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화 〉201화
“정말로 굉장하지 않았습니까?! 드워프들의 명성을, 장인이란 이름을 어쩌면 코볼트와 노움들이 대신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그만해.”
“네? 하지만... 나의 주...”
“그만해주라...”
아모메슈의 안내를 받아서, 걸어간 곳에서 목격한 수십 개가 넘는 내 동상을 본 내가 그렇게 중얼거렸다.
이루 말할 수 없는 쪽팔림이었다.
심지어 그중에는 내 나신을 조각해놓은 것도 있었다. 한 번도 보여준 적도 없는데 말이다. 오직 상상만으로 조각한 거였다.
근데 그게 실물인 나와 무척이나 닮았다는 것이 쇼크였다.
니아는 그런 조각상들을 보고서 주인님이 잔뜩 있다면서 신나하고, 마야는 예의 그 알몸인 조각상을 보며 얼굴을 붉히고, 로로는... 그냥 평소와 같았지만.
아무튼 그것들을 옆에서 지켜본, 내 석상들을 감상하며 하나같이 굉장한 몸이니 뭐니, 실물과 똑같다니 뭐니, 걸작이니 뭐니하는 소리를 하는 걸 옆에서 들은 내 심정은 어땠을까.
차마 얼굴을 들 수 가 없었다.
볼거리가 많은 곳으로 가자고 했는데. 그 볼거리라는 것이 내 조각상이란 건지 내가 어떻게 알았을까. 알았다면 안 갔을 거다...
“...무, 물론. 주의 것보다 훨씬 작기는 했지만... 그래도, 그건 어디까지나 상상이였으니 어쩔 수 가 없는...”
그런 와중에 에네스타가 핀트에 어긋난 위로를 해와서 기분이 더욱 처참해졌다.
중학교시절에 쓴 일기장을 타인에게 들켰을 때와 같은 참담한 기분이 들었다. 아니, 그것보다 더한 기분이었다.
“나, 나의 주...?”
풀이 죽은 나를 보며, 어쩔 줄 몰라하는 에네스타를 보며 입을 열었다.
“위로는 됐고... 연병장을 수리하려면 3일은 걸린다던데. 그동안 어쩔 거야?”
“당분간은 아직 개발이 덜 된 공터에서 수련하면 어떨까, 하는 얘기를 하긴 했습니다.”
말을 돌려서, 그렇게 묻자 에네스타가 그렇게 대답했다.
공터라.
내 영지, 베헤모아는 상당히 컸다.
크리샤가 직접 만든 만큼, 내 영지에 거하고 있는 이십만이 넘는 이들이 모두 거주하고도 한참을 남는 거대한 땅덩어리가 아직도 남아있기는 했다.
비율로 따지자면, 이제 겨우 3할 정도를 채운 정도라고 해도 좋았다.
그런 만큼 공터가 많았으니까 연병장을 대신할 수는 있을 거였다.
“근데 괜찮대?”
문제라면, 공터가 있을 뿐이지 그렇다고 해도 사용하지는 않는 것은 아니란 거였다. 어디까지나 아직은 쓰지 않을 뿐이지, 앞으로도 그러라는 보장은 없는 땅이었다.
그런 내 질문에 에네스타가 대답했다.
“밭으로 사용할 땅을 몇 곳이 있다고 했습니다. 어차피 개간할 땅이니 얼마든지 날뛰더라도 상관이 없을 거라고...”
“그래? 그럼 다행이네.”
상관이 없다고 한다면, 내가 뭐라고 할 이유는 없었다. 내 영지기는 했지만, 내가 관여하는 거라고는 거의 없다시피 한 곳이었다.
나의 소유였지만, 내가 어떻게 할 생각도 없었다. 나중이라면 몰라도... 지금 내가 건드려봤자 대체 어딜 어떻게 해야 할지 감도 안 잡혔다.
솔직히 말해서, 아직도 그들이 나를 따르는 것도 내가 그들의 주인이라는 것도 아직 실감이 가질 않았고.
아직은... 아리스와 슈슈만으로도 어떻게 된다. 그러니까, 그들에게 맡기면 그만이다, 그런 생각 할 뿐이었다.
“그런데... 나의 주.”
그런 내 눈에 몸을 배배꼬는 에네스타가 보였다.
“그, 안아주시겠다고 한 얘기는...”
“...아직 다른 애들은 안 왔잖아?”
한참 뛰놀은 덕분에 지쳐서 잠든 니아를 방에 데려다주러 간 에오시스 자매들도 아직 돌아오지 않았는데, 그렇게 말하는 에네스타를 보고서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그렇게 말해도. 애처로운 눈망울로 나를 보는 에네스타를 보고서 입을 열었다.
“...아르카도 있으니까. 할 거면 내 방에 가서. 알겠지?”
그런 내 말에 눈을 반짝이며 고개를 끄덕이는 에네스타를 보고서, 더욱이 한숨을 내쉬었다. 음마로써, 당연하게 필요한 욕구인 것은 알고 있었지만. 음마의 여왕이 되어버린 에네스타는 그 정도가 너무 심했다.
