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3화 〉123화
일단 힘이 다 빠진 듯 추욱 늘어진 크리샤를 그대로 두기엔 뭐해서, 흔히들 공주님 안기라고 부르는 것을 직접 실천한 내가 품에 안긴 크리샤를 바라봤다.
“으응... 그마안...♥”
안기 위해서 살짝 몸에 손이 닿은 것뿐인데도, 흠칫흠칫 몸을 떨며 정신을 못 차리고 있는 크리샤가 보였다.
아마 지금 자기가 어떤 꼴을 하고 있는지도 모를 것 같았다. 안는 방법이 달라진 만큼, 아까보다 훨씬 적나라하게 보이는 크리샤의 몸을 보며 입맛을 다셨다. 지금이라면 안 들키고 드레스 밑으로 정말로 속옷이 있는지 없는지 확인할 수 있을 텐데.
하지만 그럴 수 없었다. 그리고 그 이유인 에루나가 나를 보며 말했다.
“표정이 좋지 않으신데 괜찮으십니까?”
다 알면서 묻고 있는 에루나가 얄미웠지만, 나는 한숨을 푹 내쉬며 말했다.
“조금 입맛이 쓴 걸 빼면 괜찮아.”
“그렇습니까?”
뭐, 입맛이 쓴 이유는 크리샤의 드레스 밑을 확인하지 못했던 것 말고도, 에루나에게 상식적인 일로 그런 소리를 들을 줄 몰랐던 것과, 막상 듣게 되니 상당히 기분이 오묘했던 것도 있었지만 말이다.
아무튼 에루나가 틀린 말을 한 것도 아니었다. 나도 잠깐 머리가 어떻게 됐던 것뿐이지 그렇게 막나가는 성격도 아니고 말이다.
아주 조금.
정말로 조금.
크리샤의 드레스 밑이 궁금한 것만 빼고...!
정말로 아무것도 입지 않았던 걸까, 아니면 그냥 내가 착각했던 걸까...
당장 확인하자면 확인할 수 있었지만, 확인할 수 없다는 사실이 어쩐지 억울했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자니, 뭔가 따가운 시선이 느껴졌다.
그 시선을 보내오는 사람이 누굴지는 뻔했다. 지금 이곳에서 멀쩡한 사람은 나와, 에루나뿐이니까.
“...어딜 그렇게 봐?”
“실례, 아무것도 아닙니다.”
“아무것도 아니긴, 지금도 계속 보고 있으면서.”
에루나의 시선이 향하는 곳을 따라가자 거기에는 본능에 충실해진 상태의 드래곤 슬레이어가 바지 넘어서 존재감을 한껏 뽐내고 있었다.
“...이건, 생리현상이라서 어쩔 수 없는 거야.”
“아뇨, 저야말로 거짓을 고해서 죄송합니다.”
한차례 짧은 침묵이 있다가, 서로 그렇게 말했다. 그러다가, 몰래 보던 걸 들켜서 이제는 괜찮다는 것인지 대놓고 드래곤 슬레이어를 보던 에루나가 입을 열었다.
“그나저나, 루시아 아가씨께 들었던 것보다 훨씬...”
뭔가 불안했다. 루시아가 대체 뭐라고 했는데?
아니, 뭐라고 했는지 대충은 알 것 같았다.
자제라고는 전혀 안하고 있는 녀석은 내가 봐도 무시무시한 크기였다. 에네스타와 대련을 마치고 나서도 더러워졌을 뿐이지 어디 찢어지는 곳 하나 없었던 바지가 터질 것 같이 부풀어있으니 그 밑이 지금 어떤 상황인지는 말 다한거나 마찬가지였다.
꿀꺽, 하고 침을 삼키는 에루나가 보였다. 그 모습에 약간 등골이 서늘해졌다. 그런 나를 눈치 챘는지 에루나가 흘끔, 하고 나를 보더니 말을 이었다.
“...흉악, 아니, 훌륭하시군요. 역시 주인님이십니다. 루시아 아가씨께서 변태니 귀축이니 하면서도 매일 밤을 기대하시던 이유를 알 것 같습니다.”
