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99화 〉199화 (199/370)



〈 199화 〉199화

“위대하신 용들의 반려이자, 이 땅의 주인이시며 백마의 복종을 받으시는 마왕. 베헤노스님을 뵙습니다.”

꾸벅, 하고.

 얼굴에 금칠을 마구 하면서 고개를 숙여 보이는 작은 요정, 아모메슈가 보였다. 가슴을 피며 그렇게 말하는 아모메슈를 보니 아까 있었던 일들은 없었던 걸로 칠 생각인  같았다.


하긴 등장부터가 멋이라고는 없이, 도움을 받아 겨우 빠져나온 거였으니까 없었던 일로 치고는 싶을  같았다.


미리 연습이라도 한 것처럼 그렇게 말하는 아모메슈를 보고서 나도 그녀가 보였던 추태는 잊고서, 없었던 일로 쳐주기로 했다.


그보다...


“...앞의 둘은 둘째 치고, 백마의 복종은 또 뭐야?”


속닥속닥, 그런 아모메슈 몰래 에네스타에게 물어봤다.


그런 내게 다가온 에네스타가 마찬가지로 속닥속닥 내게 대답했다.


“저도 모릅니다.”


그럴 거면 왜  귀에 대고 그렇게 속닥인 거냐?

그런 눈으로 에네스타를 보자니, 괜히 얼굴을 붉히는 것만이 보일 뿐이었다.


넌 왜  니가 해놓고 부끄러워하는 거냐.


...물어볼 사람이 잘못됐었던 거다. 에네스타도 나랑 마찬가지로 천공성에 콕 박혀서 살았으니, 그렇게 생각하기로 하고.

이번에는 우리들 중에서도 대외적인 활동을 자주한 바록과 바쿠를 옆에 불러 다시 물어봤다.


자기의  십 배는 작은 아모메슈를 신기하다는 듯이 보고 있는 둘을 불러 에네스타에게 물었던 것을 다시 묻자 둘이 몸을 숙이고, 내 귀에 속닥속닥하고 대답해줬다.

너희까지 그럴 필요는 없었는데.


아니, 하더라도 한 명만 하면 되지 두 덩치가 쌍으로  귀에 대고 그러니까 소름이 다 끼치는데.

뭐, 내 팔뚝에 소름이 돋은 건 둘째 치고 다행히 에네스타랑 달리 둘은 백마가 어쩌고 하는 것이 뭔지 알고 있었다.

“내 밑에 있는 종족이 백이 넘었구나...”

웨어울프와 산악엘프, 코볼트, 페어리와 엔트, 그리고 슬라임 등. 대충 알고 있는 종족들 말고도 한참은 더 있다는  알고 있었지만 그게 백이 넘을 줄은 몰랐다.

백마의 복종이라니... 백마, 백마라.

“...음.”

“베헤노스님...?”


“아니, 아무것도 아니다.”


고개를 갸우뚱하며 나를 보는 아모메슈에게 그렇게 말했다. 정말 아무것도 아니었다. 별로 어감이 좋다거나 그런 생각은 안했다.


“그런데 안내인이 아모메슈, 너라니 놀랐구나.”

내 말에 페어리 퀸, 아모메슈가 반짝이는 작은 날개를 파르르 떨며 대답했다.


“저, 저로는 부족할... 까요?”


“아니, 부족하고 자시고 할 건 없지.”


그저 길안내를 하는 것에 무슨 조건이 필요한 것도 아니었다.

그저 의외였을 뿐이었다.


“한 가지 물어도 되겠느냐?”


“무엇을...?”


내 말에 고개를 갸우뚱하는 아모메슈를 보며 입을 열었다.


“이 일은 네가 원한 게냐? 너는... 내가 두렵지 않느냐?”

자연스럽게 타인에게 나올 수 있게 된 하대가, 마치 본래 그것이 내 말인 것처럼 어색하지 않게 느껴지게  것은 언제부터였을까.

