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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0화 〉120화 (120/370)



〈 120화 〉120화

에루나를 따라 간 곳에는 에네스타를 비롯한 모두가 있었다. 로로와 마야, 니아, 슈슈, 바록과 바쿠. 그리고 에오시스 자매까지.


나는 마치 죽은 자들처럼, 침대에 누운 채 잠들어 있는 녀석들을 보며 입을 열었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그런 내 말에 에루나가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제가 천공성에 있는 동안. 그러니까 주인님께서 마왕이 되신 직후에. 모두에게 마력 폭주 현상이 일어났습니다.”

“마력 폭주?”

처음 들어보는 말, 하지만 폭주라는 이름이 들어가는 것부터 불길하기 짝이 없는 말을 입에 담은 에루나가, 내가 예상했던 것과 별반 다른 것이 없는 것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몸 안에 있는 마력이 폭주하는 현상입니다. 경우에 따라 다르지만 보통 이성을 잃고 광인이 되거나, 죽음에 이르기까지 합니다. 다행히 제가 마침 천공성에 있는 동안 벌어진 일이라 어떻게든 수습은 했었습니다만, 그 탓에 정작 주인님께서 폭주하는 것은 막을 수 없었습니다. 전부 제가 능력이 부족한 탓입니다. 용서해주십시오.”

“...그게  탓이 아니잖아.”

에루나의 말에 그제야 알  있었다. 내가 의식을 잃기 전에 보았던 모습의 이유를.

상처투성이였던 에루나의 모습의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에루나의 몸에 난 무수한 상처 중에서. 그 중에는 검으로밖에 날 수 없는 상처도 있었고, 무언가 강력한 것과 충돌해서 난 듯한 상처도 있었다. 심지어 검게 타서, 녹아내린 상처도 있었다.


에루나에게 그런 상처들이 있었던 이유를. 이제는 알 수 있었다.


이성을 잃고 광인이 되거나, 죽음에 이를 수도 있다는 마력 폭주.

아마 지금은 잠들어있는 이들 중에서도 이성을 잃었던 이도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에루나는 그런 이들을 막았던 거였다. 나는 잠들어있는 에네스타의 머리카락을 쓸어내리며 바라봤다. 상처 하나 보이지 않았다.


에네스타만이 아니었다.


다른 녀석들도, 상처 하나 없이. 그저 잠에 들어있을 뿐이었다.

정작 에루나는 그렇게까지 상처투성이가 되어있었는데.  말은 에루나는 그렇게까지 다쳐가면서도 이들에게는 상처 하나 입히지 않았다는 소리였다. 모두가 다치지 않게, 자신이 다쳐가면서 제압하고 나서야, 내게 와줬던 것이었다.


상처투성이가 된 몸으로.

그리고 끝내는 그 몸마저 희생해서 날 구해줬다.


착잡함에 입술이 떨어지질 않았다. 하지만 지금 그러고 있을 수는 없었다.

“에루나, 이들이  아직까지 일어나지 못하는 건지 말해줘. 혹시 나랑 같은 이유야?”

잠들어있는 녀석들의 정보창을 통해, 마력 결핍이라는 상태이상을 확인한 내가 에루나에게 물었다. 그 말에 에루나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조금 다릅니다. 이들의 경우에는, 주인님과 달리... ‘마력 의존증’이라는 병에 가까운 증상을 보이고 있습니다.”

“마력 의존증?”


마력 폭주도 그랬지만 이번 것도 처음 들어보는 말이었다. 내 물음에 에루나가 말을 이었다.

“특정한 마력만 받아들이는 증상입니다.  병에 걸리면... 특정한 마력을 제외한 다른 마력과 반발하거나, 도리어 독이 되어 장기를 다치게 됩니다. 이 세계의 모든 존재에게는 마력이 존재하고, 생물에게서  필요한 공기나 물, 음식들에도 마력이 존재합니다. 즉, 살아가기 위해서는 다른 마력을 몸에 들여야 된다는 뜻인데 이들은 그게 불가능해진 겁니다.”

확실히 나랑 비슷해 보이지만 다른 경우였다.


나 같은 경우에는 막대한 마력을 흡수해야하는 상황이었지만, 이들은 마력을 흡수하지 못해서 문제가 생긴 것이니까.

“해결 방법은?”

“주인님의 마력을 전해주면 됩니다.”

그거 참 간단한걸.

그런 생각을 하며, 나는 잠들어있는 에네스타에게 손을 뻗었다.

마도의 이치.


마력 전이...


“바보야, 너 미쳤어?!”


