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6화 〉156화
한창 개발 중인 섬은 무척이나 혼잡스러웠다.
태생이나 생긴 모습 덕분에 악마 취급을 받기도 하는 임프나, 생긴 건 그래도 엘프와 마찬가지로 정령을 근간에 두고 있는 코볼트, 고블린 같은 키가 작은 소형 마물들이 바삐 자재들을 나르고 다니는 모습들이나 그렇게 날아온 자재들을 놀이나 트롤같이 인간이나, 인간보다 훨씬 크고 힘도 강한 중형 마물들이 차례대로 건물을 올리고 있는 것이 눈에 보였다.
그리고 그것을 지휘하는 것이 손재주가 좋은 노움들과 레무르와 마찬가지로 테 베르나에서 파견 온 드워프들이었다. 사실상 드워프들이 설계 및 시공을 하고 노움이 그걸 돕는 정도에 불과하긴 했지만 말이다.
언뜻 보기엔 서로 협력해서 잘들 지내고 있는 것 같은데... 다양한 종족들이 저렇게 힘을 합치고 있는 모습을 보면 에루나에게 들었던 보고나, 영지관리창에 떠있는 혼란스럽다느니 뭐니하는 이야기가 거짓말처럼만 느껴졌다.
한 가지 걸리는 것이 있다면...
“...다른 녀석들은 어디에 있지? 산악 엘프와, 웨어 울프들은 아예 보이지도 않는데.”
분명 다양한 종족들이, 언뜻 봐도 수십 종 이상의 종족들이 모여서 일을 하고 있는 가운데, 눈에 띠지 않는 종족들이 있었다.
방금 언급한 산악 엘프와 웨어 울프들말고도 몇몇 종족들도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그런 종족들, 한창 개발 중인 섬에서 코빼기도 비추지 않는 종족들과 지금 내 눈에 보이는 열심히 일하고 있는 종족들의 차이점은 하나였다.
열심히 일을 하고 있는 종족들은 대개 가진 바 힘이 약하거나, 지성이 다소 부족하다고 알려진 종족들이었다. 코볼트나 고블린 같은 소형 마물들을 필두로, 힘은 세지만 지성이 다소 부족한 트롤들이 그 예였다.
뭐, 드워프들도 열심히 일하고는 있긴 한데... 드워프들은 크리샤의 명령으로 끌려온 것이니 제외했다.
그리고 보이지 않는 종족들은 그 반대로.
대개 강한 마법을 구사하거나, 그 신체 자체만으로도 상당한 수준의 무력을 자랑하는 종족들이었다.
긴 수명을 통해 오랜 세월을 영위하는, 숲의 정령이라도고 불리는 엔트라던가 나에게는 다소 익숙한 종족인 드리아데스, 산악 엘프나 웨어 울프를 비롯한 여덟 종족이 그러했다.
내게 복속된 10만에 달하는 종족들 중에서도, 소수인 종족이면서도 가장 강한 종족이기도 한 녀석들은 아무리 둘러봐도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그것이, 단순히 내가 우연하게 그런 장소에 있는 것이 아니란 것은... 안내인의 안색을 통해 알 수 있었다.
“그것이...”
내 물음에 오늘도 안내 겸 설명을 위해 따라왔던 레무르가 난감하다는 표정을 지어보였다.
이 양반도 고생이 많았다.
벌써 주가 두 번이나 바뀌어가고 있는데 집 구경도 못하고서 일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그런 레무르가 내 질문에 한층 쭈글하고 주름진 얼굴로 난처해하는 모습을 보자 마음이 아파왔지만, 들어야할 건 들어야 했다.
고생하는 김에 더 고생 좀 해주라.
그런 생각을 하면서.
“말하라, 레무르. 어디서 대체 뭘 하고 있기에... 다들 일하고 있는 와중에 코빼기도 비추지 않는지.”
평소 레무르에게 말할 때와는 다르게, 장난기라고는 없는 목소리로 묻자 레무르가 움찔하는 것이 보였다.
“부, 부디 노여움을 푸소서. 크리샤 클레오시여...!”
그리고 납죽 엎드린 레무르가 그렇게 말했다.
크리샤에게도 배짱 좋게 약 올리고 다니던 양반이 갑자기 왜 그러나 싶었는데, 에루나가 그런 나에게 말했다.
“주인님. 마력이 흘러나오고 계십니다.”
“마력...?”
그 말에 무심코 오른쪽 눈으로 살펴봤지만, 안타깝게도 그런 눈에 비추는 거라고는 새까만 어둠뿐이었다.
