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1화 〉121화
“절대로, 싫어... 진짜, 정말로... 너 같은 거 싫어... 싫다고... 싫은데...”
아니, 정확히는.
“훌쩍, 정말로... 정말로 싫은데. 어째서... 널 싫어하는 게 이렇게, 괴로운 거야?”
눈앞에서 울고 있는 크리샤를 보며 할 말을 잃고 말았다.
“크리샤...”
“어째서야... 왜? 너는... 알고 있는 거야?”
크리샤가 나를 올려다봤다.
눈물이 맺힌 눈으로.
“널 미워할수록. 이렇게나 괴로운 이유...”
흘러내리는 눈물을 훔치며, 내게 의미 모를 질문을 하는 크리샤를 보며 나는 조용히 그녀의 정보창을 열었다.
「정보창」
「이름 : 크리샤네아 슈페리아
「칭호 : 보옥의 지배자, 창공의 용, 최후의 흑색용, 고결한 대지, 최강의 용」
「성별 : 여성」
「나이 : 40세」
「직업 : 보옥의 지배자」
「종족 : 인간(폴리모프)//드래곤」
「근력 : 104(S)//열람불가」
「민첩 : 102(S)//열람불가」
「체력 : 103(S)//열람불가」
「지력 : 128(SS)//열람불가」
「마력 : 224(SSS)//열람불가」
「매력 : 92(A)//열람불가」
「행운 : 83(B)」
「생명력 : 10300/10300//열람불가」
「마나력 : 152000/224000//열람불가」
「지구력 : 32%」
「고유 특성 : 보옥의 지배자(SS), 마도의 선구자(S), 내유외강(A), 이하 열람불가」
「보유 기능 : 마도의 극의(S), 그림자의 손(S). 이하 열람불가」
「상태 : 피로, 혼란」
「호감도 : 28(열람불가)」
과거, 거의 바닥을 내리찍고 있었던 크리샤의 호감도가 20을 넘어서고 있는 것이 보였다. 그냥 20을 넘어선 것도 아니고, 호감도의 분기점 중 하나인 30에 거의 근접한 28이었다.
“대답해줘... 왜, 나는...”
그런 크리샤에게 손을 뻗었다, 아니. 뻗으려고 했다.
“저리 치워! 내 몸에... 내 몸에 손대지마...!”
짝, 하는 소리와 함께 뿌리쳐진 손등이 빨갛게 물드는 것이 보였다. 어디 잘못 스치기라도 한 것인지 작게 난 상처에서 피가 흘러내리는 것도 보였다.
“피... 피가...”
그런 나를 보며, 더듬더듬 손을 뻗어서. 내 손등에 난 상처를 매만지는 크리샤를 바라봤다. 우웅, 하고 크리샤의 손끝이 빛나는 것과 함께 내 손등에 나있던 작은 상처도, 붉게 물들었던 것도 순식간에 사라져버렸다.
하지만, 여전히 남아있는 핏물을 더듬으면서. 크리샤는 계속해서 치유마법을 주창했다.
“또, 또 내가... 나 때문에...”
그렇게 중얼거리면서.
띠링~
[플레이어 ‘이지경’님을 ‘크리샤네아 슈페리아’가 진심으로 걱정합니다. 호감도가 1만큼 상승합니다.]
꾸욱. 그런 내 손을 잡은 크리샤의 힘이 강해지는 것이 느껴졌다. 그리고, 크리샤가 중얼거리는 소리도 달라졌다.
“아냐... 애초에 원인은 네가 멋대로 날 만지려고 했으니까...! 나는... 나는, 아무런 잘못 없어. 애초에 네가...!”
띠링~
[플레이어 ‘이지경’님에게 ‘크리샤네아 슈페리아가’ 분노를 표출합니다. 호감도가 1만큼 감소합니다.]
분노로 이글거리는 눈으로 나를 보는 크리샤의 시선을 피하지 않고서, 그대로 바라봤다. 검고, 깊은 두 눈을 바라봤다.
“아...”
그런 내 시선에 크리샤가 어깨를 움츠러뜨리며. 손에 쥐고 있던 힘을 풀었다.
“그래... 하지만, 굳이 뿌리칠 필요까지는 없었지...? 미안... 나 때문에 피까지 났었는데... 내가... 잘못했던 건데...”
띠링, 띠링.
혼잡하게 울려대는 알림들이 귓가에 울렸다.
대체 언제부터...
아니, 알고 있었잖아.
크리샤가.
그녀가 과거에 상처 입었다는 것쯤은. 그리고 그 상처가 채 낫지 않은 채로 있었던 것쯤은. 진작 눈치 챘었잖아.
그녀는 나랑 동류였다.
스스로가 과거에 저지른 짓을 용서하지 못하고, 상처가 채 아물기도 전에. 자신의 상처로부터 도피해버린... 나와 같은 동류.
그녀가 다른 누군가에게 자신의 죄의식을 투영하고, 그것을 증오하는 방향으로 도망쳤다면.
나는 나 스스로를 용서하지 못했다.
