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6화 〉136화
《드래곤의 남편, 이지경》
[‘로로’가 성공적으로 각성합니다. ‘로로’의 각성에 영향을 끼친 혼에 의하여, 종족이 개변됩니다.]
정신을 잃기 직전에 귓가에 들려왔던 알림.
그와 동시에, 혼탁해져가던 의식이 다시 뚜렷해지는 것이 느껴졌다.
[플레이어 ‘이지경’님과 혼으로 연결되어 있는 존재가 그 영향으로 기존의 예정되어있는 종족이 아닌 다른 종족으로 개변을 시도합니다.]
[대상에게 적용되어 있는 가장 높은 종족 적합도를 기준으로 새로운 종족을 결정합니다. 현재 대상의 가장 높은 종족 적합도는 거인입니다.]
[플레이어 ‘이지경’님의 영향으로 해당 개변에 용인 20%, 흡정귀 20%가 영향을 미칩니다.]
무언가 바삐 울려댔던 알림이 끝나기 무섭게, 로로를 둘러싸고 있던 마력들에게 변화가 일어났다.
우웅!
아니, 로로를 둘러싸고 있던 마력뿐만이 아니라, 앞서 깨어났던 낙시안들과 에네스타를 비롯한 엘프들이 찢으며 나오고 나서도 남아있던 마력들까지, 움직이기 시작했다.
모조리 한 곳으로 모여들어서, 흡수되기 시작한 것이었다.
다름이 아니라, 로로에게로.
이윽고.
띠링~
[‘로로’가 스스로의 타락을 받아들입니다. 힘의 그릇이 순리에서 벗어났습니다. 타락한 마력으로 힘의 그릇이 오염되었습니다.]
[‘로로’의 종족 개변에 있어서 과도할 정도의 마력이 충족되었습니다. 이에 적합한 종족을 찾을 수 없습니다.]
[새로운 종족을 창조하시겠습니까?]
“새로운 종족이라니...”
귀에 들려온 말에 어안이 벙해졌다. 새로운 종족은 그렇다 치고서, 창조라는 말까지 나왔으니 어이가 없어진 것이 당연했다.
거기에,
[경고, 이 이상의 행위는 신역에 이른 행위입니다. 권한이 없는 자는 즉시 중단하십시오.]
귓가에 그런 알림까지 들려왔으니 더더욱 그랬다.
신역이라...
어디서 들어봤던 이름이었다. 꽤 오래전의 일인 것처럼, 잘 기억이 나질 않았지만, 생각보다 최근에 들었던 이름이란 건 확실했다. 그러니까...
잠깐 생각한 나는 그게 처음으로 ‘주시자의 눈’을 얻게 되었을 때에도 들었던 알림임을 떠올려냈다.
그때도, 나에게 신역이 어쩌고 하는 알림이 들려왔었다.
그 이후로는, ‘주시자의 눈’과 동급일 터인 ‘불멸자의 심장’을 얻었을 때도 듣지 못한 이름이었지만.
그리고 그때, 예의 떠올렸던 두 기능에 대한 알림이 들려왔다.
[기능 ‘주시자의 눈’과 기능 ‘불멸자의 심장’이 이에 대응합니다.]
‘주시자의 눈’과 ‘불멸자의 심장’이 제멋대로 대응하니 뭐니하면서 활성화되는 것이 느껴졌지만, 딱히 나는 어떻게 할 수도 없었다.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도 잘 모르겠고, 애당초 내가 뭘 할 수 있는 것도 없었다.
다른 기능들에 반해서 저 기능만큼은 내가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것들이 더 많으니 말이다. 기능이나 특성이 멋대로 발동되거나 했던 것이 이번이 처음인 것도 아니고.
그리고 잠시 뒤에, 귓가에 여태까지 들려왔던 것과는 달리, 낭랑한 여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조건이 충족되어있음을 확인했습니다.]
[일시적으로 플레이어님께 3급 이하 신역의 권한이 부여됩니다.]
[새로운 종족의 창생에 대한 권한이 부여되었습니다. 섭리와 법칙이 허락하는 선에서, 새로운 종족을 창조하실 수 있습니다.]