아직도 주시자의 눈의 힘이 돌아오지 않은 탓이었다.
마력을 보거나, 그 외의 몇몇 용도를 제외하면 쓸데도 없는 눈인데, 그것마저 쓸 수 없게 되니 엄청나게 불편했다. 사실 그런 용도를 제외하면 아예 실명한 눈이니 당연한 일이지만.
어쨌거나, 아무래도 내 마력이 흘러나온 탓에 레무르가 바짝 쫄은 것 같은데... 나보다는 크리샤가 훨씬 무서울 텐데도, 크리샤 때랑은 달리 저러는 것을 보자 조금 기분이 그랬다.
알고는 있다.
레무르가 크리샤를 대하는 태도와, 나를 대하는 태도가 다른 이유가 신뢰의 차이라는 것 정도는.
알고는 있었다.
“...음, 미안하다. 조금 흥분했던 모양이다.”
나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흘러나왔다는 마력을 갈무리하면서, 레무르에게 그렇게 말했지만. 여전히 식은땀을 주륵주륵, 비 오듯이 흘리는 레무르가 보였다.
대체 왜? 그런 생각으로 레무르를 보자니 그런 나에게 한숨을 내쉬며 에루나가 말했다.
“...주인님. 뒤를 봐주십시오.”
그 말에 뒤를 돌아보자, 그르릉거리며 이를 드러낸 채 레무르를 위협하고 있는 니아와 당장에라도 무언가 쏘아 보낼 것처럼 레무르를 노려보고 있는 마야가 보였다.
순간 왜 저러나 싶었지만, 이내 정답을 알 수 있었다.
내 탓이었다.
에루나나 내가 서로의 감정을 들여다보는 보는 수준의 연결은 아니었지만, 나와 내 가신들 사이에서도 어느 정도의 연결은 되어있었다.
덕분에 내가 느낀 감정의 일부를, 혹은 그 영향을 내 주변에 있는 가신들에게도 미친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내가 아주 잠깐 느꼈던 짜증에, 마야와 니아가 그 영향을 받아서... 억울하게도 짜증의 발산지가 되었던 레무르에게 적의를 보내고 있는 것이었다.
그런 마야와 니아를 보며, 에루나가 무척이나 드문 표정을 지으며 중얼거리는 것이 들렸다.
낙담이라던가, 실망이라던가, 그런 감정이 엿보이는 표정을 지으면서.
“마야와 니아는... 아직 교육이 더 필요할 것 같군요.”
처음으로 본 에루나의 표정에 놀랐던 것도 잠시, 다시 태연한 얼굴로 에루나가 중얼거렸다.
“교육을 좀 더 엄하게 해야 될 것 같습니다.”
응, 뭐... 살살해라. 아직 애들이잖아.
차마 말로 하지는 못하고, 그렇게만 생각했다.
아무튼 그 둘을 제외한, 로로나 에네스타는 멀쩡한 모양이니 불행 중 다행이었다. 저 둘만큼은 나도 말리기가 어지간히 힘들기 때문이었다.
으음... 부모가 되면 애들이 따라할까 무서워서 입조심, 몸조심한다더니 정말이었던 모양이었다.
아주 조금 짜증이 났을 뿐인데도 이 모양이었으니. 어디 가서 화도 못 내게 생겼다. 짜증이여서 여기서 그친 거지, 화라도 냈다가는 이미 날뛰었을 것 같았으니 말이다.
그때 나와 눈이 마주친 니아가 입을 열었다.
“주인님, 물어도 되나요?”
대체 뭘? 하고 되묻지 않았다. 나와 눈이 마주치기 전까지 니아가 보고 있던 것은 레무르였으니 말이다. 대체 뭘 물어도 되냐고 물었던 건지는, 명확했다.
나에게 고개를 갸웃하며, 순진무구한 얼굴로 묻는 니아를 보며 가슴 깊숙이 지금의 일을 새겨두기로 했다.
다음부턴 애 앞에서 함부로 짜증이나, 화 같은 건 내지 말자고.
당장 명령만 내린다면 레무르를 물어뜯기라도 하겠다는 듯이 그렇게 묻는 니아가 농담으로 저런 말을 하는 것이 아니란 것쯤은 알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내가 그렇게 하라고 한다면 정말로 망설임 없이 레무르에게 달려들어 그대로 물어버리겠지.
문제는 그렇게 되면, 단순히 레무르가 아야, 하고 아파하는 정도의 사고로 끝나지 않는다는 거였다.
