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69화 〉169화 (169/370)



〈 169화 〉169화

아르카와 크리샤 덕분에 난장판이 되었던 방을 에루나가 정리하는 사이에 훌쩍 시간이 지나서 크리샤가 예정해뒀던 시간이 되었다.


돌아갈 시간이 되었다는 것이었다.


방에 마련되어 있는 마법진 위에 선 크리샤가 나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잊지 마, 첫 번째는 누가 뭐래도...”

“크리샤 너라고?”


말을 빼앗긴 크리샤가 뾰루퉁한 얼굴로 나를 흘겨봤다. 그런 크리샤를 끌어당겨 품에 안은 내가 말했다.

“잊지 않을 테니까 걱정 마.”


내 말에 불안함이 조금 가신 듯이,  품에서 살짝 고개를 끄덕이는 크리샤를 보고서 나는 공간이동 마법을 준비하고 있는 에루나에게 다시  번 말했다.

“크리샤를 부탁할게, 에루나.”

“걱정 마십시오, 주인님.”

여지없는 태연한 얼굴로 그렇게 말한 에루나가 잠시 뒤에 입을 열었다.

“크리샤 아가씨, 공간 이동 마법의 준비가 끝났습니다.”

지금만큼 에루나가 유능해서 원망스러운 적은 없었던 것 같다. 몇  만에 준비를 마친 에루나의 말에, 크리샤의 표정이 어두워지는 것이 보였기 때문이었다.

“...그럼, 난 이만 가볼게.”


다소 기운 없는 표정을 지으며 말하는 크리샤에게 뭐라고 말하려는 순간이었다.

쪽, 하고. 발돋움을 하며  입술에 기습적으로 입을 맞춘 크리샤가 베시시 웃으며 말했다.

“후후, 바보 같은 얼굴. 그럼 나중에 봐.”

스르륵, 하고 발동한 공간이동 마법에 의해 눈 깜짝할 사이에 사라진 크리샤가 있던 자리를 보며 입술을 더듬었다.


따듯했다.

크리샤는 공간이동 마법으로 이미 천공성에 없었지만, 그녀가 남기고 간 온기는 아직도 남아있었다. 그 온기가 사라질 때까지, 입술을 만지던 나를 보며 아르카가 말했다.

“...역시, 신기한 일이네에. 크리샤가 저런 표정을 지을 줄은 상상도 못했는 거얼.”

재미있다는 듯이, 나근나근한 목소리로 그렇게 말하는 아르카를 보며 물었다.

“그게 그렇게 신기해?”


“그래, 30년도 전부터 항상 짜증만 냈었으니까아.”

30년 전이라...

아직 어린 크리샤가, 아니 지금도 드래곤으로 치면 어린 편이지만 지금보다도 훨씬 어렸던 크리샤가, 인간을 혐오하게  기점이 된 날을, 그때에 있었다는 일을 떠올린 나는 쓴웃음을 지었다.

인간이 보인 너무도 추한 모습에. 자신의 사욕을 위해 아무렇지도 않게 신의를 배신하고, 마냥 어리기만 했던 그녀에게 욕정한 것도 모잘라서,그런 그녀에게 칼까지 휘둘렀던 인간의 이야기를 떠올렸기 때문이었다.

쓴웃음이 더욱 짙어졌다. 덕분에 그녀가 갖고 있던 인간에 대한 호감이, 그녀의 어머니가 그녀에게 전해주었던 기억에 의한 환상이 산산이 부서진 것도 모자라서, 처음으로 손에 피를 묻혔던 크리샤는 지금도 그때의 기억으로 고통스러워하고 있었다.


때때로 잠꼬대로, 그때의 일을 악몽으로 꾸며 괴로워하는 모습을 보았던 나로서는 같은 인간으로써 미안할 따름이었다.

설령 그것이 나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일일지라도, 그저 미안했다.

“...뭐어  덕분에 이젠 많이 괜찮아진 모양이라 다행이네에.”


그런 나를 본 아르카의 중얼거림에 나는 예상외의 것을 들었다는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뭐야아? 왜 그런 눈으로 봐아?”

