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202화 〉202화 (202/370)



〈 202화 〉202화

내게 날아드는 수십여 개의, 수해처럼 밀려드는 나무창들을 보고서 일단 에네스타부터 챙기고서 용린갑주를 활성화시켰다.

크리샤에게 부여받은 퀘스트,  완료 보상으로 얻은 기능이. 내 몸 위로 용의 비늘을 두르는 효과를 가진 용린갑주가 활성화되자 순식간에 손등을 비롯한, 옷밖으로 드러난 몸 위로 검붉은 비늘들이 돋아나기 시작하는 것이 보였다.


거기에... 차원을 넘은 자까지 활성화시킨 나는 그대로 자세를 굳혔다.


‘이 정도라면... 버티겠지.’

크리샤때는, 여기서 용린갑주도 없었던 상황이었다. 그때도 어떻게든 버텨냈으니까, 그 크리샤를 상대로도 멀쩡했었으니까... 그러니까 괜찮을 거다.

그렇게 생각했다.

그 생각이 깨진 건, 대비를 마친 내게 나무창들이 꽂힌 그 순간이었다.

텅, 하고.

나무창이 꽂히는 순간, 하늘을 날았다.

그리고.

허공을 나는 내게 연이어서 나무창들이 꽂혔다.


텅, 텅, 텅, 텅!

처음, 첫 발을 시작으로 한 끊임없는 폭력이, 계속해서.

벽에 부딪히고, 멈춰서면 그 위로 다시 나무창이 포격마냥 떨어져 내렸다. 벽이 부서지고, 다시 날아간다. 다시 벽에 가로막히면, 또  반복이 이어졌다.


텅, 텅, 텅...!

어느 순간, 멍하니 그저 붕 떠서 날아다니는, 그런 느낌이었다. 실제로 그러기도 했고.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쾅 하고 드디어 바닥에 닿은 몸이 닿았다.


닿았다, 보단 추락했다는 것에 가까웠지만. 어쨌거나 바닥에 착지하긴 했다.


“끄으응...”


머리가 아찔했다.


그야 그럴 수밖에 없을  같았다.

주변을 둘러봤다. 사방이 난장판이었다. 아마도, 내가 날아온 곳인 듯 보이는... 몇 겹이나 되는 벽들이 휑하니 뚫려있는 쪽은 더더욱 난장판이었다.

에네스타가 날뛰어도 조금 부서지고 말았던 천공성의 벽이, 내가 검을 휘둘러도 조금 베이고 말았던 벽이 하나도 아니고  겹이나 뚫린 거였다.


이 정도라면 에루나가 오더라도 며칠은 걸릴 대공사였다.

대체 얼마나 날아왔는지는 나중에 생각하기로 하고, 우선 에네스타를 살폈다.


“나, 나의 주... 괜찮으십니까?”

다행히 품에 안겨있던 에네스타 역시 차원을 넘은 자로 보호받아서 멀쩡했다. 나를 보며 그렇게 말하는 에네스타를 보고서 고개를 끄덕이고서 몸을 일으켰다.


“다친 곳은 없지?”


“...조금 어지럽지만 괜찮습니다.”

차원을 넘은 자가 보호해준다고 해도, 충격 자체를 없애주는 것은 아니었다.


고질적인 문제라고 해야 하나. 결국 차원을 넘은 자로 보호받더라도  안에서 충격을 버텨야하는 것이었다.

거기에 익숙해진 나조차도 뇌가 흔들렸는지 머리가 어질어질한데, 이런 경험은 처음인 에네스타가 어떨지는 뻔했다.


그래도 다친 곳은 없어 보이니 다행이었다.


차원을 넘은 자가 가진 보호력 자체는 드래곤의 마법도 거뜬하게 막아내니 당연하다면 당연한 결과였지만... 만약, 거기서 에네스타를 챙기지 않았으면 어떻게 됐을까.

머릿속에 스쳐지나간 생각을 밀어 넣고서.


“그건 다행이네.”

그렇게 말하고서, 에네스타에게 손을 내밀었다.


“시, 실례하겠습니다. 나의 주.”

그런 나를 보고서, 얼굴을 붉히며 손을 뻗는 에네스타와.

