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43화 〉143화 (143/370)



〈 143화 〉143화

“끄응...”

입 밖으로 새어나오는 신음을 참으며, 느릿하게 허리를 튕겼다. 곧이어 퓻, 퓻하고. 드래곤 슬레이어가 최후의 정액을, 나보다 먼저 뻗어버린 크리샤의 안에 가득 채워 넣기 시작했다.

“으응...♥”


의식을 잃은 채로, 균열을 조여 오며 정액을 받아들이는 크리샤의 안에 마지막 한 방울까지 모두 쏟아 넣으며, 나는 그대로 뒤로 벌러덩 누워버렸다.

“흣♥”


“앙♥”

덕분에 그런 내 뒤에서 잠들어 있던 에샤와 모네가 내게 깔려서 신음을 내뱉었지만, 아무래도 좋았다. 지금의 내겐 더 이상 움직일 힘이 전혀 남아있지 않았다.

한동안은 이대로 있기로 하고서, 멍하니 천장을 바라봤다.

눈앞이 노랬다.


분명 알록달록한 보석들로 장식되있을 터인 천장이, 온통 노란 보석 투성이였다.


하긴, 그럴 만도 했다.

음마의 여왕으로 각성했다는 알림과 함께 달려들던 에네스타와 에오시스 자매들과 살을 섞었다. 에네스타와, 그런 에네스타의 특성 ‘안식의 밤’에 의해 여러모로 능력이 강화된 음마들... 에오시스 자매들이 만족할 때까지, 사정에 사정을 거듭했다.

그리고 그러던 도중에 깨어난 크리샤가 멋대로 에네스타와 에오시스 자매들에게 사정한 사실을 알고 난리법석을 떠는 것을 달래기 위해, 다시 크리샤와 살을 섞었다.  명에게 해줬던 만큼 똑같이 해달라고 요구하는 크리샤의 안에 또 앞서 싸질렀던 만큼의 정액을 내줬다.


거기서 멈췄으면, 이 정도까지는 아니었을 거다. 그쯤부터, 허리에서 삐걱거리는 소리가 들려왔지만.

그 뒤에 또 발정한 음마들과 살을 섞고, 또 다시 그런 음마들에게 질투하는 크리샤와 살을 섞고... 마지막에 가서는, 크리샤와 음마들이 내 드래곤 슬레이어를 가지고 다투기 시작해서.

그걸 또 말리기 위해서, 전력을 다해서, 다섯 모두가 만족할 때까지 허리를 움직이던 결과가 이거였다.

저릿저릿, 욱식욱신하고 아파오는 허리가, 그 결과란 소리였다.

지금, 조금이라도 움직였다가는 허리가 그대로  동강이 날  같았다.

어쨌거나, 결국 허리가 엉망진창이 되긴 했지만 최후의 최후까지 버텨낸 나는, 저릿저릿하고 쑤셔오는 허리의 통증을 참아내면서 천천히 내 위에 올라타고 있는 크리샤의 몸을 안아들었다.

아무리 의식이 없다고는 해도, 크리샤와 연결한 채로 뒤로 누워버린 터라. 내 위에 있는 크리샤의 자세가 너무 엄해서 가만히 보고 있을 수는 없었다. 그 크리샤가, 자기가 이런 꼴로 뻗어있었다는 걸 알면 어떻게 될지도 모르고.

쯔붑, 하고. 크리샤의 안에 박혀있던 드래곤 슬레이어가 빠져나왔다.


덕분에 그런 크리샤의 균열을 틀어막고 있던 드래곤 슬레이어가 빠져나오자 마자, 벌어진 채 다물어지지 않는 균열 사이로 정액이 흘러나오는 것이 보였다.

그렇게 흘러나온 정액들이, 크리샤의 밑에 있던  허벅지  타고 흘렀지만 그걸 신경 쓸 여유는 없었다.

