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9화 〉119화
“...이상입니다. 주인님의 능력으로, 직접 확인해 보시는 것이 이해하기 편하실 겁니다.”
에루나의 설명을 들은 나는 그 말대로 상태창을 펼쳤다.
거기에는 낯선 특성이 떡하니 자리 잡고 있었다.
포식자라는 이름의 특성이.
「이름 : 포식자」
「등급 : 영웅(A)」
「효과 : 일부 생물에게서 발견되는 특성이다. 마력을 흡수, 사용할 수 있다. 랭크가 높아질수록 흡수할 수 있는 마력이 증가하며 마력을 흡수하는 것만으로도 에너지를 얻을 수 있어 음식과 물을 필요로 하지 않게 된다. 단, 지나치게 랭크가 높아질 경우 자신에게 필요한 에너지를 오로지 마력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게 되며, 이러한 특성을 가진 대부분의 생물은 특성에 의해 자멸하게 된다.」
「설명 : 일부 험난한 환경에서 발견되는 생물들이 갖고 있는 특성 중 하나이다. 마력을 흡수, 이를 에너지로 활용하는 특성으로 경우에 따라서는 막대한 마력을 필요로 하는 개체도 존재한다. 흡수한 마력의 양은 랭크에 따라서 변화한다.」
문제가 되는 특성을 확인한 내가 에루나를 바라보며 물었다.
여태까지 에루나에게 들었던 내용들을 확인하는 차에서.
“그러니까, 내가 마왕으로 각성하고 나서... 이후에 이성을 잃고 폭주했다는 거지?”
“네, 주변에 있는 모든 마력을 흡수하는, 마왕의 고유적인 행동인 ‘황폐화’를 사용하셨습니다. 혹시 기억이 나십니까?”
“미안, 전혀 안나.”
내가 그딴 짓을 했다는 게 믿기지도 않았다. 중요한 건, 그 다음의 일이지만.
“그리고... 에루나, 네가 그걸 막았고, 그 과정에서 내가 이런 체질이 됐다는 거네?”
“네, 정확합니다.”
대체 뭘 어떻게 하면 이렇게 되는 건지는 듣지 못했지만, 결과적으로 내 체질이 바뀌었다는 건 확실했다. 대량의 마력을 필요로 하게 됐다는 것이었다. 문제는, 대량의 마력이었다. 얼마나 대량의 마력이냐면... 나는 상태창에서 내 마력을 확인했다.
거기에는 110/164이라고, 평소랑은 조금 다르게 표시되어있는 마력 수치가 있었다. 그러니까, 내가 최대한 보유할 수 있는 마력은 164라는 거고 지금 가지고 있는 마력의 양은 110정도라는 소리였다. 단순히 마력 쪽만 본다면 그렇다는 것이고 그 밑의 마나력쪽을 확인해보면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떨어지고 있는 것이 보였다.
그렇게 일정 수준으로 마나력이 떨어지게 되면.
109/164.
내가 보유하고 있는 마력까지 떨어지게 됐다.
“이거... 위험한 거 아냐?”
이전에 듣기로는 이 세계에서 모든 생물은 마력을 갖고 태어난다고 들었었다. 나는 다른 차원에서 소환되어서 그런 것인지, 아니면 다른 이유에서인지는 몰라도 마력이 없었지만 말이다. 하지만 그랬던 것도 예전의 일이고, 지금의 나는 마력이 존재했다.
다르게 말하자면, 이 세계에서 통용되지 않고 있던 법칙 중 하나가 내게 얽혀버렸다는 뜻이 되기도 했다.
모든 생물은 마력을 필요로 한다, 라는 법칙이.
그리고 그 마력이란 게 없어진 모든 생물의 마지막은...
“위험한 거 맞습니다. 현재 주인님께 마력은, 음식이나 물과 같은 것이나 마찬가지니까요. 굶으면 죽는 게 당연하지 않겠습니까?”
그랬다.
죽게 된다는 소리였다.
