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98화 〉198화 (198/370)



〈 198화 〉198화

“그, 그럼 나의 주! 저에게... 의상을 맡겨주실 수 있겠습니까?”


“엉?”


“항상 에루나님께서 주의 옷을 준비하지 않았습니까? 하지만, 지금은 에루나님도 안계시니까...”


우물쭈물, 말을 잇던 에네스타가 내 눈치를 봤다.

아, 그거 말하는 건가. 저번 외출 때도, 처음으로 영지에 나가보는 것이니 뭐니하면서 나름대로 꾸며서 나갔던 것이 떠올랐다.

뭐, 꾸몄다고 해도  건 없었다. 평소에도 입던 옷에 장신구 몇 개를  걸친 정도였으니 말이다.


“그럼 부탁할까.”

“...네! 맡겨주십시오.”


아무래도 좋은 일이라서, 그렇게 대답하자 화색이 되어 대답하는 에네스타를 보고서.

별 것도 아닌데 다 좋아한다고 생각하면서 마주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그녀들에게 해줄  있는거라고 해봤자, 별로 없고. 이런 걸로라도 기뻐해주면 얼마든지 해줄 수 있었다.

그리고 잠시 뒤, 나는 내 섣부른 결정을 후회했다.


세계가 달랐다.


세계가 다르다는 건, 곧 문화가 다르다는 의미였다.


이미 차고 넘치게 알고 있던 사실이었다. 특히나, 이 세계에서의 패션이 어떠한지도 이미 알고 있었다.

내 옷장을 가득 채우고 있는, 루시아로부터 선물 받은 수많은 옷들이 바로 그 증거였다. 매일 보면서도  말이 안 나오게 만드는 옷들 말이다.


놀랍게도 그 옷이 이 세계에선 나름 멋지고 무척이나 귀한 옷이라는 거였다. 입고 싶어도 입을  없는, 패션계의 선두주자라고 해야 하나.

루시아가 직접 구해다준 것이니만큼, 아마  세계를 통틀어서도 귀하기로 따지자면, 가히 최고를 달리는 그런 옷이라는 거였다.


그 말은... 이세계의 옷들은 대부분이 그렇다고 봐도 좋다는 거였다.

옷만큼이나 유행에 민감한 것도 없었으니 말이다.

에루나는 내 취향이라던가를 파악하고 있었으니, 그런 것보단  취향을 우선해주었지만. 에네스타가 그런 걸 알리가 없었다.


그러니까, 이게 대체 무슨 소리냐면...

에네스타에게 내 옷을 맡기면 안됐다. 그런 이야기였다.


“...에네스타.”

“네, 나의 주!”

눈을 반짝이며, 한껏 자랑스러운 얼굴로 대답하는 에네스타를 보고서. 나는 차마 말을 잇지 못했다.


그저 슬픈 눈으로 그런 에네스타를 보다가 한숨을 내쉬었다.

“옷, 고맙다. 마음에... 정말로, 마음에 쏙 드네... 응.”


휘황찬란한 금실로, 이런저런 무늬들이 수놓아진 외투 밑으로 마찬가지로 과하다 싶을 정도로 장식이 주렁주렁 달린 옷을 입은 내가 그렇게 말했다.

다행히 유행은 유행일 뿐, 모두가 따라하는 것은 아닌 것처럼.


루시아가 내게 주었던... 이게 바지인지 아니면 내복인지 모를 정도로 몸에 착 달라붙어서, 고간이 강조되는 기묘한 옷 같은 건 아니라는 점이 유일한 구원이었다.


아니, 에네스타는 이래보여도 수백살이 넘는 엘프였다. 어쩌면 단순히 최신 유행을 따라가지 못한 걸지도 몰랐다.

아무튼, 어떤 이유던간에 거울에 비쳐 보이는  모습은 대체 어디의 황제님이냐고 묻고 싶을 정도로 휘황찬란해서 문제였다.


너무하지 않냐고 이거.


이리저리 몸을 돌려보면서, 거울을 봤다.

아무리 봐도 이건 너무하지 않나 싶었다.

문제는 나만 그렇게 생각한다는 거였다.

주위에 있는 에오시스 자매들도. 바록이나 바쿠도. 니아, 마야... 심지어 로로마저도.


나를, 내가 입고 있는 옷을 무척이나 멋진 것을 보는 듯한 눈으로 보고 있었다.

이세계의 패션 감각은, 대륙을 넘어서서도 괴랄한 것 마찬가지인 모양이었다. 고립된 낙스 출신인 녀석들도 지금 내가 입고 있는 옷을 마음에 들어 하는 걸 보니 말이다.


