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49화 〉149화 (149/370)



〈 149화 〉149화

콰지지직!


휘몰아치는 그림자들을 광휘로 베어 넘기자, 두 갈래로 나뉜 그림자들이 오두막을 개박살을 내버렸다. 아니, 사실 오두막은 이미 한참 전에 개박살났지만. 공간이동을 마친 크리샤의 피어와 함께 싹다 날아가 버렸지만.

사방팔방으로 부서진  흩어진 나무파편들이 여기에 오두막이 있었다는 사실만을 알려줬을 뿐이었다.

하지만 크리샤의 분노는 오두막을 날려먹은 걸로 끝나지 않았다.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날아드는 그림자들을 베어 넘기며 말했다.


"크리샤, 오해라니까?!"


"오해는 무슨...!"


정말로 오해인데, 크리샤는 도무지 내 말을 믿을 생각을 하지 않았다.

오히려 거듭해서 그림자를 베어 넘기며 저항하자 더욱 화가 났는지 크리샤의 주변으로 쑤욱쑤욱 솟아나는 그림자들이 보였다.

처음에는 수십에 불과했던 그림자가 이제는 수백을 넘어가서, 크리샤의 근처를 새까맣게 물들이며 우글거리고 있었다. 다행인 것은, 저 그림자들이 전부 동시에 날뛰지는 않고 있다는 거다.


즉, 아직 크리샤에게 이성이 남아있다는 소리였다. 그걸 희망으로 삼고서, 끊임없이 결백을 주장하자 결국 크리샤가 내게 말했다.


"정말로 내가 오해한 거라면, 그 여자를 이쪽으로 넘기라니까?!"


"그건 좀...! 일단 진정부터 하면 안 될까?"

눈이 돌아간 크리샤한테 아리스를 넘겼다가 무슨 일이   알고 넘길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그렇게 말하며 아리스를 향해 솟구치는 그림자를 베어버리자, 크리샤가 외쳤다.


"봐! 오해 같은 소리하고 있네! 아까부터, 그 여자한테 가는 공격만 모조리 막고 있는 주제에...!"

정말로 오해인데.

억울했다.

나야 그냥 날아오길래 베어버렸을 뿐이지, 누굴 공격하는 것만 골라서 베어버린 적은 없었다. 크리샤가  너무 과대평가하는 것 같은데...

"에네스타! 뭐라고  좀 해봐!“


어쨌거나, 내 행동 때문에 크리샤의 오해가 더욱 깊어지고 있다는  확실했다.

그래서, 지금 이 상황의 유일한 증인이기도 한 에네스타에게 그렇게 말했다. 일찌감치  명령으로 아리스를 보호 겸 허튼 짓을 하다가 상황을 악화하게 하는 것을 막기 위해 물러나 있던 에네스타가 그런 내 말에 크리샤에게 말했다.

"크리샤네아님, 주께서는 정말로 아무것도 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렇다. 나는 아무것도 안했다. 내가 한 거라고는 에네스타를 시켜서 아리스를 간지럼 태운 것뿐이었다. 그게 잘못이라면, 백번 사과하겠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그게 잘못이라고는 생각되질 않았다.

간지럼이 뭐 어때서!

"저는 오히려 해주셨으면 했습니다만..."


"거기까지 해라?"


괜한 소리까지 내뱉는 에네스타의 입을 강제력을 담아 다물게 만들고서, 크리샤를 바라봤다.

아무튼, 정말로 그게 끝이었다. 하고자 했다면 마음대로 해버릴 수도 있던 상황에서 내가  것 고작 간지럼 태우기뿐이었단 말이다.

"들었지? 난 아무 짓도 안했다니까?"


그런 에네스타의 말과 함께 다시 한 번 결백을 주장했지만, 돌아온 것은 크리샤의 그림자들이었다.


"아니,  아무 짓도 안했다니까?!"


그림자들을 베어버리면서, 재차 억울함을 호소했지만 그런 나에게 크리샤가 말했다.

"그럼 저 꼴을 보고 나보고 믿으라는 거야?!"


저 꼴이라.

그 말에 고개를 돌려 아리스와 에네스타를 바라봤다.

음...

나라도 믿을 수 없긴 했다.

옷만 입고 있었지. 땀으로 젖어서,  밑이 훤히 비쳐보이는 옷은 사실 벗은 거나 마찬가지였다. 아리스뿐만이 아니라, 에네스타까지 그런 몰골로 있었다. 그런 둘을 보자 크리샤가 저렇게까지 격분하는 이유를 새삼스레   같았다.

오자마자, 그리고 저 둘을 보자마자 곧바로 크리샤의 입에서 피어가 터져나왔던 것도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더욱이 크리샤가 저렇게까지 격분하는 이유 중에서는, 내가 했던 개소리도 한몫 단단히 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본격적으로 거사? 를 치루기 전에 시녀들을 시켜서 준비? 를 하는 과정을 ‘올바른 것’으로 알고 있는 크리샤로서는 저게 그렇고 그런 짓을 하기 전에 일환이라고 여겼다는 거다.