그녀가 다른 누군가를 증오하고, 그를 통해 죄책감을 쌓아왔다면.
나는 과거를 잊으려고 했었다.
단지 차이점은 그것뿐이었다.
나는 내 손을 여전히 잡고 있는 크리샤를, 그대로 당겨서 내 품에 안았다.
“무...?! 무슨 짓을 하는 거야...! 이, 이거 놔...!”
“미안한데, 아까 맞은 손등이 저려서 놓을 수가 없네.”
“그런 바보 같은 소리가 어디 있어! 분명 내가 치료했는데... 그런 거짓말에 내가 속을 줄 알아?! 내가... 내가 그딴 거짓말에...”
악을 지르며 버둥이던 크리샤가 점점 얌전해지는 것이 느껴졌다. 그러다가.
“...진짜야? 정말로, 아파? 아직도...?”
물기가 어린 눈으로. 내 품 안에서 나를 올려다보며 조심스레 그렇게 묻는 크리샤를 보며. 내가 말했다.
“아니, 거짓말인데.”
“이익! 너 같은 거 정말로 싫어! 이거 놔!”
“싫은데?”
“네가 뭔데?!”
나를 밀쳐내려고 하는 크리샤를, 더욱 강하게 끌어안았다.
“뭐긴 뭐야. 네 남편이지.”
“그딴거, 나는 동의한 적 없어...!”
내 말에 일순간 멈칫했던 크리샤가 그렇게 외치며 나를 다시 밀쳐냈다. 하지만 밀쳐지지 않았다. 내 말에 감동이라도 먹은 크리샤의 힘이 갑자기 약해졌다던가, 그런 게 아니었다.
내가 강해졌을 뿐이었다.
나는 지금 진심을 다해서, 진심으로 나를 밀쳐내려고 하는 크리샤를 끌어안고 있었다.
개변자에 근력 특화.
거기에 불멸자를 활성화해서... 신체능력을 300% 활성화.
그렇다.
내 근력은 지금 160이었다...
크리샤가 아무리 강하더라도, 지금의 나보다는 근력에서 밀린다는 의미였다. 결국, 아무리 용을 써도 밀려나지 않자, 크리샤가 콱, 하고 내 발등을 밟았다.
내가 특화시킨 능력은 근력이었지 체력이 아니었다. 고로 엄청나게 아팠지만 참았다.
혼신의 발등 밟기도 통하지 않자, 크리샤가 버둥거리며 외쳤다.
“이, 이익! 이거 놓지 못해?!”
“거절한다. 정 싫으면 네가 알아서 빠져나가던가.”
“그렇게 말하면... 내가, 못할 것 같아?!”
우웅, 하고 크리샤의 몸 주변으로 마력이 퍼져나가고. 이내 그림자로 된 손들이 땅에서 뻗쳐 나오는 것이 보였다.
그렇게 뻗쳐 나온 그림자의 손들이 나를 붙잡았다. 그리고 그대로 잡아당겼다.
“으음...”
생각보다 쎈데? 하나, 둘 정도라면 몰라도 십수 개의 그림자의 손이 몸을 붙잡고 잡아당기니까 상상이상으로 강했다. 하지만 아직까지는 버틸 만 했다.
“계속 버티겠다 이거지...! 어디 이것도 버틸 수 있나 보자고...!”
일부, 그림자 손들이 내 발목을 붙잡았다. 그러고선 내가 균형을 잡지 못하게끔 이리저리 흔들었다.
안 그래도 힘들어 죽겠는데, 이러니까 더욱 힘들었다.
하지만 그런데도 버텼다.
불멸자의 심장.
신체능력 활성화 400%.
“놔...!”
“싫다니까?”
꾸득, 꾸득하고. 내 옆구리를 꼬집고 있는 그림자의 손을 무시하고서 그렇게 대답했다. 힘으로 안 되니까 꼬집기 공격이라니 엄청 약아빠졌는데...
“어째서, 놓지 않겠다는 건데?!”
“그야, 놓고 싶지 않으니까.”
“네가 대체 뭐라고...!”
“말했잖아. 네 남편이라고.”
“인정 못해.”
“네가 인정 못하면 어쩔 건데?”
“아악! 너, 진짜로 짜증나!”
온갖 폭력과 온갖 약아빠진 술수를 겪어내고서. 신체능력을 불멸자를 통해 500%까지 활성화시킨 나는 마침내 얌전해진 크리샤를 끌어안은 채로 말했다.
“미안.”
“...이제 와서, 사과하면 용서해줄 것 같아?”
“그렇겠지? 그래도 미안.”
내 말에 한동안 품에 안겨 있던 크리샤가 중얼거리듯이 말했다.
“너, 정말로 싫어.”
“......”
“도와달라고 하지도 않았는데... 제 멋대로 끼어들어서, 제 멋대로 다쳐서, 제 멋대로 죽어가서... 전부 제 멋대로인 네가 정말로 싫어.”
“미안.”