느릿하게.

느릿하게ㅡ

에네스타의 손에 감기는 나무줄기들이 보였다.


아주, 느리게.


뒷통수가 아려왔다.


띠링~

[플레이어 ‘이지경’님의 기능 ‘위기 감지’가...]

[플레이어의 기능 ‘위기 감지’가 경험을 쌓아 상위기능 ‘생존본능’으로 승급합니다. 기능 ‘생존본능’이 ‘불멸자의 심장’에 예속됩니다.]


[플레이어 ‘이지경’님의 기능 ‘불멸자의 심장’이 일부 회복합니다. 일시적으로 기능 ‘불멸자의 심장’이 사용 가능하게 됩니다.]


키이이잉...!

두근.


심장이 뛰었다.

느릿하게.


심장이 뛰는 소리가 들려왔다.

민첩...


174.


느릿하게.

허공에 내밀었던 손이 공간을 갈랐다.

더욱 느릿하게ㅡ

내 의지에 날아들듯이 공간 너머로 날아들  뽑혀 나온 광휘를 움켜쥐었다.


그리고 베었다.

한없이 길게. 한없이 늘어지는   시간 속에서 검을 쥐고, 휘둘렀다.


촤르륵, 하고 대체 언제 튀어나온 것인지. 그런 광휘에도 감겨드는 나무줄기가 보였다.

아니, 그게 아니였다.

갑자기 튀어나온 것이 아니였다. 내 소매로부터.  몸에서부터 시작해서 돋아난 거였다.  사실을 눈치 챘을 때는 이미 늦은 뒤였다.

나무줄기들이 광휘를 뿌리치듯이 휘둘러지는 것이 보였다.


이건 또 언제 해놨대.


그렇게 생각했다.

틈이 벌어졌다. 깡, 하고 나무줄기를 베는 거라고는 생각할  없는 울림과 함께 에네스타의 손에 감긴 나무줄기의 반을 베어넘기기도 전에, 광휘를 놓치고 말았다.

“에네...”

콰직!


그런 에네스타의 이름을 부르던 내게 또 다시 나무창들이 날아 들어와 꽂혔다.


쿵, 하고. 이번에도 벽을 뚫고 날아간 내가 바닥을 굴렀다.

여전히 아프지 않았다.

그야, 여전히 나는 차원을 넘은 자로 인해 보호받고 있었다. 적어도, 나를 보호하고 있는 이 벽을, 세계로부터 나를 격리시키는 벽을 꿰뚫으려면, 아무리 드래곤이라해도 초급 마법정도에 불과한 나무창으로는 어림도 없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제대로 대비조차 하지 못한 채로, 균형이 무너진 상황에서 얻어맞은 거였다.

눈앞이 핑그르르 돌았다.

“......”

그리고 제대로 시야가 돌아왔을 때.

 눈에 나무줄기로 꽁꽁 감싸이는 에네스타가 보였다.


꾸드득, 하고. 나무줄기들이 에네스타의 몸을 감아가는 것이 보였다.


검주인 에네스타를 내가 걱정한다는 것이 얼마나 바보 같은 일인지는 알고 있었다.


그녀는 나보다 훨씬 강했으니까.


하지만 상대가 나빴다.

아르카는 드래곤이었다. 아무리 검주인 에네스타라고 해도, 동급은 아니더라도 같은 검주를 크리샤조차 맨 손으로 때려눕혔다.

아르카는 그런 크리샤와 동격인 드래곤이었다.


아무리 에네스타라고 해도, 저런 상황에서 아르카가 마음만 먹는다면...

손을 바라봤다.

절대로 놓아서는  된다고, 에네스타에게 그토록 배워왔던 것도 무색하게도. 내 손에 잡히는 것이라곤 아무것도 없었다.

광휘조차도 그런 에네스타 옆에서 나무줄기에 감겨가고 있었으니까.

완전히 무장이 해제당한 거였다.

소매로부터 자라난 나무줄기를, 손에 쥐어 잡아뜯었다. 으직, 하고. 순식간에 다시 근력으로 전환한 내 손아귀에 무참히 뜯겨진 나무줄기를 바닥에 내팽개쳤다.


