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3화 〉163화
[크리샤네아 슈페리아를 임신시켜라!
이 세계에 남은 유일한 흑색용, 검은 그림자의 군주, 크리샤네아 슈페리아를 임신시키십시오. 유일무이한 흑색용을 임신시키고 그의 반려로 인정받게 된다면 막대한 보상이 있을 겁니다.
설명 : 흑색용 크리샤네아 슈페리아가 당신에게 강한 집착을 보입니다. 당신의 애정을 독점하기 위해 그 누구보다도 먼저 당신의 아이를 갖길 원합니다. 이에 응답하십시오. 크리샤네아 슈페리아의 바람대로 그녀를 임신시켜주십시오.
난이도 : SS
보상 : ???]
눈앞에 떠오른 이전과 변함없는 퀘스트 창을 가만히 바라봤다.
이렇게 퀘스트 창이 떠오르는 것 자체가 크리샤가 임신하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했다.
아무래도 이번에도 꽝이었던 모양이었다.
"6%라고 했는데 말이지…"
크리샤를 안을 때마다 들려오는 알림 중에서는, 그런 크리샤를 임신시킬 수 있는 확률 또한 포함되어 있었다. 처음에는 3%였던가 했었는데 지금은 그 두 배정도인 6%까지 오른 확률이었다.
하지만 그 6% 확률의 시도가 벌써 수십 번은 훌쩍 넘어서 세자리 수를 넘었는데도 죄다 불발이었다.
6%. 결코 높은 확률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낮은 확률도 아니였다. 그런데도 그동안 했던 것들이 죄다 꽝이라는 것은 굉장한 일이었다.
애초에 이종족간의 아이가 생기는 것이 무척이나 드물다는 것은, 지금 크리샤가 읽고 있는 책에서도 나오기는 했지만 그걸 감안해서 6%인데도 이랬다.
"……"
그 덕분에서인지, 날이 갈수록 섹스를 졸라오는 횟수나, 시간이 길어져가는 크리샤를 가만히 내려다봤다.
알고 있었다. 크리샤가 얼마나 초조해하고 있는지. 에루나에게 듣기로는 최근에는 회임 마법인지 뭔지도 만들어서, 나랑 관계를 맺을 때마다 사용하고 있다는 이야기도 들었었다.
아예 없던 마법을 만든 것이 아니라, 본래 인간들이 사용하던 마법을 조금 손본 정도라고는 했지만 그것도 얼마나 귀찮은 일인지는 최근 들어 여러 마법들을 익히고 있는 나도 알 수 있는 것이었다.
아마 크리샤가 드래곤이 아닌 평범한 인간이였더라면 그런 바보 같은 짓을 하는 데만 수십 년은 걸렸을 일이었으니 말이다.
"흐으음…"
문득 궁금해져서 크리샤를 바라봤더니 내가 읽어보라고 건네줬던 책을 진지한 얼굴로 무언가 골똘히 생각하고 있는 크리샤가 보였다.
"무슨 생각해?"
하도 진지한 얼굴이라 무심코 그렇게 묻자 크리샤가 대뜸 내 앞에 책을 들이밀었다.
"이거, 시험해볼 수 있지 않을까?"
한껏 기대하는 얼굴로 그렇게 말하는 크리샤의 말에 대체 뭔가 싶어서 크리샤가 펼쳐보인 페이지를 바라봤다. 나도 읽어본 책이었지만 딱히 쓸모 있어 보이는 건 없었는데…
그런 생각을 하며 적혀져 있는 것을 읽어봤다.
'이종간 교접의 경우, 일반적으로 남자와 여자, 둘 중 어느 쪽이 보다 상위종인가가 큰 영향을 끼치는 듯하다. 그 예로, 흔히 이종간의 교접을 통해 숫자를 불리는 것으로 알려진 몬스터들인 미노타우로스와 오크 등의 경우에는 이종간의 교접을 통해 주로 개체수를 불리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들 종족의 대다수는 일반적으로 수컷의 빈도가 높다. 또한, 타종족과의 자식이 생기는 빈도 역시 높으며…'
"…이게 뭐?"
