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0화 〉130화
“에네스타...”
이름을 불러도, 깊은 잠에 빠진 것처럼 전혀 움직이지 않는 에네스타가 보였다. 그저 느릿하게 숨을 쉬는 것을 반복할 뿐, 내 말에 반응하지 않는 에네스타를 보다가, 그녀의 정보창을 열었다.
그녀의 상태 옆에, 여전히 떠올라있는 마력 의존증이라는 이름의 질병 상태가 보였다.
마력 의존증.
특정한 마력을 제외한, 다른 마력들을 거부하는 질병.
그것이 이 세계에서 살고 있는 이들에게 있어서 얼마나 치명적인 질병인지는, 소환된 지 불과 두어 달 정도 밖에 되지 않은 나도 알 수 있는 것이었다.
이 세계에서 마력이란, 모든 존재에게 깃들어있는 것이었다. 한낱 미물부터, 생명이 존재하지 않는 사물에게까지. 발치에 치이는 돌멩이나, 흙과 먼지, 숨을 쉬기 위한 공기마저도. 이 세계에 존재하는 것이라면 모두 마력이 깃들어 있다는 소리였다.
그것이 이 세계의 법칙이고, 규칙이자 질서였다.
그리고 그런 세계에서 살아가고 있는 이들에게는, 다른 마력을 접한다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었다. 극도로 마력이 적은 오지, 낙스에서 살아가던 낙시안들조차도, 최소한의 마력을 갖고 있고, 또 마력을 갖고 있는 다른 무언가들을 접하고, 먹어야만 했으니까 당연했다.
그런 세계에서, 오직 내 마력만을 거부하지 않고 받아들이는 에네스타의 몸은 상당히 야위어 있었다.
음식조차도, 단순한 물조차도 마력이 깃들어있으니까. 마력 의존증은 단순히 마력을 거부할 뿐만이 아니었다.
마력이 깃들어있는 것, 그 자체를 거부하는 질병.
사실상, 내가 잠들어 있던 며칠간, 에네스타 또한 굶주리고 있던 셈이었다.
어떻게 보면 나도 비슷한 상황이기는 했다. 나 같은 경우에는 다른 마력을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마력을 소모하고, 흡수해서, 나 자신이 갖고 있어야할 마력조차도 전부 사용해버린다는 점에서 다르긴 했지만.
결국 마력이 없어서 문제라는 특징은 같았다.
단지, 내가 이런 체질이 되게 된 이유인 특성, 포식자의 경우에는 그렇게 마구잡이로 흡수한 마력을 통해서 영양분을 얻는다는 특징도 있기 때문에 마냥 굶주린 채 있던 것도 아니긴 했지만 말이다.
즉, 나보다도 에네스타의 경우가 더 심각하다는 것이었다.
그런 에네스타가 그나마 멀쩡한 것은 내 옆에 있는 에루나 덕분이었다. 내가 의식이 없는 동안, 나의 간호는 크리샤가 해준 것 같았지만 에네스타를 비롯한 모두는 아무래도 에루나가 노력해준 듯 했으니 말이다. 그리고 내가 무의식적으로, 나와 연결되어있는 그들에게 넘겨주고 있었던 최소한의 마력도 어느 정도 도움이 됐을 테고.
뭐, 그마저도 나 스스로가 어떻게 한 것이 아니라, 잠들어있던 나에게 키스를 통해서 마력을 전이해주었던 크리샤 덕분이고, 그렇게 얻은 마력을 무의식적으로 다시 그들에게 넘겨준 것에 불과했지만.
그래도 그것들 덕분에 아직까지도 살아있었다.
“버텨줘서 고맙다.”
색이 바래버린 듯, 희미해진 에네스타의 녹색 머리카락을 쓸어내리며 그렇게 말해봤지만 여전히 반응조차 없는 에네스타를 보자 조금 입 안이 썼다.
“준비를 마쳤습니다. 주인님.”
그런 내 귓가에, 에루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에루나쪽을 보자, 에네스타를 제외한 다른 녀석들이, 에루나가 그려둔 마법진 위에 누워있는 것이 보였다.
다수의 인원에게 한번에 마력을 전이해주기 위한 마법진이었다. 본래는, 여러 사람이 한 사람에게 마력을 집중해서, 고위의 마법을 사용하기 위한 마법진이지만 그것을 응용해서 조금 바꾼 마법진이었다.
지금 사용하기 위해서 에루나가 만든 마법진이기도 했다.
나는 에네스타를 안아들었다.
그리고서, 에루나가 준비해준 마법진 중 빈 곳에 에네스타를 눕혔다.
“그럼, 시작할까.”
이들에게 있어서 나는 여전히 스스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쓸모없는 주인이었다.
어쩌면, 이전보다 더 쓸모없어졌을지도 모르겠다. 나조차도 크리샤의, 혹은 다른 누군가의 마력을 필요로 하는 신세가 됐으니 말이다. 그리고 그런 나 때문에, 고생을 하고 있는 녀석들을 보자 가슴이 불편해졌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들의 주인이었다.
