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81화 〉181화 (181/370)



〈 181화 〉181화
그 모습이 조금 안쓰러워서 내가 말했다.

“혹시 모른다는 거지 확실한건 아니니까 그렇게 걱정할 필요는...”


“...없는 거야아?”


“없다는 건 아니고...”


내가 말하면서도 참 믿겠다 싶을 만큼 어중간한 말이었다.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일을 미리 알 수 있을 리가 없었다. 나로써는 일단 제법 많은 마력을 부어넣었으니까 당분간은 멀쩡할 거라고 생각할 뿐이지 확실하게 대답해줄 수는 없다는 거다.

게다가... 방금처럼 조금 흘러나왔을 뿐인데도 맛탱이가 가는 걸 보면 혹시나, 라는 게 있는 거였다. 오랫동안 잠들어있던 탓인지  반동으로 평소보다 조금 심하게 정줄을 놓은 모양이라서.

결국 까보지 않는 이상 나도 모른다는 거였다.

“뭐, 그래도 저 상태라면 일어나기까지  걸릴 테니까. 그 전에 회복해서 자리를 뜨면 되지 않을까?”


그런 내 말에 에네스타에게서 멀어지는 아르카를 보였다. 그래봤자 허리가 풀려서 제대로 서지도 못하는 아르카가 멀어져봤자 얼마나 멀어졌냐마는. 아무튼 경고도 했겠다 그런 아르카를 보고서 내가 말했다.

“그럼, 푹 쉬고 있어. 조심하고”


“자, 잠깐마안... 아, 그래. 차라리 나도 데려...”


 밖으로 나서는 뒤로, 아르카가 뭐라고 말하는 목소리가 들렸지만 듣지 않은 걸로 치기로 했다.

혹시라도 에네스타가 깨어났다 싶었을 때. 주위에 아무도 없다면 곧장 나를 찾으러 올게 분명하니 아르카를 데려가 봤자  의미도 없을 테고.

아무튼 데려가도 아까의 반복, 그 이상도 아닐 테니 그냥 두기로 한 것이다.

그게 아니더라도, 에네스타가 깨어났을 때 불행하게도 아르카가 도망치지 못한 상태라면... 음, 정말로 불행하게도 내게 있어서는 나름 좋은 시간 벌이가 되어주는 셈이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에네스타는 아르카가 마음에  모양이고... 원래는 엘프여서 그런가? 숲의 보옥을 지배하고,  그에 관련된 마법을 다루는 아르카와 상성이  맞아서 그런 걸지도 모르겠다.

“아무래도 좋지만... 끄응!”

요는 귀찮은 일을 떠넘길  있느냐 없느냐였다.

기지개를 키자, 뿌득뿌득하고 뼛소리가 울렸다. 오래간만에 제대로 몸을 풀었더니 몸이 가벼워진 기분이었다.


착각이 아니라, 정말로 가벼워진 걸지도 모르겠다. 쌓였던 걸 이참에 모두 쏟아냈으니.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내 몸무게도 꽤나 줄어들지 않았을까.

아무튼.

“자, 이제 공주님들을 깨우러 가보실까.”


겸사겸사 덤으로 둘... 아니, 셋이었지 참.


가끔가다가 정말로 착각하는 슈슈의 성별을 떠올리면서. 쓸데없이 시간을 오래 끌어서 아직까지도 잠에 든 아이들을 깨우러 발걸음을 옮겼다.

“어째서 벌써어?!”

그런 내 뒤로 비명소리인지 뭔지가 들려온 기분이 들었지만. 문 너머로 벽이 무너져도 아무런 소리도 나지 않는 천공성의 방음을 뚫을 비명소리가 있을 리 없으니 아마 착각일거다.

“ㅡㅡ?!”


그렇게 여기기로 하고서, 등 뒤로 들려오는 소음을 무시하고서. 나는 아이들을 깨우러 서둘러 발걸음을 옮겼다.








《???》

성녀 아리스.


천신교의 보물, 한 때... 용사왕 제임스가 사용했다고 알려진 검. 마왕을  검으로 유명한 ‘천검’의 선택을 받은 어린 검주.

그녀의 실종은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가장 먼저 그들이 움직였다.


