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13화 〉113화 (113/370)



〈 113화 〉113화

“......”

“......”


마왕이라는 칭호와 특성이 떡하니 자리 잡은 상태창을 보며 어이없어하고 있다가 크리샤와 눈이 마주쳤다.

나와 눈이 마주친 크리샤가 더듬더듬,  가슴팍을 매만지며 입을 열었다.

“상처가...”


“나았네?”


분명 꿰뚫렸을 터였던 가슴팍에는 십자 모양의 금속 같은 걸로 메꿔져있었다. 멀쩡한 눈이 하나뿐인 나도 보이는걸 크리샤가 못 볼 리가 없었다. 도저히 믿기지 않아서 그런 말을 했을 게 분명했다.

내 대답에 움찔한 크리샤가 이내 말을 이었다.


“분명 심장이...”

“멀쩡해졌네?”


그냥 멀쩡해진 것도 아니고 불멸자의 심장이라는, 주시자의 눈이랑 똑같은 느낌의 기묘한 것이 생겨버렸지.

“치료 마법도 듣질 않았는데...”

“어쩌다 보니까 나아버렸네?”

직업 마왕이 되어버렸지만.


크리샤가 뭐라고 물어보려고 했지만 어쩐지  물어보려고 하는지 알 것 같아서 말이  끝나기도 전에 그렇게 대답하자.


나를 어이없어하는 표정으로 바라보는 크리샤가 보였다. 그런 크리샤에게 손가락을 뻗었다.


스윽, 하고 그녀에 눈가에 맺혀있던 눈물을 닦아주며 내가 말했다.


“걱정해줘서 고마워.”


“내, 내가 언제 걱정했다고...”


“아니 울기까지 했으면서...”


그런  말에 꽈악, 하고  얼굴을 양 손으로 움켜쥔 크리샤가 이를 갈며 말했다.


“안 울었거든?! 그보다... 다 나았으면 빨리 비켜!”


그렇게 말하며 팍! 하고 크리샤의 품에 안겨있던 내가 땅바닥에 내동댕이쳐졌다. 그대로 벌떡 몸을 일으키고서 내가 말했다.

“아니 그래도 방금까진 환자였는데...”

“지금은 멀쩡해졌잖아?! 언제까지 나한테... 나한테...”

뭐라고 말을 이으려던 크리샤가 이내 입을 꾹 다물더니 옆에 있던 돌멩이를 집어던졌다.

제구력이  꽝이어서 크리샤가 던진 돌멩이는 굳이 피하지 않아도 맞지 않았지만 말이다.

“너무하네 진짜.”


멀쩡해지긴 했지만 그래도 방금까진 그렇게 걱정해줬으면서 너무 빠른 태세전환이었다.


아니 그 크리샤가 걱정을  해줬으니 감지덕지해야하는 걸까.


아무튼 내게 던진 돌이 맥없이 빗나가는 것을 본 크리샤가 짜증을 내면서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떡하니 나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대체 어떻게 된 일인지는 나중에 묻겠어.”

“그냥 물어보지 않으면 안될까?”


마왕이 되어 버렸다고 말할 수도 없고. 말한다고 쳐도 그렇게 되면 후환이 두려웠다. 설마 퇴치라도 당하지는 않을 거라고 믿고 싶긴 한데... 그런 내 물음에 크리샤가 흉폭한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될 것 같으면 그렇게 해보시던지.”

 이거.

평소의 크리샤였다.

아까처럼 약해보였던 모습을 보여줬던 것은 어디로 갔냐는 듯이. 평소처럼 오만하고 평소처럼 매우 화가 나있는 크리샤가 거기에 있었다.


다행인 것은, 이번에 크리샤의 심기를 건드린 것은 내가 아니라는 것이었다.

뿌드득.

이를 갈며 크리샤가 내게서 시선을 돌리고는 멍한 얼굴로 칼날이 홀라당 사라져버린 천검의 자루를 쥐고 있는 아리스를 바라봤다.

