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89화 〉189화 (189/370)



〈 189화 〉189화
목줄로써 뽑힌 이들, 비교적 긴 수명을 지니고 빼어난 용모를 지닌 종족들. 대부분은 엘프로 이루어진 이들은 초월자들의 곁을 지키다가, 그들의 수명이 다했을 때 남겨진 유산들을 정리해서 되돌아온다.

그것이 목줄의 역할의 전부였다.


개개인이 세계를 바꾼다고도 알려져있는 초월자들을 관리하는 방법치고는 다소 부족했지만, 드래곤들의 입장에선 그걸로도 충분했다.

어차피 그들이 보기엔 초월자도, 결국 벽을 하나 허물었을 뿐인 존재였다. 보다 격상의 존재로, 격을 높이는 정도의 것. 그 이상 이하도 아니었다.

벽의 바깥에서 존재하는, 격의 가장 위에서 존재하는 드래곤에게 있어서는 무용, 무가치한 일인 것이다. 그런 드래곤들이 구태여 초월자들에게 관심을 주고, 관리하는 것도 결국은 간단한 이치에 의한 일에 불과했다.

관리하는 것으로 귀찮은 것보다, 그냥 내버려두는 쪽이 더욱 귀찮아지기 때문이었다.

초월자, 그들은 다르게 말하자면... 돌연변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가끔씩 발생하는 이변이었다.

어떤 분야로든 현존하는 모든 가치와 비교해서. 느닷없이 고도로 발달하거나, 획기적인 무언가를 툭하니 만들어내는 존재들이었다.

물론 조용히, 아주 조용히 일어나는 변화는 드래곤들 역시 싫지 않았다. 의상이라던가, 음식 같은 문화에 영향을 끼친 초월자들 같은 경우에는 과거 몇몇 드래곤의 후원까지 받았던 전례가 있었을 정도니 말이다.

하지만 모든 초월자가 그런 것도 아니다. 아니, 대부분의 초월자들은 아니었다. 보통 작던 크던, 소란을 일으키는 존재들이었다.


예를 들어, 조금  효율적으로 마법을 사용할 수 있는 방법을 초월자가 어느  갑자기 발견한다. 그 개인이 할 수 있는 것은 결국 한정되어 있기에, 세계에는  변화를 가져오지 않았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개인에게만 그 힘이 있을 때였다.

 방법이 다른 이들에게 퍼진다면?


설령 그가 남에게 알리지 않는다하더라도.


그가 죽고나서...  방법이 적힌 책이 세상에 나뒹군다면? 그런 것이 있다는 소문이 퍼진다면? 그에 대한 결과는 언제나 똑같았다.

생명이 죽고, 초목이 불탔다.

초월자가 남긴 책 한권 때문에, 그저 무성할 뿐인 소문 하나 때문에 전쟁이 일어나는 것이다.


고작 한 명의 초월자의 영향으로, 수만의 생명이 불타 사그라진다.


이 세계의 균형자이자 수호자인 드래곤의 입장에서는 무척이나 귀찮을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그러니까 사전에 방지한다, 그런 수준으로 채워놓는 것이 목줄이었다.


목줄이 있다면. 적어도 초월자들이 남긴 물건으로 인한 혼돈은 일어나지 않는다.

그것만이 아니라, 초월자들이 행동을 적당히 조율할 수도 있고, 좀  편리한 방향으로 부릴 수도 있었다.


물론 그것도 개인에 따라 있으나 마나한 수준이기는 했다. 목줄을 채우려고 해도, 도저히 채워지지 않는 유형의 개인은 분명 존재한 법이니까.

가장 많게는 엘프를 사용한 목줄들. 성욕을 이용한 목줄을 사용하지만 이 경우가 먹히지 않았던 것도 그 엘리시스라는 이름의 초월자였다.


아주 드물지는 않게 존재하는 유형의 초월자.

 번인가 엘프들을 선출해서 곁에 두게 해봤지만 먹히지 않았다. 혹시나 싶어서 동성의 상대를 보내 봐도 먹히지 않았다.


결국 자신의 마음에 든, 적당히 편리한 짝을 구해서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았을 뿐이었다.

그렇다고 재물이나, 혹은 명예로 움직이는 방식을 써봐도. 들어먹지 않았다.

그것이 단순히 성향만의 문제가 아니라 여러 가지 이유가 있는 탓이기도 했지만. 결론적으론 목줄이 그리 필요 없고, 소용도 없었기에 채워놓지 않았다.

하지만.


“내가 딸을 건드려서 움직이기 시작했다는 거야?”


“아주 그런건 아니겠지만... 그렇다고 할 수 있겠네요.”

루시아네아의 대답에 하아, 하고 한숨을 내쉰 크리샤네아가 입을 열었다.

“좋아, 내가 실수한 거니까. 내가 해결할게. 그러면 됐지?”

