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4화 〉134화
마라, 여인의 얼굴에 뱀의 몸을 갖고 있는 거대한 괴물.
빼어난 미모를 갖고 있는 얼굴과는 달리, 그 밑으로는 흉측하기 짝이 없는 뱀의 몸을 하고 있는 그 뱀은, 두 개의 눈에 깃든 주술로 사냥감을 유혹해 다가오게 한 뒤에, 그 목덜미에 독니를 꽂아 넣어 사냥을 했다.
그리고 그런 마라의 이빨에는 대전사조차 물리게 된다면 며칠간을 시름시름 앓다가 결국 죽음에 이를 정도의 맹독이 있다.
그런 독니를 손에 쥔 소녀가 발소리를 죽인 채, 조심스레 움막 안으로 들어갔다.
“로로, 내 딸.”
다리 사이로, 대체 몇 번이나 쏟아 부었는지 모를 정액을 흘리며 너부러진 여자들 사이에서, 이미 기절한 여인을 안고 있던 사내가 그런 소녀를, 로로를 보고서 말을 걸었다.
“또 나를 죽이러 왔군, ...이번에는 마라의 독니인가.”
그깟 걸로 날 죽일 수 있겠냐는 듯이. 사내가 비웃으며 말했다.
“네 어미랑 하는 짓이 똑같구나.”
그 말에 로로가 땅을 박찼다.
단 한번.
제 아무리, 저 괴물이라도 마라의 독니에 찔리면 결국 죽게 될 것이다. 물론, 저 괴물이 단번에 죽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대전사조차도 물리고 난 뒤에도 며칠을 버티는 독이었다. 맹독이기는 하지만, 찔리는 즉시 상대를 죽이는 극독은 아니란 소리였다.
성공적으로, 독니를 찔러 넣는다고 하더라도, 결국 죽지 않고 살아남을 괴물 녀석의 주먹이 자신의 머리를 깨부술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상관없었다.
죽음 따위는 그녀에게, 로로에게는 아무런 상관도 없었다.
눈앞에 저 사내를 죽일 수만 있다면.
어머니를 죽인 저 사내만 죽일 수 있다면.
목숨 따위는 아무런 가치도 없었다.
하지만, 한마디.
로로는 저 사내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었다. 죽더라도, 이 말만큼은 저 사내에게.
"...단 한번도!"
오직 이것만을 위해서. 수없이 상상을 거듭하고, 수없이 되풀이한 동작.
쿠웅!
날아들었던 로로의 몸이, 그대로 공중에서 빙그르르 돌더니 천장에 납작 엎드리듯 매달리고서는 이내 다시 한 번 천장을 발로 차며 남자에게 쏘아졌다.
"...널 아버지라고 생각한 적 없어!"
푸욱!
마라의 독니가, 앉아있는 키로도 보통의 전사만큼이나 큰 사내의 어깻죽지를 물어뜯듯이 박혀 들어갔다.
성공했다.
드디어 저 남자를... 죽일 수 있었다. 비록, 자신도 곧 죽게 되겠지만. 그런 생각을 하며, 로로는 체중을 실어 조금이라도 마라의 독니를 사내의 어깻죽지에 밀어 넣으려고 했다.
"그거 우연이군."
그런 로로의 목덜미를 잡아챈 사내가, 이죽거리듯 말했다.
"사실 나도 널 내 딸이라고 여긴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콰직!
그대로 집어던져진 로로가 벽에 부딪혔다. 우드득, 뼈가 으스러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등뼈와, 갈비뼈가 부러지는 소리였다.
사내가 그런 로로를 보며, 천천히 몸을 일으켜 세웠다. 여전히 기절해있는 여자의 몸을 안은 채로. 그리고서 로로에게 다가온 사내가 손을 뻗으며 말했다.
"하지만, 그렇다해도 넌 내 딸이지. 그러니 죽이지는 않으마."
우악스러운 사내의 손이 그대로 로로의 목을 움켜쥐었다.
"컥!"
가느다란 로로의 목은 조금만 힘을 줘도 부술 수 있다는 듯이. 사내는 손가락 하나하나에 살며시 힘을 주었다. 그가 진심으로 힘을 준다면, 로로의 목은 그대로 쥐어터지고 말테니까.