[새로운 종족을 창조하시겠습니까?]
[새로운 종족을 창조하지 않을 경우에 현재 종족 개변중인 대상 ‘로로’의 종족이 자동으로 가장 높은 적합도를 가진 ‘거인족’으로 고정, 개변됩니다.]
기존과는 다른 목소리의 알림이 신경 쓰였지만, 생각할 여유가 없었다. 나는 자꾸만 몸을 들이 밀어오는 에네스타와 에오시스 자매들을 견제하느라 바빴다.
아무튼, 중요한 것만 정리하자면 새로운 종족을 창조하는 것이 아니라면, 지금 한창 변하고 있는 와중인 로로의 종족이 거인족으로 바뀐다는 것 같았다.
내 머릿속에 반거인족으로 바뀌었던 바록과 바쿠가 떠올랐다. 아니, 딱히 떠올릴 필요도 없이 고개만 돌리면 에네스타의 구타 끝에 뻗어있는 바록과 바쿠가 보였다.
키가 족히 3미터를 훨씬 넘는 덩치가 되어버린 두 녀석이.
그러니까, 새로운 종족을 창조하는 게 아니라면 로로가 그것보다 더한 거인족으로 바뀐다고...?
거대하게 바뀌어버린 로로를 떠올려보려고 했지만, 도무지 떠오르지 않았다.
그만큼 전혀 어울리지 않았다.
그런 생각을 했을 때였다. 귓가에 여전히 기존의 알림과는 전혀 다른 목소리로. 누군가가 속삭이는 듯 한 알림이 들려왔다.
[플레이어님의 의지에 따라 새로운 종족의 창조를 개시합니다.]
아주 잠깐, 세상이 멈춘 듯한. 전에 크리샤가 천공성 주변의 시간을 멈췄을 때와 비슷한 감각이 온몸을 스쳐지나갔다.
하지만 아주 잠깐이었다.
곧이어, 그런 느낌이 사라지는 것과 함께 알림이 들려왔다.
[대상에게 적합한 새로운 종족의 창조가 완료되었습니다.]
[해당 종족에 영향을 끼친 종족은 다음과 같습니다. 거인족, 용인족, 흡정귀. 이하 세 종족을 토대로 새로운 종족을 창조해냈습니다.]
[플레이어님에게 부여되었던 3급 이하 신역의 권한이 해지됩니다. 새로운 종족의 창생에 대한 권한이 해지됩니다.]
[3급 이하 신역의 권한을 부여받은 대가로 일시적으로 기능 ‘주시자의 눈’과 기능 ‘불멸자의 심장’의 사용이 불가능하게 되었습니다.]
아주 잠깐 사이에 모두 끝나버린 것처럼. 목소리가 그렇게 말하더니, 그 뒤에 들려온 것은 익숙하기 그지없는, 평소와 다름없는 알림이었다.
[‘로로’의 종족이 낙시안에서 릴리스로 변경되었습니다.]
[해당 개체는 개인으로 종족. 유일하고 무이한 고유 종족입니다.]
[해당 개체는 마왕 ‘베헤노스’에게 종속되어 있습니다.]
[강대한 잠재력을 가진 존재를 종속시키는데 성공했습니다. 해당 업적으로 플레이어 ‘이지경’님의 직업 ‘부덕의 왕’의 일부 효과가 강화됩니다.]
띠링띠링, 하고. 그런 알림과 함께 복속시킬 수 있는 마물의 최대수가 상승했다는 것과 장악력이 강화되었다는 알림이 들려왔다. 마물의 최대수라던가, 장악력이 강화됐다고 해도, 둘 다 사용해본 적도 없던 것들이라서 뭐가 좋은 건지는 전혀 모르겠지만.
하지만, 거기서 끝난 것이 아니었다.
[마왕으로써 처음으로 권속을 탄생시켰습니다.]
[해당 권속은 매우 강대한 잠재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새롭게 탄생한 종족의 주인이 되었습니다. 플레이어 ‘이지경’님이 칭호 ‘릴리스의 아버지’를 습득했습니다,]
음...