“아니, 그건...”
“듣자하니 인간의 경우에는 거물일수록 밤일이 우수하다 했습니다만, 과연...”
“......”
루시아의 명예를 위해서 뭐라도 변호하고 싶었는데 할 말이 없었다.
에루나가 지금 하는 말대로라면 루시아가 꼭 물건의 크기 때문에 내게 홀딱 빠진 것 같았으니까.
물론 그것이 전혀 틀린 것만은 아닐지도 몰랐다. 하지만 단순히 그것만이 이유인 것도 아니라는 것쯤은 누구보다도 내가 잘 알고 있었다. 그런데도 할 말이 없는 것은 실제로 드래곤 슬레이어가 몽둥이급일 때보다 방망이급일 때, 루시아가 더 좋아했던 것도 사실이기 때문이었다.
아무튼, 전력 상태의 드래곤 슬레이어를 보며 루시아에 대한 심각한 오해를 하고 있는 것 같은 에루나가 눈으로 크기를 어림짐작하듯이 위 아래로 드래곤 슬레이어를 훑어보다가, 이내 자신의 하복부를 만지더니 중얼거렸다.
“하지만... 저런 크기라면 역시 이 몸으로는 주인님께 제대로 된 봉사를 하는 건 무리겠군요. 아무래도 원래 몸이었을 적보다 내구성이 떨어지는 몸이다 보니 주인님께 봉사를 하기는커녕, 제 몸이 망가지지 않을까 걱정해야 될 것 같습니다.”
“어차피 크기야 줄일 수도 있으니까 그건 상관없을 텐데... 아.”
지금은 비록 이렇게 무시무시한 녀석이었지만 생각보다 융통성이 있는 녀석이라는 걸 알고 있는 내가 무심코 그렇게 중얼거렸다가, 이내 내가 무슨 소리를 했는지 깨닫고서 입을 다물었다. 하지만 이미 내뱉은 말을 주워 담을 수는 없었다.
“그렇습니까?”
그야 이미 에루나가 그 말을 주워 담았기 때문이었다. 여느 때와 같은 얼굴로 나를 바라보는 에루나의 눈동자가 어쩐지 반짝거리는 것만 같았다.
실수했다.
하필이면 가장 들키면 안 될 사람, 아니 골렘한테 들켜버렸다.
“아니, 그게, 내 말은... 어, 그러니까.”
하필이면 얄짤없이 변명하기도 힘든 부분을 내뱉은 것을 후회하고 있자니 그런 나를 보던 에루나가 말했다.
“그건 이후에 직접 확인해보기로 하고... 그보다, 주인님. 마력은 충분히 회복되셨습니까?”
그걸 네가 왜 확인하는데?
“...잠깐만 기다려봐.”
에루나의 말에 어이가 없었지만 화제를 돌릴 거리가 생긴 나는 상태창부터 확인했다. 괜히 물어봤다가 무슨 일이 날지도 모르는데 불길에 몸을 던지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이미 불길에다가 기름을 부어버린 것 같지만, 무시하기로 했다.
그렇게 상태창을 확인해보자 눈에 띄게 증가한 마력이 보였다. 최대마력이 아니라, 보유 마력 쪽이긴 했지만 말이다.
그러고 보니 크리샤에게 집중하느라 듣지 못했지만, 귓가에 알림이 울려댔던 것도 같았다.
상황이 상황이었던 지라 미처 무슨 내용인지는 듣지 못했지만... 보아하니 아무래도 입을 맞추는 동안 흡정을 통해서 크리샤의 마력을 상당히 흡수했던 모양이다. 아까 확인했을 때랑 비교해서 마력이 꽤나 늘어나서, 지금은 120대에 이르고 있는 것을 확인한 내가 말했다.
“꽤 회복하긴 했는데... 왜?”
“다행이군요. 마침 필요했습니다.”
그렇게 운을 떼는 에루나를 보니 느낌이 불안했다.
“무슨 일인데?”
아까부터 등골이 서늘한 것을 무시하며, 내게 다가오는 에루나에게 묻자, 그런 내 물음에 에루나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대답했다.