곧바로 에네스타에게 마력을 전해주려고 하던 나를, 크리샤가 가로막았다.


“무슨 짓이야?”

“무슨 짓? 그건 내가 할 말이야. 지 몸 하나 제대로 간수하지도 못하는 녀석이 뭐하는 짓이야?”

“그건...”

크리샤한테 가로막혔을 때는 조금 짜증이 났지만, 크리샤의 말은 정론이었다. 나조차도 크리샤에게 마력을 받고 있는 입장이였다. 그런 내가 마력을 소모한다는 건, 스스로의 목을 조르는 행위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


그렇다고 해서 이렇게 두고만 있을 수도 없었다.

나의 탓으로, 잠들어버린 녀석들을. 깨울 방법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내버려두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

하지만 크리샤의 말도 맞는 말이었다. 까딱했다가는 주객이 전도될 수도 있으니까. 나는 에루나에게 물었다.


“에루나, 만약 이대로 내버려두면 어떻게 되는지 알려줄 수 있을까?”

“...주인님의 경우와는 다르게, 이들은 주인님으로부터 조금씩이지만 마력을 얻고 있습니다. 생존에 꼭 필요한 수준 만큼이지만 말입니다. 즉, 이들이 받아들일  있는 마력은 주인님의 마력이라는 이야기고, 그 마력을 주인님께 받고 있는 중이니 주인님의 마력이 꾸준히 일정한 수준만큼 유지된다면 죽는 일은 없을 겁니다.”


단지, 하고 에루나가 말을 이었다.


“어디까지나 생존에 필요한 수준만큼의 마력입니다. 즉, 깨어나는 것은 무리라는 이야깁니다. 그리고 깨어나지 못하고 이대로 있는 동안에는 점점 몸도 쇠약해지겠죠. 꾸준히 치유마법을 걸어서 상태를 조금이라도 호전시킬 수는 있겠지만, 그것도 한계가 있을 겁니다.”

에루나가 전해준 말은 당연하다면 당연한 말이었다. 실제로, 그 같은 사례는 많이 보았으니까. 병보다는, 병으로 인한 후유증으로 몸이 점점 쇠약해져서,  결과 더욱 움직일 수 없어진 끝에 더욱 쇠약해지는 것은 흔히 보고 들어왔던 것이었다.

“다른 방법은...  녀석들을 깨울  방법은 없는 거야?”


“주인님의 마력을 전해주는 것 외의 방법을 묻는 거라면... 없습니다.”


단호하게, 그렇게 말하는 에루나의 말에 몸에 힘이  빠지는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에루나의 말이 이어졌다.

“그렇다고 방법이 전혀 없는 건 아니지만 말입니다.”


에루나의 말에 화색이 되어 물었다.

“그 방법이 대체 뭔데?”


“간단합니다. 크리샤 아가씨가 주인님께 전해주는 마력의 양을 늘리면 그만입니다. 그렇게 하면 주인님이 이들에게 마력을 전해주고서, 깨우더라도 부담이 없어질 테니 말입니다.”


“...잠깐만, 그렇게 하면 크리샤의 부담이  커진다는 이야기 아니야?”

이미  하나만으로도 크리샤에게는 큰 부담이라는 이야기를 들은 직후인데, 거기서 더욱 마력을 사용하게 하는 방법이 유일한 방법이라는 에루나의 말에 내가 그렇게 되묻자, 에루나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그리 큰 부담은 아닐 겁니다. 주인님께 마력을 전해주는 방식을 바꾸면 말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크리샤 아가씨?”

“......”

에루나의 말에 얼굴이 새빨갛게 물들고 있는 크리샤를 바라봤다. 얼굴이 저렇게까지 빨갛게 될 수 있구나... 안 그래도 검은 머리카락과 대비되는, 새하얀 피부를 가지고 있던 크리샤였던지라 붉게 변한 얼굴이 도드라져보였다.

그런 크리샤를 보고 있자니 나를 째릿하고 노려보며, 크리샤가 입을 열었다.


“뭐, 뭐야?! 왜 보는 건데! 이쪽 보지마! 보지 말라고!  그런 거 모르니까 이쪽 보지 마!”


그 말에 이번엔 에루나를 바라봤다.

“...모른다는데?”

“거짓말입니다. 저 모습을 보고도 모르십니까?”

대체 나보고 어쩌라는 건지 모르겠지만, 다시 크리샤를 보며 말했다.

“에루나가 그렇다는데?”

“시끄러워!”

음...


내 예리한 촉각에 의하면 아무래도 거짓말을 하는 쪽은 크리샤인  같았다. 그래서 크리샤를 빤히 바라보자 내 시선을 의식했는지 고개를 돌려버렸다.

