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2화 〉192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
“이거언, 그러니까아...”
“그러니까?”
뚝, 뚝하고 방울져서 떨어지고 있는 증거물을 보고서 차마 말을 잇지 못하는 아르카를 보고서 결국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트렸다.
“우, 웃어? 지금, 웃은 거야아?”
너무 참아서 그런지 그런 나를 보고서 잔뜩 얼굴이 붉어진 아르카가 보였는데도 도저히 멈추질 않았다. 하지만 별 수 없었다. 이렇게 된 거 그냥 웃기로 했다. 그렇게 한동안 웃은 뒤에야 겨우 진정한 나는 아르카를 바라봤다.
잔뜩 삐쳐서, 이쪽을 보지도 않으려는 아르카를 말이다.
“......”
말없이 양 팔을 붙잡고 있는 그림자의 손만 보면서, 그런 그림자의 손에서 벗어나려고 하는 아르카가 보였다.
꾸욱, 하고 직접 잡아당기기도 하고, 마법을 사용하려는 것인지 영창을 외우는 아르카가 보였다. 하지만 어느 쪽도 통하지 않고, 여전히 양팔을 꼭 붙들어 잡고 있는 그림자의 손을 보고서, 결국 버둥거리는 아르카를 보며 입을 열었다.
“웃어서 미안. 그리고 그거, 안 풀리게 해놓은 거니까 너무 애쓰지 마. 네가 생각하는 그런 건 아니니까.”
“...안 풀리게 했다니이? 해주 마법이라도 썼다는 거야아?”
“해주? 아, 응, 그래 그렇다고 치자.”
해주라던가, 뭐 그런 복잡한 것이 아니긴 하지만 대충은 비슷했다.
“...그렇다고 치자니이?”
그런 나를 보고서, 의아해하는 아르카를 보고서 머리를 긁적였다. 이런 상황에도 그런 게 궁금하구나 싶었기 때문이었다.
세상에 팔이 묶여서 꼼짝도 못하는 와중에도 그런걸 궁금해하는 이가 몇이나 될까. 그런 생각을 하면서.
설명해주려다가 입을 다물었다.
막상 말하려니까 설명하기가 귀찮았다.
내가 게으른 게 아니라 정말로 설명하기가 귀찮은 거여서 그랬다.
그야 그냥 하다보니까 됐다고 해도 아르카가 납득할 리가 없고.
정말로 그게 끝인데도 말이다.
“...뭐, 별 건 아니고.”
그래도 말해줘야지 뭐, 별 수 있나.
설명을 요구하는 듯이 나를 보고 있는 아르카를 보며 입을 열었다.
“해주 마법도 마법이라고는 하지만, 사실 교란에 가까운 거잖아?”
“......”
내 말에 고개를 끄덕이는 아르카가 보였다.
음, 내가 알고 있는게 맞는 듯 싶어서 다행이었다. 아무튼 아르카의 호응에 힘을 얻고서, 설명을 이어나갔다.
해주 마법은 마법이란 이름을 달고 있었지만, 사실 마법이라기보다는 술식을 거꾸로 뒤트는 것에 가까웠다.
마법이란, 결국 마력을 사용해서 영창이라는 공식에 대입해서 나오는 결과물이라고 볼 수 있었다. 그리고 해주 마법은... 그 공식에 해당되는 영창을 아예 빼버리거나, 마법이 발동되지 않게 덧씌워서 바꾸는 것을 말했다.
뭐, 쉽게 말하면 그렇다는 거지. 사실 그렇게 쉬운 건 아니였다.
나 같은 녀석은 쓸 엄두도 못내는 그런 고급 기술이라는 거였다.
나도 뭐... 이런 저런 일이 생기고 지금은 크리샤의 마력과 함께 흡수한 적성 덕분에 공간과 대지 속성을 갖게 되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갖게 되었을 뿐이지 내가 그 두 속성에 천재적인 재능이 생겼다던가 그런 게 아니었다.
물론 같이 흡수한 몇몇 마법도 사용할 수 있게 되긴 했지만, 그건 별개로 치고.
어찌됐건 그렇게 속성이 생기고, 마법도 쓸 순 있었지만 지금의 나는 마법을 해석해서, 역으로 발동하는 것으로 강제로 풀어버리는 해주 마법을 쓰기는커녕 쓰는 법도 모른다는 거였다.
애초에 해주 마법을 사용하려면, 상대방이 사용하려는 마법을 아주 빠삭하게 알아야만 하는 거니까.