인간들의 제국이.


라이어스 제국이.

원탁을 사이에 두고서.

능히 스스로도 다른 이들의 입으로도 제국이라고 부를 수 있는 이들이 한 곳에 모인 것이었다.


라이어스 제국의 필두 기사단, 용갑기사단의 단장 용기사 보레아스.

천신교의  1 추기경, 광명의 발렌시아.

라이어스 제국의 재상, 철혈의 뮬런.


거상 미하엘. 용병왕 바란, 무의 방랑자 데나...

이름을 말한다면 라이어스 제국의 누구라도 알만한 이들이 서로를 마주보는 형태로 자리에 앉아 있었다.


가진 재산이 제국의 몇  치 예산에 필적한다는 거상과 1만에 가까운 용병을 이끄는 용병단장, 맨주먹으로 검주에 비등할 무력을 지니고서 세계 곳곳을 누비고, 그의 제자만 수천이 넘는다고 알려진 방랑자.

 밖에도 제각각의 ‘이름’을 가진 이들이.


모두 합쳐서 스물.

다르게 말하자면, 스물이나 되는 거대한 세력의 주인들이였다.

일신의 무력으로든, 막대한 금력으로든, 혹은 일인지하의 권력으로든, 하나의 힘을 갖춘 이들이 한곳에 모였다.

그리고 그들 중 하나가.


제국의 황제가.

침묵을 지키며 자리에 앉아있었다.


그들과 마찬가지로 원탁을 중심으로 하고서.


그들과 마찬가지로, 같은 위치에서 서로를 마주보는 형태로 앉아있었다.


아무리 이곳에 모인 스물이나 되는 이들이, 제국이라 불려도 손색이 없는 이들이란 것은 맞았지만, 제국의 황제는 그 자체만으로도 제국이었다.


그의 발언만으로도, 여기에 모인 이들의 목이 다음날에 매달려도 이상할 것이 없는 권력자인 것이다.


그런 이가, 원탁의 상석을 비워둔 채로 있었다.

낮게 침묵이 가라앉았다.

이들 중에선 이 모임이 처음인 자들도 있었다. 세대가 변하든, 담당자가 바뀌었든, 여러 가지의 이유로. 하지만 그런 그들조차도 지금은 침묵을 지켜야한다는 것을  수 있었다.


모두가 그러고 있었으니까.


누군가를 기다리듯이.

그저 그렇게, ‘기다려’를 들은 사냥개처럼. 기다렸다.


또각, 또각.

그런 그들의 귀에 발소리가 들려왔다.

제각각 왕과도 같은 권력을, 힘을 누리고 있는 이들을, 그리고 표면적으론 그들 모두의 주인이기도한 제국의 황제를.

한없이 기다리게 하고 있던 이의 발소리가.


나지막하고, 여유롭게. 느릿한 템포로 들려왔다.

이윽고 발소리가 멈추고서. 그들이 기다리고 있던 곳의 문을 여러 시종 기사들이 열어젖히자.

그들이 기다리고 있던 존재가.

제국의 황제조차, 침묵을 지키며 기다리고만 있던 이가 들어왔다.


“...오셨어요, 어머니.”

“왔소? 부인.”

그리고 그런 이를 향해 자리에 앉아 있던 둘이 몸을 일으키며 그렇게 말했다.

스무 명 중에서 두 명. 단순 계산만으로도 모두의 일할에 해당되기도 하는 이들이, 하지만 단순히 계산하기엔 너무나도 큼직한  명이 움직였다.


라이어스 제국의 필두기사이자, 홀로 드레이크를 죽여 용기사로 불리는, 가문의 원칙을 따라서 가문의 이름을 등 진 기사. 보레아스 드네아가.

혼자서 제국의 업무의 반을 통괄한다고도 알려져 있는 잠을 자지 않는 라이어스 제국의 재상, 철혈의 재상이자... 드네아 가의 데릴사위이기도 한 뮬런 드네아가 직접 몸을 일으켜서 인사하는 것도 모잘라서.


그런 둘의 인사가 끝나고서.

여태까지 침묵을 고수하던  또한 입을 열었다.