“아니, 아르카랑 크리샤는 사이가 안 좋다고 생각했거든.”


“안 좋은 거 맞아아.  녀석, 벌써 이십년도 전에 내가 아끼던 나무를 부러뜨렸었거드은. 내가 어릴 적부터 기르던 거였는데 말이지이. 쓸데없이 자존심도 강해서 아직까지도 사과하지 않았고오. 뭐어... 오늘 실컷 놀려서 그런지 조금 개운해지긴 했지만 말이야아.”


변명이라도 하듯이, 그렇게 말하는 아르카를 보고서 알  있었다.

사이가 안 좋다고 생각했었는데, 그런  아니라는 걸 말이다.

드래곤끼리 티격태격하는 스케일을 주변에서 감당하기 힘들 정도라서 그런 것이지. 생각했던 것보다 크리샤나 아르카나 서로 그리 미워하지 않는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뭐, 모르는 사람이 보면... 아니 나도 방금까진 몰랐던 것이지만.

대체 드래곤들은 왜 하나같이 솔직하지 못한 걸까.


“그보다, 정말로 궁금한 거얼.”


자연스럽게 화제에서 벗어나서, 다른 소리를 하기 시작한 아르카였지만, 이래뵈도 한달을 넘도록 루시아와 살아온 몸이었다.


그걸 제외하더라도 어지간한 일로는 표정으로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드래곤과 살을 섞으며 지내온 날만해도 이제 어언 3개월 째, 그녀가 부끄러움을 느끼고 말을 돌리려 하고 있다는 것 쯤은 굳이 상태창을 열어보지 않아도, 아르카의 호감도가 아직 30을 넘지 않았더라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여기서 굳이 그런 티를 내지 않는게 좋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무슨 소리야?”

적당히 아르카의 말을 받으며 묻자 그런 나에게 아르카가 말했다.


“네가 크리샤를 저렇게까지 바꾼 방법이나... 네 몸이 그렇게 된 이유 같은 거어? 그러고 보니... 이상한 체질이 됐었다던가아?”


아르카의 말에, 나는 흘끔하고 옷 밖으로 드러난 내 손등을 봤다.

거기에는, 마치 용화를 사용했을 때와 마찬가지로. 비늘로 둘러싸인 손등이 있었다. 용화 때랑은 달리 형태까지 인간의 것에서 벗어난 것은 아니었지만 말이다.


딱히 용화로 인한 것은 아니었다.

용화보다는 크리샤를 임신시키라던 퀘스트의 보상과 연관되어 있는 것이기도 했다.

용린갑주.

크리샤가 내게도 한 번 보여준 적이 있었던 모습. 인간의 모습으로 드래곤의 힘을 사용하기 위해서 그 반동을 억누르기 위해 취하는 형태의 이름이었다.

본신의 모습일 때는 비늘이 그 역할을 하지만, 인간의 모습으로 폴리모프한 경우에는 갑옷의 형태로  역할을 대신했다.


바로 그것을 보상으로, 기능으로써 습득한 덕분에 일어난 현상이었다.


용린갑주의 역할은 어디까지나 자기보호. 전투와 연관이 되어 있긴 했지만, 갑주라는 이름처럼 보호를 위한 기능이었다.

그리고... 그것이 항시 발동중인 이유는, 지금 내 몸 상태와도 연관이 깊었다.

나는 주머니에 넣어뒀던, 천공성에서 자라고 있는 세계수. 더스드라의 새싹을 입에 물고서 대답했다.

“포식자... 아니, 마력 흡수 말이지?”

“아아, 맞아 그거어. 에루나에게 듣기는 했는데에 대체 뭘하면 그런 몸이 되는 거야아?”


우물우물, 새싹을 씹어 삼키고서 아르카의 물음에 대답했다.

“나도 몰라.”

그냥 됐어.


정말로. 나로써는 자고 일어났더니 그렇게 되어버렸다는 감상밖에 없어서 아르카의 궁금증을 해소시켜줄만한 것이 없었다.