"너는 네 어미가 그랬듯이. 내 아이를 낳아야 하는 몸이니까 말이..."
퍽!
사내의 관자놀이에 로로의 다리가 적중했다. 최후의 저항이라는 듯이. 목을 움켜쥐어진 상태에서 로로가 다리를 휘두른 것이었다.
기형적으로, 다리에 가시와 같은 것이 돋아난 로로의 다리가 사내의 관자놀이에 일자를 그었다.
주르륵...
찢어진 상처로부터 피가 흘러내렸다.
하지만, 상처는 얕았다. 로로의 다리가 닿기 직전, 고개를 돌리는 것으로 피했기 때문이었다.
"훌륭하군. 네가 적어도 전사 정도의 힘이 있었더라면. 나에게 꽤나 큰 상처를 줬을지도 모르겠지."
스르륵, 하고. 로로의 최후의 저항이 남긴 상처는 순식간에 아물어서, 흘러나왔던 피만이 거기에 상처가 있었다는 것을 알려줬을 뿐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네가 전사였다해도... 나, 자락스를 죽일 수는 없었을 거다."
꾸드득, 자락스의 어깻죽지에 박혀있던 마라의 독니가 빠져나오는 것이 로로의 눈에 보였다.
독니가 저절로 자락스의 몸에서 빠져나온 것이 아니었다. 순식간에 아물었던 관자놀이의 상처처럼. 꿰뚫렸던 어깻죽지도 빠르게 재생하면서, 메꿔지는 상처 밖으로 독니가 밀려나오는 것이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대전사조차도 결국에는 죽음에 이르게 하는 독니가, 그 독니에 남아있는 맹독이, 죽어서까지도 남아있는 독이 검은 연기가 되어 사라져가는 것도. 로로의 눈에 보였다.
"놀랐나?"
경악하는 로로를 보며 사내가, 로로의 아버지이기도 한 자락스가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이깟 독으로 날 죽이려고 했다는 것이, 나는 더 놀라운데."
"끄윽..."
목을 붙잡힌 채로, 그대로 들어 올려진 로로가 버둥거렸지만, 제 아무리 힘을 써도, 자락스의 손은 어김없이 로로의 목을 조여올 뿐이었다.
"죽이지는 않겠다고 말했으니, 죽이지는 않겠다. 다만... 교육은 필요하겠지. 지금은... 네 아비로써 말이지."
뿌득, 자락스의 다른 손이 로로의 다리를, 자신에게 상처를 남겼었던 다리를 우악스럽게 붙잡았다.
그리고.
콰직!
뼈가 부러지는 소리와 함께 그대로 꺾인 다리가 덜렁거렸다.
로로의 입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지만, 자락스는 손을 멈추지 않았다. 다음은 팔을, 또 다음은 다른 다리를, 또 다음은... 차례대로. 가지를 꺾어 부수듯이, 로로의 사지를 꺾어버린 자락스가 말했다.
"너는 우수하다, 로로. 네 어미보다도 우수하지."
풀썩하고, 자락스가 손에 힘을 풀자 그대로 추락한 로로가 바닥에 엎어졌다.
그런 로로를 보며, 자락스가 말을 이었다.
"그런 네가 낳은 아이도, 필시 우수할 테지. 너와 나의 아이는, 보다 우수한 피를 갖고 태어날 게 분명하다."
어쩌면 나를 죽일 수도 있을 만큼.
"하지만 넌 아니다. 너는 계집의 몸으로 태어났으니. 만약 네 아이가... 날 죽이게 되더라도. 그 아이는 다시 널 안을 테지. 내가 그랬던 것처럼. 아버지를 내 손으로 죽이고, 네 어미를 안았던 것처럼 말이다. 내 아버지가, 제 아비를 죽이고 누이를 안아서 나와 네 어미를 낳았듯이."
꾸드득.
로로의 몸이 빠르게 재생하는 것을 보며, 자락스는 만족스럽다는 듯이 미소를 지었다. 동시에, 그런 로로의 몸을 짓밟으며 말했다.