“지금은... 감히 누구한테 검을 휘둘렀는지, 저 인간들에게 알려줘야 하니까.”


고오오오...!

그렇게 말하는 크리샤의 곁으로 그림자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모여든 그림자들이 꿈틀거리며 크리샤의 몸을 타고 올라갔다.


하나의 그림자가, 하나의 비늘이 되어 크리샤의 몸을 감싸가는 것이 보였다.

수십, 수백의 단위가 아니였다.

수천의 그림자가. 크리샤가 소환했었던 그림자들 말고도, 주위에 있던 그림자들이 크리샤에게 모여들어서, 이내 그녀의 비늘을 이루기 시작했다.

압도적인 마력.


주시자의 눈에 비쳐 보이는 크리샤의 검은 마력이 본능적으로 두려움을 느낄 정도로 어마어마했다.


그림자와 마력으로 둘러싸인 크리샤가 입을 열었다.

“영원의 밤.”


촤아악!

이전에도 보았던, 검은 피막의 날개가 크리샤의 등 뒤로 펼쳐졌다.


그리고.

어두운 밤이 되었다.


크리샤에게 모여들었던 마력이 사방으로 방사하면서, 마치 밤이  것처럼. 순식간에 이 일대를 어둡게 만들었다.


“자, 그 눈에 새기도록 해.”

그 어둠 속에서. 크리샤가 천천히 걸음을 옮기며 입을 열었다. 모여든 그림자들이, 그 그림자들이 이룬 비늘이 마치 갑옷처럼 바뀌어 있었다. 어둠 속에서도 빛나는 듯한 착각이 일정도로, 이질적인 칠흑 같은 빛깔로 빛나는 검은 갑옷.


 뿐만이 아니였다. 머리 위로 솟아난 두 개의 뿔이 강한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었다.

“드래곤의 공포를, 나, 크리샤네아 슈페리아의 공포를.  땅의 지배자에게 검을 휘두른 대가가 무엇인지.”

천천히, 그렇게 말하며 아리스를 비롯한 인간일행에게 손을 뻗는 크리샤에게 내가 말했다.


“저기 크리샤.”

“...뭐야? 바쁘니까 이야기는 나중에 해.”

그건 알겠는데.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였다. 도저히 물어보지 않으면 안 될  같아서 말이지.


그 갑옷... 원래 디자인이 그런 거냐고.

“어딜 보는...”

 시선을 따라 자신의 몸을 바라본 크리샤의 고운 이마에, 도드라지는 혈관이 보였다. 그건 그거고, 나는 크리샤를  아래로 훑어봤다.


아무리 봐도 디자인이...

“뭘 자꾸 쳐다봐?!”

콱! 하고 크리샤의 손가락이  눈을 찔렀다.

“악! 내 눈!”

두 눈을 부여잡고 비명을 지르자 그런 나에게 싸늘한 크리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변태새끼.”


억울했다. 내 억울함을 비유하자면 누가 길 한복판에서 갑자기 옷을 벗어던지더니 비키니 차림이 된 걸 쳐다봤다고 변태새끼라고 폄하당한 것만큼이나 억울했다. 그 억울한 심정을 십분 담아 내가 외쳤다.

“아니 누가 그렇게 입으래?! 그리고 조금 본  가지고 눈을 찔러?”


“그냥, 조금, 봤다고?”

“그래. 조금 많이 보긴 했지.”

인정할  하기로 했다. 좀 많이 보긴 했다. 위 아래로 전부, 샅샅이 훑어보긴 했다. 하지만 내 본의는 아니었다. 나도 그냥 갑옷을 입고 있는 거라면 그렇게까지 보진 않았을 거다. 갑옷이... 중요한 부위만을 겨우 가리고 있을 뿐이어서 집중해서 봤을 뿐이지.


그런 내 대답에 한숨을 내쉰 크리샤가 입을 열었다.


