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2화 〉132화
바록과 바쿠가 얻어터지는 소리를 들으며, 나는 아직까지도 내 마력에 감싸인 채 잠들어있는 넷을 바라봤다.
로로와, 마야와 니아, 그리고 슈슈.
바록과 바쿠를 전례로 들었을 때, 낙시안들이 내 마력을 받아 바뀌는 종족은 아무래도 반거인족인 듯 했다.
과거, 드래곤과의 전쟁을 하고서, 패전 끝에 멸종했다는 거인족과 낙시안들이 대체 무슨 상관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문제는, 지금 이 아이들을 깨워야 되는가였다.
“주인... 제발... 그만...!”
“살... 려... 줘...”
숫자가 늘어났음에도 불구하고, 내 명령이었던, 싸우지 말고 몸으로 때우라던 말을 그대로 실천해서, 그저 샌드백 숫자가 늘어난 것에 불과한 듯 맞기만 하고 있는 바록과 바쿠를 보아하니, 저들의 전력을 증강 시켜야하는 게 맞긴 했다.
적어도 저대로 냅둬버리면 이제 막 일어난 바록과 바쿠가 쓰러질 지경이었다.
그런데, 막상 지금 깨우려고 하니 영 꺼림칙했다.
...바록과 바쿠처럼, 저렇게 거인이 되어버릴 마야나 니아, 로로가 도저히 상상이 되질 않아서 그런 것도 있었다.
“...이대로 둬도 문제긴 하지만.”
애초에 전부 깨울 목적으로 마력을 주었던 것이고, 예상치 못했던 상황으로 이렇게 된 거였다. 거기에, 쪼금 모습이 바뀐다고 해서 그들에 대한 생각이 어떻게 바뀌는 것도 아니었다.
솔직히 말해서.
지금 저리 맞고 있는 바록과 바쿠를 보는 내 심정도 무척 불편했다.
꼭 자식들끼리 싸우는데, 한쪽이 일방적으로 얻어터지는 걸 보는 기분이었다. 밉게 생기나 곱게 생기나, 자식이 맞고 있는 걸 보면 기분이 팍 상하는 것처럼. 지금 내 마음도 그렇다는 거였다.
"주, 주인..."
생긴 것과 다르게 우르우르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는 바록과 바쿠와 눈이 마주치고서,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니까, 너희도 얼렁 일어나서 좀 도와라.”
흔들어 깨우듯이, 우선 차례대로 잠들어 있는 낙시안들을 마저 깨웠다.
띠링~
[플레이어 ‘이지경’님의 요청에 따라, ‘마야’. ‘니아’, ‘로로’, ‘슈슈’의 각성 방향을 변경합니다.]
귓가에 들려온 알림과 함께, 쩌적하고, 마치 알에서 깨어나는 것처럼. 내 마력을 손으로 찢으며 남은 낙시안들이 하나 둘 몸을 일으켜 세우는 것이 보였다.
[‘마야’가 불완전한 각성을 이룹니다. ‘마야’에게 존재하던 힘의 일부가 깨어났습니다.]
[풍요와 공포를 지배하던 고대의 존재의 힘이 일부 깨어났습니다.]
[‘마야’의 종족이 낙시안에서 판으로 변경됩니다.]
[‘니아’가 불완전한 각성을 이룹니다. ‘니아’에게 존재하던 힘의 일부가 깨어났습니다.]
[대지를 치닫는 강인한 다리와 강철을 씹어 부수는 이빨을 가졌던 고대의 존재의 힘이 일부 깨어났습니다.]
[‘니아’의 종족이 낙시안에서 루갈로 변경됩니다.]
[‘슈슈’가 불완전한 각성을 이룹니다. ‘슈슈’에게 존재하던 힘의 일부가 깨어났습니다.]
[영혼을 매혹하여 갈취하던 고대의 존재의 힘이 일부 깨어났습니다.]
[‘슈슈’의 종족이 낙시안에서 흡정마로 변경됩니다.]
차례대로 몸을 일으켜 세운, 마야와 니아, 슈슈가 멍한 눈으로 나를 올려다봤다.
낙시안에서, 바록과 바쿠와는 달리 반거인족이 아닌 다른 종족으로 바뀐 채.
그나마, 바록과 바쿠와 같은 공통점이 있다면. 그들 역시 이전의 모습과는 달리, 하나같이 보다 성장한 모습으로 바뀌어있었다는 점이었다.
바록과 바쿠처럼 미친 듯이 성장해서, 거인이 된 것은 아니었지만 말이다.
고작 해봐야, 십대 초반 정도의 어린 소녀와 소년에 불과했던 마야와 니아, 슈슈의 모습이 이제는 미녀와 미남이 되어 있었다.
슈슈의 경우에는, 미남이라고 해야 할지 미녀라고 해야 할지 말하기 엄청 난감했지만.
“주인... 님?”
흐리멍덩한 눈으로, 날 올려다보던 마야가 입을 열어, 그렇게 물었다. 마냥 어리기만 했을 때도, 또래의 니아와 로로보다 커다란 가슴을 갖고 있던 마야였는데, 성장하니까 한층 더 대단해져 있었다.