정녕 내 편은 없다는 것인가.

절망스러운 일이었다.

“마음에 드셨다니, 다행입니다. 나의 주!”

하지만 무척이나 기뻐하고 있는 에네스타에게 뭐라고  수도 없었다. 그도 그럴 수밖에, 이쪽의 기준으로 봐서는 이상한  오히려 내 쪽인 거였다.


에네스타도, 자신 나름대로 무척이나 멋진 옷이라고 생각해서 가져왔을 뿐이고, 실제로  세계에서는 그게 무척이나 멋진 옷일 뿐이었다.


내가 보기엔, 무슨 황제 코스프레 의상, 혹은 연극 의상 같은 걸로만 보였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내 기준인 것이다.


“...뭐, 그건 됐고.”

이제 와서 돌이킬  없는 것을 마냥 물고 늘어질 순 없었다.


내 옷보다도 더 중요한 문제도 있었고.

“너흰 다  그러냐?”

그런  말에 고개를 갸우뚱하는 에네스타가 보였다. 정말로 몰라서 그러는가 싶었지만, 한참을 그렇게 에네스타를 주시해도 전혀 알아차리지 못해서. 한숨을 내뱉으며 말했다.

“너희들  말이야. 어디 전쟁이라도 나가?”

갑옷으로 무장한 에네스타와 바록과 바쿠. 마찬가지로 크리샤의 온천에 쳐들어갔을 때 입었던, 엘프들의 무장이라고 해야 하나... 속이 비치는 흰 옷을 입고 있는 에오시스 자매들이 보였기 때문이었다.

니아나 마야, 그리고 로로는 평소와 마찬가지의 시녀차림이었지만. 그녀들 역시 하나같이 무장하고 있는 것이 보였다.


니아의 주먹에 감싸인 너클이라던가, 마야의 허리춤에 멘 단검, 로로는... 어제 맞아보니 잘 알았지만 로로는 맨몸이 흉기였으니까 넘어가기로 했다.

아무튼, 완전히 무장하고 있는 것을 보니 물어볼 수밖에 없었다.


잠깐 외출... 내 영지를 잠시 들르는 것에 불과한 일을 하는 것뿐인데 너무 과한 차림이니 말이다.

“최소한의 방비입니다. 지금은... 에루나님도 없으니 저희들이 주를 지켜드려야 하니까요.”


아무리 그래도 너무 과한 것 같은데.


그런 생각이 들었지만, 계속 이렇게 뜸만 들이다가는 날이 넘어갈 것 같았다.


다소 자질구레한 것들은 넘어가기로 하고서. 나는 마지막으로 거울을 살펴봤다.

내가 보기엔, 다소... 아니, 좀 많이 부담스럽지만 다들 괜찮다고 하니 그 말을 굳게 믿기로 했다. 어차피 믿지 않는다고 달라질 것도 없었다.

결국 입어야한다는 건 변하지 않을 테니까.


괜찮았다.


얼굴에 철판 좀 까는 거야 이젠 익숙했다.

“그럼 갔다 올까.”


그런데...

“어디로 가면 되냐?”


대체 어디로 가야할지 전혀 몰랐다. 당초 목적으로 하는, 연병장을 수리할 기술자들을 구하려면 어디로 가야하는지 내가 알턱이 없었다.

그야,  영지기는 한데  좋게 봐주더라도 전혀 관여한게 없다시피 하니 말이다.


혹시나 싶어서 바록과 바쿠에게 물어봤지만 그 둘도 영지의 자세한 사항까지는 모르는 모양이었다.

그렇다면 슈슈... 혹은, 아리스인가.

 그래도 일에 치여서 죽어가는 슈슈에게 굳이 찾아가서 일을 더해주기는  그랬다.

그렇다고 아리스라는 선택지도 조금 그렇고.

“...안내인을 부를까요?”


“응?”


고민하던 내게 에네스타가 그렇게 말했다.


“안내인이라니. 레무르?”

“아뇨. 그 드워프는 크리샤네아님의 영지로, 본래 자신의 마을로 돌아갔으니까요. 거기에 그가 있다면 굳이 사람을 찾아나설 필요 없이 그에게 부탁하면 그만이고..,”


“그것도 그렇네.”

어지간한 건축물도 하루면 뚝딱하는 드워프가 있었다면, 드워프들에게 수리를 부탁하면 그만인 일이긴 했다.

여태 내 길안내를 도와줬던 레무르를 떠올리니 괜히 아쉬워졌다. 영지물하면 드워프, 판타지하면 드워프라는 건 여러 가지로 클리셰라면 클리셰인데...

