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82화 〉182화 (182/370)



〈 182화 〉182화

그리고 엘리시스의 다음 표적이 된 천신교의 추기경, 발렌시아가 자신에게 보내져오는 엘리시스의 시선에 식은땀을 흘렸다.

그는 엘리시스를.

드네아 공작가의, 소문만 무성했던... 실질적인 주인인 그녀를 이번에 처음 본 것이었다.


아니, 사실상 이곳에  이들의 절반정도는 그러했다.

이곳에 모인 이들 중에서 반은, 여러 사정으로 바뀐 이들이었으니 말이다. 몇몇은 성녀 아리스의 실종과 관련조차 없는 이들도 있었다. 그런 이들 역시 자신과 마찬가지로 아까부터 엘리시스가 보내오는 압박에 식은땀을 줄줄 흘리고 있었다.


물론 간접적으로나마 관련이 있는 발렌시아만큼의 압박은 없었다.


반대로 말하자면, 지금 발렌시아가 받는 압박감은 다른 이들의 배는 더 무겁다는 소리였다.


“응? 뭐했냐니까?”

웃는 얼굴로 그렇게 묻는 엘리시스를 보고서. 발렌시아는 침을 삼키고서 대답했다.


“조, 조사단을 꾸려서, 이미 그녀가 실종된 곳으로 보내서 조사를 시킨 뒤요.”


“응, 그래서?”

“그, 그리고... 그곳에서, 돌아왔던 이들의 말대로 대규모로 움직인 마물들의 흔적을 발견해...”

발렌시아의 말이 끝마쳐지기 전에, 엘리시스의 시선이 다시 황제에게로 향했다. 일련의 행위에 발렌시아의 안색이 새파래졌다.

황제도 마찬가지로. 안색이 새파래졌다.

그런 둘의 얼굴을 본체도 하지 않고서. 엘리시스가 입을 열었다.


“저기, 동생아.”


“...불가! 천신교의 추기경을 죽이면 내가 곤란해지오. 이건 절대로   없소.”

“왜, 너도 쟤네 싫어하잖아. 허구헌날 헛소리나 하는 작자들이라고.”

“그건 그렇지만...”

“폐하!?”

황제의 신앙고백에 발렌시아가 기겁했다. 그가 자신이 믿는 종교를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는 고백을 들어서가 아니라, 순전히 자신의 목숨 줄이 황제에게 달려있기 때문이었지만.

하지만 황제의 이어진 말에 그나마 아예 파랗게 질렸던 발렌시아의 안색이 조금은 돌아왔다.


“백성들의 태반이 천신교를 믿고 있지 않소? 그리고 짐은 그들의 황제요. 어버이가 된 자로서 자식들이 좋아하는  하나쯤은 남겨줘야지.”


“그냥 지가 종교를 탄압한 황제가 되기 싫은 것뿐이면서 변명은 무슨. 지랄도 풍년이네.”

“......”


엘리시스의 막말에도 황제는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틀린 말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아무리 자신이 제국의 황제라고 해도 가능한 것과 불가능한 것이 있는 법이었다.

예를 들어, 방금 것처럼. 아무런 명분도 없이 천신교의 추기경인 발렌시아를 죽이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아니, 가능은 하겠지만 골치가 아파지는 일이었다.


제국은 강하기 때문에 제국이었지만. 제국이기에 불가능한 것도 있는 일이었다.

제국은 홀로 제국일 수 없었다.

라이어스 제국, 그 밑으로 다섯의 왕국이 있고, 하나의 공국, 드네아 가가 있었다.  외에도 넓은 땅덩어리는 제각각의 대영주들의 관리에 있다. 하나의 거대한 집합. 그래서 비로소 제국이었다.


이미 제국의 백작이자, 검주 중 하나인 백작의 목을 베기로 약속한 황제로써는 거기서 일을 더하고 싶지 않았다. 이미 그것만 해도 두통이  정도였는데, 여기에 더해서 제국 전체의 절반을 넘는 이들이 믿고 섬기는 종교의 추기경을 벤다?

나는 황제가 하기 싫다고 대전 앞에서 땡강을 피우는 것이  나은 일이었다.

그런 황제를 보며, 엘리시스가 투덜거렸다.


“생각해보니까 다 마음에 안 드는 것뿐이네?  우리 가문의 검을 지들 마음대로 가져가서 보물로 삼고, 그 검이 아리스를 선택했다고 내 귀여운 딸을 성녀니 뭐니하면서 데려가? 게다가... 이번에는 그 딸이 실종까지 했네?”

천진난만한 목소리로 이어지는 엘리시스의 말에 발렌시아의 안색이 시퍼래지기 시작했다.


그의 몸 위로 내리눌러지는 기운에 숨통이 조여온 탓이었다. 이대로가면 그대로 정신을 놓아버린다, 아니 어쩌면... 그런 공포심에 발렌시아가 필사적으로 대답했다.


