, 미달한다면 나는 내 좆을 뜯어내야하는가 아닌가, 하고.
한순간 머릿속이 혼잡스러웠다가, 이내 도리질쳤다. 이걸 떼버리면 이세계는 끝난다. 농담이 아니고 정말로 그렇게 되버렸다.
아무리 내가, 로로의 남자친구로 될만한 놈의 기준에 미달된다고해서 이걸 떼어내는 일은 할 수 없었다.
일단, 애당초 아버지가 남자친구가 될 수도 없으니 문제도 없었다.
“그래도 안 돼.”
그렇게 말하고서, 말을 이었다.
“로로야. 너도 알고 있겠지만… 난 널 딸처럼 여기고 있어. 그리고 너도, 나를 아버지로써 여기는 걸 알고 있어.”
“…….”
그런 내 말에 아주 조금 붉어진 로로의 뺨이 보였다. 그리고 그런 로로의 감정이 유난스럽게 들끓는것이 느껴졌다.
로로는 에루나와 마찬가지로, 나와 영혼으로 연결된 존재였다.
굳이 상태창을 열어서 확인하지 않아도, 그녀가 지금 어떤 감정을 느끼는지 알 수 있었다.
부끄러움, 당혹, 그리고…
어렴풋하게 느껴지는 감정을 모른 체하고서 그런 로로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조심스레, 그녀의 이마에 난 세 개의 뿔을 어루만졌다.
그런 내 손길에 어깨를 움츠렸다가, 이내 기대듯이 머리를 내 손에 대어오는 로로가 보였다.
그래, 나는 맹세했다.
이 아이는 나의 딸이라고.
그러니까 어렴풋하게 느껴지는 그녀의 감정을 모른 체해야만 했다. 그 역활은 내 것이 아니였다. 내가 해서는 안되는 거였다.
나는, 또 다시 그녀에게 같은 상처를 주고 싶지 않았다.
다른 누구도 아닌 나는, 로로의 과거를… 알고 있는 나는 그래선 안됐다.
으득, 하고. 입술을 깨물었다.
넘기고 싶지 않다.
욕망이, 욕심이 꿈틀거렸다.
부성애로써, 애정으로써 그런 것이 아니였다.
'내 것'을 뺏기고 싶지 않다. 한없이 추한 그런 감정이 끓어올랐다.
드래곤의 질투, 탐욕, 독점욕… 이제와선 3분의 1정도 드래곤이 되어버린 나 역시도, 그런 감정이 점점 강해져가는 것을 느끼고는 있었다.
의식의 한 구석에서, 차라리 그냥 전부 안는다면, 그렇다면 남에게 줄 필요도, 걱정할 이유도 없어져버린다고. 그렇게 생각하는 내가 있었다.
하지만… 그럴 순 없었다.
지나간 일이다.
이미 지나가버린 일이다. 내가 어쩔 수 없는, 그런 과거의 일이다. 하지만, 그 과거를, 로로의 과거를 나는 알고 있었다. 그로 인해 로로가 얼마나 괴로웠는지는 알고 있었다…
아비에게 몸을 더럽힐 뻔한 로로가.
또 다시 아비를 자칭하는 나에게 그런 짓을 당하는 건, 내가 용납할 수 없었다.
“그리고, 아버지는 딸의 속옷 같은걸 보는 사람이 아니야. 그러니까, 알겠지? 로로야.”
“......”
“안되는건 안되는 거야.”
스스로에게 말하는 것처럼, 그렇게 말했다. 지그시, 그런 나를 바라보는 로로의 시선이 느껴졌다. 검은 눈동자, 날 닮게 되어버린 그녀의 눈동자에 내 모습이 비쳐보였다.
모든 것이 생존으로 직결되던 곳, 낙스에서 온 로로에게. 그리고 하필이면 그 중에서도, 심각하게 문제가 많았던 로로의 아버지의 밑에서 자란 그녀의 성관념이 얼마나 일그러져있는지 알고 있었다.
크리샤와의 로로에게 관계를 보여졌을 때, 익숙하다고 괜찮다고 말하던 로로를 떠올렸다.
거짓말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녀는 정말로 익숙해보였으니까.
그 이유가 어째서인지도 알고 있었다.
그녀가 자라오면서, 아직 내 절반만도 살지 못한 그녀가 보았던 광경들이 얼마나 지독한 것이였는지, 로로를 제외하면 오직 나만이 알고 있었다.
그런 그녀를 지켜야하는 것 역시, 그녀를 거둔 내 몫이었다.
그런 생각을 하고서 말했다.
“좋아, 그런 김에 어디 한 번 아빠라고 불러보지 않을래?”
솔직히, 내가 로로를 딸로서 여기고 있었지만, 그런 로로의 호칭은 언제나 주인님이었다. 그야 어쩔 수 없는 부분이기도 하지만, 뭔가 기분이 묘할 수 밖에 없었다...
알고 있었다.
로로가 '아버지'라는 호칭에 조금 반감과, 동시에 열망을 가지고 있는 것도. 그 반감이 그녀의 친아버지였던 놈의 탓이기도 한 것도.
그래도… 나를, 그녀가 '아버지'라고 불렀을 때만큼은 그러지 않았던 것도 알고 있었다.
그러니까 아빠였다.
나를 아버지라고 여기면서도, 동시에 그 말을 꺼내는 것을 꺼려하는, 그런 트라우마를 지닌 로로에게.