아버지, 라...
로로를 비롯해서, 나와 가신 시스템으로 엮여있는 모두에게 가족과 같은 친애를, 아들이나 딸과 같은 감정을 느끼고 있었던 것은 사실이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그런 감정을 느낀다는 것 뿐이었지 정말로 그들이 내 아들이나 딸이라는 것은 아니었는데, 알림이 새롭게 습득했다고 알려온 칭호의 이름을 들으니 어쩐지 기분이 묘해졌다.
이 경우에는 나로 인해 새롭게 창조된 종족, 릴리스. 그러니까 로로의 주인이 나였기 때문에 받게 된 칭호인 모양이었지만 그걸 알고 있어도 기분이 묘해지는, 그런 이름이었다.
루시아와 크리샤만 생각하더라도, 정말로 내가 아버지가 되는 것이 그리 먼 미래는 아니라고는 생각하고 있었지만, 그것보다 빨리, 이런 식으로 아버지라는 이름을 들을 줄은 몰랐는데.
조금 떨떠름했다.
덧붙여서 이런 칭호를 받은 건 나만이 아니었다.
[‘로로’가 칭호 ‘마왕의 첫 권속’을 습득했습니다. 첫 번째 권속으로써 마왕의 힘을 일부 사용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대상이 사용할 수 있는 힘의 한도를 임의로 지정할 수 있습니다.]
[플레이어 ‘이지경’님의 칭호 ‘릴리스의 아버지’에 의해서 ‘로로’가 칭호 ‘마왕의 아이’를 습득했습니다. 대상의 능력치가 플레이어 ‘이지경’님의 능력치에 비례하여 대폭으로 상승합니다.]
내가 릴리스의 아버지라는 이름의 칭호를 받았던 것처럼. 로로 또한 마왕의 아이라는 칭호와 마왕의 첫 권속이라는 칭호를 받았다는 알림이 들려왔으니 말이다.
딱 잘라서 나에게는 아버지라는 칭호를, 로로에게는 아이라는 칭호가 주어진 것을 보니 더 이상 할 말도 없었다.
“아하...♥ 깊이 생각하시는 주인님도, 정말로 멋있네요♥”
그때, 내 몸 위에 올라타고 있던 모네가, 그렇게 말하고서는 꼬리를 움직여왔다. 알림을 듣느라 잠깐 방심했던 사이에 일어난 일이었다.
순식간에, 하나밖에 남지 않은 내 최후의 보루. 팬티 밑으로 꼬리를 집어넣은 모네가 입가에 음탕한 미소를 띈 채 말했다.
“이쪽도, 정말로 멋지고요♥”
스윽, 하고 정신만 멀쩡해진 거지 여전히 지속중인 상태효과 ‘발정’의 영향으로, 잔뜩 부풀어져 있던 드래곤 슬레이어를 꼬리로 감싼 모네가 그렇게 말했다.
그런 모네를 떼어내려고, 몸을 움직이려고 했지만 그것마저도 무리였다. 모네를 뜯어말리기 위해서, 손을 떼어내기 무섭게 에네스타와 나타마저 그런 나에게 몸을 밀어왔으니 말이다.
그나마 제 정신이었을 때 여기서 어떻게든 빠져나왔어야 했는데, 너무 시간을 지체한 것이었다.
아니, 정신만 멀쩡할 뿐 상태효과 ‘발정’에 의해서 영 말을 듣지 않는 몸을 보아하니 내가 뭘하던 결과는 똑같았을지도 모르겠지만...
그리고 그런 내 눈에, 마력을 모두 흡수한 것인지 온몸을 감싸고 있던 마력들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진 채, 멍한 눈으로 천장을 바라보고 있는 로로가 보였다.
희망이 보이는 듯 했다.
각성의 영향인지 다른 낙시안들이 그랬던 것처럼, 성장한 듯한 모습의 로로를 보니 지금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희망이 생겼다.