"그것이 우리의 숙명이다. 보다 우수한 피를. 보다 강한 자를 낳고, 기르는 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니까... 오랜 옛날. 우리들의 선조가 덩치 큰 짐승 따위에게 진 이후로. 우리가 이 곳, 이 험지에서 살아가게 된 이후로..."
이제 막 재생되었던 로로의 등뼈가, 재차 자락스의 발에 의해 부러졌다. 갈비뼈가, 로로의 폐를 찔러들어갔다. 울컥, 하고 로로의 입밖으로 피가 흘러나왔지만, 자락스는 아랑곳하지 않고 잘근잘근 로로의 몸을 짓밟으며 말을 이었다.
우득우득, 뼈가 부러진다. 폐를, 장기를, 살갗을 찢어버린다. 상상할 수 도 없는 통증에, 정신을 놓고 싶었지만, 로로는 어떻게든 버텨냈다.
조금이라도, 자락스에게 틈이 보인다면. 그 틈을 노리기 위해서.
실제로, 자락스는 방심하고 있었다. 그저, 로로를 짓밟으면서 계속해서 말을 이을 뿐이었다.
"그것만이 우리의 숙명이 되었다. 복수를 위하여. 선조의 의지를 계승하기 위하여. 우리 몸에 흐르는 피를 보다 깨끗하게 유지하기 위하여."
"그딴 개, 소리..."
"입이 험하구나, 딸아."
"크윽...!"
머리채를 잡혀 들어 올려진 로로가 자락스를 노려봤다.
숙명이니.
복수니.
그딴 것은 자신과는 아무 상관없었다.
그저.
그저 어머니의 복수만을 위해서. 로로는 지금까지 살고 있었다. 그저, 저 사내를. 자락스를. 자신의 아버지를 죽이기만을 위해서.
"...널, 죽여 버리겠어... 반, 드시..."
이를 악물고서, 그렇게 말하는 로로를 보며 자락스가 웃었다.
"허나 변하는 것은 없다. 내가 죽게 되더라도, 우리의 역사는 변하지 않는다. 애당초, 내가 너 따위한테 죽을 일이 없을 테지. 나는 살 것이다. 그리고 네가 어른이 되었을 때. 네가 아이를 가질 수 있는 나이가 되었을 때. 나는 너를 안고, 넌 내 아이를 배고 낳을 것이다. 넌 네 어미보다, 너보다 강한 아이를 낳을 테지. 보다, 우리 선조와 가까운 존재를... 그렇게 우리는 반복하는 것이다. 거인의 아이를 낳을 때까지. 우리는 계속해서 같은 역사를 반복할 것이다."
오직 그것만을 위해서.
“우리가 이 자연의 감옥에서. 구차한 목숨을 이어가며 존재하고 있으니.”
자락스가 이를 드러내면서, 짐승처럼 사냥감을 사로잡은 맹수가 그러듯이. 그르릉하고, 낮은 울음소리를 내며 말을 이었다.
"네가 나에게 몇 번이고 대들더라도. 널 죽이지 않을 것이다. 네 어미가 죽었으니. 피를 이을만한 것은 너밖에 남지 않았으니 말이다."
그러니까, 자락스가 음욕과 탐욕, 그리고 가학심으로 번들거리는 눈으로 로로를 바라보며 말했다.
"네가 내 아이를 갖게 되기 전까지. 날 죽일 수 있도록 노력해봐라. 어쩌면... 죽일 수도 있을지도 모르는 법이니까."
허나 넌 불가능할 것이다. 그렇게 말하며, 자락스는 로로의 얼굴에 주먹을 날렸다.
뿌득, 하고 코뼈가 내려앉는 소리가, 로로의 마지막 기억이었다.
그로부터 수년 후.
버려진 땅.
낙스라고 불리는 땅.
그 땅이 본래부터 이토록 험악한 땅이었던 것은 아니었다. 오랜 옛날, 낙스라는 이름의 땅은... 베헤모아라고 불리며 무척이나 풍요로운 땅이었다고.
그 땅이, 지금처럼 괴물로 득시글거리고, 마실 수 있는 물조차도 독이 흐르며, 살아가는 것조차 고난한 땅이 된 것은, 아주 오래전에 있었던 전쟁에서. 우리들의 조상이 패배했기 때문이라고.
