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6화 〉196화
어째서, 에루나가 나에게 수정구를 보냈는지는 몰랐다.
에루나라면 무슨 이유가 있었겠지만, 그런걸 내가 이해할 수 있는가 없는가는 별개의 문제였다.
다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감사합니다, 에루나 선생님...”
그저 무한한 감사만이, 에루나를 향한 감사의 마음만이 있었다는 것이었다.
처음에 아샤나, 아냐의 알몸이 수정구에 비쳐보였을 때는 조금 기겁하기는 했었지만. 그 뒤를 이어 카르네라던가... 루시아나, 크리샤라던가... 형편상 궁금해도, 차마 알 수 없었던 근황이라던가, 모습을 볼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마도, 크리샤의 영지에 위치한 온천... 그러니까, 처음 크리샤의 영지를 찾아갔을 때 봤던 그 온천에서, 나란히 목욕 중인 드래곤들의 모습이 보였을 때는, 대체 이게 웬건가 싶었다.
뭐, 그건 그거고.
중요한 건 가슴이었다.
가슴이 있었다.
알몸의, 한 치도 가려진 것이 없는, 생판 맨 살의 가슴이 말이다.
수정구에 비친 가슴, 제각기 다른 가슴, 제각기 다른 미인들의 가슴.
그것만으로도 에루나에 대한 감사의 마음이, 하늘을 뚫을 정도로 솟아나는 느낌이었다.
지금은, 무슨 이유에서인지 마력을 불어넣어도 반응하지 않았지만...
상관없었다. 이미 머릿속에 저장해둔 이미지만 수백, 수천을 넘어섰다. 당분간은 이걸로만 자가발전이 가능한 수준이었다.
“뭐, 아르카나, 에네스타... 에오시스가 있으니 꿈도 못 꿀 일이지만...”
자가발전을 돌린 지가 대체 얼마나 됐더라.
처음에는 에루나가 언제, 어디서나 튀어나오는 덕분에 못 돌렸던 거였는데, 지금은 돌릴 새도 없이 미리 뽑혀나가서 돌릴 수가 없었다.
한 방울도 아까운 지금, 내가 멋대로 자가발전을 돌리는 행위가 용서될 리가 없었다.
슬픈 현실이었다.
그건, 그거 나름대로의 풍치나 맛이 있는 건데 말이다.
“그건 됐고...”
자위를 못해서 아쉽다니, 누군가에겐 사치로 들릴 소리였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몸을 일으켰다.
에루나가 무슨 이유로, 수정구를 내게 보냈는지. 또 수정구에서 어째서 한창 온천욕을 즐기고 있는, 아르카를 제외한 모든 드래곤들의 모습이 비쳐보였는지는 몰라도.
덕분에, 내가 얻은 것들은 있었다.
“아샤는 목덜미, 아냐는 옆구리... 카르네는...”
앞으로 접하게 될, 드래곤들의 약점을 미리 알아낸 것이었다. 어차피, 결국에는 알게 됬겠지만. 미리 알게 된 것과, 그때 가서 알게 된 것은 다른 법이었다.
미리 공략지를 알게 된 이상, 생각할 수 있는 것도 다양하고 말이다.
“아샤나, 아냐가 문제기는 한데...”
아르카의 다음, 그러니까... 다음으로 내가 향할 곳은 아샤와 아냐의 영지인 아드리아였다. 말이 영지지 대부분이 바다로 이루어진 곳인 아샤와 아냐의 영지 말이다.
뭐, 영지의 대부분이 바다인건 딱히 상관없었다. 어찌됐건 내가 생활하는 곳은, 그저 그 영지 위에 떠있을 뿐인 여기, 천공성이니 말이다.
정말로 문제인 것은...
아샤나 아냐의 외형, 정확히는 생김새였다.
아샤도, 아냐도. 아무리 넓은 마음으로 이해하려고 해도, 도저히 내 스트라이크 존에 들어가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아샤나 아냐나, 겉보기의 외형만으로 치면... 이제 겨우 초등학교나 졸업했을 법한 모습인 것이다.
초등학생이다. 중학생도 아니고, 초등학생인 거다.
로로만 해도, 지금은 중학생 정도의 외모를 지니고 있는데, 무려 초등학생이었다.
장난이 아니었다.
아무리 나라도, 그건 역시 무리였다.
겉으로만 그럴 뿐, 사실은 서른 살은 거뜬히 넘은 걸 알고 있더라도 말이다.
“바뀌긴 해야 하는데 말이지...”
세계가 달랐다. 상식이 달랐다.