“꼭 죽는다고 말하지 않아도...”
“죽는걸 죽는다고 하지 뭐라고 합니까?”
그러니까, 그렇게 말 안 해도 알고 있으니까 하지 않아도 된다는 거지... 뭐, 됐다.
“그래서, 방금 크리샤가...”
“캬악!”
내가 꺼낸 말에 크리샤가 맹수가 하악질하는 듯한 소리를 내며 나를 노려봤다. 에루나가 설명하는 내내 베개로 날 때리려는 시도를 하다가, 결국 실패하고서는 침대 옆에 앉아있었던 크리샤였지만 언급이 되자마자 저러고 있었다.
학대에 가까운 폭력에 옆구리가 터져서, 내용물이 빠져나오고 있는 베개를 다시 움켜쥐는 크리샤를 보고서 나는 조금 말을 고쳐서 다시 말했다.
“아무튼, 방금 있었던 일이랑. 지금 내 체질이랑 무슨 상관인데?”
“...주인님께 필요한 마력이, 너무나도 방대하기 때문입니다. 수치로 따지면... 하루에 드래곤이라도 탈진할 정도 수준의 마력이 필요합니다.”
그런 에루나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내게 필요한 마력이 어마어마하기는 했다. 지금 떨어져가고 있는 마력의 양을 보니, 하루에 세 번 정도. 아까처럼 크리샤에게 마력을 공급받아야 할 판이었다.
그렇게 크리샤로부터 한 번에 공급받는 마력의 양은 무려 100을 가볍게 넘었다. 어지간한 수준이 아니란 것이었다. 그렇게 3번이라면, 에루나의 말대로 드래곤이 탈진할 수준의 마력이 필요하다는 말이 납득이 갔다.
물론, 어디까지나 일반적인 드래곤의 경우지만 말이다.
눈앞에 있는 크리샤의 경우는 조금 다르다는 뜻이었다.
그녀는 현존하는 드래곤 중에서도 최강, 거기에 이전 세대의 드래곤 중에서도 최강이었던 부모의 힘까지 모두 물려받은 드래곤이었으니 말이다.
드래곤조차도 부담스러워할 마력의 소모량을 크리샤는 거뜬하게 버텨낼 수 있었다.
하지만, 그 말은 어디까지나 버틸 수 있다는 의미에 불과했다. 아무리 크리샤라고 해도, 지금의 내 체질이 낫지 않는 이상 매일같이 하루에 세 번은...
“잠깐만... 에루나, 내가 일어난 게 며칠만이라고 했었지?”
“주인님께서 의식을 잃은 지 정확히 나흘 만에 일어나셨습니다.”
나흘, 나흘...
그러니까, 내가 이런 체질이 되고나서 의식을 잃은 뒤로부터 족히 네 번은 날이 바뀌었다는 뜻이었다.
하루에 세 번, 그렇게 네 번..., 그러니까 열두 번.
...이게 무슨 소리냐면, 크리샤가 내가 의식을 잃었던 동안 내게 마력을 공급해줬을 횟수였다. 그 말은 그러니까, 방금 있었던 일을 생각해보자면... 크리샤가 내게 입을 맞췄을 횟수이기도 했다.
“뭐, 뭐야?”
크리샤를 바라보자, 그런 내 시선에 얼굴을 붉히더니 베개를 흔들며 말했다.
“왜 그런 눈으로 쳐다보고 난리야?! 맞고 싶어?”
“아니, 고맙다고 말하려고.”
내가 의식을 잃고 있는 동안, 나를 살려준 은인이기도 한 셈인 크리샤에게 고개를 숙여 감사를 표시했다. 그 크리샤였다. 인간이라면 질색하고, 나랑도 마냥 좋다고 할 수 없는 사이기도 했다. 그야, 그동안 내가 했던 짓을 생각하면 당연했다.