아마도 루시아와 함께 있었을 무렵이었던 것 같았다.


요정향, 에네스타의 고향이었던 그곳에서 머물면서. 나를 루시아의 반려로... 자신들보다도 위의 존재로 여기는 엘프들과 함께 생활하면서, 자연스럽게 입에 붙어버린 것이다.


하지만 언제나 의아스러웠다.

대체 내가 뭐라고 이들이 이렇게나 나를 경외하는가, 하고.


알고 있었다.

나는 그들에게 있어서, 단지 루시아의 반려일 뿐이란 것도. 그것만으로 내가 그들에게 존중을, 존경을, 경외를 받을 수 있다는 것쯤은.

하지만 여전히 의아스러운 것은 마찬가지였다.


그것만으로. 단지 그것만으로도 충분한가.

백마의 복종을 받는 마왕.

단순히 호칭이 아닌, 진짜 왕이었다.

처음에는 에루나 한명이었다. 그뿐이었는데, 어느새 에네스타가, 에오시스 자매들이, 아이들이, 그리고... 이제는 무려 이십만이 넘는 이들이 나의 밑에 있었다.


나는 이들의 왕으로써, 주인으로써 합당한 자인가.


그런 의문이 아주 조금씩, 계속해서 쌓여갔다.

나를 주인이라 부르는 에루나에게 내가 과연 정말로 주인다운 자인지. 나를 주라고 부르는 에네스타에게, 에오시스 자매들에게, 바록, 바쿠, 슈슈, 마야, 니아... 로로.

그들에게, 내가 정말로 주인다운 면모를 보여주고 있는지, 혹은 보여줄 수 있는지.

내가 그녀들을 대하는 방식이, 그녀들이 원한 것인지. 내가 아이들을 대하는 방식이, 아이들이 정말로 바라던 형태의 것인지.

그리고, 단순히 크리샤의 변덕으로 내게 오게 된 거라고 쳐도, 과연 내가 그들의 복종을 받아 마땅한지.


끊임없이.


의문이 쌓여갔다.


그래서 그를 떨쳐내기 위해서라도, 나는 최대한 노력해왔다.

남이 보기엔 어색해보일지는 몰라도, 나름 위엄이라는 걸 갖춰보려고 노력해왔었다. 하지만, 그래봤자 나는 범인이었다.

남에게 정말로 복종 받아 마땅한 사람이 될 만한 위인이 아닌 것이다.


결국, 그저 폭력으로써 강제했을 뿐이었다.

내가 아닌, 나를 사랑해주는 그녀들을 뒤에 두고서. 그저 억지로 말이다.


그리고 그 폭력을. 웨어울프의 수장인 카울과 산악 엘프의 족장인 에클레나를 그 폭력으로 억누른 광경을 지켜봤던 아모메슈를 보고 있자니, 그렇게 묻고 싶었다.

반쯤 충동적으로 물은 그 질문에, 당혹스러워하는 아모메슈가 눈에 들어왔다.


“대답하기 어려우면 됐다. 아모메슈, 안내를 부탁...”

“아, 아뇨. 그런 것이 아니옵고...”

그런 내 말을 자르며, 아모메슈가 말을 하다가 히끕하고 입을 가리는 것이 보였다.


“가, 감히 말을 잘라 죄송하옵...”

“아니, 사과는 됐다. 그런 것이 아니고, 무엇이냐?”


그렇게 대답하자 휴, 하고 안도해하는 아모메슈가 보였다. 그리고  눈치를 보던 아모메슈가 말을 이었다.

“두렵다, 고 하지 않는다면 물론 거짓이겠지요. 베헤노스님께서... 얼마나 강하신지는 알고 있으니까요.”

“내가 강하다고?”

방금도 로로에게 얻어터지고 온 내가 강하다는 아모메슈의 말에 머리 위에 물음표가 뜨는 기분이었지만, 일단 계속 말하라고 턱짓하자 아모메슈가 우물쭈물 말했다.