듣기로는 이 세계에서는, 아직 스무 살은커녕, 2차 성징이 채 드러나기도 전인 나이에 혼인을 맺고, 자식을 갖는 일도 흔하다는 모양이었다.
내가 살아왔던 세계와는 아주 딴판인 세계인 것이다.
뭐, 그런 거야 진작 알고는 있었던 거지만 말이다. 아무리 인식이 다르다는 걸, 상식 자체가 다르다는 것을, 여기서는 당연하다고 생각되는 걸 알고 있다고 하더라도, 거부감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뭐, 어떻게든 되겠지.”
어차피 아직 한 달은 더 뒤에 있을 일이었다. 그리 먼 미래의 일은 아니었지만, 당장 있을 일도 아니었다.
걱정은 나중에, 지금은 지금의 일에.
그렇게 하기로 한 나는 수정구를 품에 넣었다.
지금은 먹통이 된 건지, 아무것도 보이지 않지만 나중에라도 다시 뭔가 비치질도 모르는 법이었다. 귀한 물건이니만큼, 중요하게 보관해야하는 법. 그렇게 따지면 내 품속이 가장 안전한 장소였다.
그렇게 품속에 수정구를 넣었을 때였다.
“주인님~!”
벌컥, 문을 열고서 니아가 들이닥쳤다.
“어이쿠.”
깜짝 놀랐지만, 그거랑 별개로 내 몸은 갑자기 들이닥친 니아를 안아들었다.
반사 신경이 늘은 덕분이었다. 이러라고 수련을 한 건 아니었는데, 좋은 게 좋은 거였다.
내 품에 안겨서, 마구 뺨을 비벼대는 니아를 보며 말했다.
“영지 순찰은 벌써 다녀온 거야?”
“네~ 재밌었어요!”
산책을 마치고 난 강아지처럼, 헤실거리며 대답하는 니아를 보자. 방금 본 것 때문에 들끓었던 성욕이 순식간에 가라앉는 기분이었다.
정화되는 기분이라고 해야 하나, 뭐 그랬다.
“재밌었다니 다행이네... 바록이랑 바쿠는?”
니아가 일을 마치고 돌아왔다는 건, 바록과 바쿠도 돌아왔다는 건데, 보이지 않는 두 덩치를 보고서 니아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그렇게 묻자, 니아가 헤실거리며 대답했다.
“에네스타랑 대련? 인가 뭔가 한다고 바로 연병장으로 갔어요!”
“그래?”
연병장이라... 그러고 보니 최근에 대련을 하거나 한적이 없었던 것 같았다. 루시아 때도 그랬지만, 크리샤와 관계를 맺기 시작한 후부터는 몸을 쓴다고 한다치면 거진 섹스뿐이라 그랬다.
지금은, 아직 아르카와 그렇고 그런 짓을 하는 사이도 아니고... 당장은 아르카도 방에서 쉬고 있으니 할 일도 없었다.
“모처럼인데, 나도 가볼까.”
마지막으로 대련한 시점과 지금의 나는, 능력치도 꽤나 올랐고... 확인해봐서 나쁠 것도 없었다.
“주인님도 가시는 거에요?”
“응, 니아도 갈래?”
“주인님이 간다면, 저도 좋아요!”
그렇게 대답하며, 내게 안겨오는 니아를 안아들고서. 말했다.
“그럼 가볼까.”
콰직!
사람의 몸에서 나는 소리라고 하기엔 소름끼치는 소리와 함께, 땅에 처박히는 바록이 보였다. 키가 3미터가 넘는 바록이 땅에 처박히는 소리였다.
곧 이어서, 쾅하고 바쿠가 내 옆을 지나가며 벽에 꽂히는 것이 보였다.
에네스타가 아니였다.
로로였다.
바록과 바쿠를 땅에, 그리고 벽에 내다꽂은 주인공인 로로가 보였다.
스물스물하고, 내가 소환하는 그림자의 손과 비슷하면서도, 다른 불길한 촉수들로 이루어진 검고, 질척한 무언가에 감싸인 로로가 연병장에 선채로 숨을 고르고 있었다.
“...괜찮냐?”
“쿨럭...!”
내 옆에, 벽에 냅다 꽂혀있는 바쿠를 보며 그렇게 묻자 피를 토하는 바쿠가 보였다.
안 괜찮아보였다...
“...로로야, 훈련치고는 너무 심한 거 아니니?”
조금쯤은 힘 조절해도 좋을 텐데, 그런 생각을 하면서 로로에게 말을 건네자. 그제서야 내가 온 것을 눈치 챘는지, 나를 보고서 눈을 동그랗게 뜨는 로로가 보였다.