로로가 열 살이 되었을 때. 열 일곱 번째로 시도한 암살이 실패한 로로의 손톱을 뽑으면서. 자락스가 그렇게 말했다.
"우리 선조와 함께 싸웠던... 수십여 종족들이 이곳에 격리되었지. 그리고 승리한 그들은 넓은 바다와 주술로 우리들이 이곳에서 나오지 못하도록 가둬버렸다."
그것뿐만이 아니라.
전쟁에서 승리한 그들은, 자신들이 격리한 땅에 수많은 저주를 걸었다.
풍요로웠던 베헤모아가 지금처럼 험지가 된 것이 바로 그 탓이었다. 버려진 땅. 낙스라는 이름을 갖게 된 것도 그들이 이유였다. 그들이 건 저주로, 식물들은 병들어 죽고 살아남은 종자들은 독을 품은 열매를 맺었으며, 물에서는 독충들이 들끓었다. 땅은 오염되어 썩어갔고, 공기에는 그들이 토해낸 썩은 공기로 오염되었다.
"전에 네가 날 죽이기 위해 마라의 독니를 썼었지... 그거 아나? 그들도, 본래 우리의 선조와 함께 그 짐승들과 싸웠던 종족이었다."
지금은 이성을 잃고, 괴물 따위가 되어버렸지만. 자락스는 그렇게 말하고서, 한동안 침묵했다. 우득우득, 침묵하는 동안 자락스는 가만히 있던 것이 아니었다.
하나하나, 자신이 손톱을 뽑아냈던 로로의 손가락을 꺾으며 침묵하다, 말을 이었다.
"그리고, 그 밖에 다른 종족들도... 수많은 세월을 견디다 못해, 결국 추레한 괴물들이 되었지. 우리는, 한 때 우리와 함께 싸웠던 이들과 서로 싸우고, 살기 위해 서로 잡아먹고 있다는 소리다. 로로, 단지 우리가 졌기 때문에."
저주받은 땅에 갇혀, 동족과, 동료들과 영원토록 싸우고, 잡아먹는 것을 반복했다.
단지 패배했기 때문에.
“우리들은 살아남기 위해서. 이성을, 자아를, 복수심을, 증오를 잊지 않기 위해서. 지키기 위해서... 서로 몸을 섞었다. 살아남기 위해서였다. 거듭하여 근친한 결과, 우리들의 몸은 그 힘에 잠식되어 미쳐갔으니까. 그렇기에 몸을 섞었다. 피를 섞었다.”
그렇게 말한 자락스가 자조섞인 목소리로. 처음으로, 그 오만한 남자가 말했다.
“그 결과가 우리들이다. 한때 강성했던 우리들의 말로를 보아라, 로로. 땅에 들끓었고, 하늘을 누비며 지배하던 모든 이들의 말로를 보아라. 우리의 숫자는 고작 해봐야 수만에 불과하게 떨어졌다. 강철을 씹어 부수던 이빨도, 모든 것을 꿰뚫어보던 눈도, 죽지 않는 심장도. 하늘을 울리고, 땅을 진동시키던 힘도. 모두 잃고서. 서로 섞이고 섞이는 것을 반복한 끝에. 추레해진 우리들의 말로를.”
우두둑, 끝내 뼈가 바스라진 손가락들을 로로가 부여잡고서 울부짖었다. 하지만 자락스는 말을 이었다.
"네 나이가 이제 몇이나 되었더라..."
손톱을 뽑으면서 흘러나온 로로의 피로 얼룩진 손으로. 로로의 뺨을 만지며.
"이제 곧 아이를 가질 수 있겠군. 기대되는구나. 네 아이는. 네 독기와, 네 증오를 갖고 태어날 아이는 나보다 강할 테니."
어쩌면, 네 다음 세대야말로 우리들의 바람을 이룰 수도 있겠구나, 그렇게 말하며.
자락스는. 처음으로 로로의 머리카락을 상냥하게. 로로의 피투성이로 된 손으로 쓰다듬으며 말했다.
"어서 자라거라."
그런 자락스에게, 로로가 증오가 담긴 목소리로 대답했다.
“뒈져버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