내가 지금 배워서 할 줄 아는 마법이라고는 고작 인벤토리에 쓰고 있는 공간 마법정도가 끝인데 그런 게 가능할 리가 없었다.
“뭐, 가능했다쳐도 아르카같은 드래곤한테 사용하는 건 거의 무리지만.”
해주 마법은 영창 중인 마법을, 그 사이에 끼어들어서 강제로 흩어놓는 것에 가까운데 그 영창을 아예 없이도 마법을 사용할 수 있는 드래곤의 마법을 해주한다는 건 미리 미래를 보는 게 아니라면 거의 불가능한 수준이었다.
“그럼 어떻게 내 마법을 막은 건데에?”
결국, 해주 마법은 사용하지도 않았고 사용하지도 못한다, 라고 말하는 나를 보고서 아르카가 그렇게 물었다.
내 말대로라면 아르카가 그림자의 손을 풀지 못하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되는 것이니 말이다.
“그건 그러니까...”
그 말대로 원래라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평범한 사람이라면 아르카의 마법을 해주하는 것은커녕 시도도 불가능한 일이었다.
하지만 내겐 개변자가 있었다.
내 입맛대로 능력의 효과를 바꾸거나, 적용하는 대상을 바꾸거나... 혹은 내 몸 자체를 바꿔버려서 개변시키는 특성이 말이다.
검술을 그렇고 그런 기술로 만들 수도 있고, 그렇고 그런 기술을 반대로 검술로도 쓸 수 있게 해주는 만능 능력이.
그리고 내 능력 중에는 그런 개변자를 통해서... 아르카의 마법을 막아낼 수 있는 능력이 하나 있었다.
‘차원을 넘은 자’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저 내게 날아오는 공격을 막아낼 뿐이라고만 여겼던 특성.
하지만 그렇다고 치기엔 시도 때도 없이 뚫리기도 하고, 어이없는 일로도 다치는 경우도 종종 있었던 특성.
처음에는 내가 인식하고 있는 공격만 그런 건가 싶었지만, 내가 전혀 모르는 방향에서 날아든 공격도 막아내거나 하는 걸 보면 아니었다.
그렇다면 대체 어떤 능력인가, 하고. 여러모로 할 일이 없는 동안에 생각해본 끝에...
지금은 차원을 넘은 자가 어떤 능력인지 대충 알 수 있었다.
차원을 넘은 자의 진짜 능력은 내가 거절하는 것으로부터 나를 격리시키는 능력이었다. 나 자신을 별개의 차원에 두는 것이었다.
나를 공격으로부터 보호하는 능력이라기보다는, 나 자체를 그냥 붕하고 뜨게 만드는 능력에 가까웠다.
그렇게 진짜 능력이 어떤지 알게 되니까, 뭔가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그래서 한 번 해보기로 했다.
우선 개변자를 통해서, 인식을 뒤틀었다. 본래 차원을 넘은 자의 효과가 적용되는 대상은 ‘나’에 한정되어 있었다. 아무리 넓어봤자 기껏 해봐야 내가 양팔을 벌렸을 정도의 범위에 그치는 작고, 좁아터진 격리된 공간에 나를 가두는 것에 불과했다.
그 인식을 뒤틀어서, 확장시켰다.
‘나’라는 존재의 인식을.
그렇게 확장시켜서, 내가 소환하는 물체, 예를 들어 그림자의 손 같은 거에 뒤집어 씌워봤다.
그랬더니... 웬걸, 그림자의 손이 물리고 마법이고 전부 통하지 않는 마법의 촉수, 아니 만능 손으로 재탄생하게 된 것이다.
“...하아?”
내 설명을 듣고 있던 아르카가 그런 나를 엄청나게 이상한 것을 보는 듯한 눈으로 보기 시작하는 것이 보였다.
“인식을 확장시켜서, 그 이상한 능력을 사용해봤더니 됐다니이... 그게 끝이야아?”
“그게 끝이라니... 끝인데?”
“......정말로오?”
대체 뭘 얘기하고 싶은 건지 잘 모르겠다. 그러다가 문득 머릿속에 스쳐지나간 생각에, 내가 입을 열었다.
“아, 그래. 대신 조금만 써도 엄청나게 피곤하긴 해.”
말이 인식의 확장이니 뭐니 쉽게 말했지만, 따지고 보면 ‘나’를 좀 더 넓게까지 인식하는 거였다. 그림자의 손을 하나 소환해서, 거기에 개변자를 사용해서 차원을 넘은 자의 능력을 심어두면... ‘내’가 하나 더 존재하는 듯한 느낌이라고 하면 됐다.
