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200화 〉200화 (200/370)



〈 200화 〉200화

생각한 것보다 훨씬 빨리 사람을 구해버려서 할 일이 없어져 버렸다.


기왕 이렇게 된 거 저녁시간이  때까지는  더 둘러보기로 했다. 언제 또 다시 나올지도 솔직히 잘 모르겠고. 일을 마쳤다고 바로 돌아가자고 하기엔 나와 같이 외출한 것이 무척이나 기쁜 듯한 아이들의 얼굴을 보자니 차마 그렇게 할 수도 없었다.


“...돌아가면 안아주신다고 하셨으니까... 후... 후후...”


솔직히 돌아가기도 무서웠다.

아모메슈에게 질투하는 에네스타를 진정시키고자 했던 말이였을 뿐인데 그걸 옆에서 중얼중얼 반복하고 있는 에네스타를 보면 누구라도 그렇게 생각할  분명했다.

빼꼼, 하고 흥분으로 튀어나온 검은 꼬리가 엉덩이 위로 살랑거리는 것이 보였다. 망상이 격해져서 그런 건지 아닌지는 몰라도, 기괴한 움직임을 보여주고 있는 그 꼬리를 보고 있자니 등 뒤가 서늘했다.


그런 에네스타와 달리 비교적 얌전한 에오시스 자매들을 보면서, 나름 위안으로 삼고 있을 때였다.

장녀인 나타가 그런 에네스타에게 다가가는 것이 보였다.


‘...역시, 나타!’

내 가신 중에서도 나름 상식인 포지션을 차지하고 있는 나타라면, 그런 에네스타를 조금은 자중시켜주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했다.

에네스타도 조카 앞에서 부끄러운 꼴을 보인 것을 생각해서라도 조금은 진정할 테고. 그렇게 막연히 희망적인 관측을 하며 에네스타와 나타를 지켜보고 있던 내 귓가에 나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고모님, 고모님... 저희들도...”


“으. 으응...?”

“아, 안되는 건가요...”


“아니, 안 된다는 건... 무, 물론 주께도 부탁할 생각이었단다. 너희들은 내 귀여운 조카들이니...”


“역시 고모님...!”

일련의 교환을 나누고서, 돌아간 나타를 승리하고 돌아온 개선장군을 반기듯이 환영하며 꺅꺅거리는 모네와 에샤가 보였다.


그 반대로 나를 독점하기로 했던 것이 틀어져서 그런지 약간 시무룩해하는 에네스타도 보였다.


꺅꺅하면서 좋아라하는 에오시스 자매들의 등뒤로 살랑거리는 꼬리와, 반대로 기운을 잃고 축 늘어진 에네스타의 꼬리를 보면서.


희망적 관측이 실시간으로 박살나버린 나는, 내 손 위에 앉아있던 아모메슈의 머리를 문질렀다.

“잠, 깐...?! 베헤, 베헤노스님...?!”

“...미안하다. 조금만 이러고 있어도 되겠느냐?”


“아, 으... 가, 강하게만 누르지 말아주시면...”

“그래, 그건 안심하렴. 이정도면 괜찮느냐?”

“네, 네헤... 이거라면... 후아...”


어쩐지 작은 설치류를 쓰다듬는 기분이라서, 마음이 정화되는 기분이었다. 덕분에 뒷일은 잠시 잊을 수 있었다.

어차피  되는 건 내가 아니라 미래의 나였다.

그렇게 생각하니 한결 마음이 편해졌다.

“그럼 아모메슈. 혹시 여기에 볼거리가 많은 곳은 없느냐?”


“에, 엣... 자, 잠시만요... 죄, 죄송하지만 다시 한 번만...”

어쩐지 멍한 느낌으로 있었던 아모메슈가 그렇게 다시 물어왔다. 울쌍이 되어서 되묻는 아모메슈를 보면서, 그런 그녀의 머리를 괜찮다고 말하는 대신에 문지르며 다시 말했다.