“실은, 이 몸으로 옮기게 되면서 마력을 자급하는 것이 힘들어졌습니다. 신체가 작아진 만큼, 필요한 마력도 줄어들기는 했지만... 그만큼 사용할 수 있는 마력도 줄어든데다가, 벌써 오늘 하루 동안 공간 이동마법을 두 번이나 사용했기에, 마력이 거의 바닥난 상황입니다.”
그런 말을 하며 다가오는 에루나를 피해, 뒷걸음질 치다가 이내 등 뒤로 벽이 느껴졌다.
“저기, 에루나. 일단 멈춰주지 않을래?”
더 이상 뒤로 갈 곳도 없이 몰린 내가 그렇게 말하자 에루나가 그런 나에게 말했다.
“즉, 저도 주인님의 마력이 필요하다는 이야기입니다.”
왠지 그런 말을 할 것 같더라. 하지만 우선순위라는 게 있는 법이었다. 일단 크리샤부터 어떻게 해야지 마력을 전해주든 뭐든 할 수 있고. 마력을 전해주려면 손을 쓰던 뭘 쓰던 신체가 접촉해야만 했으니 말이다.
“알겠으니까, 조금만 기다려주라.”
“죄송합니다. 한 가지 더 고백하자면, 실은 몇 분 이내로 남은 마력을 전부 소모할 것 같습니다.”
고백하는 타이밍이 너무 절묘한데.
뭔가 의심이 들기는 했지만, 에루나에게서 전해져오는 감정은 내게 거짓말을 하고 있지 않았다.
약간의 초조함과 조급함.
우연히 겹쳤을 뿐이지, 마력이 급하게 필요하다는 말은 사실인 것 같았다.
그보다 마력이 바닥이 나면 어떻게 되는지가 중요했다. 에루나는 골렘, 마법에 의해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일종의 기계였다. 전혀 기계로는 보이지 않지만, 생물과 기계, 둘 중 어느 것에 가깝냐고 묻는다면 기계 쪽에 가깝다는 뜻이었다.
그리고 대부분의 기계가 그렇듯이, 갑작스레 연료가 바닥이 나서 작동이 멈추게 된다면 썩 좋지 않은 일이 일어날지도 몰랐다.
“하나 묻고 싶은데, 마력이 바닥이 나면 어떻게 되는데?”
그래서 그렇게 묻자, 에루나가 대답했다.
“별 일은 없습니다. 마력이 없어지면 우선 신체가 멈추게 됩니다. 이후 자체적으로 생성이 가능한 마력으로 최대한도까지 버틸 수 있을 만큼, 제 신체를 유지하겠죠. 하지만 그것도 그리 오랜 시간을 버틸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 다음은, 제 내부에 있는 마력수가 흩어지게 됩니다. 아, 마력수는 생물로 치면, 피와 비슷한 역할을 하는 거라 너무 많이 소모되면 곤란합니다.”
“대체 뭐가 별게 아니란 건지 모르겠는데.”
전혀 별게 아닌데.
그러니까 생물로 치면 기절을 하거나, 과다출혈 같은 것이나 다름없는 일이 일어난다는 말을 너무 태연하게 해서 정말로 별게 아니라고 생각할 뻔했다.
그런 내 말에 에루나가 두 눈을 깜빡이다가 말을 이었다.
“죽는 건 아니니까 괜찮지 않습니까? 갑작스레 기능이 정지하면, 그만큼 신체에 부담이 가겠지만, 큰 문제는 있지 않습니다. 너무 오랜 시간동안 방치된다면 신체의 내부의 기관 등이 손상될 수도 있지만, 중요한 몇몇을 제외하면 예비부품은 얼마든지 있고... 생각해보니 애초에 저에게 죽는다는 말도 어울리지 않군요. 저에게 있어서 죽음이란 개념은 어울리지 않으니. 영구정지나, 파손 같은 말이...”
“...그런 말은 함부로 하지 마. 에루나.”
내 눈앞에서, 바스라지듯이 사라져갔던 에루나의 모습이 떠올랐다. 지금 에루나가, 이렇게 멀쩡하게 내 눈앞에 있었지만.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가슴 한 구석이 저릿했다. 그래서 그런 걸까, 에루나가 자신에 대한 것을, 아무렇지도 않게 말하는 모습을 보니 짜증이 치밀어 올랐다.
