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94화 〉194화 (194/370)



〈 194화 〉194화

“에루나...?”

대답이 없는 자신을, 불안한 얼굴로 이쪽을 보고 있는 아샤 아가씨가 보였다.

내게 좀  표정이 풍부했더라면 아마 쓴웃음을 지었을 지도 모른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옷 끝자락을 붙잡고 있는 아샤 아가씨의 손을 떼어내며 입을 열었다.


“죄송합니다, 아가씨. 혹시 모를 일에 대처하려면 이쪽이 편합니다.”


언제나처럼의 얼굴로, 목소리로 그렇게 말하자 화악 밝아졌던 아샤 아가씨의 얼굴이 다시 쀼루퉁해지는 것이 보였다.


“우리가 있는데도 그렇게 불안해? 나, 열심히 연습해서 이제 고위급 치유 마법도 잘 쓸 수 있는데?”

“그렇습니까?”

“응, 응. 그러니까...”


“그래도 저는 제 본분을 지킬 뿐입니다, 아샤 아가씨.”

딱 잘라서 그렇게 말하자 결국 아샤 아가씨의 입술이 쭉, 하고 튀어나왔다.


그리고 그런 아샤 아가씨의 모습에, 에루나는 생각해두었던 계획 중 하나를 머릿속에서 지우기로 했다.

주인인 이지경이 외모적으로는 어리기 그지 없는 아가씨들을 안게하는 계획 중 하나를 말이다.


주인이 아무리 아이에겐 전혀 반응하지 않는 별종이라고는 해도, 아예 방법이 없는 것도 아니었다. 애당초 생물은 성욕과 별개로, 생리적으로는 반응할 수밖에 없는 법이었다.

자신에게 반응하지 않았던 주인님이었지만, 그래도 그의 정을 취한 전례가 있었으니 말이다.

그렇게 강제로 몸을 겹친 것에 불과하더라도, 주인인 이지경의 성격상 책임을 지고 말테니 이게 가장 효과적이고 빠른 방법이기도 했다.

하지만 자신은 몰라도 그걸 아샤 아가씨에게 시킬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밤중에 주인님의 침실로 몰래 들어가서, 주인님의 몸을 겹치라고 조언을 하더라도... 아샤 아가씨가 제대로 성공할지도 의문이고. 아냐 아가씨라면... 이쪽도 불안하기는 매한가지였다. 괜한 장난을 치다가 실패할 게 뻔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지금의 아샤 아가씨나 아냐 아가씨에겐 너무 이른 걸지도 몰랐다.

'역시 주인님의 성벽을 뜯어고치는 쪽이...'


그렇다면 그 반대로, 억지로 주인인 이지경에게 두 아가씨를 안기는 것보다, 반대로 두 아가씨를 안는 것에 거부감이 없도록 하는 것이 좋을  같았다.


아니, 이편이 이후에 있는 샤르 아가씨의 일을 생각했을  더 좋은 방법이었다.


위기는 곧 기회라는 말이 이런 의미인지는 몰라도. 주인에게 드래곤 하트를 건네줌으로써, 이전에 썼던 몸은 열화해서 사라진 덕분에 작아진 몸을 하게  지금.

지금이야말로 주인인 이지경의 성벽을 고칠  있는 기회가 된 셈이기도 했다.

마침 체질적인 문제로 주기적으로나마 자신의 몸을 빌려야하는 주인이었다.


그 때를 기회삼아서...


'작은 쪽도 신경 쓰지 않게, 아니 오히려 좋아하도록 바꿀 수 있도록 노력해야겠습니다.'

아샤 아가씨와, 아냐 아가씨를. 그리고 샤르 아가씨를 위해서라도.





겸사겸사 자기 자신을 위해서도.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귓가에 아샤 아가씨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렇게 모인 것도 오랜만이고... 다 같이 목욕하나 싶었는데...”

입술을 삐죽 내민 채 토라진 아샤 아가씨가, 시무룩하니 그렇게 중얼거리는 목소리가 말이다.


어쩔 수 없나...

 위치가, 이 주변의 광경이 전부 들어오는 위치였지만 아샤 아가씨를 내버려둘 수도 없었다.

스윽, 하고. 하는  없이 시녀복을 벗으려던 차에 둥실하고 온천에 떠오른 채로 다가오는 아냐 아가씨가 보였다.

그리고.

아샤 아가씨 곁으로 온 아냐 아가씨가 픽하고 웃으며 말했다.