내가 거두고, 내가 책임져야하는 녀석들.
자의에 의해서였던, 타의에 의해서였던 간에, 결국 나에게 얽혀버린 녀석들에 대한, 책임이 나에게는 있었다.
이 모든 것이 나로 인해 비롯된 것이라면, 내가 해결해야했다.
나만이 할 수 있으니까.
우웅...
가슴팍에 손을 얹고서, 마력을 끌어올렸다.
그런 나를 보고서, 에루나가 말했다.
“괜찮으시겠습니까, 주인님?”
“응, 오히려... 컨디션은 어느 때보다 좋거든.”
지금의 나에게는 크리샤에게 전해 받은 마력이 잔뜩 있었다.
그 덕분인지, 아니면 다른 이유에서인지는 몰라도 아주 팔팔했다.
그런 나에게 에루나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그런 것이 아니라... 손으로 마력을 전이해주는 것은 여러모로 효율이 좋지 않으니 말입니다. 마법진이 있다고는 하더라도, 수가 숫자이니 만큼, 마력을 아끼시는 것이...”
“...일 없다.”
한순간 고민했지만, 옆에 있던 바록이나 바쿠를 보고서 생각을 고쳐먹었다.
효율도 효율이지만, 아무래도 저 녀석들이랑 입을 맞추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슈슈라면 몰라도.
아니, 슈슈도 여러모로 아웃이기는 하지만.
“그렇습니까.”
고개를 끄덕이며, 그렇게 말하는 에루나를 보고서. 나는 재차 마력을 끌어올렸다.
그리고 잠들어 있는 녀석들의 앞에 손을 뻗었다.
마도의 이치.
마력 전이.
뭉텅, 하고 신체의 일부가 도려져 나간 것 같은 상실감과 함께 다리에 힘이 풀렸다. 에루나에게 전해줬던 만큼의 마력. 그 열 배에 달하는 마력이 단숨에 빠져나간 충격에 눈앞이 핑하고 도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안 그래도 효율이 나빠서, 본래 에루나에게 넘겼던 마력의 다시 열 배가 넘는 마력이 들었으니 당연하다면 당연한 결과였지만...
이럴 줄 알았으면 바록이랑 바쿠만 빼고, 좀 더 효율 좋게 마력을 전해줄걸, 그런 생각을 하며 쓰러질 뻔 한 나를 에루나가 지탱해주었다.
“아, 고마...”
그런 에루나에게 고맙다고 말하려고 하던 내 귓가에, 띠링하고.
알림이 울려 퍼졌다.
[조건이 충족되었습니다.]
[플레이어 ‘이지경’님에게 종속된 존재들의 각성이 시작됩니다.]
[직업 ‘부덕의 왕’이 종속된 존재들의 각성에 영향을 미칩니다.]
[특성 ‘마왕’이 종속된 존재들의 각성에 영향을 미칩니다.]
어째 불길한 내용의 알림들이 연이어 들려왔다. 치료되라는 마력 의존증에 대한 것은 온데간데없고, 부덕의 왕이라던지, 마왕이라던지 하는 말들이. 지금 이 꼴이 난 것도 전부 이것들이 원인이었을 텐데.
아니, 그보다 각성은 또 무슨 소리인가 싶었다.
그리고 그런 내 눈앞에서,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꿈틀거리는 내 마력들이, 잠들어 있는 녀석들 위로 쏟아져 내리는 것이 보였다.
“아...?”
아무리 봐도 정상적으로는 보이지 않는 그 모습에, 내가 마법진으로 다가가려고 했지만, 내 옆에 있던 에루나가 그런 나를 잡아세우며 말했다.
“괜찮습니다. 주인님. 직접 보는 것은 처음이지만... 주인님께서 걱정하시는 그런 일은 아닙니다.”
“아니, 걱정이 안 될 리가 없잖아...?!”
이제는 끈적거리는 마력으로, 얼굴까지 완전히 뒤덮여진 녀석들을 보고서 내가 말했다.
“저렇게 되면 숨은 어떻게 쉬라고?! 이거 놔, 에루나! 지금 당장, 저것부터 치워버려야...!”
“...잘만 쉬고 있는 걸로 보입니다.”
에루나의 말에 정신을 차리고서, 다시 살펴봤다. 마치 검은 타르 덩어리를 뒤집어 쓴 것처럼, 시꺼먼 마력으로 온몸이 뒤덮인 녀석들은 그 와중에 가슴이 있을 부분이 오르락내리락하고 있는 것이 보였다.
즉, 에루나의 말대로 잘만 호흡하고 있다는 소리였다.
어안이 벙해진 채, 그 모습을 보던 나에게 에루나가 말했다.
“애당초, 단순한 마력입니다. 그런 것에 조금 뒤덮였다고 숨이 막힐 리가 없지 않습니까?”
에루나의 말에 조금 냉정을 되찾았다. 그 말도 그랬다. 하지만 여전히 불길함이 앞섰다. 저렇게 되기 직전에 들려왔던 알림, 부덕의 왕과 마왕이 어쩌고 했던 알림 때문일지도 모르겠지만, 엄청나게 불안했다.