나도 읽어봤던 것이기에 대충 무슨 내용인지는 알고 있었다. 특히 에루나가 자주 내오는 음식이기도 한 미노타우로스의 경우는 나도 이전에 들었던 것이 있었다.
하도 이종족 저종족 뒤섞이다보니까 선천적으로 몬스터위 피가 짙게 태어나는 수컷 미노타우로스의 경우와는 달리 암컷인 미노타우로스의 경우에는 종종 어미의 종족을 닮아 빼어난 외모를 가지고 태어나는 경우도 있다고 했던가.
덕분에 인간들이 자주 애완노예로도 구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고 들었다.
대체 어떤 용도의 애완인지는 둘째치기로 했다. 나랑 아무 관계도 없는 것까지 신경쓰기는 너무나도 귀찮았다.
아무튼, 오크의 경우에도 그렇게 태어나는 오크들 중에서도 인간의 피가 짙게 발현된 경우인, 하프오크의 경우는 다소 배척받긴 하지만 일단은 인간... 혹은 아인 정도로 취급받는다는 이야기도 어딘가에서 들었었다.
하지만 한가지의 성별로만 태어나는 몇몇 종족들의 경우가 이 케이스를 반증하기도 했다. 이 경우에는 태어나는 종족은 어디까지나 해당 종족으로 태어나고는 했지만 역시나 자식이 생기는 경우가 많았다.
그리고 대개 이런 종족의 경우에는 미노타우로스나 오크와는 다르게 보통 암컷이 주를 이루는 종족들이었다.
두 케이스 모두 책에 적혀져 있었던 만큼, 나도 얕게나마 알고 있다는 것이었다. 나는 딱히 도움이 될 것 같지는 않아서 그냥 넘어갔던 것이기도 했다. 반면, 크리샤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던 모양이었다.
"너, 조금이지만 용화가 가능하잖아?"
내가 생각하는 것을 기다려주듯이, 가만히 바라보고 있던 크리샤가 그런 나에게 해온 질문에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가능하긴 하지. 그래봤자 정말로 용이 되는 건 아니지만…"
더욱이 에루나도 가능하면 하지 말라고도 당부했던 것이라서 사용한 적도 별로 없던 것이기는 했지만 불가능, 가능을 물어본다면 가능하긴 했다.
루시아의 관계를 통해 얻은 칭호 덕분에 생긴 능력이고, 기능으로써는 존재하지는 않고 칭호의 효과이긴 했지만 말이다.
그러고 보니 그것도 크리샤랑 한 덕분에 강화됐었던가. 확인해볼 새가 없어서 뭐가 강화된 건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중요한 것은 크리샤가 말한대로 나는 부분이나마 용화가 가능하긴 했다.
내가 고개를 끄덕인 것을 보며 음음, 하고 혼자서만 무언가 마음에 들은 모양이었던 크리샤가 말을 이었다.
나는 전혀 모르겠는데. 좀 설명해줬으면 좋겠다.
멍청하게 그런 크리샤를 보고 있자니 내 시선을 느낀 크리샤가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아직도 잘 모르겠어?”
“멍청해서 미안하다...”
“그, 그런 말은 하지 않았거든? 아, 아무튼... 설명해줄테니까 잘 들어.”
큼, 하고 내 말에 당황해하던 크리샤가 헛기침을 하며, 내게 말했다.
“이 책에서 보면 일반적인 경우에는… 몬스터와 아이가 생기는 경우는, 몬스터 쪽이 수컷이고 그 반대가 인간인 경우가 많다고 되어 있잖아?”
그건 맞았다. 견본사례 자체가 인간인 남자가 몬스터에게 붙잡혀서 겁탈당하는 것보다 그 반대가 많아서 그런 것도 있지만, 미노타우로스나 오크의 경우는 대개 그런 케이스의 것들이 많았다.
아까도 말했다시피, 그 케이스의 정반대인 것도 있으니 확실한 건 아니지만 말이다.
음…
머리가 잘 안 돌아가는데. 나름대로 내가 이해하기 쉽게 힌트를 준 모양이었지만 딱히 그걸 들어도 이거다, 하고 떠오르는 게 없었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딱히 우리랑은 관계가 없어보였다.