어차피 당장 내가 드러눕고 있는 에샤와 모네의 몸도 내 정액으로 잔뜩 더러워진 상태였다. 거기에 누워있는  몸이 무슨 꼴인지는 안 봐도 뻔했다.


이게 아니었어도, 난 이미 정액으로 한바탕 샤워라도 한 꼴을 하고 있다는 거였다. 그나마 다행인건, 이게 다른 누구의 것도 아닌,  정액이라는 점일까.


그래봤자 찜찜한 건 매한가지지만.

아무튼 이대로 한숨 돌리고 있을까 싶어서, 눈을 감으려고 했을 때였다. 그런 내 눈앞에 익숙한 형태의 과일이 내밀어졌다.


“엉?”

 세계에 오고 나서, 내가 먹은 것 중에서도 손에 꼽을만큼, 가장 많이 먹은 음식이기도 한 에이그라의 열매였다.

지금의 나에게 있어서, 꼭 필요했던 녀석이기도 했다.


덥썩, 하고 먹기 편하게 입 앞에 내밀어진 에이그라의 열매를 물자 달콤한 과즙이 몸에 퍼져나갔다. 동시에 띠링띠링하고, 지구력과 생명력이 회복되었다는 익숙한 알림들이 들려왔다.

그리고.

띠링~

[플레이어 ‘이지경’님이 ‘에이그라의 열매’를 100개 이상 섭취하였습니다.]

[플레이어 '이지경'님의 체력이 영구적으로 3만큼 상승합니다.]

[플레이어 '이지경'님이 기능 '만독불침'을 습득했습니다. 해당 기능이 상위기능 '불멸자의 심장'에 흡수됩니다.]

[플레이어 '이지경'님이 기능 '도검불침'을 습득했습니다. 해당 기능이 종족 '용인'에 의하여 계열기능 '용의 비늘'로 변환됩니다.]

"벌써 백개나 먹었었나."

몇 년에 한번씩 열린다고 했던 에이그라의 열매를, 벌써 백개나 먹어버렸다는 사실에 조금 놀라웠다. 그 말은몇 백년은 걸쳐서 맺혔을 열매는 전부  뱃속으로 들어갔다는 소리였다.

뭐, 그 덕에 기능도 두 개나 얻어버렸고 열매야 어차피 또 자랄테니 상관 없을 거다. 그것보다 중요한건 따로 있었다. 회복된 지구력과 생명력에 의해서, 개변자로 인해 순식간에 생생해져가는 허리가 느껴졌다.

이것보다 중요한게 있을리가 없었다.

"덕분에 살았다. 고마워, 에..."

에이그라의 열매를 가져다 준 것이, 당연히 에루나겠거니 생각하면서. 고개를 돌리며 그렇게 말을 꺼냈던 내 눈에 보인 것은 에루나가 아닌, 로로의 얼굴이었다.


"...로로."


자연스럽게 꺼내려던 이름을 바꿨다. 다행히 눈치채지 못했는지 그런 내 말에 살짝 고개를 끄덕인 로로가 두 번째 에이그라 열매를 건넸다.

하지만 태연한 얼굴로, 두 번째 에이그라 열매를 내미는 로로를 보는  머릿속이 무척이나 복잡해졌다. 일단 내밀어진 열매는 먹었지만. 그러자 곧장 다시 내밀어지는  번째 열매를 보며 생각했다.


그러고 보니...


로로가 언제부터 있었던 거지.


이런 경우가 바로 얼마전에도 있었던 것 같은데. 그때보다 지금 느끼는 당혹감이 더 강했다.