그리고 그런 나의 등장에 놀란 것은 로로만이 아니었는지, 에네스타가 다가왔다.
“여기는 어쩐 일로... 아르카네아님은...?”
“조금 심한 짓을 해서, 방에서 쉰대.”
“아...”
내 말에 대충 어떤 일이 있었는지 깨달았는지, 홍조를 띄우며 고개를 끄덕이는 에네스타가 보였다.
멀쩡할 때는 참 귀여운데, 안타까웠다. 에네스타가 원해서 그런 몸이 된게 아니니까 뭐라고 할 수는 없지만 말이다.
나는 기절한 바록과 바쿠를 치료하기 시작 에오시스 자매들을 보고서, 에네스타에게 말했다.
“한창 대련중인가본데... 로로는 어때?”
“성장이 무척이나 빠릅니다. 벌써, 바록과 바쿠를 상대로도... 보다시피.”
“응, 보니까 알겠더라.”
바록과 바쿠가 약한 것은 아니었다. 능력치만으로 따지자면, 나랑 엇비슷한 정도. 내가 봤던 검주... 그 늙은 검주도 바록과 바쿠, 둘이라면 충분히 상대하고도 남는 정도였다.
그런 둘을 제압할 정도라면, 로로는 적어도 검주 이상이라고 보면 좋은 수준이었다.
검을 들지 않고도, 검주... 그 이상의 실력을 갖게 된 셈이었다. 애초에, 로로는 날 때부터 투기를 다룰 수 있는 종족인 낙시안이었지만 말이다.
애당초 로로가, 능력치를 제외한다면 나보다 훨씬 천재적인 재능을 가지고 있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이건 예상 외였다.
“너랑 비교하면 어때?”
“...아직은 제가 이기고 있지만, 지금과 같은 속도라면 금방 역전당할지도 모르겠네요.”
쓴웃음을 지으며, 그렇게 대답하는 에네스타를 보자 조금 흥미가 생겼다.
“나랑 비교하면?”
로로와 실질적으로 대련을 해본 적은 없었다. 단지, 전투 센스라던가. 보유하고 있는 기능이라던가를 생각해보면 나보다는 더 로로가 재능이 많은 것은 알고 있었다.
다만, 나는 재능이라는 이름으로 재기에는 지나치게 사기적인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바로 기능이었다.
내가 보는 정보창, 거기에서 보이는 기능은 본래, 무척이나 수련을 쌓고, 비로서 몸에 새겨지는 능력이었다.
하지만 나는 책을 읽거나, 조금 움직이는 정도로 제멋대로 습득했다.
무언가를 익히는 속도, 무언가를 깨닫는 속도로 따지자면 나도 일단 천재의 범주에 드는 것이었다.
내가 이걸 굳이 드러낸 적은 없었지만, 나와 직접 대련한 적이 몇 번이나 있는 에네스타는 어느정도 알고 있는 바가 있을게 분명했다.
그런 내 질문에, 잠깐인가 생각하던 에네스타가 입을 열었다.
“아마도... 로로가 우세하지 않을까요.”
“그래...?”
에네스타의 말에 더욱 궁금해졌다.
호승심이라던가, 그런 것이 있는 건 아니었다. 그저 내 몸이나 제대로 간수하면 좋다고 생각했고, 그럴 목적으로 했던 수련이었다.
하지만 그래도, 딸처럼 여기던 로로보다 못하다는 소리를 들으니 썩 좋은 기분은 아니었다.
“엿차.”
안고 있던 니아를 내려놓고서, 몸을 풀었다.
그리고 이쪽을 가만히 바라보는 로로에게 말했다.
“나랑도 대련해도 괜찮지? 로로.”
그런 내 말에, 가만히 고개를 끄덕이는 로로를 보고서.
스르르륵!
허공에 손을 뻗었다. 아가리를 벌리듯, 찢겨지는 공간 사이로. 휘황찬란한 빛을 뿜어내는 검을 뽑아냈다.
광휘.
루시아가 내게 선물한, 자신의 이빨로, 직접 벼려낸 검.
손아귀에 쥐어지는, 이세계에서도 순위를 다툴 검을 손에 쥐었다.
기능을 활성화시켰다.
검리, 라이어스 제국 검술, 시오니스 검술, 투기, 광폭화.
차례대로 활성화되는 기능에, 근육이, 심장이, 피가 들끓었다. 그저 느낌만이 아니였다. 능력치들이 대폭으로 상승하는 기분이 들었다.
그런 나를 보고서, 로로 역시 전투를 준비하는 것이 보였다.