스스로도 놀랄 만큼, 싸늘한 목소리가 나올 정도로.
그런 내 말에 눈을 동그랗게 떴던 에루나가 이내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죄송합니다. 주인님. 앞으로 주의하겠습니다.”
“아니다, 됐어, 괜히 내가 민감하게 반응한 것뿐이니까. 아무튼 알겠으니까 우선 네 마력부터 해결하자.”
어찌됐건, 에루나가 저런 상태가 된 것도 결국은 내 탓이었다. 그런 에루나에게 뭐라고 할 수는 없었다. 그렇게 말하고서 에루나에게 마력을 전할 동안 크리샤를 어디 잠시 눕혀둘 곳을 찾아 주위를 둘러보던 나에게 에루나가 말했다.
“괜찮습니다. 주인님, 제가 알아서 할 테니 주인님께서는 크리샤 아가씨에게 신경 써주시길.”
“알아서 해결한다니... 대체 어떻게?”
그 말에, 에루나는 대답 대신에 행동으로 보여줬다.
내 앞에 무릎을 꿇은 에루나가, 그대로 바지 지퍼를 내리더니. 튀어나온 드래곤 슬레이어의 끝을 손으로 붙잡았다.
“아?”
너무 갑작스럽게 일어난 일이라서, 순간 내가 무슨 짓을 당한건지 알 수가 없었다.
“직접 보니... 상당히 징그럽게 생겼군요. 주인님이 목욕하실 때 봤던 것과는 여러모로 다릅니다만... 정말로 같은 성기가 맞습니까?”
하지만, 그런 말을 하는 에루나의 목소리에, 지금 내가 겪고 있는 일이 착각이 아니란 걸 알 수 있었다.
“지금 뭐하는 짓...”
“으응...”
에루나에게 뭐라고 하려고 했지만, 내 품에 안겨 있던 크리샤가 그런 내 소리에 나를 올려다봤다.
덕분에 에루나에게 뭐라고 하려고 했던 것을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
지금 이 상황을 크리샤에게 들켰다가는 무슨 일이 일어날진 나도 몰랐다. 나는 멍한 눈으로 나를 보고 있는 크리샤에게, 애써 웃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크리샤, 정신이 들었어?”
그런 내 말에 크리샤가 두 눈을 깜빡이다가. 이내 얼굴을 붉히며 내 뺨을 꽉 붙잡았다. 아까도 이랬던 것 같은데, 이번 것은 그때랑 달리 진심으로 꼬집는 것인지 상당히 아팠다. 하지만, 동시에 밑에서부터 기묘한 감촉이 전해져왔다.
“윽...!”
뺨에서 전해져오는 통증보다도, 아래에서 전해져오는 쾌감에 나도 모르게 신음이 새어나왔다. 그런 나를 째릿, 하고 눈물이 어린 눈으로 노려보며 크리샤가 말했다.
“아파? 그래, 넌 아파도 싸! 내가 그렇게, 그만 하라고 했는데...!”
“잠, 깐만. 그만...”
“그만? 너도 내가 그만해달라고 해도 멈추지 않았으면서...!”
아니, 크리샤. 너한테 한 말이 아니라...
하지만 그렇다고, 지금 크리샤한테 너한테 한 이야기가 아니라고도 할 수 없었다. 그런 말을 하면, 당장 에루나의 일을 들켜버릴 테니까. 오히려 지금이, 크리샤가 나한테만 신경 쓰는 지금이 밑에서 벌어지는 일을 크리샤에게 들키지 않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정작 내가 그런걸 신경 쓰느라 경황이 없는 동안, 에루나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대체 에루나가 무슨 짓을 하는지는 보이지 않았지만, 드래곤 슬레이어 끝에 뜨거운 무언가가 닿았다. 부드럽고, 촉촉한 무언가가 드래곤 슬레이어의 끝에 조심스레 닿았다가. 이내 천천히 드래곤 슬레이어를 훑는 것이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