“...그런데, 직접 보는 건 처음이라니. 그건 또 무슨 소리야?”
머리가 조금 차가워지자, 에루나가 했던 말이 떠올라서 그렇게 물었다. 마치, 지금 일어나는 현상에 대해서 알고 있다는 듯이, 내게 걱정하지 말라고 말한 것이 에루나였으니 말이다.
“에오시스 자매, 아니요. 나타 에오시스에게 엘프들의 의식에 대해서 들은 것이 있지 않습니까, 주인님?”
“그건... 뭐...”
에루나의 말에 떠오른 것이 있었기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나를 보며 에루나가 말을 이었다.
“본래, 정령이었던 엘프들은, 고대에는 거의 드래곤과 비등한 존재였습니다. 정확히는, 비등할 만큼의 용량을 갖고 있는 존재들이였죠.”
“용량?”
“그릇이 컸다는 소리입니다. 마력을 감당할 수 있는 허용량과, 한 번에 사용할 수 있는 마력의 양들이, 예전의 엘프들. 하이 엘프들은 드래곤에 준한 존재들이었죠. 지금은 피가 옅어져서, 그 정도는 아니지만. 그래도, 예전만은 못하더라도, 그들은 여전히 커다란 그릇을 갖고 있는 존재들입니다.”
언젠가, 들었던 기억이 있었던 말이었다. 하지만 그게 지금이랑 대체 무슨 상관이 있는지는 전혀 모르겠다.
“다만, 그만큼 큰 그릇과, 예전만 못한 힘 때문에 엘프들은 여러모로 위협을 자주 당하는 신세가 됐죠. 더욱이, 일반적인 엘프들보다 그 그릇이 큰, 하이 엘프의 혈통을 잇고 있는 무녀들은 말입니다.”
그래서, 하고 에루나가 말을 이었다.
“그들은 자신의 그릇 안에, 정령들을 소환해서. 그 그릇을 채우는 의식을 치룹니다. 그것이 대부분의 엘프들이 정령술에 능한 이유이기도 하죠.”
“...그런데?”
에루나의 말을 계속 들어도, 전혀 이해가 가질 않았다. 대체 그거랑 지금이랑 무슨 상관인지 알 수 가 없었다.
“그 중, 몇 몇 개체... 무녀로 선택받을 만큼, 커다란 그릇을 갖고 있는 이들은 가끔 대정령 혹은, 그 이상의 존재와 계약을 맺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잠들어 있던 엘프들의 피가 깨어나게 되죠. 그 결과... 그렇게 된 엘프들은 하이 엘프로 변하게 됩니다만...”
“그럼, 지금 에네스타랑, 에오시스 자매들이 하이 엘프가 되고 있다는 소리야?”
그렇다면 에네스타와 에오시스 자매들이 느닷없이 저렇게 된 현상이 어느정도 이해는 갔다. 하지만 그렇다면 다른 녀석들은, 낙시안 출신인 녀석들은 대체 왜 저렇게 된 건지 설명이 되질 않았다.
게다가
“정령과 계약했을 경우에는, 그렇습니다. 문제는 지금 계약의 주체는 정령이 아닌 주인님이지 않습니까?”
에루나의 말 또한, 지금의 상황이 썩 일반적인 경우가 아니라고 말해주었다. 그리고 그런 에루나의 말이 끝마쳐지기 무섭게 귓가에 알림이 들려왔다.
빠직, 하고. 무언가에 금이 가는 소리와 함께.
[‘에네스타 시오니스’의 그릇이 타락한 마력으로 채워집니다.]
[‘나타 에오시스’의 그릇이 타락한 마력으로 채워집니다.]
[‘모네 에오시스’의 그릇이 타락한 마력으로 채워집니다.]
[‘에샤 에오시스’의 그릇이 타락한 마력으로 채워집니다.]
내 마력에 감싸였던 에네스타와 에오시스 자매들의 모습이 드러났다.
입고 있었던 옷은 대체 어디로 갔는지,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알몸으로.
[‘에네스타 시오니스’가 성공적으로 각성합니다. ‘에네스타 시오니스’의 각성에 영향을 미친 마력에 의하여, 종족이 개변됩니다.]
[‘에네스타 시오니스’의 종족이 요정에서 타락하여 음마로 변경되었습니다.]
[순수와 가까운 존재를 타락시켰습니다. ‘에네스타 시오니스’가 칭호 ‘타락한 요정’을 습득했습니다. 플레이어 ‘이지경’님의 직업 ‘부덕의 왕’에 의해 일부 능력치가 상승합니다.]
[‘에네스타 시오니스’의 변경된 종족에 따라 능력이 변경됩니다. 또한 새로운 직업을 습득할 수 있습니다.]
[‘에네스타 시오니스’가 새로운 직업을 습득하기 위한 조건이 충족되지 않았습니다.]
[‘나타 에오시스’가...]
음마라는 이름의, 어디선가 엄청나게 많이 들어본 종족으로 전환되었다는 알림과 함께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