에네스타를 시켜서, 아리스를 준비? 시키는 거라고 생각한 거다.


그게 아닌데.


정말로 아닌데.

이럴  알았으면, 그때 그런 헛소리는 하지 말아야했는데. 아니, 난 일이 이렇게 될 줄은 몰랐지.


하지만 억울한  억울한 거였다.

정말로 아무것도 안했는데... 게다가  생각도 없었다. 아리스가 그녀를, 한나를 닮았으니까.

아니, 닮았다는 수준이 아니라. 머리카락의 색이나, 눈동자의 색을 빼면, 그리고 성격도 뺀다면 똑같다고 생각할 정도였으니까.

덕분에 아리스를 보고서 그럴 마음은 조금도 들지 않았다.

한나가 내 첫사랑이긴 했지만,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였다.


아리스는 한나가 아니었다.


단지 닮았을 뿐인, 생판 남이라는 거다. 애초부터 세계가 달랐다.


그리고, 경우도 달랐다.

아리스는 살아있었지만, 한나는 죽은 사람이었다.

나는...


"게다가… 그 여자는…"

그때 무언가 중얼거리듯, 말하던 크리샤의 이마에 핏줄이 서는 것이 보였다. 말을 하다가, 무언가를 떠올리고. 그렇게 떠올린 사실에 더욱 화가 난 것처럼.

뿌득, 하고 이를 간 크리샤가 외쳤다.

"나보다 먼저, 너랑 이, 이, 입까지 맞췄잖아! 그런데 이번에는... 나 몰래 만나러 오기까지 해? 그래놓고서, 지금  꼬락서니를 보고서, 나보고 아무것도 안했다는 말을 믿으라고?!"


화가 머리끝까지 미쳤는지 말까지 더듬는 크리샤를 보며 생각했다.


입을 맞추다니 그건 또 뭔 소리야?


나는 전혀 모르는, 기억에 없는 이야기였다.

하지만 정작 모르는 것은 나와 에네스타뿐이었던 모양인지, 크리샤의 말에 얼굴을 붉히는 아리스가 보였다.

"뭐, 뭘 보는 건가요?! 마왕! 이쪽 보지 마세요!"


에네스타에게 여전히 깔려있는 아리스가 내가 바라보자 더욱 얼굴을 붉히며 그렇게 말하는 것을 보고서 내가 정말로 그랬나 싶었다.


그렇다면 저렇게까지 나에게 적의를 보내고 있는 아리스나, 그런 아리스를 만나러 자기 몰래 온 나에게 크리샤가 지금 이렇게 화를 내는 이유나.

둘 모두 설명이 가능해졌다.


아리스의 입장에서는 나는 자기 입술을 멋대로 훔쳐간 성추행범이었고, 크리샤의 입장에서는 이미 전례가 있는 바람둥이였다. 아무리 그 당시에 크리샤와 내가 아무런 사이가 아니였다고 하더라도, 그게 그렇게 쉽게 이해가  리가 없었다.

크리샤의 말과, 내가 추론한 사실이 맞다면 한방에 해결되어버린, 현재 진행중으로 개판이 되고 있는 이 상황의 이유를 깨달은 나는 머릿속이 멍해졌다.

...정말로?


뭔 짓을 한 거냐, 지경아...


대체 뭘 했길래 이지경이냐고.

나는 모르겠는데, 내가 의식을 잃을 때마다 자꾸 발정난 개새끼가 눈을 뜨는 기분인데 착각인가.

꼭 의식을 잃고나면 루시아한테 변태소리를 듣질 않나, 귀축 소리를 듣질 않나, 크리샤를 엉만진창으로 만들지 않나...

아무래도 신빙성이 높아보였다.

진짜로 개명을 해버려야 하나.


 이름이 이지경이여서, 매번 이지경이 나는 건가. 슬슬 정말로 의심스러웠다.

게다가.


얼굴을 붉히는 아리스와 아무런 말도 못하는 나를 보고서 크리샤의 오해가 깊어졌는지, 결국 폭발한 크리샤가 외쳤다.

"이제 됐어! 어디, 그 인간이 그렇게 소중하다면..."


파직, 파지직...!


크리샤의 그림자들 중 몇몇이 형태가 바뀌기 시작했다. 마치 손처럼 바뀌어버린 그림자들의 위로 제각각의 마법들이 펼쳐졌다.

다중영창...

아니, 이 경우에는 영창이 아니라, 다중마법. 그 자체였다. 딱히 영창이 없어도 마법을 사용할 수 있는 드래곤만이, 저딴 미친 짓을 할  있었다.