“...드디어 오셨구려. 몇 년 만에 보는 건지 알 수가 없을 정도인데 발걸음이 여전히 느리시군. 오랜만이오. 누님.”

자리에 앉아있던 라이어스 제국의 황제가.

그들이 한참을 기다리고 있던 이에게 말했다.

다시 찾아온 것은 침묵이었다. 먼저 입을 연 세사람을 제외하고서, 다른 이들은 입조차 뻥끗할 수 없었다. 무언가가 숨통을 틀어쥔 것처럼, 도무지 입이 열리지 않았다.


그리고 그런 그들의 귓가에.


“내가... 조금 늦었네?”


처음으로 입을 열어 그렇게 말했다.

‘그녀’가.


엘리시스 드네아.


황제조차도 함부로 대할 수 없는 자.


실질적인 제국의 주인인, 드네아 공작가.

그리고 그런 공작가의 주인인 뮬런을 제치고... 드네아 공작가의 실질적인 주인.

“미안해? 혹시 화난 건 아니지?”


제국의 기사단장 보레아스 드네아와 천검의 주인 아리스 드네아의 어머니. 동시에 제국의 재상의 아내이기도 하며, 황제의 누이이기도 한, 드네아 공작부인이 그렇게 말했다.


황제의 반쯤 빈정이 섞은 말을 태연하게 쳐내고서. 내가 잘못했다면, 잘못했다고 말하라는 듯이. 또각또각, 발소리를 내며 천천히 자기의 자리에 착석했다.

그리고 말했다.

“그래서... 우리 딸, 귀여운 아리스가 실종된 지가 얼마나 됐다고 했었지?”

그들이 여기에 모여 있던 이유를, 제일 먼저 늦게 온 주제에 아무렇지도 않게 꺼낸 엘리시스를 보고서 황제가 질린 표정을 지었다.

그녀가 늦는 거야 이번이 처음인 것도 아니고, 저리 뻔뻔한 것도 처음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황제는 질려버렸다.


자신의 딸이, 피붙이가 실종되었다는 사실에도. 그런데도 대체 얼마나 시간이 지났는지도 모르겠다는 듯이 말하는 엘리시스를 보고서.


그런 존재란 것을 알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질릴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런 감상을 품은 것은 부득 황제만이 아니었다. 다들 그런 엘리시스를 괴물을 보듯이 바라보고 있었다.


실제로도 괴물이 맞았지만.

황제는 그런 속마음을 감추고서. 모두를 대신해서 입을 열었다.


“누님... 아무리 그래도, 당신의 딸이지 않소?”


그걸 당신이 몰라서 되겠냐는 듯이. 그렇게 말한 황제의 말에 엘리시스가 말했다.

“여기 있는 뮬런의 딸이기도 하잖아. 왜 나한테만 뭐라 그래? 여보, 쟤가 나보고 뭐라 하는데  기회에 황제 해볼래?”


“부인, 그건 좀... 나는 내 집이 좋으니까 사양하고 싶은데...”

엘리시스의 말에 화들짝 놀란 뮬런이 그렇게 대답했다. 여기서 황제가 되고 싶냐는 엘리시스의 말에 그렇다고 대답하면, 당장 반역도로 몰릴  있어서 그런  아니었다.

정말로 되어버리기 때문에 문제였다.

드네아의 주인인 엘리시스가 원한다면.

라이어스 제국의 황제는 바뀔 수밖에 없었다.

실질적으로 용사왕 제임스의 피를 가장 짙게 물려받은, 정통의 후계자가 드네아였으니까. 본래 라이어스 제국의 뿌리는 드네아가에서 멎었고, 나머지는 전부 곁가지였으니 말이다.

그런 뮬런의 말에 엘리시스가 말했다.

“응, 나도 그냥 해본 말이였어. 어차피... 당신이 황제가 된다치더라도 후계 문제가 복잡해지니까.”


그 말에 뮬런이 쓴웃음을 지었다.

드네아 공작가에 얽혀있는 저주가 떠오른 탓이었다. 정확히는 드네아 공작가가 아니라, 몇몇 이들에게 한정되어 있는 저주였지만.

눈앞의, 자신의 부인이기도 한 엘리시스와 그녀와 자신의 사이에서 태어난 두 딸.