“볼거리 말이다. 기왕이면 그런 곳이 좋을 것 같아서 말이다.”

“볼거리... 인가요?”


고개를 끄덕이자, 아모메슈가 화악하고 눈에 띄게 밝아진 얼굴로 한 곳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렇다면 저쪽의 길로...”

“저쪽 말이냐?”


아모메슈가 가리킨 방향을 보자, 다시 큰길로 이어지는 곳이 보였다. 대충 저쪽으로 보면 뭐가 나온다는 건가. 멀리까지 바라봐도 길밖에 보이지는 않았지만...

어차피 나보다는 아모메슈가   알고 있을게 뻔했다.


“에네스타!”

“부르셨습니까, 나의 주?”


돌아간다고 생각했는지 한껏 기대로 부푼 얼굴로 내 옆에 다가와 그렇게 말하는 에네스타를 보고서, 나는 태연하게 입을 열었다.


“생각보다 빨리 일이 끝났으니,  근처  더 보고 가자고. 저쪽에 볼게 많다는데, 어때?”

“바, 바로 돌아가지 않으신다는 말씀인가요, 나의 주.”

“엉.”

“......”

안 그래도 시무룩해하던 에네스타의 꼬리가 다리 사이로 처박히는 것을 보며, 입을 열었다.


“괜찮다면, 그렇게 하도록 하지.”


그리고, 하고.

그런 에네스타의 손을 붙잡아주었다.


“아...”


나를 올려다보며 얼굴을 붉히는 에네스타를 보며 미소 지었다.

“어차피 좀 늦게 돌아가도 시간은 많잖아, 에네스타.”

“그, 그렇군요...”

 말에, 다시 기운을 차렸는지 좌우로 흔들거리는 에네스타의 꼬리가 보였다.

“네, 확실히... 시간은 많았죠. 나의 주.”


“그래, 시간은 많지. 그러니까 이왕이니 더 구경이나 하다 가자고.”


그 말에 활짝 웃는 에네스타가 보였다.


“예, 나의 주. 그것이 당신의 명령이라면.”

환하게 웃으면서 그렇게 말하는 에네스타를 보며,  역시 마주 미소 지었다.


조지는  어차피 미래의 나다. 그렇게 속으로 되뇌면서.

“그럼  구경이나 할까.”

 말에 기쁜 듯, 내게 안겨오는 니아를 보며 일단 지금을 즐기기로 했다.




《포용하는 대지, 아르카네아 브란시아》



끼익, 하고 문이 열렸다.


뚜둑, 하고.


텅 비어있는 이지경의 침실을  물끄러미, 차가운 눈으로 바라보던 아르카네아의 손에 문고리가 부서졌다.


“...여기도 없다는 거지이?”

그만두라고 말해도, 억지로 계속 마력을 빨아들여서. 남을 기절시킨 주제에... 짐짝처럼 침대에 던져놓고서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도 않는 남자를 떠올리자, 아르카네아의 눈에 불이 들어왔다.

“또오... 나만 내버려뒀다, 이거지이...”

만약, 남자만. 이지경만 없어진 거라면 거기까진 이해할 마음이 아주 조금은 있었다.

정말로, 아주 조금뿐이지만, 사과한다면 용서해줄 마음이 있었다. 하지만, 정작 눈을 떴을 때 보인 것은 텅텅 비어있는 천공성이었다.

기절한 자신을 내팽개쳐놓고서,  같이 어딘가로 가버린 것이다.


자신만 빼놓고서.


그, 미치광이 엘프도. 그 엘프와 마찬가지로... 이지경과 살을 섞었던 세 엘프도. 어쩌면 그런 엘프들과 마찬가지로, 그 남자와 살을 섞는 사이일지도 모르는 아이들도 전부.

뿌득, 뿌드득...