필요 이상으로 원한다고 해야 하나. 아니, 애당초 필요 이상이란 것이 어느 정도인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그릇 문제인가.”
엘프들은 본래 정령이었다. 이 세상에서 거하기 위해서 그 형태를 살아있는 몸으로 바꾼, 정령을 뿌리로 하고 있는 여러 종족 중 하나였다.
엘프가 이 세계에 살아가기 위해 적응한 방식은 자신의 몸에 만드는 것이였다. 더 정확히는 옷을 만들어 입었다고 하는 게 좋을지도 모르겠다.
이 세상에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편리한 옷... 인간도 우주에 나가려면 우주복을 입었다. 그것과 비슷한 느낌이었다.
지금의 엘프들은... 그런 성질만 남아버리고, 정작 정령의 힘이 담겨져 있어야할 부분은 텅 비어버려서 그릇만 남아있을 뿐인 듯 했지만... 하지만, 여전히 언제든지 정령의 힘을 담아낼 수 있는 ‘그릇’이기도 했다.
그리고 그릇이 크면 클수록, 받아들일 수 있는 한계가 클수록. 엘프들은 일정 나이가 되면 정령을 몸에 받아들였다.
그게 이전, 나타들을 비롯한 에오시스 자매들이 계약했던 정령들의 정체였다. 그녀들이, 매일 같이 의식을 치렀던 것도 그것이 이유였고. 그런 그녀들과 달리 에네스타는 받아들인 정령이 없던 것인지 그런 의식을 치루는 것을 본적은 없었지만...
에네스타 역시 엘프, 그릇이 있는 것은 분명했다.
그 그릇을 내가 타락시켰다.
정확히는 내 힘이, 마왕의 힘이 그렇게 만들었다. 그로 인해 음마로 다시 태어난 에네스타와 에오시스 자매들은... 본래 그릇이었던, 정령의 힘을 담아내야했던 빈 공간을 내 힘으로만 채워 넣어야하는 몸이 되어버렸다.
아무튼 루시아가 가디언이었던 에네스타는, 당연하게도 그 그릇이 무척이나 커다란 엘프였다.
마찬가지로 요정향의 무녀였던 에오시스 자매들도 그릇이 큰 편이었다. 하지만 에네스타만큼은 아니었다. 에네스타는 원래도, 하이 엘프... 드래곤과도 동격의 취급을 받았다던 고대의 엘프와 가장 가까운 피를 이은 존재였다는 모양이니까.
그래서 그런지는 몰라도 에네스타의 성욕은 거의 드래곤에 버금가는 정도였다. 버금가는 존재였다고해서 성욕 쪽도 버금가지는 말아줬으면 좋았겠지만, 거기까지는 희망사항일 뿐이였던 것이었다.
지금도, 하아하아하고 가쁘게 숨을 내쉬고 있는 에네스타를 보고서, 한숨을 내쉬었다.
어쨌든, 결국은 내 책임이었다.
그녀가 이렇게 되어버린 것도, 에오시스 자매들이 그렇게 되버린 것도. 결국은 내 탓이라는 거였다.
“어쨌거나, 여기서는 안 되니까. ‘기다려’ 에네스타. 알겠지.”
“...멍♥”
내 말에 기쁜 듯이, 강아지와 같은 울음소리를 내는 에네스타를 보고서. 도대체 어쩌다가 이렇게 됐을까, 하고 조금 생각해보다가.
결국 내 얼굴에 침을 뱉는 꼴이라는 생각에 그런 에네스타의 손을 잡고서 빨리 내 방으로 걸어갔다.
다른 곳은 몰라도, 내 방이라면 에루나를 제외한다면 갑자기 누가 쳐들어올 일은 없을 테니까.
그리고 그 에루나는 크리샤의 영지에 있었다. 이른바, 지금 내 방은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장소라고 해도 좋았다.
내가 생각하는 것을, 에네스타도 생각했는지 그런 나를 빠른 걸음으로 뒤쫓... 아니, 앞장서다시피 걸어가서, 금방 내 침실에 도착할 수 있었다.
“응?”
방문을 열자 화악, 하고 코에 닿는 향기에 고개를 갸웃했을 때였다. 저릿저릿하고. 콧가를 간지럽히는... 익숙한 향기와 함께, 뒤통수가 따가웠다.
콕콕, 찌르는 게 아니라 누가 제대로 뒤통수를 후려친 듯한, 그런 아린 느낌이 들었다.
불길했다.
엄청나게 불길했다.
그리고.
그런 나를 에네스타가 덮쳐왔다.
에네스타의 입술이, 내 입술을 덮었다.
“응, 츄우...♥”
차마 뭐라고 말하기도 전에 일어난 일이었다. 내가 아무리 성장을 거듭했다고는 해도 내 능력치는 에네스타보다 한참을 밑돌았다.