크리샤를 놀리면 놀렸지 호감을 살만한 짓을 했던 것은 아니었으니까. 내게 자신의 감정을 꼭꼭 숨긴 채 드러내지 않으려하는 크리샤의 감정을 들춰내기 위한 짓이었다고는 해도, 미움을 사면 샀지, 좋게 보이지는 않았을 나를 살리기 위해 그동안 싫은 것을 참았을 크리샤에게 고맙다는 말 한마디도 하지 못하면 염치가 없는 수준이 아니었다.
“가, 갑자기 왜 그래? 기, 기분 나빠. 진짜로 기분 나빠서, 소름이 다 돋네.”
소름 돋는다는 듯이, 양 팔을 붙잡고 쓸어내리는 크리샤의 모습에 상처 입을 것 같았다. 그런 내 표정을 봤는지 크리샤가 뭔가 허둥이더니, 이내 헛기침을 하고서 말을 이었다.
“그리고, 뭔가 착각하는 것 같은데! 널 살린 이유는 네가 죽어버리면... 큰일이 나서 그런 것뿐이거든?! 그러니까, 굳이 고개 숙일 필요는 없어!”
“그래도 고마운 건 고마운 건데.”
“내 말은, 굳이 고개까지 숙일 필요 없다는 뜻이거든?!”
그렇게 말해준다면 나야 고맙지만, 그래서야 내가 크리샤에게 감사를 표시할 방법이 없었다. 하지만, 크리샤가 저렇게까지 말하는데 언제까지 고개를 숙이고 있을 수도 없었다.
크리샤의 말에 숙였던 고개를 들어올렸다. 그런 나를 본 크리샤가 흥, 하고 고개를 돌려버렸다. 내 얼굴을 보기도 싫다는 듯이 바로 돌려버리는 크리샤를 보며 쓴웃음을 지으며 내가 말했다.
“아무튼 고맙다.”
“너한테 고맙다는 말 들어봤자, 하나도 안 기쁘거든?!”
너 듣고 기쁘라고 한 말이 아닌데. 그런 생각을 하면서 나는 에루나에게 물었다.
“에루나, 루시아에게도 나에 대한 건 얘기해뒀겠지?”
“네, 루시아 아가씨뿐만이 아니라, 카르네 아가씨와 아르카 아가씨, 샤르 아가씨.. 그리고 아냐, 아샤 아가씨께도 전해두었습니다.”
“너무 호들갑떠는 거 아냐?”
“주인님에 대한 일입니다. 그리고, 아가씨들께서도 아셔야하는 일이니까 어쩔 수 없습니다.”
그건... 그렇겠지.
에루나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서, 나는 몸을 일으켰다.
“그럼, 일단 루시아가 있는 곳으로 가자. 크리샤에게 더 이상 폐를 끼칠 순 없으니까.”
내 몸이 이런 꼴이 되었으니까 루시아에게 뭔가 한 소리 들을 것 같기는 했지만, 싫은 것을 억지로 하루에 몇 번이고 해야 될 크리샤에게 폐를 끼치는 것보다는 내가 루시아한테 잔소리를 듣는 쪽이 나았다.
그런 생각을 하며, 그렇게 말했던 것뿐인데.
“뭐?”
“그건 안 됩니다, 주인님.”
크리샤와 에루나, 양쪽 모두에게서 반응이 나타났다. 에루나 쪽은 그건 안 된다고 딱 잘라서 말하는 거였고, 크리샤 쪽은 그건 또 무슨 개소리야, 라는 의미가 담긴 듯한 뭐, 였다. 나는 그런 둘을 보며 말했다.
“뭐, 왜? 내가 이상한 소리라도 했어?”
“그야 당연하지, 거기서 루시아는 또 왜 나오는데?!”
“루시아 아가씨는 지금 영지에서 일어난 일 때문에 아무래도 주인님께 신경 쓸 수 없을 겁니다.”
왠지 영문 모를 짜증을 내는 크리샤는 무시하고서, 에루나에게 물었다.
“무슨 일인데?”