그런  앞에 아르카가 다가왔다.


“...아르카.”

또각, 또각하고. 다가와서. 내 앞에 선 아르카가 나를 내려다봤다.


분노한 드래곤이 얼마나 무시무시한 존재인지는 이미 경험을 통해 알고 있었다.

나와 에네스타를 아득하게 넘어서는 존재가 드래곤이었다.

그래, 알고 있었다.

알고 있었는데도, 실수해버렸다.

오산이였다.

아르카의 성벽이 그렇고 그런 거라고, 그러니까 괜찮을 거라고 제멋대로 판단해버렸다.


아무리 그래도 드래곤은 드래곤이였다.

힘도, 격도, 그리고... 드래곤의 질투도. 단순하게 여기면 안 되는 거였다.

가볍게 여겨서는 안됐는데, 그걸 어겨버렸다.

오만했다.

“...바로 나를 찾았다며언, 그랬다면 응, 봐줬을 지도 몰라. 하지만 이래서야... 그런 생각을 한 게 바보 같네에.”

그런 나를 내려다보며, 아르카가 그렇게 말했다.


봐주려고 했었다라...


그 말에 희망을 가지고서 내가 말했다.


“지금은... 조금 늦었으려나?”

아르카가 생긋하고 미소 지었다.


그런 아르카를 보며, 나 역시 마주 미소 지었다.

한줄기 희망을 품은 나에게.


꾸욱, 하고. 아르카의 발이 내 가슴을 내리눌렀다.

콰직!

그대로 땅에 처박힌 나를 내려다보면서, 아르카가 말했다.

“알면서 왜 물어봐아?”

촤르륵!


예의 나무줄기들이 에네스타와 마찬가지로 내게 다가왔다. 팔, 그리고 다리. 마지막으로 목까지.

몇 중으로 감겨들었다.


위력은 몰라도, 내구성에서는 크리샤의 그림자 손보다도 훨씬 튼튼하다는 것은, 방금 전에 알아낸 직후였다. 그런 것이 온몸을 조이듯이 감겨왔다.


이래서야 속수무책은 고사하고, 완전히 봉인 수준이었다.

그렇다고 가만히 있을 수는 없었다.


개변자

근력...

꾸드득!!

단숨에 치솟은 근력은, 흡사 무엇이든지  수 있을 것만 같은 전능감과 함께 찾아왔다. 이거라면, 크리샤의 그림자도 찢어발기고, 가루가 되도록 만들고도 남았다.


하지만... 정작 아르카가 소환해낸 나무줄기는 꼼짝도 안했다.

무려 174였다.


때마침 일시적이라고는 했지만 돌아온 불멸자의 심장 덕분에 평소보다 뻥튀기  근력이였다. 하지만 그런데도. 여태껏 내가 봤던 에루나를 제외하면 가장 높은 근력인데도, 그 에루나에게조차도 근접한 근력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옴짝달싹도 할 수 없었다.

생각 이상의 강도였다.

이런 거라면 드래곤조차도 꼼짝 못하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여기에 광폭화를 더하면 어떨까. 한동안 골골대기야 하겠지만, 지금보다도 훨씬 강한 힘을  수 있었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아르카가 나에게 말했다.


“...소용없을 거얼. 내가 마력을 붓는 만큼, 더욱 단단해지니까아. 오우거조차도 꼼짝도 못할 거라고오?”

“......”

“그리고 계속 그렇게 저항하며언...”

아르카의 시선이 에네스타를 향하는 것을 보고서, 나는 마지막 저항인 광폭화마저 포기하고서 아르카를 올려다보며, 양손을 폈다.

무조건 항복.


그런 자세를 취한 나를 본 아르카가 입을 열었다.


“바로 얌전해지니까아 이건 이것대로 기분이 나쁜데에?”

“아르카, 네가 같은 상황이였더라도 이랬을 거니까 그건  봐주라.”


“날 이렇게 붙잡을  있는 녀석이 있기는 하고오?”

그건 그렇지만.

아르카도 드래곤인 만큼, 같은 드래곤인 루시아나 크리샤라하더라도 이런 식으로 제압하는 건 불가능할 거였다.