수십 개의 그림자의 손들을 소환한다면, 말 그대로 내 몸이 수십 개가 되는 셈이었다.
당연히 피곤할 수밖에 없었다.
안 그래도 그림자의 손 자체가, 뇌를 마구 혹사시키는 듯한 느낌의 다루기가 까다로운 마법이었는데, 이 짓까지 더하면 대여섯 개만 뽑아도 무척 피로해졌다.
뭐... 그만큼 편하니까 됐지만.
그렇게, 아르카에게 말해주었더니.
역시나, 라고 해야 하나.
“...내 마법을, 간단하게 막아낼 정도인 능력이, 그래놓고 조금 피곤하다고오?”
엄청 이상한 것을 보는 눈에서, 이해할 수 없는 것을 보는 눈으로 진화해서, 나를 바라보는 아르카가 보였다.
흡사 있어선 안되는 걸 보는 듯한 눈이었다.
그런 아르카에게 내가 말했다.
“하니까 되더라고. 그게 그렇게 이상한 거야?”
“드래곤의 영지 내에서, 그 드래곤의 마법도 막아내는 능력이 하니까 됐다고 끝난다고 생각하는 거야아?”
음, 그게 또 그렇게 되나?
가능하니까 해봤고, 해봤으니까 됐을 뿐인데.
그게 끝인데, 뭐 이상한 게 있나 싶었다.
그래서,
“뭐, 일단 그건 그거고...”
드레스 밑으로 손을 집어넣고서. 아르카의 속옷을 끌어내리며 말했다.
“궁금한 것도 알려줬으니까, 할 건마저 해야지?”
“자, 잠까안?! 갑자기 뭐하는 거야아?!”
갑자기 속옷을 끌어내려진 아르카가 버둥거렸다. 하지만 아르카의 저항은 금세 새롭게 소환된 그림자들의 손에 막히고 말았다.
“여, 여러 개 소환하면 힘들다고 했으면서어...!”
“힘들다고 했지 안 된다고는 안했잖아?”
응, 분명 그렇게 말했다. 피곤하다고 했지 못한다고는 안했지. 그런 내 말에 속임수에 당했다는 듯한 표정을 짓고 있는 아르카가 보였지만, 난 전혀 속이지 않았다.
착각한 쪽이 잘못한 거지.
그렇게, 팔뿐만이 아니라, 다리까지도 그림자의 손들에 붙잡혀서 속박된 아르카를 보며 내가 말했다.
“자아, 그럼. 아르카. 아까 네가 내가 먹을 음식을 날려버렸잖아?”
“그, 그건... 손이 미끄러져서어...”
“그래, 그렇다고 치고. 어쨌건 아르카가 한 거니까... 보충해야지?”
그리고 어차피 볼 거 다 본 사이끼리 그렇게 부끄러워할 필요는 없지 않아? 하고 묻는 내 말에 얼굴을 붉히는 아르카가 보였다.
“그보다 보충이라니, 그거랑 지금 네가 하는 짓이랑...”
말을 잇던 아르카가 이내 눈을 희둥그레 뜨더니 나를 쳐다봤다.
“설, 마아...”
음식을 날려버린 것과, 자신의 속옷이 벗겨지고 있는 이유의 연관관계를 찾아낸 듯한 아르카에게 말했다.
“뭐, 조금 이르긴 하지만. 미리 주는 셈 치면 그만이잖아?”
“그런 게 말이 된다고 생... 하읏♥ 이, 이상한 데 만지지 마아!”
“이상한 데라니... 엉덩이인데?”
“그러니까, 이상한 데에... 흐웃♥”
하지 말라면 더 하고 싶어지는 법이었다. 천천히 아르카의 엉덩이를 시작으로, 몸 구석구석을 만졌다.
그때마다 흠칫흠칫 몸을 떠는 아르카를 보면서, 느긋하게. 어차피 급할 것도 없었다. 막사 이런 식으로 사용해본 건 이번이 처음이었지만, 효과는 확실하다는 건 알아냈으니까.
나는 묶여서, 얌전하게 된 아르카를 마음대로 요리하면 그만이었다.
“응, 으응...♥”
“이상한 데라고 해놓고서, 너무 느끼는 걸. 아르카?”
“느, 느끼지 않았... 하응♥”
“그래? 그럼...”
또 그림자의 손을 더 소환했다. 그러자 말을 잇던 아르카가 흠칫하고 몸을 떠는 것이 보였다.
그런 아르카를 보고 있자니, 괜스레 즐거워져서 차례대로 그림자의 손들을 소환하기 시작했다.