제국의 필두기사이기도 한 보레아스와 천신교의 성녀인 아리스.


 외에도... 드네아 공작가가 생겨난 지도 거의 400여년이 지났고, 많은 이들이 태어났었던 만큼 여럿이  있었지만, 공식적으로 드네아 공작가의 일원이라 부를  있는 이들은 그녀들이 끝이었다.

나머지는 만약의 만약을 위한... 예비였다. 이름도 없이, 그저 그림자처럼 숨어 지내는 이들.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그녀들은 눈앞에 있는 엘리시스와, 아리스, 하물며 보레아스와 비교해도 솔직히 말해서 예비의 축에 들지도 못할 정도로 비교되는 이들이었다.


같은 피를 잇고 있다고는 생각도 되지 않을 정도로.

...특이한 건 이쪽이고, 저쪽이 평범한 거였지만 말이다. 아니, 평범한 것도 아닌가. 세상에 스물이 되기도 전에 투기를 피어 올리는 미친 혈통을 가진 존재들을 평범하다고는 할 수 없었다.

자신의 피를 이은 두 딸은 그마저도 넘어서, 열다섯이 되기도 전에 그런 미친 짓을 해버렸지만. 그건 자신의 피가 대단한 것이 아니란 것쯤은, 뮬런은 자신의 주제파악을 무척이나 잘하고 있었다.


“그래서, 아리스가 실종된 지가 얼마나 지났냐니까?”

그도 그럴 것이, 그런 두 딸의 어머니가 바로 저 여자였으니까. 재차 물어오는 엘리시스의 말에 쓴웃음을 지으며. 뮬런이 대답했다.

“...가장 먼저 돌아왔던 이를 기준으로 따진다면, 이주일은 지났지.”

“가장 먼저라... 그게 누군데?”

“변경의 백작을 하고 있는 검주, 막...”

“아, 걔?”


뮬런의 말이 채 끝나기 전에 누군지를 떠올린 듯 그렇게 중얼거리던 엘리시스가 황제를 보며 말했다.

“저기, 동생아. 부탁 좀 해도 될까?”


“...무얼 말이오?”

꺼림칙한 얼굴로 그렇게 되묻는 황제에게, 엘리시스 말했다.

“걔, 죽어도 되지?”


“죽...?! 하, 하지만 그는 검주요. 그런 그가 죽으면 제국으로써는 막대한 손실이...”

“오십 줄이  되서 겨우 검주 초입에 든 사람이 그렇게 아까워? 아니면 뭐야?  부탁을 들어주기 싫다는 거야? 검주가 필요한 거라면, 대충 한명 내놓을게. 그럼 됐지?”

“내놓는다니... 누님, 검주가 그렇게 막 내놓을 만한 이들이...... 설마?”


“얼굴이야 숨기면 되고, 가슴도 뭐... 붕대로 대충 묶으면 되잖아?”

“잠시만, 여보?”


“한명이야, 한명정돈 괜찮잖아?”

드네아 가의 그림자. 예비라고는 해도 똑같은 저주를 받은 혈통의 일원을 밖으로 내놓겠다는 엘리시스의 말에 뮬런이 기겁했지만, 막을  있는 방법이 없었다.

황제조차 못 막는데 하물며 재상인 그가 막을  있을 리가 없었다. 남편이라고 해도, 아니 오히려 남편이라서 사려야하는 입장이었다.


드러눕는 것이 침대가 아니라 관짝이 되기 싫다면.

“...으음. 알겠소, 누님. 다만, 죽이는  당사자, 백작뿐이오.”


“응응. 그거면 충분해.  해야 한다? 안 그러면 이 누나가 혼내 줄거야.”

천진난만하게 그렇게 말하는 엘리시스를 보며 황제는 자기도 모르게 목언저리를 쓸어내렸다.

마치 그러지 않으면 널 죽이겠다, 그렇게 말한 걸 들은 것처럼. 설마 그러지는 않겠지만, 엘리시스가 스리 슬쩍 흘린 살기는 결코 농담으로 받아들여지지 않는 것이었다.

“그래, 그래. 그래서, 아리스가 실종된 지 그렇게나 지났는데... 그동안 너흰 뭐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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