하물며 아르카의 영지인 이곳이라면 더더욱.

그래도 내 말에 조금은 기분이 풀린 듯 보였다.

그리고.

꾸욱. 하고.

내 위에 올라탄 아르카가 미소 지으며 입을 열었다.


“그래서, 어때애? 묶여서 꼼짝도 못하는 지금의 기분 말이야아.”


“...솔직하게 말해서?”

그걸 지금 질문이라고 묻는 거냐고 물어보려다가, 아르카의 눈을 보고 진심으로 하는 소리란 걸 깨달은 내가 그렇게 묻자,

“거짓말을 할 생각이라면, 해도 상관 없지마안.”


속일 생각 같은 건 하지 말라는 듯이. 나를 바라보며 그렇게 말하는 아르카가 보였다. 꿈틀거리며, 내 목을 조이고 있는 나무줄기가 맥동치는 것이 느껴졌다.

반쯤 협박인데 이거, 쓴웃음을 지으면서. 나를 내려다보고 있는 아르카에게 말했다.


“솔직히 말해선,  좋은 기분은 아닌 걸.”

“그래애? 그렇다면 다행이네.”


놀리듯이, 그렇게 말하는 아르카에게 뭐라고 하려고 했을 때였다.


“그런데에, 이쪽은 정말로 커다란 거얼?”

아르카의 말에 시선을 내리다가,

“......”


이와중에도 발기가 가라앉지 않고 드래곤 슬레이어를 발견했다. 아르카의 허벅지 사이에서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는 녀석을 보고서, 그런 나를 보면서 키득거리며 아까의 에네스타의 말을 따라 놀리듯 그렇게 말하는 아르카를 보고서.


한참을 생각하다 입을 열었다.

“그야... 네가 그런 모습으로 있으니까 별 수 없지.”


반쯤은 진심이었다.


속옷차림인 아르카가 내 위에 올라타고 있는 있었으니까. 아마, 지금 같은 상황이 아니였더라면 충분히 반응했을  분명했다. 지금 같은 상황에도 바짝 서있는 게 조금 웃긴 일이었지만.

“흐으응? 그으래애?”

하지만 그런 내 대답이 퍽이나 마음에 들었는지 아르카의 기분이 좋아진 듯 보였다.


좋아.

이렇게 된 이상 아부 작전으로 간다.


하지만 한 발 먼저 아르카의 입이 열렸다.

“그럼 어때애? 루시아랑 크리샤랑 비교하면?”


“......”

그건 너무 치사하지 않아?

그런 심정을 담아 아르카를 보자니 키득거리며 웃는 것이 보였다.


그러다가.


“역시, 치사한 거얼.”


하고.

나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소리를 중얼거리던 아르카의 손이 밑으로 내려가는 것이 보였다.

그리고.

“읏…”

꽈악, 하고. 드래곤 슬레이어를 움켜쥐는 아르카의 손이 느껴졌다.

움찔, 하고. 반사적으로 몸을 떤 나를 보고서. 아르카가 미소 지었다.


섬뜩했다.

여전히 아르카의 머리 위에 돋아있는 이형의 뿔과, 세로로 갈라져 있는 눈동자가. 그녀가 아직도 분노하고 있는 중이라는 걸 알려주고 있었다.

“이렇게나 화가 났는데에. 네가 한 말에 무심코 용서해줄까 생각이 드는 게에.”


역시 치사해, 그렇게 말한 아르카가 나에게 말했다.

“거짓말로도, 이런 상황에서도 나를 우선하지도 못하는 너인데 말이야아.”


그런데에, 하고. 이죽이면서. 아르카가 말을 이었다.


“그런데에, 그런 너랑 달리... 이 정조도 없는 못된 자지에겐, 벌을 줘야겠지이?”

“...아뇨, 그건 좀...”


다른 건 몰라도 그건 정말로 무서운데.


진심으로 그렇게 말한 나를 보며, 아르카가 입술을 핥는 것이 보였다.

 이거.

“안돼애. 내가 지금, 그렇게 정했으니까아.”


정말로 조졌네 진짜.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