보기에는 쫑긋거리는 귀나, 살랑거리는 꼬리나 귀엽고 깜찍한 니아였지만, 가진 힘으로만 따지자면 영 귀엽다고 할 수 없었으니 말이다.
현재 내 가신 중에서 가장 강한 건 에네스타였다. 원래는 에루나였지만 지금의 에루나는 과거의 전력의 반도 미치지 않는 수준이었다. 덕분에 전투력으로만 따지자면 에루나의 다음이었던 에네스타가 현재로써는 가장 강했다.
그리고 그 다음이 무려 로로였다.
릴리스라는 종족으로 각성한 로로는 무진장 강해져서, 사실 에네스타랑 붙는다면 거의 우열을 다툴 수 없을 정도로 강해진 상태였다. 아직까지는 검술이나, 싸움에 대한 경험이나 기량이 높은 에네스타가 이기고 있었지만, 매일같이 놀랍도록 성장하는 로로가 언제 에네스타를 제칠지는 모를 일이었다.
그 다음은 반 거인족으로 각성했던 바록과 바쿠였고... 놀랍게도 바로 다음은 에루나나 에오시스 자매들이 아니라, 니아였다.
지금 당장이라도 내가 말만 하면 레무르를 앙, 하고 물어버릴 것 같은 그 니아가 맞았다. 내 명령을 기다리듯이 나를 빤히 바라보면서 꼬리를 좌우로 흔들고 있는 그 니아 말이다.
그러니까... 에루나가 약해지고, 그 반대로 니아는 강해져서 그런 것도 있지만. 현재의 니아는 에루나보다 강하다는 거였다.
그리고 에루나가 약해졌다, 약해졌다고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에루나 혼자서도 어느 정도 수준. 검사로 치자면 기능 검술 C랭크정도의 실력자들 십 수 명은 가볍게 찜 쪄 먹을 정도의 힘은 갖고 있었다. 그런 에루나보다 강하다는 것은, 니아가 그 이상의 힘을 갖고 있다는 소리였다.
비록 레무르가 나이를 먹은 것 치고는 무척이나 팔팔하긴 한데...
「정보창」
「이름 : 니아」
「칭호 : 늑대의 후예, 마왕의 애견」
「성별 : 여성」
「나이 : 14세」
「직업 : 무투가, 투사, 시녀」
「종족 : 루갈」
「근력 : 93(A)」
「민첩 : 99(A)」
「체력 : 91(A)」
「지력 : 39(D)」
「마력 : 26(E)」
「매력 : 73(B)」
「행운 : 27(F)」
「생명력 : 910/910」
「마나력 : 260/260」
「지구력 : 84%」
「고유 특성 : 마왕의 애견(B), 고대의 혈통자(B)」
「보유 특성 : 신속(B), 무투가(B), 투기(B), 시녀(D), 마력 의존(D)」
「보유 기능 : 무투(A), 광폭화(B), 거력(C), 관철(D), 부분수화(E)」
「상태 : 흥분 (목? 다리? 아니면 머리 째로...)」
「호감도 : 100」
「충성도 : 100」
니아의 정보창을 통해 보이는 능력치라면, 그런 레무르 정도는 간단하게 찢어버리고 남을 정도였다.
내가 봐도 두꺼워보이는 근육질 몸의 레무르였지만, 레무르의 능력치는 전체적으로 60대정도였다. 근력과 민첩, 체력이 거의 일반적인 기준으로써의 한계치에 이르고 있는 니아와 비교한다면 턱없이 낮은 능력치였다.
거기에 기능이나, 특성도 니아에 비해서 많은 레무르였지만. 그건 대부분이 대장장이나, 장인으로써 습득한 기능이나 특성들이었고, 전투와 관련된 것은 거의 전무하다시피 했다.
그런 레무르에 비하면 특성이나 기능이나 빈약한 니아였지만, 그 대신 모든 특성과 기능이 전투에 특화되어있는데다가, 능력치마저 압도적으로 높은 니아가 달려든다면 레무르로써는 저항도 못하고 그대로 이빨에 갈기갈기 찢겨 죽어버릴 수 밖에 없다는 거였다.
니아는 그만큼 강했다.
특히 순간적으로 엄청난 괴력을 발휘하는 거력과 이성을 잃는 대신에 신체능력의 태반이 상승하는 광폭화, 그뿐만이 아니라 낙시안들의 종특인 투기까지 사용할 수 있는 니아는 순간적이지만, 내 가신 중에서도 최고의 공격력을 가지고 있었다.