아르카네아의 머리 위로, 사슴뿔과 같은 것이 나무처럼 자라났다. 그녀의 본신의 모습이,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마력을 제어하기 위해서. 형태를 이뤄가기 시작했다.


인간의 모습을 꾸며내고 있는 것이, 삐걱거리면서 어긋났다.


반룡화.


인간의 모습을 한 채로, 부분적이지만 본신과도 같은 힘을 낼 수 있는 형태로. 완전히 모습이 뒤바뀐 아르카네아가 손에 쥐고 있던 문고리를 내팽개쳤다.


퍼석, 하고.

바닥에 내동댕이쳐진 문고리를 바라봤다.


자신만 이곳에 내버려놓고서.


떠나가 버린 남자의 얼굴이 떠올랐다.


“ㅡㅡㅡ!!”


부러졌던 문고리로부터 새싹이 돋아났다.


새싹이 자라나 줄기가 되었다.

줄기가 다시 자라나 나무가 되었다.

쿠구구구...


아르카네아의 주위로 숲이 이뤄지기 시작했다. 벽이 갈라지고, 틈새로 줄기들이 뻗어 나왔다.


갈라지고, 그 사이를 줄기들이 메꾸고, 다시 무너지고, 잔해를 나무들이 들쳐 올리고. 무너진 파편으로부터 다시 새싹이 돋아났다.

순식간에 엉망이 된 주변을 싸늘하게 아르카네아가 내려다봤다.

자신답지 않았다.

짜증이 나서, 곧이곧대로 주변을 부서 버리는 것은 전혀 자신답지 않았다.

하지만 그렇게 자신답지 않은 짓을 벌였는데도 전혀 개운하지가 않았다.

속이 꽉, 하고 무언가가 틀어박힌 것처럼.


“ㅡ하아...”


꾸드드드드득...!

한숨을 내뱉은 아르카네아가 손을 휘젓자, 방금까지 있었던 일들이 다시 되돌아가기 시작했다. 갈라진 틈새로 뻗어 나왔던 줄기들이, 자라나던 나무들이, 새싹들이.


도로 원상태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마지막으로.


그녀의 손에 부서졌던 문고리도 다시 도로 원래 자리로 돌아가서, 멀쩡해지자. 아르카네아는 쿵, 하고. 문에 이마를 대며 중얼거렸다.


“내가 어째서...”


가슴이 괴로웠다.


욱신욱신하고.

숨을 쉬는 것조차, 버거울 만큼.

“병...?”


드래곤이 병에 걸린다는 소리를 들어본 적도, 그런 전례가 있는지도 모르겠지만. 그것이 아니라면 자신의 상태를 설명할 방법이 없었다.


하지만 그런 것이 아니란 것쯤은, 이미 알고 있었다.

끼익, 하고. 다시 문을 열고서. 텅 비어있는 침실을 바라보던 아르카네아는 걸음을 옮겼다.

또각, 또각.

느릿한 발걸음으로 침대까지 다가간 아르카네아는 그대로 엎어졌다.

자신의 침대가 아닌, 이지경의 침대 위에.

그의 냄새가 났다.

자신만 내버려두고 가버린 남자의 냄새가, 그 본인은 없었지만 침대에는 여전히 묻어 있었다.

처음 그를 봤을 때가 떠올랐다. 좀 특이하고, 웃긴 인간. 바보 같은 소리를 하던 그의 모습을 떠올렸다.


“하아... 스읍...”

다시 그를 봤을 때를 떠올렸다.


다시 모두가 모인 곳에서, 시녀의 옷을 걷어 올린 채로 보고 있다가 걸려서. 얼이 빠진 표정을 지었던 그의 모습을 떠올렸다.

“응...”

그리고 다시 지금.

자신의 가슴을 움켜쥐었던 남자를, 처음으로 자신의 나신을 혀로 훑었던 남자를 떠올렸다.

“하아...”