마지막으로 로로를 봤을 때가 떠올렸다. 분명, 침실까지 왔을 때까지만 해도. 로로도 함께 왔었다. 거기까지는 확실했다. 굳이 로로까지 데려갈 필요가 있냐는 내 말에, 에루나가 만약을 대비해야한다며 데려왔었으니까 분명했다


문제는 그 뒤였다. 내 기억 속에 그 뒤의 로로의 행방에 대한 기억이 전혀 없었다.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게 아니라, 로로에게 전혀 신경 쓴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야 크리샤를 상대하느라 바빴고, 그 뒤로는 에네스타나 에오시스 자매들을 상대하느라 바빴으니까. 다른 것에 신경 쓸 수 있을 턱이 없었다.

즉...

나는 로로가 대체 언제부터 여기에 있었는지 전혀 모른다는 소리였다.

내 눈이 로로의 몸을 위에서 아래로 빠르게 훑어지나갔다. 로로의 차림새는, 침실에 왔을 때와 마찬가지로. 기묘한 무언가가 변한 검은 드레스 그대로였다.

느낌이 영 좋지 않았다.

"로로, 한가지만 물어봐도 될까?"


내 말에 다시  번 고개를 끄덕이는 로로에게 내가 물었다.

"언제부터 여기 있었니?"


그런  말에 로로가, 에루나가 저절로 떠오를만큼 태연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계속 여기에 있었어."


그렇게 말하고서, 무언가 고민하는 기색이던 로로가 주변을 둘러봤다. 최후의 승자가 나였듯이. 패자가 되었던 크리샤와 에네스타, 에오시스 자매들이 침대 위에서 아무렇게나 뻗어있었다. 온몸에, 어젯밤의 흔적을 곳곳에 남긴 채로.

그 광경을 천천히 둘러본 로로가 이내 말을 이었다.

"괜찮아. 이런 거 어차피 익숙했으니까."







익숙하다는 게, 내가 이런 짓을 해왔던 걸 자주 봐서 익숙하다는 의미인지 아니면 그냥 날 위로하고자 하는 말인지 알 수 없었다.

확실한 것은  말을 통해 알 수 있는 것이 하나 있었다는 거였다. 로로가 여태까지 있었던 일들을, 바로 옆에서 보고 있었다는 것을.

무심코 머리를 감싸 쥐었다.

지금 내가 느끼는 감정은 뭐랄까... 엄청 복잡미묘했다. 한창 때의 딸에게 보여주면 안 될 것을 보인 기분이라고 할까. 어른의 밤 사정을 걸린 기분이라고 해야 되나...


그런 내 손에, 무언가 이상한 것이 잡혔다.


더듬더듬, 손에 잡힌 것을 만져봤다.

뿔이었다.


예의, 사라졌었던 뿔이  머리 위로 돋아나 있었다. 이전처럼 커다랗게 튀어나온 것이 아니라, 만진 뒤에야 겨우 알아챌 만큼 작은 뿔이었지만.

아무리 작다고 해도 뿔이라는 것은 변하지 않았다.


이게 왜?

"주인님, 수고하셨습니다."

로로에게 적나라했던 정사를 전부 보였다는 생각에 좌절하다가, 뜬끔없이 머리에 다시 돋아난 뿔을 만져보고 있던 내게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번에는 확실히 에루나였다.

"에루나?"


"네, 주인님의 시녀인 에루나입니다."


그렇게 말한 에루나가 로로를 바라봤다. 정확히는, 로로에 손에 남아있는 에이그라의 열매를 바라봤다.


"다행히 에이그라의 열매는 몸에서 받는 모양이군요. 앞으로는 주인님의 식사로 마력이 풍부한 음식들을 만들어오면 될 것 같습니다."


그러고 보니, 나 역시 포식자라는 특성에 의해 평범한 음식은 먹을 수 없게 된 몸이었다. 정확히는, 음식이 아니라 마력을 통해 영양소를 얻게 된 거지만.

사실 그게 그거였다. 단지, 내가 필요로 하는 양의 마력이 나 혼자로도 어마어마해서, 드래곤 수준의 마력이라는 것과  마력을 나만 사용하는게 아니라, 내 옆에 뻗어있는 에네스타와 에오시스 자매들 말고도 눈앞의 에루나나 로로, 다른 방에서 기절해있는 낙시안들과도 나눠 써야 한다는 점에서 더욱 많은 마력이 필요하다는 정도?