기본 능력치만해도 순정상태의 나를 웃도는 능력치이기도 하고. 거기서 몇 초, 혹은 몇 분에 불과하지만 수배로 뻥튀기되는 능력치에서 쏟아져 나오는 힘은 그만큼 강력했다. 지금의 니아 정도라면 전에 내가 봤던 늙은 검주보다도 강하지 않을까싶었다.
그 검주는 나도 이길 수 있을 정도였으니 말이다. 그렇다고, 니아가 검주급으로 강하다는 것은 아니였다.
검주는 분명 강한 존재였다. 단지 같은 검주끼리도 어느 정도 상하가 있을 뿐이었다.
그 늙은 검주는 간신히 검주의 반열에 든, 아마 검주 중에서도 하위에 있는 녀석이었을 테니 말이다. 어지간한 검주는 그 검주처럼 방심하다가 검을 날려먹거나 하는 일은 하지 않았다. 당장 아리스조차도 그런 늙은이보다도 강했었으니...
그렇다고... 니아가 검주보다 약하다고, 검주에게 진다는 것도 아니었다.
니아의 힘은 단순히 힘만 쎈 것만이 아니라 신속이라는 특성으로 공간을 접어 넘어간다고 착각할 만큼, 물리적으로는 불가능한 속도로 움직이는 것이 가능한 것에도 있기 때문이었다. 검주도 저게 가능한건가 싶은 짓을, 우월한 신체능력을 바탕으로 아무렇지도 않게 해버리는 괴물이었지만 니아의 것은 그것보다 더한 수준이었다.
전에도 봤던 것처럼, 아직 그 속도를 니아 스스로도 주체할 수 없어서 거진 자폭기나 마찬가지였지만. 그래도 단 한번이라면, 단숨에 기습한다면 어지간한 실력자, 상당한 수준에 이른 검주조차도 이렇다 할 반응조차 못하고 단번에 몸이 꿰뚫려서 죽어버릴 것이다.
니아가 에샤를 공격했을 당시에, 에네스타가 미처 반응도 하지 못했던 것처럼. 검주 중에서도 최상위에 위치하고 있는 에네스타조차도 니아의 속도를 눈으로 쫓지 못했으니 말이다.
서로 정보가 없는 상황에서라면, 일격만큼은 니아는 최상위의 검주와 맞먹는 힘을 갖고 있다는 이야기였다.
특히나 일정시간동안 공격에 사용되는 힘의 일부분을 관통시켜서, 직접 방어를 꿰뚫고 꽂아 넣는 기능인 관철까지 사용한다면... 에네스타조차도 막는 거라면 무리, 피하는 것이 최선이고 막는다 하더라도 치명상을 입을게 분명했다.
무심코 그런 니아에게 공격당한 레무르를 떠올렸다가 아침에 먹었던 음식들이 속에서 날뛰는 기분이 들어, 생각을 그만두기로 했다.
음, 아무튼 정리하자면 니아가 무척이나 강하다는 거였다.
어쨌거나 그런 니아가 레무르를 보면서, 어느 곳을 공격하는 것이 좋을까 생각하고 있는 것이 좋지 않은 상황이 아니란 것은 확실했다.
그래서 말했다.
“안 돼, 저런 거 먹으면 탈난다.”
“히끅!”
내 말을 들은 레무르가 딸꾹질을 하는 것이 보였다.
하긴, 내가 말실수를 하긴 했다. 먹는다니 뭐니 하는 얘기를 하면 안됐었는데. 하지만 물어도 되니 마니 하는 니아를 보고서 떠올린 말이 그것뿐이라서 어쩔 수 없었다.
게다가 지금은 레무르에게 심장에 무리가 가는 말을 한 것을 사과하는 것보다 니아를 진정시키는 것이 우선이었다.
“아무튼, 니아. 레무르는 적이 아니니까 공격하면 안 돼. 먹는 것도 아니고.”
“안 되는 건가요?”
“그래. 안 돼. 하지만 잘했다. 다음에도... 나에게 먼저 묻고 행동하렴.”
니아가 내 명령을 기다리지 않고서, 멋대로 움직였다면... 지금도 겁에 질려있는 레무르를 볼 수 있기는커녕, 그냥 고깃 조각이 되어 흩어져 있었을 테니. 인내심을 갖고 기다린 니아를 칭찬하며 머리카락을 쓰다듬자 헤실거리며 평소처럼 웃는 니아가 보였다.
귀여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