다른 낙시안들과는 달리. 폭발적으로 성장한 마야나 니아, 슈슈와 성장이라기보단 진화를 한 바록과 바쿠와는 다르게 아직 소녀라고 부를 수 있는 나이로밖에 보이지 않는 로로를 보니 조금 불안하기도 했지만.
다른 낙시안들과는 달리 로로는 무려 성공적으로 각성에 성공했으니 다를 거라고 믿기로 했다.
무엇보다도, 로로의 바뀐 외형을 보아하니 확실히 뭔가 바뀌긴 한 것도 같고 말이다.
전체적으로 성장한 듯한 모습과 더불어, 색이 조금 옅어진 갈색 피부와 나와 같은 검은 머리카락을 갖게 된 로로를 바라봤다. 크리샤처럼 아주 칠흑처럼 어두운 검은 빛이 아니라 나와 같이, 짙은 갈색이 섞여있는 검은 머리카락의 로로를 보자, 아버지와 아이는 칭호를 받았던 것이 괜히 떠올랐다.
이렇게 보니 내가 봐도 정말로 부녀관계처럼 보였다.
로로의 이마 위로, 본래 하나뿐이었던 뿔이, 두 개나 좌우로 더 솟아나서. 마치 티아라 왕관을 쓴 것처럼 바뀌어 있다는 것과, 로로가 내 자식이라고 생각하기엔 지나치게 귀엽게 생겼다는 것만 제외하면.
음, 나도 뿔이 없어진 것만 아니었더라면, 그리고 조금만 더 잘생겼더라면 정말로 로로 같은 딸이 있다고 해도 다들 믿었을지도 모르겠다.
아니, 나도 뭐... 여러 가지 일을 겪다보니까 상승한 매력과 함께 덩달아 잘생겨져버려서 예전처럼 좀 그렇지는 않았지만...
아무튼 지금 그런 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어차피 드래곤인 루시아나 크리샤는 인간이 생각하는 미모와는 조금 다른 기준으로 이성에게 호감을 느끼는 모양이었고, 애당초 둘이 신경 쓰지도 않는걸 내가 누구한테 자랑할 것도 아닌 외모가 잘생겨져봤자 쓸데도 없었다.
그나마 장점이 있다면 앞으로 태어날 2세의 얼굴에 대해서는 내가 미안해야할 필요가 다소 덜었다는 점 정도뿐이라는 거였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로로를 바라보다가.
“로로.”
로로를 향해 손을 뻗으며 이름을 부르자. 느릿하게 로로가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봤다. 정신이 조금 들었는지, 차츰 뚜렷해져가는 로로의 눈빛을 보면서. 내가 말했다.
“깼으면 좀 도와주라.”
다른 한 손으로는, 자꾸만 움직이려고 드는 모네의 꼬리를 움켜쥔 채 절박하게 말했다.
그런 내 말에, 로로가 멈칫하고서. 나와 내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에네스타와 에오시스 자매들을 번갈아 바라봤다.
로로가 눈살을 찌푸리는 것이 보였다. 기분 탓일지도 모르겠지만, 나를 바라보는 로로의 시선이 차게 식어가는 것 같았다.
아마도, 기분 탓이겠지만.
아니지. 기분 탓이어야만 했다.
여기서 로로가 모른 척 가버리면 나는 그대로 끝이었다.
다행히, 그런 일은 없었지만.
이내 굳은 표정을 지은 로로가 천천히 주먹을 움켜쥐는 것이 보였다. 그런 로로의 주먹을, 마력과 투기, 그 두 개의 모습을 함께 갖고 있는 검고 질척한 것이 꾸물거리며 감싸가는 것도.
그리고 그렇게 로로의 주먹을 시작으로 온몸을 덮기 시작한 그것이, 이내 온몸을 감싸더니. 평소 로로가 입고 다니던 옷으로. 흑색의 시녀복을 닮아있는 드레스로 바뀌는 것이 보였다.
그러고서.
띠링~
[조건이 충족되었습니다. ‘로로’가 직업 ‘부덕의 공주’를 습득하셨습니다.]
내가 갖고 있는 직업, 부덕의 왕과 꼭 닮은 직업을 로로가 습득했다는 알림과 함께, 로로가 움직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