말해줄 생각이 전혀 없어 보이는 크리샤를 보고서, 하는 수 없이 에루나를 바라보자 그제야 에루나가 나에게 말했다.

“지금 크리샤 아가씨께서 주인님께 마력을 전해주는 방식이 비효율적이라는 이야기입니다. 입술을 통해서 마력을 전해주는 방식은 간편하기는 하지만 그만큼 효율이 나쁘니까요.”

“효율이 나쁘다고?”


 말에 고개를 끄덕인 에루나가 말을 이었다.

“지금의 방식으로는 크리샤 아가씨가 주인님께 한줌의 마력을 전해주기 위해서 그의 몇 배나 되는 양의 마력을 사용해야합니다. 아무래도 지금처럼 막대한 양의 마력을 전해주기 위한 방법으로는 적합하지 않겠죠.”


에루나가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니까, 크리샤가 내게 전해주는 마력의 효율만 높이면...”


“주인님께서 잠들어 있는 에네스타나, 다른 이들에게 마력을 전해주더라도 부담이 적어진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런 방법이 있었으면 왜 진작 그러지 않았던걸까. 지금같은 방식은 크리샤에게도 부담이 된다는 이야기까지 했으면서, 굳이 비효율적인 방식으로 마력을 전해준 크리샤와, 그걸 말리지 않았던 에루나를 이상하게 바라봤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궁금증을 해소할 때가 아니었다.


“그래서, 그 방법이 뭔데?”


“주인님도 아시지 않습니까?”

“내가... 알고 있다고?”


“네, 주인님도  번이고 그렇게 마력을 전해 받은 경험이 있으니까요.”


 말에.

에루나의 말에 떠오른 것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었다.

그리고  말대로라면, 크리샤가 어째서 비효율적인 방법임에도 불구하고 굳이 입술로만 내게 마력을 전해줬는지도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내 머릿속에 떠오른 그게 정말로 맞는 방법인지 알 수가 없었다. 아니, 정말이라도,  방법만큼은 아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진짜로... 그거야?”

“네, 그겁니다.”


“거짓말이지?”

“진짜입니다.”

딱 잘라서 단언하는 에루나를 보다가, 고개를 돌려, 귀까지 새빨갛게 익어버린 크리샤의 얼굴을 바라봤다. 움찔하고, 내가 바라보자 움직이는 귀를 보며, 지금까지 나와 에루나가 했던 이야기를 크리샤가 듣고 있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에루나가 거짓말을 하는 게 아니란 것도 알 수 있었다.


“...진짜?”


“정 믿지  하시겠으면 직접 해보시면 되지 않습니까? 그리고... 지금이라면 주인님의 능력의 도움으로 좀 더 효율적으로 마력을 전해 받으실 수도 있을 테고 말입니다.”

에루나가 말하는 효율적으로 마력을 전해 받는 방법이 뭔지는 단번에 알아들을 수 있었다.


내가 갖고 있는 기능 중에서 그런 부류의 능력이라면 뻔했다.


흡정.

교접중인 대상으로부터 생명력과 마력을 흡수하는 기능.

에루나가 말하는, 효율적으로 마력을 전해 받을 수 있는 방식이. 서로 살을 섞는 것이라면. 나는 거기서 한층 더 효율적으로 상대의 마력을 흡수할  있다는 소리였다.

“아니, 하지만...”

다른 누구도 아니고 크리샤였다. 그 크리샤가 나랑? 절대로 가능할  같지 않아서, 에루나를 보고 있자니 그런 나에게 에루나는 이렇게 말했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에는 제가 아무런 도움이 되질 않으니 주인님께서 힘내주시길.”


“......”


그게 힘낸다고 되는 거였으면 내가 이러고 있지도 않았지. 아무튼, 에루나의 말에 나는 머리를 긁적이다가 크리샤에게 다가갔다.

내가 다가가자 흠칫하고 놀라는 크리샤의 모습이 보였다. 뭔가 내가 엄청나게 몹쓸 짓을 하는 기분이 들었다.


“...저기 크리샤?”


“...싫어.”

“아직 아무 말도 안했는데...”


“싫어, 싫으면 싫은 거지  자꾸 물어보려고 하는 건데?! 내가 너랑, 그... 그런 짓을 하라고? 절대로 싫어. 죽어도 싫거든?!”


빼액, 하고 소리 지르는 크리샤를 보고서  말이 없었다.


아니, 할 말은 있었지만 저렇게까지 싫어하는 크리샤에게 뭐라고 할 말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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