다리부터 시작해서, 사방으로 뻗쳐나가는 검고 불길한 촉수들이 들끓었다.
“...정보창.”
「정보창」
「이름 : 로로」
「칭호 : 부덕의 아이, 최초의 릴리스, 마왕의 아이」
「성별 : 여성」
「나이 : 12세」
「직업 : 부덕의 공주, 암살자」
「종족 : 릴리스」
「근력 : 128(S)」
「민첩 : 155(SS)」
「체력 : 99(A)」
「지력 : 79(B)」
「마력 : 62(B)」
「매력 : 93(A)」
「행운 : 27(E)」
「생명력 : 563/990」
「마나력 : 350/620」
「지구력 : 42%」
「고유 특성 : 거스른 자 (S), 되갚는 자(A), 만마의 어머니(A)」
「보유 특성 : 기검사(B), 투기(B), 독술사(B), 암살자(B) 전사 (C), 권사(C)」
「보유 기능 : 신체변이(A), 암투술(A), 은닉(A), 잠행(A), 가속(B) 독수(B), 암흔(B)」
「상태 : 호기심 (...아버지)」
「호감도 : 100」
「예속도 : 100」
“헤에...”
분명 얼마전, 이라고 해야되나. 불과 몇주도 되지 않았을 때 봤던 로로의 정보창에, 그때랑 비교해서 여러 가지로 추가된 것들이 보였다.
에네스타가 천재라고 인정할 만도 했다.
본래대로라면, 나같은 능력이 없었더라면 수십년을 수행해야 얻을 수 있는 것들을, 취득한 딸아이의 모습을 보자 마음이 훈훈해지기 까지 했다.
더 정확히는, 그녀의 정보창으로부터 읽혀진, 나에 대한 호칭 덕분이기는 했지만 말이다.
아버지라...
자식의 성장을 보는 부모의 마음이란 이런 기분일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동시에.
“이길 것도 같은데...”
멀쩡할 때라면 몰라도.
바록과 바쿠와의 대련으로 상당히 지쳤는지, 감소한 생명력과 지구력을 보면 내게도 가능성이 있어보였다.
“상태창.”
「상태창」
「이름 : 이지경(베헤노스)」
「칭호 : 차원을 넘은 자, 단죄하는 자, 벌레만도 못한 자, 부덕의 군주, 드래곤들의 처녀를 빼앗은 자, 마왕, 릴리스의 아버지, 음마들을 굴복시킨 자」
「성별 : 남성」
「나이 : 27세」
「직업 : 부덕의 왕, 마왕」
「종족 : 인간(인간(40%)+낙시안(20%)+흡정귀(20%)+용인(20%))」
「근력 : 113/99(A)」
「민첩 : 113/99(A)」
「체력 : 113/99(A)」
「지력 : 99(B)」
「마력 : 156/166(SS)」
「매력 : 91(A)」
「행운 : 13(E)」
「생명력 : 1188/1188」
「마나력 : 13250/13440」
「지구력 : 82%」
「고유 특성 : 차원을 넘은 자(SS), 개변자(S), 만인지상(S)」
「보유 특성 : 황금률(A), 예속 각인 : 에루나 투아레(A), 마왕(A), 군주(A), 배덕자(A), 독서가(B), 소환사(B), 검사(B), 요리사(B), 약초사(B), 징벌자(B), 권선징악(B)」
「보유 기능 : 주시자의 눈(EX), 불멸자의 심장(EX), 카마수트라(SS), 라이어스 제국 검술(B), 사자후(B), 마도의 이치(B), 마력 장악(B), 심신 장악(B), 복속(B), 사자심(B), 용린갑주(B), 시오니스 검술(B), 방패술(B), 단죄(B), 소환 : 에루나 투아레(B), 요리(E), 계략(E), 투사(E), 연금(E)」
그도 그럴 것이, 나도 놀고 먹고하긴 했어도 아주 성장하지 않은 것은 아니기 때문이었다. 새롭게 얻은 특성, 군주 덕분에 뻥튀기 된 능력도 있고. 이런저런 일로 기능도 나름 성장해서 제법 강해진 참이었다.
아무리 전투센스가 천부적인 능력이라고 쳐도, 이정도면 가능성이 있어보였다.
마력도 방금 막 보급 받은 차여서 가득이기도 하고.
로로랑은 달리, 이쪽은 만전인 상태란 거였다.
준비만전인 상태인 나와, 잔뜩 지친 로로.
승산은 있었다.
“선빵필승!”
땅을 박차고, 로로에게 달려들으면서 손을 뻗었다.
키이이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