드래곤이라서, 마력만 있다면 동시에 수십 개의 마법을 펼쳐낼 수 있다는 소리였다. 영창이 아니라, 마법을. 문제는 그 짓을 지금 나한테 하려고 하고 있다는 거고.

"지킬 수 있다면, 지켜보시던가! 나는, 경고했어!"

그렇게 말하며, 당장에라도 마법을 쏘아 보낼 것처럼. 크리샤가 나를 노려봤다.

드래곤의 경고.

이세계를 유지하는 질서자인 그들이, 스스로의 힘을 규제하기 위해 세운 규칙.

단 한번, 힘을 발휘하기 전에 내거는 경고를 듣고서. 크리샤가 진심으로 그렇게 말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동시에, 저것이 나에게 하는 마지막의 권고라는 것도   있었다. 지금 순순히 아리스를 넘긴다면, 아마 크리샤는 나를 용서해줄 게 분명했다.


지금 이 순간에도.

크리샤가 내가 바람을 폈다고 착각하고 있는 지금도. 크리샤의 호감도는 요지부동이었으니까.

저렇게까지 말하는 크리샤는 아직도 나를 믿으려고 해주는 거였다.


그게 아니라도, 여전히 나를 좋아해주고 있다는 소리였다.

하지만, 물러설 수는 없었다.

나는 광휘를 움켜쥐었다. 그러고서 크리샤를 바라봤다. 도저히 물러서지 않는 나를 보며, 빠직빠직, 실시간으로 혈압이 급상승하고 있는 크리샤를.


"그래... 그렇게 하겠다는 거지..."


그리고 결국.


크리샤가 그렇게 중얼거리며 나를 바라봤다.

검고 검은. 뾰족하게 바뀐 드래곤의 눈으로, 빛을 잃고서 흉폭하게 번들거리는 분노만이 남은 짐승의 눈을 하고서. 나를 바라봤다.

"이제 됐어..."

그 말을 시작으로, 하나둘 발동하기 시작하는 마법들이 보였다.

불기둥이, 전기로 된 사슬이, 수십 개의 그림자들의 창이. 그 밖의 온갖 마법들이.


그림자로 만들어진 손 위에서 움직이는 것이 보였다.

음... 어째 마법들이 꼭, 불기둥에 전기 사슬로 매달아놓고서 창으로 찌를 것처럼 생겼지만 무시했다.


그런 하드코어는 사양이었다.


생각하자. 이지경아. 생각을  해보자.

이 상황에서 어떻게 하면 좋을지. 대가리를 굴려보자.

단순히 그림자들뿐이라면 베어 넘기면 그만이었지만, 저렇게 많은 마법까지 동시에 대처하기엔 손이 모자랐다. 아니, 손만이 모자른게 아니라, 힘도 부족했다.

주시자의 눈과 불멸자의 심장.


두 기능은 아직 비활성화 상태였다. 즉 내가 갖고 있는 전력의 절반 이상은 쓸 수가 없다는 소리였다.

이런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건...

솔직히 말해서 몇 가지 없었다.

그리고 그 몇 가지 중에서 쓸 만한 거라고는 결국 몸으로 때우는 수밖에 없다는 결론이 나왔다.

 외에는 크리샤에게 씨알도 먹히지 않을 테니까.


괜찮았다.

이래봬도 몸은 제법 튼튼한 편이었다. 거기에 개변자를 통해서 내가 가진 능력치의 대부분을 체력으로 몰빵한다면, 또 투기와 투신을 사용하고서, 호신의 방패까지 사용한다면 어찌저찌 버텨볼만 할거다.


문제는 그렇게 해도 지나치게 많은 마법들인데...

할 수 없었다.

숫자로 밀린다면 나도 늘리면 그만이었다.

마도의 이치.

그림자의 손.

슈우우욱!


내 주위로, 크리샤와 마찬가지로 그림자로 된 손들이 솟구쳐올라왔다. 크리샤의 것에 비하면, 고작 십수 개에 불과했지만 그래도 내 그림자에는 믿을 구석이 하나 있었다.

그렇게 솟아오른 그림자들이, 저마다 그림자로 만들어진 광휘를 쥐고 있었으니까.

물량에 저항해서, 이쪽은 질을 높인 셈이었다. 그래봤자, 애당초 그림자의 손에 대한 이해나, 완성도가 크리샤에 비해 딸리니까 그게 그거겠지만.


언젠가 해봤던 것처럼. 생각한 대로 금방 만들어진 그림자들을 다루는 나를 보며 크리샤가 코웃음 치며 말했다.


"하! 어디  번 막아보던가!"


그리고 그 말과 함께 마법들과 그림자들이 동시에 쏟아지기 시작했다.


어디... 한번 해보자. 나도 제법 강해졌으니까, 붙어볼만  거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쇄도해오는 마법들을 향해 그림자들을 뻗어 보내며, 나 역시 광휘를 움켜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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