“처, 천검은 선선대의 드네아 공작께서...”

“누가 그걸 몰라서 그래? 그리고 그때는 그 검이 아무것도 아니였으니까, 그냥 줬던 거고. 그게 그런 게 될 줄 알았으면 안줬겠지.”


천검.

용사왕 제임스가 사용했다던 검으로 알려진 검은 그냥 평범한 철검이었다.

마왕을 베었다고 하기엔 지나치게 평범한 그냥 검.

그것이 갑자기 이상해진 것은 극히 최근의 일이었다. 정확히는... 아리스가 태어난 뒤에 그렇게 변해버렸다. 그 전까지는 그냥 용사왕이 사용했던 검, 마왕을 베었던 검이라는 상징성만 있었을 뿐이었다.


강철을 두부처럼 가르는 미스릴로 된 검도, 지 혼자 날아다니면서 적을 베는 에고소드도 아닌, 아무것도 없는 평범한, 조금 튼튼할 뿐인 검.


선선대의 드네아 공작에게, 그런 검을 막대한 재물과 함께 거래하자고 했었던 천신교에게. 그럼 그래라, 하고 넘겼던 것도 엘리시스는 이해하고 있었다.


엘리시스가 기억하고 있는 선선대의 드네아 공작... 정확히는 그녀의 할아버지이기도 한 이의 성격상 그러고도 남았으니까.


어쩔 수 없었으리라.  당시의 공작부인이기도 했던 엘리시스의 할머니... 그러니까, 당시 실질적인 드네아 공작가의 주인이었던 이는 워낙 깽판을 자주 치던 분이었다.


그걸 돈으로 수습하던 것이 할아버지였으니 막대한 돈을 주고서 그냥 철검일 뿐인, 천검을 달라했던 천신교의 부탁을 들어준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였지만.


엘리시스로써는, 천신교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아리스의 일이 아니더라도, 마음에 들지 않는  투성이었다.

애초부터 교리부터가 그러했다. 천신교의 교리에서는 여성을 약자로, 보호받아야할 대상으로 보는 경향이 있었다. 혹은... 여러모로 좋지 않게 취급하기도 했다.


힘에는 성별 같은 게 중요하지 않다.

그냥 강하면 강한 거고, 약한 것은 약한 것이니까.


수련을 통해서, 얼마든지 뒤바뀔 수 있는 역학이었다. 더욱 많은 힘이 필요하다고 하지만, 그럼 그만큼 더 하면 그만일 뿐.


드네아가에 얽혀있는 저주에 의해, 여성밖에 태어나지 않는 드네아가로서는 아무래도 천신교와는 사이가 좋아질래도 좋아질 수 없었던 것이다.

게다가 이번에는 자신의 딸아이에 대한 것까지 얽혀있고.


그래서 말했다.


“아무튼 너희, 똑바로 해. 얘가 지 황제 오래 해먹겠다고 자꾸 말을 안듣는데... 솔직히 너희는 나 혼자서도 지워버릴 수도 있으니까.”


그 말에 꿀꺽하고 침을 삼키는 발렌시아를 보며, 그렇게 말한 아리스가 말을 이었다.

“그래서, 마물들의 흔적이 발견됐는데... 아리스의 흔적은 없었다는 거지?”


“그, 그렇소.”

그 말에 엘리시스가 곰곰히 생각하다가, 이내 피식하고 웃었다. 그런 엘리시스를 발렌시아가 아연하게 쳐다봤다.


제 딸아이가 실종됐다는 사실에, 그리고 흔적조차 발견할 수 없었다는 소리에 웃는 어미를 본 자라면 그럴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런 발렌시아의 표정을 본 엘리시스가 말했다.


“왜 그렇게 봐? 솔직히 말해서... 너도 네가 한  웃기잖아?”

“그, 그럴 리가 없지 않소? 아리스... 드네아 공녀는 우리 천신교에서도 소중한...”


“그런데 실종되도록 내버려뒀어?”

“그건 아리스 공녀가 갑자기 뛰쳐나가서... 게다가 마물이...”

어째 변명하는 모양새로 발렌시아가 엘리시스의 말에 반박했지만, 그런 발렌시아를 보며 엘리시스가 폭소했다.

그러다가 뚝, 마치 고장 난 인형처럼 웃음을 멈춘 엘리시스가 말했다.

“마물, 그래. 마물. 위험하긴 하지. 평범한 사람들이라면 아주 위험해. 아주 많이 있다면, 아리스라도 위험할 지도 몰라. 그런데... 그게 아니었잖아? 그렇지, 여보?”


엘리시스가 그렇게 말하고서, 뮬런을 바라봤다.  시선에 뮬런이 입을 열었다.