“하지만...  일이 끝난 뒤에, 왕께서 하신 일을 들었사옵니다. 그리고, 당신께서 분노한 이유도 또한 알 수 있었습니다.”


내가 분노한 이유.

그렇게 중얼거리는 나를 보며, 아모메슈가 나를 올려다봤다.

“그리고 당신께서 분노하신 이유를 알았을 때, 다른 이들은 어쩐지 모르겠지만... 저는 더 이상 당신을 두려워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이래봬도 저는 페어리들의 여왕이니까요, 하고 헤실거리며 웃으며. 아모메슈가 말했다.


“왕이, 왕으로써 자신의 백성이 다친 것을 구휼하고, 고위의 마법을 써가며 그들의 상처를 보듬고 치유하며, 그리고 그들이 흘린 피에 분노하여, 죄를 지은 자들을 징치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니까요. 저는, 그것이 마냥 두려워만 해야 하는 일이 아닌 것을 알고 있습니다.”


거기에, 하고. 아모메슈가 말했다.

“카울도, 에클레나도... 결국 용서하지 않으셨습니까?”

띠링, 하고.

그런 아모메슈의 말이 끝맺어졌을 때. 귓가에 알림음이 들려왔다.

[플레이어 ‘이지경’님을 향한 외경을 확인했습니다. 당신이 행한 업적에, 페어리  ‘아모메슈’가 지극한 존경을 표합니다.]

[특성 ‘군주’의 효과가 미약하게 상승합니다.]

[황금률! 선에는 선으로, 악에는 악으로... 행운이 상승합니다.]

꽤나 오랜만에 들어보는, 황금률의 알림까지도.

“왕이시여. 제가 감히 당신을 두려워하는 것은... 당신이 두렵기 때문이 아닙니다.”

작은 요정이, 나 같은 것과는 달리. 정말로 무리의 수장인, 요정들의 여왕. 페어리 퀸인 아모메슈가 날개를 작게 살랑거렸다.

“고귀하신 당신께, 제가 실수를 저지르는 일이 있지 않을까. 그것으로 당신의 일을 방해하는 일이 생기지 않을까. 그저 그것을 두려할 뿐입니다.”

“그래. 그러냐.”

말을 마친 아모메슈를 바라봤다.

그녀가 생각하는 것이 아니란 것은 그 누구보다도 내가 가장 잘 알고 있었다. 그때 내가 분노했던 것은 그녀가 생각하는 것처럼 누군가가 다쳤다는 것으로 분노하는 고귀한 것도, 죄를 지은 자를 벌한다는 정의로운 일도 아니었다.

그저, 과거의 내가 갖고 있던 분노의 투영일 뿐이었다.


하지만.

“그렇다면 다행이구나.”

아모메슈의 눈을 바라봤다. 에루나처럼, 에네스타처럼. 그리고 아이들처럼. 나를 신뢰하는 눈으로 지켜보는 페어리의 여왕의 눈을.

그런 이의 앞에서, 그것을 부정하고 싶지 않았다. 그녀의 신뢰를 부정하고, 깨트리고, 거절하고 싶지 않았다.

아모메슈에게 손을 뻗었다.


“에...”

나를 올려다보는 아모메슈에게 말했다.


“안내해줘야지. 직접 날아가는 것보다는 이쪽이 편하지 않겠느냐.”


“제가, 감히...”


“이쪽이 빠르기도 하니까 사양 말고.”


황송하다는 얼굴을 하고 있는 아모메슈에게 그렇게 말하자, 그럼... 하고  손에 내려앉는 아모메슈가 보였다.


정말로 올라탄 건지, 보고 있지 않았다면 믿기지 않을 만큼 가벼웠다.

하지만 그런 그녀가 내게 보이는 신뢰는, 그런 무게가 잊어질 만큼 묵직하게 느껴졌다.


“이 무슨 부러운... 아니, 괘씸한... 나의 주, 아무리 안내인이라 할지라도 직접 손에 드시는 건...”