마력이 풍부하게 깃들어있는 에이그라의 열매는 그런 나에게 딱 적합한 녀석이란 소리였다.

저게 아무렇게나 구할  있는 것은 아니니까, 앞으로  식사를 준비해줄 에루나에게 애로사항이 꽃피울 전망이 보였지만.


하지만 그런건 아무래도 좋았다.

다시금 회복에 전념하기 위해 세번째 에이그라 열매를 먹어치우자마자 아무렇게나 다시 내밀어진 네번째 에이그라 열매를 보고 있으려니 아무래도 좋을 것 같았다.


그보다...

"뭐하냐?"

대뜸 침대 위로 올라오는 에루나를 보고 그렇게 묻자, 내 말에 에루나가 태연한 얼굴로 말했다.


"청소를 하려는 것뿐입니다만, 무슨 문제라도 있습니까?"

...문제는 없었다.

확실히, 지금 침대 위는 엉망진창이었다. 내가 싸질러댄 정액이며, 애액이며, 온통 젖어서 축축해져 있었다. 청소가 다급히 필요한 것은 맞았다.

정말로 청소라면 말이다.

청소를 하려고 그랬다는 에루나의 손은 정작 내 드래곤 슬레이어에 향하고 있었다. 덥썩, 하고 자그마한 에루나의 손이 회복한 체력과 함께 기운을 차린 드래곤 슬레이어를 쥐었다.


그렇게 내가 보고 있는 와중에도 뻔뻔하게 시리, 천천히 손을 움직이는 에루나를 한참동안 바라보다가.

"혹시, 이거 때문이야?"


머리 위에 돋아난, 작은 뿔을 만지며 그렇게 물었다.


뿔.


마왕의 증거.

고작 뿔 가지고 마왕의 증거라고 하기엔, 낙시안 출신은 전부 가지고 있지만  것은 조금 달랐다. 낙시안의 것이 신체의 일부라면, 내 것은 아무리 만져봐도 별 다른 느낌이 없었으니까.


내 뿔이 신체라기보다는 일종의 마력 덩어리라고 생각하는  편하기 때문일지도 몰랐다. 외부에 달린 마력 탱크 같은 느낌이라고 해야 되나.


그리고 에루나가... 이전의 몸을 희생시켜서 봉인했던 것이기도 했다.

하지만 어렴풋이, 사실은 그런 것이 아니란 것쯤은 느낄 수 있었다.

과거, 루시아가 기능 흡정을 봉인했을 때처럼. 정말로 봉인되었던 거라면 내 직업, 마왕의 직업인 부덕의 왕이 비활성화 상태로 전환되었을 테니 말이다.


하지만 정작 부덕의 왕은 지금까지도 팔팔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에네스타와 에오시스 자매들이 음마로 각성한 것도 그것이 이유였으니까.


심지어 어젯밤의 정사를 통해서, 네 명의 음마의 처녀를 빼앗았다면서 부덕의 왕의 능력이 더욱 강해졌다는 알림까지 들은 뒤였다. 팔팔하다 못해 강해지기까지 하는데, 그런 것을 봉인됐다고 말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그리고 그런 내 말에. 에루나가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그때도."


느닷없이, 내 의사를 처음으로 거부하고서. 멋대로 펠라치오를 감행했던 에루나가 떠올랐다.


그때 에루나가 느끼고 있던 감정도.


초조함.


조급함.

그때는, 워낙 상황이 좋지 못해서 깊이 생각한 적이 없었지만, 정황상 어째서 그랬는지 이제야   같았다.


"아뇨. 그때는 그냥 저도 모르게."


"......"

"왜 그러십니까?"


몰라서 묻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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