“그냥 솔직히 말하는 게 어때 언니? 에루나가 작아졌으니까, 지금은 언니가 더 클 거 같아서, 이참에 비교해보려던  아니야?”


키득키득, 장난치듯이 잔뜩 삐쳐있는 놀리 듯 아냐 아가씨가 말하는 아냐 아가씨가 보였다.

비교...?

머릿속에 의문이 떠오르는 와중에,

“뭐? 아, 아니거든?!”


방금까지 토라져보였던 것이 정말로 연기였던 듯이 얼굴이 벌게진 아샤 아가씨가 그렇게 외쳤다.


덜컥, 하고. 에루나는 걷어 내리던 시녀복을 다시 추스르고 상황을 살폈다.

아차, 하는 얼굴로 이쪽의 눈치를 보는 아샤 아가씨가, 눈에 들어왔다.

설마...

“헤에, 그래? 뭐... 확실히 지금도 언니보다 에루나가  더 큰 것 같으니까 괜한 생각이였네.”

“그럴 리가?! 나도 전보다 훨씬 자랐거든?! 가슴도, 얼마 전에 재보니까 더 커졌고...!”


“그냥 살이 찐  아니구?”

“아니거든?! 게다가 너도 나랑 똑같잖아!”

“흐응, 미안하지만 내가 언니보다 더 크거든? 한  비교해볼래?”


자리에서 일어나서, 가슴을 쭉 펴며 그렇게 말하는 아냐 아가씨를 보자, 확실히 아샤 아가씨보다는 좀 더 도드라져 보이는 흉부가, 아니 가슴이 눈에 들어왔다.


하지만 그런 사실보다도, 에루나가 충격을 먹은 것은. 아샤 아가씨가 자신을 속였다는 거였다.


마냥 어리다고만 생각했던 아샤 아가씨가.


그 증거로 방금까지의 시무룩하던 모습은 어디로 갔는지 부들부들하고 몸을 떨면서, 아냐 아가씨를 바라보는 아샤 아가씨가 보였다.

이윽고.

“이, 언니에게 건방져, 아냐!”

첨벙, 하고. 온천에 뛰어든 아샤 아가씨가 아냐 아가씨를 붙잡고서 그대로 온천 속으로 뛰어 들어갔다.


'...성장, 하셨군요.'


그저 아이처럼.


키워준 자신을 맹신하며 따르기만 했던 아샤 아가씨가. 아무리 악의가 없는, 그저 장난에 불과한 것이라고 하더라도. 자신을 속여 넘겼다는 사실에 에루나는 감동했다.


물론,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였다.

꺅꺅거리면서 엎치락뒤치락 투닥거리며 다투기 시작하는 두 아가씨가 아직 어린 것은 틀림없었다.


성장은 기뻤지만, 거기서 만족할 수 있는 건 아니었다. 성장한건 맞았지만, 여전히 어리다는건 변함이 없고.


그래도, 하고 새롭게 계획을 짜내고 있던 에루나의 눈에,

“잠, 여기까지 물 튀잖아~! 조심... 푸웁!? 이, 저리 가서 놀지 못해~?!”


그 둘에게 휘말려서 물벼락을 맞는 카르네 아가씨가 결국 폭발해서 몸을 일으켜 세우는 것이 보였다.


두 아가씨랑은 달리, 드래곤으로서도 여성으로서도 확실히 성장한 여자의 몸이 눈에 띄었다.

'카르네 아가씨는... 성격이 조금 문제지만, 걱정할 필요는 없을 것 같군요.'


아가씨들 중에서도 특히 질투심이 강했던 카르네 아가씨였지만, 드래곤인 그녀가 성장했다는 것은 단순히 몸만이, 힘만이 늘어나는 것이 아니었다.


아냐 아가씨나 아샤 아가씨랑 비교하면 걱정할 정도의 문제는 아니었다.

주의는 해야 하겠지만, 크리샤 아가씨도 다루신 주인님이라면 문제가 없을  분명했다.

다만.


“뭐야뭐야? 카르네? 갑자기  짜증이야?”


“이상하네? 혹시 어제 일 때문에 화풀이 하는 거야?”


“너희 장난 때문에, 물이 나한테 튀어서 그러는 거잖아~!”

보글보글, 카르네의 분노로 끓어오르기 시작하는 온천을  에루나는 천천히 주먹을 움켜쥐었다.


이곳은 크리샤 아가씨의 영지.

그리고 자신은 주인님께서, 직접 크리샤 아가씨를 부탁한다는 명령을 받은 몸이었다.