에루나에게 들은 바로는 내가 마왕이 되는 것과 동시에 주변의 마력을 흡수하기 시작해서 그걸 억누르기 위해 내 몸에 드래곤 하트를 심어 넣었고 그 드래곤 하트를 유지하기 위해서 막대한 마력을 필요로 하게  버렸다고는 했지만, 막상 들어도  모르겠는 소리였다.


아무튼 아르카에게서 먼저 그 이야기가 나온 만큼, 마침 잘됐다 싶었다.

“아르카. 에루나한테 그거 말고 들은 건 없어?  체질에 관해서.”


“다른 거어? 글쎄에. 그냥 네가 해달라고 하는 대로만 해주면 된다고만 들었는데에?”


아르카의 말에 이야기해두었으니까 괜찮을 거라고 확답했던 에루나가 떠올랐다.

날 속였구나.

대체 어디가 이야기해뒀다는 건지 전혀 모르겠다... 이래서야 난감한데.

“...뭐, 상관없나.”


에루나 역시 상관없을 거라고 생각하고서, 그렇게 말했을 것이다. 실제로도 그랬다. 딱히 이제 와서, 그런 것까지 신경 쓸 여유도, 이유도 없었다.


아르카에게 다가가서, 입을 열었다.

“아르카, 크리샤가 나에게 빠진 이유가 궁금하다고 했었지?”

“으응? 뭐어, 루시아때도 놀라긴 했지마안, 다른 녀석도 아니고 크리샤마저 꼬셨으니까 궁금하긴 한데에... 그건 갑자기 왜애?”


바로 코앞까지 다가와도,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대답하는 아르카를 보고서. 그녀의 허리를 팔로 감으며 말했다.

“그 이유, 지금 알려주려고.”


카마수트라.


기능이 활성화되는 것을 느끼며. 곧바로 놀란 눈으로 날 바라보고 있는 아르카의 입술을 덮쳤다.






“읍...?!”


띠링~

[플레이어 '이지경'님의 기능 '카마수트라'가 활성화됩니다.]


[대상과의 신체접촉이 적어 효율이 저하합니다. 접촉 중인 신체 및 점막이 늘어날수록 효과가 증가합니다.]

[기능 ‘카마수트라’의 효과가 적용되는 대상 ‘아르카네아 브란시아’가 이에 저항합니다.]

귓가에 들려온 알림. 오랜만이었다.

크리샤가 임신한 이후로, 뱃속에 있는 아이 때문에 그녀를 안을 수도, 또 마력을 흡수할 수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드래곤이란 생물은 생명과 동시에 거대한 마력으로 이루어진, 일종의 힘의 덩어리와 비슷했다. 설령 이제 갓 생겨난 아이라도, 아무리 내 피가 섞여서... 반은 인간이라 할지라도  점에서는 동일했다.


애당초, 아이를 갖게 된지 일주일도  된 크리샤와 섹스를 하는 것도 무리였지만. 그것만이 아니라, 단순히 키스를 통해서 마력을 흡수하는 것조차 뱃속에 있는 아이의 마력까지 흡수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수 없는 일이었다.

덕분에 최근 일주일동안, 나는 철저할 정도로 금욕의 시간을 가져왔었다.

그리고 지금의 내게 금욕생활이란 것은, 단순히 성욕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포식자라는 특성에 의해, 나는 막대한 마력을 필요로 했다. 그리고 그 필요라 함은 식사의 의미로 그러했다. 나는 마력을 통해서만, 그것도 어마어마한 양의 마력을 통해서만 허기를 채울 수 있었다. 하지만 크리샤를 통해 마력을 흡수할 수 없게  이상, 나는 최대한 힘을 아끼는 수밖에 없었다.


가만히 숨만 쉬고 있어도, 마력이 새어나가는 형편상, 그런 마력을 아끼기 위해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몇 가지 없었다.


에루나를 제외한, 내 가신들은 덕분에 지금 천공성에 있는 자신들의 방에서 잠들어 있었다. 그들이 움직이는데 필요한 마력조차도 지금의 상황에서는 낭비에 불과했으니 말이다.