“아, 아아...”
꿈틀거리며 움직여대는 그림자의 손들이 모두 여덟. 아르카의 팔 다리를 묶고 있는 그림자의 손들까지 합치면, 모두 열 둘이었다. 현재 내가 개변자와 함께 사용할 수 있는 그림자의 손의 한계치라고 해도 좋았다.
그렇게, 새롭게 소환한 그림자의 손들을 꾸물꾸물 움직여가며 아르카의 눈앞에서 존재감을 과시했다.
“자, 과연 언제까지 그렇게 말할 수 있나 볼까. 아르카?”
이윽고, 그림자의 손들이 아르카를 애무하듯이 만지기 시작했다.
엉덩이만이 아니라, 가슴이나, 허벅지, 발가락이나 손가락까지. 몸 전체를 구석구석까지 탐닉하기 시작했다.
말이 손이지 개변자와 차원을 넘은 자를 같이 사용하고 있을 때는 그런 복잡한 형태를 띄울 만큼 여유가 있는 건 아니라서 빼도 박도 못하게 촉수로만 보일 뿐이라서 그런지 그렇게 그림자의 손들에게 애무를 당하고 있는 아르카를 보고 있자니 어제의 일이 떠올랐다.
그때랑 다른 점이 있다면, 아이들을 상대로 하던 것과 달리 아르카는 그림이 된다는 정도일까.
딱 봐도 유해매체인 것과 좀 마니악스러워도 성인매체의 한 장르 같은 느낌의 차이였다.
미녀와 촉수라...
이렇게 보면 또 나쁘진 않았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그림자의 손들을 움직였다.
방금도 말했지만, 할 건 해야 했다.
“힉♥ 거, 거긴...♥ 흐읏♥ 읏...♥”
촉수와 같은 그림자의 손들에게 구석구석까지 애무당하다보니 얼마 되지 않아 아르카의 신음소리가 점점 거칠어져만 갔다.
더 이상 숨기고 자시고 할 수도 없을 만큼 흐트러져서, 굽이굽이 몸 위를 타고 꿈틀거리는 그림자들의 손에 의해 신음을 내뱉는 아르카와, 그런 아르카의 무력한 저항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제 할 일을 하는 그림자의 손들이 보였다.
허벅지 사이를 스르륵하고 통과하면서, 그대로 천천히 엉덩이 골 사이로 지나가거나, 가슴 밑의 갈빗대를 스쳐지나가거나 하면서.
느긋하면서도 착실하게 아르카의 몸을 더듬어가는 그림자의 손을 보다가, 스윽하고. 놀고만 있던 손으로 그런 아르카의 엉덩이를 움켜쥐었다.
“히얏♥”
“어제도 봐서 알고 있었지만... 뒤가 약하네, 아르카? 이걸 다른 애들도 알면... 볼만 하겠는데.”
뭐, 아르카의 취향을 생각하면 딱히 그쪽이 더 민감하다기보다는... 그쪽이 수치심을 더 느끼기 때문인 거겠지만 말이다.
하지만 아직 스스로도 자신의 취향을 제대로 알아차리지 못한 아르카는 그런 내 말에 수치심으로 얼굴을 붉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어때? 아르카. 지금이라도 에네스타를 불러줄까?”
“읏...♥ 그런 거어, 절대로 용서하지 않을 꺼니까아... 흐윽♥”
“그래그래... 오늘은 어제처럼 깜빡하지 않고... 제대로 상대해줄 테니까.”
“그런 게 아니라... 하읏♥ 그, 그마안...♥”
꾸물꾸물거리며 몸을 더듬어오는 그림자의 손에 흐느끼는 아르카를 보고 있자니, 슬슬 나도 견디기 힘들었다.
이미 아까 전부터 방 가득 채운 아르카의 향기에, 자꾸만 입에 침이 고여서 말을 할때마다 곤란하기도 하고.
“뭐, 슬슬 그만둘까.”
촤르륵!
순식간에 역소환된 그림자의 손에 기우뚱하고 쓰러지려는 아르카를 끌어안았다.
“드, 드디어 끝...”
사라진 그림자들의 손을 보고서, 안도했는지 숨을 헐떡이면서 그렇게 중얼거리는 아르카를 보며 내가 말했다.
“그럴 리가 없잖아.”
그리고 턱을 집어 올렸다.
“아...”
“잘 먹을게, 아르카.”
한창 달아올라서, 맛있게 익은 아르카에게 입술을 가져가고.
식사를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