“...걱정했는데, 나 때문에... 네가 다쳐서... 그런데 깨어나지 않아서... 걱정했는데... 일어나자마자 뭐? 에루나는 어디 있냐고...? 그래, 궁금할 수는 있어. 그런데, 내가 하는 말은 전혀 듣지도 않고서... 에루나! 에루나! 에루나...! 그놈의 에루나만 찾는 네 녀석이 정말로 싫어.”
“그건 진짜로 미안.”
“그럼 여태까지는 가짜로 미안하다고 했던 거야?”
“그건 아니고... 아무튼 미안.”
씩씩거리던 크리샤가 푹, 하고 내 가슴팍에 얼굴을 묻으며 중얼거렸다.
“맨날 루시아 타령만 하는 네가 미워.”
“미안.”
“루시아 가슴이 크면 얼마나 크다고. 그렇게 가슴이 좋아?”
“좋긴 하지...”
“...뭐?”
“미안합니다.”
“그리고... 그리고...”
한참을.
내게 불만을 터트리던 크리샤가 흐끅, 하고 딸꾹질을 하며 말을 이었다.
“나는, 전혀 신경 쓰지도 않는 네가 미워.”
“네가 말했잖아? 사랑이 없는 사이에서, 관계를 맺는 건 싫다고... 그런데 뭐야? 저 녀석들이 깨어나려면, 내 힘이 필요하니까. 내 마력이 필요하니까. 그러니까 나한테 그런 부탁을 하는 거야? 난 단지, 저 녀석들을 깨우기 위해 필요한 도구인거야?”
“나는... 나는... 네가 너무 싫어.”
“인간인 네가 싫어. 갑자기 소환된 주제에, 루시아의 마음을 빼앗은 네가 싫어. 모두가 너에게 관심을 주는 것이 싫어. 에루나가 너만을 보고 있는 것이 싫어. 전부, 전부... 전부...”
“...그리고, 정말로 싫은 건... 내가 정말로 싫은 건...”
딸꾹질에서, 울먹임으로. 울먹임에서 오열로 바뀌어가며. 내게 말하는 크리샤를 안아주었다. 내 품에서 크리샤가 오열하며 말을 이었다.
“정말로, 정말로 싫은 건... 아무런 잘못도 없는 너를, 그저 일방적으로 이 세계에 소환되어서... 우리들이 필요로 할 뿐인 이기적인 요구에 희생됐을 뿐인... 네가 싫어하는 내 곁에 있는 너를... 미워하는, 바보 같은 내가 싫어...”
그 말에.
그 고백에 나는 쓴웃음을 지으며. 그런 크리샤의 머리카락을 쓸어내렸다.
“아닌데.”
“...뭐가 아닌데?”
훌쩍, 하고 울고 있는 크리샤의 눈물을 닦아주며, 그런 내 손길을 거부하지 않는 크리샤를 보며 내가 말을 이었다.
“내가 널 싫어한다니 뭐니 하는 그거 말이야. 나는, 널 싫어하지 않아.”
움찔, 하고 크리샤의 몸이 떨렸다. 그리고서, 나를 째려보며 말했다.
“거짓말.”
“거짓말이 아니야.”
“내가... 널 그렇게까지 싫어했는데?”
“그래도, 널 싫어하지 않아.”
“나 때문에, 네가 다쳤는데...?”
“그래도, 난 널 싫어하지 않아.”
“나는... 나는...”
말을 이으려는 크리샤의 턱을 붙잡았다.
“네가 정말로...”
“좋아해, 크리샤.”
그리고 그대로. 크리샤의 말이 끝마쳐지기 전에 입술을 맞췄다.
띠링~
[플레이어 ‘이지경’님의 진심어린 마음에 ‘크리샤네아 슈페리아’의 상처 입은 마음이 치유됩니다. 호감도가 3만큼 증가합니다. 압도적으로 강력한 대상의 마음에 당신의 존재를 새겼습니다! 행운이 1만큼 상승합니다.]
띠링~
[플레이어 ‘이지경’님에 대한 ‘크리샤네아 슈페리아’의 호감도가 30을 돌파합니다! 앞으로 ‘크리샤네아 슈페리아’의 정보창을 통해 속마음을 읽을 수 있습니다. 일부 열람이 불가능했던 특성 및 기능이 공개됩니다.]
알림과 함께, 길지 않았던 입맞춤이 끝나고서.
붉게 물든 뺨을 한 채로. 크리샤네아가 내게 물었다.
“...날 좋아해?”
“그래.”
“정말로?”
“정말로.”
“......얼마나? 루시아보다 더 좋아해?”
거기서 그 질문은 좀 아니지 않니?
대답이 없는 나를 보며, 크리샤가 미소 지으면서. 내 뺨에 손을 뻗었다.
“너, 거짓말 못하네.”
“...미안.”
“사과할 필요 없어. 루시아가 나보다 너랑 더 오래 있었고... 어쩔 수 없는 거니까. 그리고...”
꾸욱, 하고 내 뺨을 살짝 꼬집으며. 크리샤가 말했다.
“거짓말을 못한다는 건... 날 좋아한다는 말이 거짓말이 아니란 거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