“넌 나중에라도 업어주던, 안아주던 할테니 진정해라. 에네스타.”

“주...?! 갑자기 그런 말씀은... 그, 그렇지만 안아주신다면야...”


아모메슈를 보며 과민반응하는 에네스타를 진정시키고서 말했다.

“그럼, 아모메슈. 기술자... 건축과 관련된 일을 잘하는 자들이 있는 곳으로 가고 싶은데.”

“건축이라면... 코볼트와 노움이겠네요.”


“노움이랑 코볼트라... 그럼 그들을 찾아가면 되겠구나. 안내해주겠나, 아모메슈.”

“네, 네...! 그럼, 우선 저쪽의 큰길을 따라서...”

그런 내 말에 기합을 가득 넣고 안내를 하기 시작한 아모메슈의 말을 따라 걸음을 옮겼다.



“...굉장하네.”

마지막으로 천공성 밖에 나온 것이 불과 몇  전이었는데 그 사이에 너무나도 뒤바뀐 광경에 나도 모르게 감탄이 새어나왔다.

아모메슈의 말을 따라 걸었을 뿐인데, 큰길을 지나더니 순식간에 들어선 광장을 보자니 절로 그런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한창 개발 중이던 천공섬 때와는 달리 이제 완전히 개발되어 영지화한 덕분인지는 몰라도 제법 그럴 듯한 느낌의 도시가 되어 있었다.


가끔 창밖으로 본 적은 있긴 했지만 역시 이렇게 가까이서 직접 보니 감회가 달랐다.


하지만 그런 것보다도.


“...굉장하네.”


광장을 가득 메운 인파가, 하나 둘씩 나를 보더니 무릎을 굽히는 광경이 너무 굉장했다. 그저 나들이를 나온 듯한 이도 보였고, 장을 보러 나온 것 같은 이들도 보였다. 그런 이들이, 나를 보더니 무릎을 굽혔다.


그렇게 시작한 것이, 마치 거대한 파도가 치는 것처럼 일렁이는가 싶더니. 어느새 그저 눈대중으로만 살펴도, 벌써 수천 명이 넘는 이들이  앞에서 무릎을 굽히고 있었다.

장관이었다.


이런걸 언젠가 봤던 적이 있던 것 같은데...

하지만 그때는 불과 수백 명에 불과한 엘프들이였다.

그것도 그들이 향하던 경외의 주인은 내가 아닌, 내 옆에 있던 루시아를 향한 것이었다. 그 다음, 크리샤를 따라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면서도, 다양한 종족들이, 많은 이들이 내게 무릎을 굽혔지만, 그것 역시 크리샤를 향한 존경이 이유였다.

그랬지만 지금은 무려 수천이 넘는... 종족도 다양한 이들이 내게 무릎을 꿇고 있었다.

나를 왕으로 여기는 이들이.

아모메슈와 마찬가지로.

나를 왕으로써 인정하는 이들이.

“이, 이래서야 더 들어갈 수는 없겠네요. 죄송합니다...”


본의 아니게 인파로 인해 막힌 길을 보며 그렇게 말하는 아모메슈를 보고서 고개를 저었다.


“사과는 됐다. 여기서도... 목적은 이룰  있을  같으니까.”

찾으려 했던 코볼트와 노움도 몇 십이 넘게 끼여 있는 인파를 보고서, 그렇게 말한 내가 바록과 바쿠에게 눈짓했다.

쿵, 하고.


근력만큼은 투기를 두른 에네스타만큼이나 강력한 둘이 발을 구르자, 땅이 울렸다.


“다들 고개를 들어라.”


나지막히, 땅의 진동이 그칠 무렵 입을 열자. 그런 내 말에 하나같이 고개를 들어올리는 이들을 보며 말했다.

“ㅡ숙식 제공, 사대보험 적용. 일주일짜리 단기 알바할 코볼트와 노움은 거수하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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