미리 대비해서, 개변자를 통해 능력치를 몰아준 것도 아닌 이상.
기습적으로 달려든 에네스타를 어쩔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읍... 으읍...”
스르륵, 하고 에네스타의 꼬리가 겉에 걸친 외투보다도 먼저, 내 바지를 끌어내리기 시작했다.
이제는 뒤통수가 남아나기는 할까 싶을 정도로 아파왔다.
찌릿찌릿하고.
에네스타가 덮쳐와서 이러는 것이 아니란 건 덕분에 알 수 있었다. 솔직히 에네스타가 이러는 것도 위기기는 한데, 이 정도까지 내가 위협을 느낄만한 일은 아니었으니까.
적어도, 내가 아는 한 이런 적은 단 한 번밖에 없었다.
“자, 잠깐...”
겨우 에네스타를 떼어내고서, 진정시키려고 해봤지만 이미 스위치가 들어간 에네스타가 그런 내 말을 들을 리가 없었다.
“...주께서도, 이미 준비되어있었군요♥”
어느새 바지를 끌어내리고서, 속옷만 걸치고 있는 내 하반신을 보며 에네스타가 그렇게 말하고서, 꼬리를 좌우로 흔들었다.
그런 꼬리가 천천히.
“이렇게나, 커져서...♥”
속옷 위로, 단단히 발기하고 있는 드래곤 슬레이어를 훑어 내리듯이 움직였다.
스르륵...
속옷 밑으로 파고든 에네스타의 꼬리가 드래곤 슬레이어에 감겨왔을 때였다.
콰직, 하는 소리가 뒤에서 들려왔다.
움찔, 하고.
그 에네스타마저 멈칫할 정도로.
싸늘한 시선이 뒤통수에서 느껴졌다.
그리고, 그제서야 불길한 낌새를 느꼈는지, 평소의 모습... 멀쩡한 상태가 된 에네스타가 고개를 들어 올리다가... 내 뒤를 보고서 쩌적, 하고 굳는 것이 보였다.
“아... 아...”
떡하니 벌어진 에네스타의 입에서 신음처럼, 채 문장이 되지 않는 소리가 새어나왔다. 차마 저 뒤에 이어질 말이 그것만이 아니길 바랐다.
“아르카, 네아님...”
희망사항이었지만.
오늘. 내 희망사항이 여러 번 깨지는 구나, 그렇게 생각하면서.
천천히 뒤를 돌아봤다.
침대에 걸터앉아서, 나를 바라보는 아르카가 보였다. 콰직, 콰직하고. 아까 들려왔던 소리의 정체가 무엇인지 확실히 알게 되기도 했다.
자라나고 있는 줄기들로, 우겨지듯이 망가지고 있는 내 침대가 보였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침대 위에 있는 아르카였다.
“어...”
아르카의 머리 위에 돋아난, 인간의 것이 아닌 이형적인 ‘뿔’. 저것과 비슷한 걸 언제 봤었더라... 기억을 되새기자, 생존 본능 때문인지 금세 떠올랐다.
크리샤가 아리스가 데려왔던 검주들을 때려눕혔을 때... 그때 비슷한 걸 본적이 있었다.
나름 드래곤이 인간의 형태를 유지한 채로 본신의 힘을 쓸 때 취하는 모습이라고 해야 하나... 이른바 싸움이 일어날 때나 볼 수 있는 모습이란 거였다.
그때의 크리샤랑 다른 점이 있다면, 이유는 몰라도 아르카의 옷차림이 속옷차림이라는 거였다.
이유야 모르겠지만, 그때 크리샤도 거의 속옷이나 다를 바 없는 차림이기는 했으니까 저게 아르카의 그거라고 생각하면 뭐 납득을 못할 것도 없었다.
...문제는 지금 아르카가 왜, 지금 여기에 있고. 왜, 지금 여기서 그런 모습을 하고 있느냐였다.
이미 답은 알고 있었지만.
그리고 그런 나를 보면서. 아르카가 입을 열었다.
“...마저 하지 그래애?”
뭘, 하고 대답하면 어떻게 되려나.
“...아니, 마저 하래도 할 것도 없고. 그나저나 아르카, 내 방에는 무슨...”
일단 대화였다. 대화를 시도하자. 그런 생각에 일단 말을 꺼냈지만, 내 말을 자르며 아르카가 말했다.
“그래애? 적어도... 마지막이니까, 끝날 때까지는 기다려줄까 했는데에.”
뭘요? 뭐가 마지막이라는 건데요?
“네가 사양하겠다면야아...”
천천히 아르카가 일어섰다.
그리고 그런 아르카의 주위로.
나선을 그리며, 꼬아지며 창의 형태를 띠기 시작하는 줄기들을 보고 중얼거렸다.
“조졌군.”
반쯤 농담으로, 어차피 조지는 건 미래의 나라고 말했는데. 정말로 이렇게 될 줄은 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