“주인님에 관한 일이기도 합니다. 주인님께서 마왕으로 각성한 탓에, 몬스터들이 다소 난폭해졌다고 해야 할까요... 마찬가지로, 같은 이유로 다른 아가씨들도 영지에서 날뛰는 몬스터들을 정리하느라 바쁘십니다.”
“그럼, 크리샤는?”
“이유는 모르겠지만, 크리샤 아가씨 영지 내에서는 몬스터들이 무척이나 얌전해서 말입니다.”
그 말에 나는 상태창 한 곳에 자리 잡고 있는 기능, 복속을 바라봤다.
거기에 표시되어있는, 29만이 넘는 어마어마한 숫자의 무언가도 보고서, 내가 물었다.
“크리샤, 혹시 영지 내에 몬스터들이 얼마나 있는지 알고 있어?”
“그건 갑자기 또 왜 묻는 거야, 그보다 내가 한 말은 들은 거야? 어째서 루시아한테 가려는 거냐니까?!”
“그야, 너... 나랑 입 맞추는 거 싫잖아. 그래서 몇 마리나 되는데?”
“......”
“크리샤?”
“...시끄러워, 닥쳐.”
아니, 또 왜 저러는 거야. 갑자기 뚱해진 크리샤를 대신해서 에루나가 내 궁금증을 해소시켜줬다.
“크리샤 아가씨의 영지에는 몬스터가 적은 편이지만... 그래서 삼십만 정도는 될 겁니다.”
에루나의 말대로라면, 왜 크리샤의 영지에 있던 몬스터들만 얌전한지 대충 알 것 같았다.
그러니까...
내가 마왕으로 각성하면서, 다른 곳에 있는 몬스터들이 날뛰게 된 이유도 말이다.
내 탓이었다. 무슨 이유에서인지는 몰라도, 다른 곳에 있는 몬스터들도 본능적으로 나에 대한 것을 알게 된 모양이었다.
내 영향이 직접적으로 미쳤던 크리샤 영지만이 얌전한 것도 대충 그런 이유에서일 테고.
아무튼, 결국 내게 마력을 공급해줄 수 있는 드래곤들 중에서도 바쁘지 않은 것은 크리샤 뿐이라는 건데...
“...이거, 내가 어떻게 할 수는 없는 거지?”
“마력 공급에 대한 이야기라면, 가능은 합니다.”
“진짜?”
“대신, 주인님께 필요한 만큼의 마력을 감당할 곳이 없을 뿐입니다. 주인님께서 며칠 머무르는 것만으로도 그곳의 환경이 완전히 파괴되겠죠.”
“그건, 안 된다는 소리잖아.”
“굳이 크리샤의 아가씨의 도움이 없어도 가능은 하다는 의미입니다. 주인님께서 궁금한 건 그게 아니었습니까?”
에루나의 말이 맞는 말이기는 한데...
“그리고... 주인님께 드릴 말이 더 있습니다.”
이걸 대체 어쩌면 좋을지 고민하고 있던 나에게 에루나가 그런 말을 꺼냈다.
“또 뭐가 남은 거야?”
내 말에 고개를 끄덕인 에루나가 꺼낸 말은 나에게 있어서는 꽤 충격적인 이야기였다.
“주인님께서 마왕으로 각성하게 되면서... 주인님께 복속되어있던 이들에게도 영향이 미쳤습니다.”
“...뭐?”
“정확히는, 저를 제외한... 주인님께서 거둔 모두에게 영향이 미쳤다고 해야 할까요.”
에루나의 말에 떠오른 것은, 에네스타를 비롯한, 모두였다.
그리고.
어째서 천공성이 그토록 조용했던 건지.
마치, 아무도 없는 것처럼.
거기에... 생각해보면 이상한 것이 그것들만 있던 것도 아니었다. 분명 내가 의식을 잃었다가, 가까스로 깨어난 것인데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모습이 보이지 않는 것을, 이상하다고 생각했어야 했다.
“다른 녀석들은... 지금 어디에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