초월자를 상대하는 것은 귀찮은 일이었다.


굳이 비유하자면... 잔가시가 무척이나 많은 물고기를 먹을 때와 같은 느낌이었다.


통째로 먹어치우면 금방이지만, 그러면 목에 가시가 걸려버리고 만다. 목에 가시가 걸리면 아무리 작은 가시라도 괴로운 법이었다. 그렇다고 일일이 가시를 발라내면 그만큼 오랜 시간이 걸려서 짜증이 난다.

 그 정도 수준, 혹은 그것보다 좀  귀찮은 수준의 문제.


아니, 비유가 아니라... 근본적으로도 비슷했다. 빠르게 해치우거나, 조금 늦더라도 적당히 처리하거나 하면 그만일 뿐이라는 점에서는.


또 그 여자 때문에 굳이 감내할 필요도 없었던 일을 해야 한다는 사실이 짜증났지만.

일단 원인이 자신인 만큼 하는 수 없다, 크리샤네아가 그렇게 생각했을 때였다.

그런 크리샤네아의 귓가에 루시아네아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뇨, 원인을 따지고 보면... 애초에 초월자를 허투루 관리한 저희 모두의 탓이니까요.”

“으응~? 저기, 루시아. 우리 모두라고 하는 건 좀~?”


굳이 따지자면 방치한 크리샤네아와 그걸 묵인한 루시아네아, 둘의 잘못이 아니냐고 물으려던 카르네오스의 말을, 루시아네아가 자르며 다시 한 번 말했다.

“모두의 탓이니까요.”

“...으응~ 우리 모두의 탓이 맞지. 응. 우리가 잘못했네~ 아하하...”

“저기, 아냐. 카르네는  항상 분위기를 읽지 못하는 거야?”


“쉿, 언니. 이럴 땐 모른 척 해주는  좋은 거야.”


“......”

속닥이는 아샤네오나와 아냐세오스,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는 샤르비오나를 본 카르네오스가 속으로 눈물을 쏟고 있을 때. 크리샤네아가 말했다.

“...그래서? 모두의 탓이라고 친다고 하고. 어쩔 건데?”

그런 크리샤네아의 말에 루시아네아가 기다렸다는 듯이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말했다.

“모처럼이니까, 연습이라도 할까요. 사실 그녀는 저희 대에서 처음으로 나타난 초월자. 관리하지 못한 것은 저희들이 아직 경험이 부족해서 그런 탓도 있으니까요.”

“...연습?”


연습이라던가, 훈련이라던가는 이미 한참 어릴 적에나 듣던 소리였기에 고개를 갸웃하는 크리샤네아와

“응? 뭔가 재밌는 이야기 같은데 아냐?”


“응, 언니. 그래 보이네.”

어디까지나 유흥에 관해서는 민감한 쌍둥이 자매.


“연습이라~ 그냥 크리샤네아한... 아니, 연습, 좋다구~ 아하하~”

자의가 아닌 듯해도 적극적으로 동의해오는 카르네오스와


“.......”

그저 침묵한 채로 빤히 바라만 보는 샤르비오나까지.


제각각의 반응을 보이는 자매들을 보고서. 루시아네아가 입을 열었다.


“결론만 말해서 목줄의 역할은 별 거 없어요. 초월자를... 저희들이 원하는 대로 움직이게만 만들면 그만이니까요. 그러면 그렇게 하면 그만이죠. 다들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이제와서 목줄을 채우는 것은 무리니까, 다른 방식으로, 이번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다른 방식이라면?”


“아무거나 상관없어요. 예, 아무거나. 큰 소란이 일지 않는 범위 내에서라면 무엇을 어떻게 하던.”

초월자를 원하는 대로 움직이게 하면 된다.

방식은 자신들이 원하는 대로.

뭔가 재미있어 보이면서도, 동시에 귀찮아 보이는 일에 다들 어쩔까, 고민하고 있을 때, 루시아네아가 입을 열었다.

“아아, 그래요. 그냥 하면 재미가 없을 테니까.”

내기라도 하는 건 어떤가요, 그렇게 말한 루시아네아의 말에 고민하던 드래곤들이 하나 둘 입을 열었다.


“...나야 귀찮은 일을 더는 셈이고, 뭐 좋아.”


“결국, 논다는 거잖아? 모두 모여서 노는 건 오랜만... 아, 아르카는 어떻게 하고?”


“언니, 아르카는 지금 다른 의미로 ‘놀고’있을 테니까 걱정 마.”


“에...? 아르카 혼자서만? 치사하게!”

“으응~ 귀찮을 것 같은데... 끼지 않는 건... 응, 알고 있었으니까 그렇게 보지마~”

대부분 동의하는 자매들의 모습을 보고서, 루시아네아는 샤르비오나를 바라봤다. 아직까지도 무표정하게,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샤르, 당신은 어때요?”