불과 하루정도가 더 지났을 뿐이었다. 잊을 리가 없었다. 그때 봤던 남자는, 과거에 봤던 그와 동일인이라고 여겨지지 않을 정도였으니까.

그것만으로도 호기심이 생겼는데... 결과는 그 이상이었다.


처음으로 쾌락이란 것을 알아버렸다.


자신이 여태껏 느끼지 못했던 것.

처음으로, 자신에게 ‘처음’이란 것을 알려줬다.

“...이렇게였나아.”

드레스를 풀어헤쳤다. 새하얀 가슴이 밖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으응...”

가슴을 움켜쥐었다. 그때, 그가 자신에게 했던 것처럼.


오늘, 그가 자신의 몸을 더듬었던 것이 아니라. 처음... 그가 자신에게 알려줬던 쾌락을 떠올리면서.

“아냐, 이게에...”

꾸욱, 꾸욱. 하고. 아무리 가슴을 만져도 그때와 같은 느낌은 들지 않았다. 오히려, 아침에 있었던 것만도 못했다.

그 남자가.


단지, 그저 식사만을 위해서 자신을 탐했을 때보다도 기분이 좋지 않았다.


“치사하잖아아...”


처음을 제외하고서. 아니, 어쩌면 그마저도. 자신을 뒷전으로 했던 남자가 아니면. 그때 느꼈던 그건 더 이상 느낄 수 없었다.

자신이 경험한, 자신에게 유일하게 처음이었던 쾌락은 오직 그만이  수 있었다.


그가 자신을 아무리 무시하더라도, 그가 아무리 자신을 욕보이더라도. 거짓말로, 같잖은 속임수로, 자신을 꽁꽁 옭아매도.

오직 그만이.


그가 아무런 감정을 담지 않고서, 그저 손을 움직일 뿐만으로, 그것만으로 휘둘릴 수밖에 없었다.


그러면...

이번 일도.

“하으...”


자신은 결국 용서할 수밖에 없게 되지 않는가.


너무한 소리였다. 오늘처럼, 그가 자신만 빼놓고서 어딘가로 가버려도. 그가 다른 곳에서 누구와 무엇을 하더라도, 그로 인해서 자신이 어떤 기분이 되더라도,


결국은 그를 용서해야지만, 그때와 같은 쾌락을  테니까.

“응, 그런건, 앗... 너무 치사하잖아아...”

하지만 거부할 수도 없었다.


아무리 스스로 가슴을 주무르더라도, 그가 그저 손을 가져댄 것만도 못했다. 아무리 그가 했던 것을 떠올리며 애무하더라도, 결국 상상 속에서 그가 자신을 건드리는 것이 더 기분이 좋게 느껴질 정도였다.

스스로 가슴을 주무르는 것보다.

그가, 허벅지를 혀로 훑는 것을 상상하는 것이, 그때를 떠올리는 것이 더 기분이 좋았다.

“흐읏♥”

천천히, 그가 몸을 타고 올라왔다.

허벅지부터 시작해서, 더듬듯이 애무해오며. 천천히.


그의 손이 드레스 밑으로 감겨들어왔다. 드레스를 들어올리고서.

조금은 까칠한 혀가, 자신의 가장 깊숙한 곳.  입구에 가장 가까운 근처에 입을 맞췄다.

“으우웃...♥♥”

가볍게 절정한 아르카네아가 숨을 헐떡이며, 밑을 바라봤다.

걷어올려진 드레스 밑으로, 새하얀 속옷이 드러났다. 스스로 가슴을 만진 것 때문이 아니라, 단지 그때 있었던 일을 떠올린 것만으로 젖어들고, 그것만으로 가볍게 절정해버려서, 이제와서는 속옷의 역활을 못하고 있는 자신의 속옷이 보였다.


그 위로 손을 올렸다.


그 다음은, 이랬었으니까.

“하아...♥”

조심스럽게, 속옷 위로 손을 가져가며. 아르카네아가 달콤한 숨을 내뱉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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