“...딸아이를 포함해서 검주가 열, 고위마법이 가능한 마법사가 셋... 그 외에도 다수의 실력자들이 함께였었지. 아무리 마물들이 떼거지로 온다고 하더라도... 솔직히 말해서 아리스 혼자만 실종됐다는 건 말이 안 되는 일이지. 심지어... 돌아온 자 중에서는 아리스의 시녀 또한 있었다.”


뮬런의 말에, 엘리시스가 그것 봐, 하고 말했다.


“들었지? 너는 어떻게 생각해? 평범한 시녀가 마물 사이에서 살아남는 게 쉬울까? 아니면 검주인 아리스가 살아 돌아오는 게 쉬울까?”


평범... 하다고 하기엔 그 시녀도 딱히 평범한 이는 아니었지만. 엘리시스는 속으로 그렇게 중얼거렸다.


그 시녀 역시 드네아가의 피를 이은 아이이기 때문이었다. 아니, 말하자면... 드네아가에서 종사하는 이들 중의 신원불명의 여성들. 그녀들 대부분이 드네아가의 혈족들이었다.

물론, 검주인 아리스나 자신에 비한다면 평범한 여자인건 맞았다. 게다가  시녀는 평생을 시녀로 살아왔기 때문에 투기도 피울 수 없는 몸이었다.

그렇다해도 평범한 사람의 목을 베는 정도는, 충분히 할 수 있겠지만.

“하, 하지만...”


중요한 건, 표면적으로 드러난 사실로 상대를 압박하는 거면 그만이었기에 엘리시스는 변명조차 못하고서 쩔쩔 매는 발렌시아를 바라봤다.

그리고 입을 열었다.


“아, 됐어.”

발렌시아가 변명하기도 전에 엘리시스가 그렇게 말하고서, 천천히 몸을 일으켜 세웠다.

“누님?”

“어머니...?”


“여보...? 이상한 짓 하려는 건 아니지?”


그나마 엘리시스의 본질을 알고 있는 셋이, 그런 엘리시스를 불안하게 바라보자, 엘리시스가 말했다.


“그냥 내가 찾는  편할  같으니까. 아리스의 엄마인 내가 찾는 게 맞는 것 같기도 하고. 그러니까, 아리스에 대한 것은 내가 알아서 해도 되지?”


그녀의 진짜 힘을 알고 있는 세 사람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엘리시스 드네아.

그녀가 드네아 가문의, 실질적인 제국의 주인이기에 황제가 쩔쩔 매는 것이 아니었다. 뮬런이, 보레아스가 그토록 아무런 말도  수 없는 것이 아니었다.


황제만 해도, 명령만 하면 수백이 넘는 기사와, 수십의 검주를 부릴 수 있었다. 뮬런 또한 드네아 가에 소속된 검주가 셋. 보레아스는 그녀 자신이 검주이고, 거기에 준하는 기수 오십을 이끄는 기사단의 단장이었다. 힘은 충분하다 못해 넘치도록 있었다.


하지만 그런 무력은, 그저 무력할 뿐이었다.

엘리시스 앞에서는, 태양 밑의 등불 수준의 미약한 재롱정도에 불과했으니까.


그야 그럴 것이. 그녀는 라이어스 제국, 아니. 현 시대의 인류의 유일한 존재였기 때문이었다.


“응? 해도 되지?”


히죽하고 웃는 얼굴로, 그렇게 말하는 엘리시스를 본 이들은 그런 그녀의 눈에서 일렁이는 푸른빛에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었다.


그녀가 보인 경지에, 여태껏 느꼈던 압박의 진실과 도저히 범접할 수 없음을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육체의 힘을 극한으로 끌어올리는 것이 투기였다.


그리고 그런 투기를 유형의 칼날로 만들어 검 끝이나 신체에 두르는 경지가 검주였다. 육체를 극한으로 강화, 거기에서 신체 자체와 무기를 강화시키는 경지. 이를 넘어서야지만 비로소 검주가 될 수 있는 것이었다.


그런데 엘리시스가 보인 것은 그런 둘 모두에도 해당되지 않았다.

푸른 기운이, 투기가 불꽃처럼 일렁거렸다.

그녀의 시선이 닿은 곳곳에. 스무 명의 주위 곳곳에. 그저 일렁거렸다.


육체를, 형태를 벗어던지고 투기 그 자체를 부리는 경지.

그것도, 원한다면 그곳이 어디던간에. 다르게 말하자면, 어느 곳에서, 어떤 식으로든 투기를 이용할 수 있는 경지.

그건 즉...


새파란 것을 넘어서, 시꺼멓게 죽은 얼굴로. 발렌시아가 대답했다.


“뜨, 뜻대로 하소서. 초월자시여.”


종족이란 이름으로 가둘  없는 개인으로써 특이하고 특별한 존재. 개개인 하나하나가 위업을 쌓아올려 세계를 변화시키는 자들.

엘리시스 드네아.

그녀는 초월자였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