아리스를 도와 영지를 관리하던 슈슈가 잠든 덕분에, 아리스가 해야 할 일이 늘어났지만 그것까지 신경 쓸 여유도 없었다.

내 코가 석자였다.


에루나가 가져다주는 음식들을 그나마 마력이 풍부한 음식들을 먹으면서 버티는 와중에도,  번이나 충동적으로 크리샤를 안아서, 그녀의 마력을 흡수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으니 말이다.


허기가 지면 질수록 그런 충동은 더더욱 심해져서, 항상 주머니에 간식으로 먹을 것을 챙겨넣고 다닐 정도였다.


그래도 충동은 끝임 없어서, 그걸 뱃속에 있는 아이를 생각하며  참으면서, 나는 매일 같이 에이그라의 열매라던지, 세계수의 새싹이라던지를 입에 물고서 우물거리면서 지내왔다.


하지만 아무리 마력이 풍부한 음식들이라고 하더라도, 애당초 하루 동안 필요한 마력이 드래곤의 마력에 필적하는 나에게 있어서는 그다지 효과가 있는 것은 아니었다.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입술에 침을 바르는 정도에 불과했다.

그렇게 일주일동안 버텼다.

하지만 더 이상 참을 이유가 없어졌다.


지금은 아르카가 있으니까.

아르카를 배려해줄 여유도 없었다.


그러기엔 배가 너무나도 고팠다.


“읍, 으으읍... 읏...!”


아르카의 입안에 집어넣은 혀로, 그녀의 안을 농락하면서. 나는 재차 카마수트라를 활성화시켰다.

[기능 ‘카마수트라’의 효과가 적용되는 대상 ‘아르카네아 브란시아’가 이에 저항합니다.]


다시.

[기능 ‘카마수트라’의 효과가 적용되는 대상 ‘아르카네아 브란시아’가 이에 저항합니다.]

또, 다시.

띠링~

[기능 ‘카마수트라’의 효과가 적용되는 대상 ‘아르카네아 브란시아’가 저항에 실패했습니다.]


[플레이어 ‘이지경’님의 칭호 ‘드래곤들의 처녀를 빼앗은 자’의 효과가 발동합니다. 드래곤을 대상으로 한 효과가 대폭으로 증가합니다.]


['아르카네아 브란시아'의 민감도가 240%만큼 증가합니다. 이후 10초마다 42%만큼의 민감도가 추가로 증가합니다. 이후 일정확률로 대상의 능력치를 흡수합니다. 대상의 흡수된 능력치는 시간이 지나면 복구됩니다.]


['아르카네아 브란시아'의 흥분도가 240%만큼 증가합니다. 이후 10초마다 42%만큼 흥분도가 추가됩니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추가되는 흥분도의 일부가 대상에게 영구히 작용합니다.]

몇 번의 시도 끝에, 결국 아르카가 저항에 실패했다는 알림이 귓가에 들려오고서.


“흐읍...”


저항하듯이, 몸을 뒤로 빼던 아르카의 몸이 굳어지는 것이 느껴졌다. 이윽고, 파르르하고 떨리며 무너지려는 아르카의 몸을 강하게 붙들고서.


기능을 활성화시켰다.

...흡정.


[플레이어 ‘이지경’님의 기능 ‘흡정’이 활성화됩니다.]

[대상인 ‘아르카네아 브란시아’의 생명력과 마력을 흡수합니다.]

띠링띠링, 하고.

카마수트라와 흡정,  기능으로 인해 빨아들이기 시작한 아르카의 마력이, 몸 안으로 흘러들어오는 것이 느껴졌다.


[상태이상 ‘굶주림’이 해제되었습니다.]


[상태이상 ‘굶주림’으로 인해 저하되었던 모든 능력치가 회복됩니다.]

뒤이어서, 오랫동안 날 괴롭혔던 상태이상이었던 굶주림까지 해제되었다는 알림까지 들려왔다.


하지만 아직 부족했다.


아직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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