그래도, 그런 마야를 아무리 봐도 성욕이 일거나 하지는 않았지만 말이다. 가슴이라면 감히 누군가의 비교를 불허하는 루시아가 있기도 했고.
나는 알몸으로 그런 마야를 보다가, 입을 열었다.
“그래, 네 주인님이다. 정신은 좀 들어?”
“뭔가, 머릿속이 둥실둥실거려요오...”
머리가 둥실거린다는게 대체 어떻다는 건지 이해할 수는 없지만, 그나마 아직 깨어나지도 않은 로로를 제외한 셋 중에서는 제일 먼저 정신이 든 것 같은 마야에게 말했다.
“일단, 저기서 얻어맞고 있는 바록이랑 바쿠 좀 도와줘라.”
"...족장님?"
두들겨 맞고 있는 바록과 바쿠를 보며, 족장이니 뭐니 이상한 소리를 했던 마야였지만 이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아니, 아니네요... 혹시, 바록 오빠와 바쿠 오빠인건가요오...?”
그렇게 중얼거리던 마야가 이내 상황을 파악했는지 바록과 바쿠를 돕기 위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걸 도와줬다고 해야 할지는 모르겠지만.
바록과 바쿠가 있는 쪽을 향해 마야가 입을 벌렸다.
"ㅡㅡㅡ!"
우우웅, 하고 귀를 울려대는, 포효인지 울음소리인지, 다른 무언가인지. 알아들을 수 없는 소리가 마야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그러자, 피투성이가 되어있던 바록과 바쿠의 몸이 순식간에 재생되기 시작하는 것이 보였다. 단순히 재생 수준이 아니라, 마법으로 회복한 것처럼 순식간에, 멍들었던 곳이나, 찢어졌던 곳들이 아물기 시작하는 것이 보였다.
문제는, 치료된 것이 바록과 바쿠만이 아니라, 때리다가 워낙 튼튼한 둘의 몸에 지친 듯 했던 에네스타와 에오시스 자매들까지 쌩쌩해졌다는 거지만.
"...실수했네요오~"
도와주랬더니 상황을 초기화시켜버린 마야를 짜게 식은 눈으로 보자, 에헤헤하고 웃는 마야가 보였다.
이전에도 있던, 혹같은 뿔은 사라지고. 관자놀이 옆으로 산양의 불같은 것이 자라난 마야의 이마에 꿀밤을 날려줬다.
“아구...!”
내게 맞은 이마를 부여잡고서, 울먹거리는 마야가 안쓰러워보였지만, 사실 지금 제일 안쓰러운건 바록과 바쿠였다.
판이라는 종족으로 바뀐 마야는 지금 상황에서 딱히 도움이 되질 않는다는 것을 확인한 내가 다른 방법을 찾으려고 할 때였다.
"주인님, 주인님...!"
그리고 그런 내 발치에서, 늑대 같은 꼬리를 휙휙하고 흔들고 있는 니아가 보였다. 마야가 바록과 바쿠를 무슨 능력인지 모를 것으로 치료한 사이에 정신을 차린 모양이었다. 내가 니아를 바라보자, 그런 니아가 말했다.
"나는? 나는 뭐하면 될까요, 주인님?!"
니아가 바뀐 종족이... 루갈이였던가. 그게 대체 무슨 종족인지는 모르겠지만 전에 봤던 웨어울프와 비슷하게 생긴 외형이었다.
늑대의 귀와, 꼬리를 닮은 것이 달린 니아가 혀를 내밀면서 내 말을 기다렸다. 마치 잘 훈련된 강아지같은 그 모습에 헛웃음이 나왔지만, 중요한건 그런게 아니었다.
"...너도 일단 바록이랑 바쿠를 좀 도와주렴."
"응...! 아니, 네!"
내 말에 고개를 끄덕인 니아가, 땅에 납작 엎드리더니. 이내 땅을 박차는 것이 보였다.
콰앙!
순식간에, 총알처럼 튕겨져나간 니아가 바록을 두들겨 패는 에네스타를 돕기 위해, 예의 촉수와 비슷한 것으로 바록과 바쿠를 묶으려던 에샤와 부딪히더니, 그대로 저만치까지 날아가서 벽에 처박혔다.
그걸로 끝이었다.
니아와 에샤가 벽에 처박힌 채, 그대로 기절하는 것을 본 나는 잠깐 말을 잇지 못하다가, 이내 못미더운 표정으로, 이제 막 정신을 차린 슈슈를 바라봤다.
내 시선에 슈슈가 움찔, 하고 어깨를 떠는 것이 보였다.
"...너도 저럴거냐?"
"저는 아무래도 전투 쪽이랑은 안 어울리는 것 같은데요."
"그래 보이긴 하네."
흡정마라는, 흡정귀와 끝의 글자만 빼고 똑닮은 이름의 종족이 된 슈슈는 겉으로 보기에는 여자인지 남자인지 전혀 구분이 가질 않았다. 아니, 솔직히 말해서... 판이라는 종족으로 바뀌면서, 염소의 다리같이 다리의 중간이 조금 휘고, 발굽같은 것과 뿔이 자라난 마야나, 강아지 귀와 꼬리같은 것이 생겨난 니아와 비교해서.