그래서 그렇게 묻자. 샤르비오나가 입을 열었다.

“...내기에서  상품은?”

드래곤들의 입장에서, 가장 요점을 찌르는  말에. 다들 떠들고 있던 입을 다물었다.

“...그건, 고민이네요.”

루시아네아조차도 입을 다물었다.

자그마치 다섯이나 되는 드래곤이 하는 내기다. 내기의 내용이야 어찌됐건, 상품은 중요한 법이었다.

적어도, 모두가 만족할 만한 상품이어야 하는 법이니까.

취향도, 개성도 다른 모두가 만족한다는 명제부터가 난감하긴 했지만.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이 있다면...

‘이지경님과 보낼 수 있는 시간, 정도려나요.’


하지만 그건 형편상의 문제가 있었다. 적어도 지금의 시점에서 그런 상품에 매력을 느낄만한 것은 크리샤네아와 자신뿐이니까.


그렇다고 보화를 거는 것도, 딱히 구미가 당기는 것도 없고...

생각지 못한 난적에 루시아네아가 고민하고 있을 때였다.

끼익, 하고 문을 열리고서.


에루나가 들어오며 말했다.

“이야기는 들었습니다. 그럼, 상품으로 이건 어떻습니까?”


양 손에 무언가를 들고서.

“...뭘 어떻게 하자고 했었지, 루시아?”

“...이거, 진지하게 해야겠네요.”

돌연 분위기가 살벌해지는 두 드래곤을 보고서, 카르네오스가 떨떠름하게 물었다.


“에루나~ 그게 뭐길래 저러는 거야~?”


“좋은 겁니다.”

“좋은거라니~ 어디에~?”

“여러모로 좋은 겁니다. 후일, 아시게 되실 겁니다.”

두루뭉술한 에루나의 대답에, 카르네오스가 고개를 저었다. 더 물어봤자 알려줄 것 같지 않았다. 거기에, 잘은 모르겠지만 루시아나 크리샤가 저렇게도 갖고 싶어 하는  보니 썩 좋은 ‘상품’이라는  분명했다.


뭐가 좋다는 건지는 도통 모르겠지만.

“뭐, 재밌으면 그만이니까! 그렇지 아냐?”


“응, 그렇네 언니. 마침 두 개기도 하고, 우리가 이기면 하나씩 나눠가지면 되겠고. 아, 혼자서도 다 쓴다면 쓸 수 있겠지만?”

역시나 상품의 정체에 대해서는 잘 몰라 보이는 아샤네오나와 뭔가 아는 게 있어보이는 아냐세오스까지 그렇게 말하는 것을 보고서, 카르네오스도 더 이상 고민하지 않기로 했다.


“응~ 힘으로 하는 게 아니라면야~? 나도 승산이 있으려나~ 루시아는... 뭐 어떻게든 되겠지~”

일단 내기에서 이기고  뒤에,  상품이란 것을 얻고 나면, 그때부터 생각하면 그만이니 말이다.


그렇게 에루나가 건 상품을 모르면서 태평하게 그렇게 말하는 자매들 뒤로 하고.


꾸욱, 하고.


어느 샌가 에루나에게 다가온 샤르비오나가, 자신의 키 정도로 줄어들은 에루나의 치맛단을 잡아당겼다.


보랏빛 머리카락의 소녀로 밖에는 보이지 않는 골렘이 그런 샤르비오나를 보며 말했다.

“샤르 아가씨, 무슨 일이십니까?”


“...그거 진짜?”


무엇이 진짜인지 묻는지는 안 봐도 뻔했다. 그런 샤르비오나의 질문에 에루나는 여느 때처럼 태연한 얼굴로 대답했다.


“네, 직접. 주인님께서 주무실 때 본뜬 실물 사이즈입니다.”

“...크네.”

“작은 것도 있습니다. 이보다 더 큰 버전도 있습니다만, 보시겠습니까?”


그렇게 말하고서, 예의 그것들을 꺼내 보이려고 하는 에루나를 보고서 샤르비오나가 고개를 저었다.

“...됐어.”


그리고서 자매들을 바라봤다. 에루나가 들고 온 물건의 정체를 곧바로 알아채고서 무척이나 진지해진 루시아네아나 크리샤네아가 그런 샤르비오나의 눈에 비쳐보였다.


그리고  옆에서 반대로 아무것도 모르지만 그냥 좋겠거니 참가한 다른 자매들도 보였다.

그렇게 한참을, 한참을 자매들을 바라보던 샤르비오나가 꾸욱, 하고. 다시 에루나의 치맛단을 잡아당기고서 물었다.

“......그것보다 큰 것도 실물 사이즈?”


그런 샤르비오나의 질문에, 에루나가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태연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아뇨.”

자그맣게 고개를 저으면서.

“아무래도 그걸 구현하기엔 무리가 있어서 조금 줄인 사이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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