드래곤에게 있어서, 자신의 영지는 때로는 그 자신보다도 훨씬 중요한 법이었다. 그러니까, 크리샤 아가씨를 부탁한다는 명령에는, 그 영지 또한 부탁한다는 이야기가 됐다.


아샤나 아냐 아가씨들이 장난을 치는 것 정도라면 몰라도, 카르네 아가씨까지 끼어서 3파전이 벌어진다면, 그대로 온천이 날아갈 지도 몰랐다.

그러니 명령을 따르기로 했다.

“아샤 아가씨, 아냐 아가씨, 그리고 카르네 아가씨.”

“아, 에루나! 카르네가 우릴... 히익?!”

“언니? 왜... 히익!”

“자, 잠깐만~? 나는, 아무 죄도 없어~?”

이쪽을 보며, 기겁하는 아가씨들을 보며. 오래간만에 보모로 돌아온 골렘은, 에루나는 입을 열었다.


“모처럼이니 아가씨들께 예의를 다시 가르쳐드리겠습니다.”


뚜둑, 하고. 움켜쥔 주먹으로부터 들려온 소리에 서로 몸을 바짝 붙이면서 벌덜 떠는 아가씨들을 보며, 에루나가 말을 이었다.

“거부는 받지 않겠으니, 부디 아무쪼록 저와 어울려주시길.”




“언니 때문에 이게 뭐야?”


“나 때문이라니? 전부 카르네 때문이잖아! 카르네가 괜히 열 내서...”

“너희   시끄러워~ 또 나한테까지 불똥이 튀면~ 이번에는 진짜 가만히  있을 거니까~ ...진짜로, 괜히 나만 이게 뭐야~? 따지고 보면  그냥 운이 없던 거잖아~?”

투덜투덜 시끄럽게 떠드는 소리에 뒤를 돌아보자, 세 아가씨들이 번쩍하고 손을 들어 올리는 것이 보였다.

이마에  하나씩 달고 있는 아가씨들이 헤헤 하고 조용해지는 걸 보니, 대체 이런 적이 얼마만인가 싶었다.


특히나 카르네 아가씨는 온천에 손상이 발견되어 추가로 얹게 된 바위를  손에 들고 있었다.

과거랑 달리, 이제 다 큰 카르네 아가씨가 그러고 있자니 뭔가 상당히 그림이 우스워지는 느낌이었다. 다  성인 여자가, 알몸으로 자기 머리만한 돌을 들고서 벌을 서고 있으니 말이다.


아니, 애당초 자신이 아가씨들에게 교육이니 뭐니 하면서, 훈계를 하는 것 자체부터가 우스운 걸지도 모르겠다.


자신에겐  이상 그녀들을 훈계하거나 가르칠 의무도, 벌이란 명목으로 손을 들게 하거나 할 수 있는 권한도 더 이상은 없으니까.

더 이상 그녀들을 자신이 어쩔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니고, 그녀들 역시 자신을 보호해줄 누군가가 더 이상 필요한 것도 아니니 말이다.


아가씨들이 자신의 말에 얌전히 손을 들어 올리고 있는 것도, 결국 과거 그녀들을 보살폈다는 이유만으로 받고 있는 배려란 걸 이해하고 있었다.


시간이 흐른 것이다.

마냥 어리기만 했던 아샤 아가씨가 자신에게 거짓말을 할 만큼 성장한 것도. 그녀들이 더 이상 자신을 필요로 하지 않을 정도로 강해진 것도.

시간이 흘렀다는 증거였다.

‘저도... 저도 변한 걸까요.’

가만히, 손을 바라봤다.

작아진 손을.

다시 몸을 바라봤다.


작아진 몸을.

사실 알고 있었다.


정말로 신경 쓰이는 것은, 변했느냐 아니냐가 아니란 것쯤은.

골렘은, 변하지 않는다.


스스로 치장하는 골렘, 그 이름처럼. 더욱 더 스스로 발전하는 에루나였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그렇게 만들어졌기 때문이었다.

스스로 치장해나간다. 성장이 아니라 그저 부품을 갈아 치워가며 바뀔 뿐인 기계, 그런 능력을 지닌 골렘에 불과했다.


자신은 그런 존재였다.


하지만, 그마저도. 수백 년을 걸쳐 개조되었던 육체는 소멸해서 더 이상 없었다.


이제와서는, 예비용으로 존재했을 뿐인 작고, 가녀린 몸을 가진 골렘에 불과했다.


이제와서는, 자신은 그저 언제 멈추더라도 이상하지 않는, 그리고... 얼마든지 대체가 가능한 존재에 불과한 것이다.