그렇게 잘 돌아가지도 않는 머리를 굴려도 크리샤의 말이 이해가 가질 않아 고개를 갸우뚱하고 있자니 결국 한숨을 내뱉으며, 그런 나에게 크리샤가 마치 조금 모자란, 하지만 어쩔 수 없이 귀여운 것을 보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내 뺨을 잡아당기면서 말했다.
"그러니까 발상을 전환해보는 거지. 지금의 나는 인간의 몸으로 폴리모프한 상태지만, 결국은 드래곤이야. 대부분은 인간의 몸과 마찬가지지만 본질적으로는 차이가 크다는 뜻이지. 거기까진 이해가 되지?"
"응."
크리샤의 말대로, 크리샤는 분명 인간의 몸이었지만 동시에 드래곤이기도 했다. 애초에 인간의 몸으론 크리샤를 비롯한 다른 드래곤들처럼 어마어마한 마력을 몸에 품고 있는 것 자체가 불가능했다.
폴리모프 마법으로 구조적으로는 인간의 형태를 취하고 있지만 본질적으론 여전히 드래곤인 것이었다.
거기까지는 이해한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그런 내 반응에 크리샤가 말을 이었다.
"이 책에서 나오는 말을 인용하자면... 나는 분명, 인간인 너보다 상위종이라는 거야. 어쩌면 그 탓으로 아이가 생기지 않는 걸 수도 있겠지. 아… 따, 딱히 널 탓한건 아니니까 오해하지 말고."
"...그런 생각 안하니까 걱정마."
혹시라도 내가 오해할까봐 걱정하는 크리샤에게 그렇게 대답했다.
그런 크리샤를 보고서, 그냥 처음부터 솔직히 말할까도 싶었다.
가능은 한데 그냥 우리가 엄청 재수가 없었던 거야, 라고. 하지만 말할 수는 없었다. 6%으로 확률이었지만, 그래도 족히 백번은 넘게 시도했을 텐데도 다 꽝이니 재수가 더럽게 없었던 거라고. 알림을 통해 알게 된 사실인만큼 그게 진실이었지만, 말할 수는 없었다.
모처럼 좋은 생각이 났는지 신이 나서 말하는 크리샤의 기분에 초를 칠 생각은 추호도 없었으니 말이다.
그래서 대충 알아들은 척 고개를 끄덕여보이자, 그런 나에게 크리샤가 손가락을 까닥이며 말했다.
"그러니까, 내가 인간으로 폴리모프했던 것처럼. 너도 드래곤이 되면 되는 거지. 이 경우에는 나랑 반대, 본질적으론 인간이지만, 일단 신체적으로는 드래곤의 몸이 되는 거니까. 내가 인간으로 폴리모프한 상태로, 용화한 상태인 너랑 아이를 만드는 경우라면 훨씬 가능성이 높아지지 않을까?"
으음...
크리샤의 말에 온몸의 털이 삐죽하고 서는 느낌이 들었다.
그러니까, 이거... 그거지?
드래곤 역사에서도 아주 없지만은 않았던, 타종족을 드래곤으로 바꾸려던 시도와 그 말로를 떠올린 내가 식은땀을 흘렸다.
"아니, 그건 좀 위험하니..."
그냥 안하면 안될까, 그렇게 말하려던 나에게 크리샤가 입을 열었다.
"그러니까 네 그… 그 부분만 부분적으로 용화시키면... 응? 지금 뭐라고 했어?"
"...아니, 아무 말도 안했어."
이어진 크리샤의 말에 입을 다문 내가 곰곰이 생각해봤다.
그리고 금방 결론이 나왔다.
나 역시 나름대로 고민하고, 생각해본 것들이 여럿 있었지만 지금같은 것을 떠올린 적은 맹세컨데 한 번도 없었다.
고작해봐야 카마수트라를 활용하는 방법 정도나, 그게 아니라면 그런 쪽의 기능을 습득하도록 노력해볼까하는 정도였을 뿐이었다.
크리샤의 생각처럼, 그걸 용화시킨다는 발상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