그렇다고 크리샤에게 몇  정도 달라고  수도 없었다. 크리샤라면, 내가 부탁한다면 들어주겠지만 사람을 마치 물건처럼 주고받는다는  조금 그랬다.


아무튼 아쉬운 마음은 접기로 하고서, 에네스타에게 물었다.

“그럼 누구?”

“제가 잠들기 전에 에루나님께서 자신이 없는 동안 영지에 들를 일이 있으면 사용하라고 주신 물건이 있습니다.”


에루나는 곁에 없어도 에루에몽이었다. 아니 그보다 에네스타가 잠들기 전부터 준비해뒀다니 대체 에루나 너는... 적어도 몇  전부터 준비를 해뒀다는 건데...

에루나에게 크리샤를 부탁한  어디까지나 나였으니 그걸 예상하고서 준비했다고 치면 어떻게 유능하다는 말로는 표현할 수 없을 지경이었다.


성격만 그 모양이 아니라면 정말 누가 보더라도 완벽한 시녀 그 자체인데... 아니... 최근 들어서는 에루나가 꼭 성격이 나쁜 것도 아니라고 생각이 들기도 하고...

“아니, 그건 너무 갔나.”

아무리 그래도 그 성격은 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어디... 이쯤에, 넣어뒀는데...”

그렇게 말하며 품을 뒤적거리던 에네스타가, 곧 작은 잎사귀를 꺼내들었다.

“그건...”


그냥 풀떼기 아니냐고 그렇게 물으려 할 때, 에네스타가 예의 잎사귀를 입에 물었다.


그러고서 마치 풀피리를  듯이, 소리를 냈다.


삐이익, 하고 가느다랗고 청명한 소리가 울려퍼졌다.

그리고, 아무 일도 없었다.

“뭐야 그거.”

“...글쎄요. 저도 이렇게 하기만 하면 도와줄 자가 올 거라고 해서...”

“누가 오는지도 모르는 거야?”


“네, 사용하는 것도 이번이 처음이니까요.”

그런걸 그렇게 막 써도 되는 건가 모르겠네. 누가 올지도 모르는데 함부로 써도 되는 건가 싶었다.

그렇게 생각하며, 에네스타가 손에 쥐고 있는 잎사귀를 가만히 바라봤다.

“엉?”

“이, 이게 대체 왜...”


프스슷, 하고 흩어지기 시작하는 잎사귀가 보였다. 당연히 멀쩡했던 잎사귀가 흩어지는 것을 본 에네스타가 당황해할 때. 그런 에네스타의  위로, 사라져가는 잎사귀만한 크기의, 딱 그 정도의 크기만큼의 작은 틈새가 벌어지는 것이 보였다.

공간전이.


아니, 그것과는 조금 다른...


“소환인가...”


대상을 불러오는 마법의 한 종류를 떠올렸다. 에루나처럼 나라는 존재가 아닌, 잎사귀를 매개체로 한 소환 말이다. 잎사귀의 정체가 마법이라고는  젬병인 에네스타도 사용할 수 있는 일회성 마도구의 한 종류란  내가 알아차리는 동안,


뿅하고 작은 소녀가 그런 틈새로 얼굴을 내밀었다.


“넌...”

어디서 봤던 얼굴이라고 해야 하나, 굳이 얼굴이 아니더라도 알아보기 쉬운 요소로 가득한 소녀가 얼굴을 내밀고서, 주변을 둘러보다가 나를 발견하고는 화들짝 놀라면서 입을 열었다.

“부, 부르심을 받고 지금 막 도착했... 끄으으응...!”


그러고서 아직 넘어오지 못한 몸을 꺼내려는데, 뭔가에 걸렸는지 끙끙대는 소녀를 보고서, 손 잡아주었다.

잡아줬다기보다는 집어줬다고 하는 게 맞는 것 같지만. 검지와 엄지로 조심스레 손을 잡아 당겨주자, 무사히 빠져나온 소녀가 날개를 흔들었다.

걸린 게 날개부분이었나. 하긴 거의 몸만한 날개를 달고 있으니 걸릴 만도 했다.


그나저나... 안내인이라는  설마 이 아이일 줄은 몰랐는데.


“가, 감사합니다. 베헤노스님...”

날개가 무사한 것을 확인했는지 안도의 한숨을 내뱉으면서, 그렇게 말하는 소녀를. 반짝반짝 빛나는 작은 날개를 등에 달고 있는 페어리를 보며 내가 말했다.

“그래. 그나저나 오랜만이구나, 아모메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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