그녀에게 아버지란 존재가 무엇인지, 알려주고 싶었으니까.
그 첫걸음이, 로로가 나를 아빠라고 부르는 거였다.
그냥 톡까놓고 말하면 한 번쯤 듣고 싶어서 그런 거지만.
“……”
그런 내 말에 나를 올려다 보는 로로의 시선이 매우 묘해지는 것이 보였다.
로로 역시 내 감정을 읽을 수 있었으니까.
그 시선에 좀 부끄러웠지만, 뻔뻔해지기로 했다.
이윽고, 그런 로로의 입술이 천천히 벌어졌다.
“아... 빠?”
아, 이거…
“...한 번만 더.”
“...아빠?”
“크흡…”
생각보다 파괴력이 강해서 이 이상 들으면 몸에 해로울 것 같은 말이었다.
그래도…
“하, 한 번만 더.”
“……”
뭔가 작게 한숨을 내쉰 로로가 보였다. 하지만 이윽고 그런 로로의 입을 열렸다.
그리고.
“아빠.”
그 뒤로 몇 번 정도 로로에게 아빠라고 불리고, 다른 바리에이션으로 아버님이라던가도 추가해서 듣다보니까 시간이 훌쩍 지나가버렸다.
편린에 대한 걸 시험해볼 시간도 없었다...
어쩔 수 없이 시험은 나중에 하기로 했다. 뭘, 어차피 시간은 꽤 있었다.
급한 일이긴 하지만, 당장 필요한 일은 아닌 거였다.
귀에 걸어둔 귀걸이를 만지작거리다가, 입을 열었다.
“…시간도 늦었으니, 이만 가볼게.”
“볼 일은, 끝난 거야?”
“그건 아닌데…”
내가 간다는 말에 조금 섭섭한 표정을 짓는 로로의 머리카락을 헝클듯이 쓰다듬으며 말했다.
“또 시간내서 올테니까 그런 표정 짓지 말고. 아, 그리고 방에서도 혼자 있다해도 알몸으로 있다가 감기라도 걸…”
과연 로로가 감기에 걸릴까? 기본적인 능력치만해도 하위 검주의 뺨을 후려갈기는 로로가?
“리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언제 내가 찾아올지도 모르니까. 항상 예쁘게 차려입고 있어야 한다?”
뭔가…
말을 병신같이 한 것 같았지만, 옷을 입어야하는 이유를 말해야하는데, 대체 뭘 이유로 들어야할지 떠오르지 않아서 렇게 말하자, 고개를 끄덕이는 로로가 보였다.
다행히 내 개떡 같은 말을 찰떡처럼 들은 듯 했다.
그리고, 그런 로로가 나를 바라보며, 싱글하고. 아주 작게 미소 짓는 것이 보였다.
“응… 다음부턴, 제대로 입고 있을게.”
그러니까, 다음에 또 와, 하고. 말하는 로로에게 잔뜩 치유받은 기분으로 침실로 돌아갔다.
꽤 늦어져서, 아르카는 이미 자고 있을거라고 생각하고 조심스레 방문을 열자. 어둠 속에서 빛나는 연녹빛의 두 눈동자가 나를 응시하는 것이 보였다.
식겁해서, 잔뜩 쫄았다가 이내 그게 아르카의 눈이라는 걸 알아차리고 안도의 한숨을 내쉴 때였다.
그런 내게 달려들듯 껴안은 아르카가 이내 내 가슴팍에 얼굴을 묻었다.
“갑자기 왜 이…”
킁킁, 하고. 나를 껴안은 아르카가 무언가 냄새를 맡더니 얼굴을 찌푸리는 것이 보였다.
“…흐으응?”
“뭐, 뭐야?”
그런 당황해서 아르카를 보고서 당황하는 나를 두고서, 내 목덜미라던가 손등 같은 곳에도 냄새를 맡은 아르카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했다.
“…뭐어, 이 정도는 봐줄까아. 나도 했었고오.”
“엉…?”
봐준다니 뭘? 무슨 소리인지 몰라서 고개를 갸우뚱하고 있자니, 그런 나를 꽉 끌어안은 아르카가 말했다.
“모르면 됐어어… 후아암… 기다리느라 졸려서 혼났네에.”
그 말에 뭔가 괜히 간질거리는 기분이라 내가 물었다.
“기다렸어?”
“그야아, 또 네가 다른 여자를 만들면 내 몫이 줄어드니까아.”
별로 전혀 그런 간지러운 느낌의 이유로 기다린게 아니였던 모양이었다.
“…그런 일 없다니까.”
조금 실망해서 그렇게 말하자 나를 보며 빙그시 미소지은 아르카가 말했다.
“그런 것치고는 몸 곳곳에서 냄새가 풍기는 데에?”
냄새라니… 아까 코를 킁킁대던게 그런 이유였나…
“뭐어, 정말로 몸을 섞은 건 아닌 것 같지마안…”
정말로 졸린 듯이, 끝이 늘어지는 아르카의 말투가 한층 더 늘어져서, 귀를 기울이지 않으면 안될만큼 잘 들리지 않았다.
“하지만, 그 아이… 으음… 역시이, 이제 못 버텨어… 잘래애…”
그대로 나를 끌어안은채로 잠에 든 아르카를 보다가, 그런 그녀를 침대에 눕히고서 나 역시 옆에 누웠다.
…오래간만에 나도 잠이나 잘까. 그런 생각을 하면서, 이미 잠에 든 아르카를 안고서 잠을 청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