이전보다 더 아름다워진, 아니, 아름답다기보단... 매혹적으로 바뀐 슈슈 쪽이 오히려 더 여자로만 보였다.
그러니까, 앞의 둘보다 훨씬 여성스러운 체형을 갖고 있다는 소리였다. 가슴은 없지만. 다리 사이에 덜렁거리는 것도 있지만.
아무리 봐도 전투와는 적합하지 않아 보이는 슈슈를 보다가, 내가 말했다.
"그래도 뭐라도 좀 해봐."
"...알겠습니다!"
내 말에, 고개를 끄덕인 슈슈가 에네스타와 니아와 함께 기절한 에샤를 뺀 에오시스 자매에게 다가가더니,
"저기, 누님들. 그만 싸우고 저랑 노는 건 어때요?"
작업을 거는 것이 보였다.
대체 뭘하는가 싶었지만 예상 외로 반응이 있었다. 멈칫하고서, 바록과 바쿠를 패던 주먹을 멈춘 에네스타가 슈슈를 바라보는 게 보였다.
하지만 이내.
퉁, 하는 소리와 함께 에네스타의 주먹에 얻어맞은 슈슈가 그대로 내 뒤로 날아가는 것이 보였다.
쾅!
눈이 돌아간 것인지, 아니면 바록과 바쿠를 패다보니까 힘조절이 제대로 안된 것인지, 에네스타의 주먹에 얻어맞고 날아간 슈슈가 반대편 쪽 벽에 처박히고서, 그대로 뻗어버리는 것을 보며 생각했다.
"……"
이제 어쩐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던 사이에, 쿠웅하고 육중한 몸을 가진 바록과 바쿠가 결국 쓰러지는 것이 보였다.
“흐에...”
그나마 아직 멀쩡한 마야가, 나를 지키려는 듯이 다가오는 세 음마... 에네스타와 에샤를 뺀 에오시스 자매들을 가로막았지만, 슈슈만큼이나 전투능력은 없어보였던 마야가 어떻게 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빡! 하는 소리와 함께, 손가락을 튕긴 에네스타의 딱콩에 얻어맞은 마야가 그대로 주저앉고서 기절해버렸다.
진짜로 이제 어쩐다.
“이제 방해꾼도 없어졌으니... 자, 주인님♥”
“저희랑, 같이... 즐거운 시간을 보내요~”
그렇게 말하며,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며 다가오는 에네스타와 나타를 보고서, 마지막의 보루로 에루나쪽을 바라봤다.
내 시선을 느낀 에루나가 고개를 설레설레 내저었다.
“이 몸으로는, 그녀들을 막는 건 무리일 것 같습니다. 죄송합니다. 주인님.”
“죄송하다는 녀석이 왜 옷을 벗고 있냐?!”
스륵, 하고 시녀복을 벗고 있는 에루나를 보고서, 내가 그렇게 외치자 에루나가 태연한 얼굴로 대답했다.
“지금은 아무래도 알몸인 쪽이 대세인 듯 싶어서 그만...”
나랑 에루나 빼고, 전부 알몸이기는 했으니 그 말이 틀린 건 아닌데... 아니지, 이제 반쯤 시녀복을 벗어던진 에루나는 옷을 입고 있다고 보기엔 어려우니, 결국 알몸이 아닌건 나 혼자라는 소리였다.
내 아군은 전혀 남지 않은 채로.
눈이 돌아간 음마들과, 머릿속이 정상은 아닌 골렘에게 위협을 받은 내가 뒷걸음질쳤다.
“아하...♥ 빈틈, 발견...!”
그리고 그런 내게 에네스타가 달음박에 달려들어, 그대로 발을 걸어 넘겨뜨렸다. 풀썩하고 쓰러지기 직전에, 뒤통수에 닿은 푹신한 감촉에 시선을 돌리자, 그런 나를 뒤에서 껴안 듯이 붙잡은 나타가 보였다.
“고모님, 언니... 저 너무 배고파서 그런데... 먼저 양보해줄 수는 없나요?”
꼼짝할 수도 없이, 그대로 붙잡힌 내가 에네스타와 나타에게 강제로 옷이 벗겨지던 중에, 에오시스 자매 중 막내인 모네가 그렇게 말하는 것이 보였다.
그런 모네의 말에, 겉으로 보기엔 나이 차이가 얼마 안나는 자매로 밖에 보이지는 않지만, 사실 에오시스 자매들의 고모뻘인 에네스타와, 에오시스 자매들 중 장녀인 나타가 서로 시선을 교환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고마워요! 고모님, 언니!”
둘의 허락을 얻은 모네가, 그대로 내 위에 올라타고서는 반쯤 벗겨진 내 가슴팍에 얼굴을 묻고, 깊이 숨을 들이쉬더니. 몽롱하게 풀린 표정을 지으면서 고개를 들고는 입가를 혀로 핥으며 말했다.
“후아...♥ 역시, 좋은 냄새...♥ 주인님, 주인님한테서... 맛있는 냄새가 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