골렘이 변하지 않는 이유는.

그것이 쓸모가 있어서였다.

변해버린 나는, 약해져버린 나는, 더 이상 쓸모가 있는 걸까.

‘시간이, 흘렀다는 겁니까.’

작아진 손을 다시 바라봤다.

생물은 성장해서 더욱 나아가고, 늙어서는 약해지다 그 후대에 자신의 자리를 넘기고 스러져간다.

그렇다면 골렘은, 자신은 어떻게 되는 걸까.


변해버린 자신은, 변해버린 골렘은 대체 어떻게 되는 걸까.

지금의 모습은 자신이 선택한 결과였다. 불로하고, 불사하며, 불변하던 육체를, 드래곤의 뼈와 비늘로 만들어진 강건하고, 강인했던 몸을 주인을 위해 버린 선택의 결과. 지금과도 같은 연약한 몸이 되었다.


그러니까 후회하지 않았다.


얼마든지 갈아치울  있는 몸을 버린 것으로 주인을 구했으니까.  결과로 도태되었다고 하나, 지금의 모습은 자신에게 있어서 훈장에 불과했다.


그리고 이것을, 생물이 갖고 있는 늙음이라고 간주한다고 친다면 충분히 받아들일 수 있는 결과였다.


그 대신에 잃은 것들이 많았지만.

불변함을,


강건한 육체를,

 이상은 없는 것들을.

시간이 흐르면, 자신의 몸은 녹슬어 스러질 것이다. 이제는 더 이상은 고칠  없었다. 아무리 마력을 퍼부어도, 아무리 새로운 부품을 갈아 넣더라도. 끝내는 재생하지 않을 날이 올 것이다.


그렇다고, 새로운 몸을 만들 수도 없었다.

자신의, 원래의 몸은. 무려 여섯이나 되는 드래곤이, 자신의 육신을 녹여내 만든 것이었다. 아무리 아가씨들이, 본래 자신을 제작한 드래곤들과 같은 힘을 지녔다고 하더라도 다시 만든다는 것은 불가능한 셈이었다.

서서히, 느릿하게. 결국에는 무너지게 될 것이다.


하지만 괜찮았다.


자신은 오랫동안 살았다.

400년, 그리고 또 40여년, 다시 1년.

만들어지고서, 아가씨들이 태어나기를 기다린 400년.

아가씨들이 자라는 동안의 40여년.

그리고 주인님과 만나서... 이제 곧 되어가는 1년.

440년이 넘는 세월은, 장수의 종족인 엘프도 늙어갈 시간이었다. 그런 엘프마저 영생한다고 여길 만큼 긴 수명을 지닌 드래곤마저 알에서 태어나... 제몫을 하게 될 정도의 시간이었다.

한 생물이, 태어나서. 늙음에도 이상하지 않을, 충분히 길고 오랜 시간이었다.

‘후대에 자신의 자리를 넘기고 스러진다...’


다행히 그 점에서는 걱정할 일이 없었다.

자신이 없더라도... 대신할 이는 많았다.


‘후임으로는 로로라면 안심할 수 있겠죠. 아직, 교육이 부족하겠지만.’

하지만, 그를 위한 시간 정도는 아직 자신에게도 남아있었다. 뒤에 있을 일들도 충분히 대비할 수 있는 시간 정도는 아직은 남아 있었다.


녹이 슬지언정, 당장은 아니였다.

스러진다하더라도, 당장이 아니었다.

그러니까 괜찮았다.


그러니까, 지금 해야  일을 할 수 있었다.

해야  일...


고개를 돌려, 아가씨들을 바라봤다. 움찔, 하고 그새 팔을 내리고 있었던 아냐 아가씨가 눈에 비쳐보였다.

막, 팔을 내리다가 걸린 아냐 아가씨가 헤실 웃으며 말했다.


“저기, 에루나? 이제 장난 안 칠 때니까...”


“좀 더 예의 교육이 필요하다는 말씀이십니까?”


“아니, 응, 뭐... 그냥, 얌전히 있을 게...”


그렇게 말하며 얌전히 손을 들어 올리는 아냐 아가씨와 그런 그녀를 보며 킥킥거리며 웃는 아샤 아가씨와 카르네 아가씨를 지켜보던 에루나는 이내 고개를 돌려 루시아 아가씨와 크리샤 아가씨가 있는 쪽을 바라봤다.

해야  일.

미래에 대한 것을 준비하는 것.


그것이 자신이 해야 할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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