“...내가 원해서 이런 형태인 게 아니니까 착각하지 마. 조금 본래의 형태로 돌아간 영향이니까. 인간들이나 입는 옷이 드래곤의 마력을 견딜 수 있을 리가 없잖아.”

“아, 그래서 벗은 거였어?”


입고 있던 드레스는 어디로 갔나 했더니. 하긴 드래곤의 본신은 거대한 짐승의 형상을 하고 있었다.

예를 들어서 루시아가 내게 보여줬던 본신의 형태는 황금빛의 깃털을 가진, 아름다운 거대한 새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봉황이나 주작, 그렇게 부르면 좋을  같은, 신화 속에서나 나올 법한 아름다운 새의 모습을.

크리샤의 본신이 어떤지는 본적이 없었지만, 지금 보이는 모습을 보아하니 루시아 때처럼 새의 형태를 하고 있는  아닌 모양이었다.

애당초 루시아에게는 지금 크리샤의 몸을 감싸고 있는 비늘 같은 것이 없었다. 깃털을 들춰서 안을 확인해본건 아니니까 모를 일이지만, 적어도 겉으로 보기에는 없었었다.


거기에 지금 크리샤의 몸 주위에는 여전히 그림자들이 꿈틀거리면서, 날카로운 칼날처럼 주변에 있는 것들을 갈기갈기 찢어낼 것만 같았다. 그런 상황에서 방금까지 입고 있었던 드레스를 그대로 입고 있었더라면, 드레스는 금새 갈기갈기 찢겨서 어차피 지금보다 더하면 더했지 전혀 못한 꼴은 되지 않았을 것 같았다.


나름 스스로 크리샤가 난데없이 홀딱 벗어던진 이유에 대해서 추측하고 있자니 그런 내게 크리샤의 노호성이 들려왔다.


“벗은  아니거든!?”

쾅!

하나의 그림자가 내게로 뻗어왔다. 돌멩이랑 달리 그림자의 제어력은 장난이 아니였다. 나는 손을 휘둘러 그림자를 쳐냈다.

퍽, 하고 손에 튕겨나간 그림자가 땅을 파헤쳤다.

“...너?”


“죽다 살아났더니 조금 강해졌거든.”

루시아가 선물해준 사기 아이템인 광휘조차 없이, 맨손으로 자신의 그림자를 쳐낸 나를 보며 크리샤가 눈을 휘둥그레 뜨는 것을 보고 내가 그렇게 말했다.


진짜로.

죽다 살아났더니 마왕이 되어 버렸다.


아아, 이것이 기연이라는 건가...

게임 속 주인공이나 겪는 일을 직접 당해보니 얼마나 터무니없는 일인지 잘 알겠다. 적 입장에서는 겨우 쓰러트렸더니 갑자기 파워업해서 다시 일어나는 꼴이니...

음, 잠깐만.


마왕이 되어버렸으니 내가 악당인 입장인건가...


그런 바보 같은 생각을 하다가 힐끔, 아리스 일행을 바라봤다.


이쪽을 멍청한 얼굴로 바라보고 있었다.

기껏 시간을 끌어줬더니 도망도 안치고 관람이나 하고 앉아있었다. 하긴, 지금의 크리샤가 시선을 강탈만하긴 했다.


다른 검주들이나, 마법사들이 멍한 눈으로 보는 건 이해가 됐다.

그래도 죽고 싶지 않으면 진짜 빨리 도망치는  좋을 텐데 말이지.

그리고 아리스, 너는 왜 그러고 앉아있냐.

“...마왕.”


아.

아리스는 크리샤를 보는 게 아니라  보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정확히는,

내 이마에 돋아난. 바쿠나, 바록... 낙시안들의 것과 같은 형태의 작은 뿔을.


마왕이라...


무심코 이마에 돋아난 뿔을 매만졌다. 딱딱하지만, 뿔이라기보단 혹, 조금 단단한 살덩이 같은 느낌에 가까웠다. 꾹 눌러보면 조금 말랑말랑한 느낌이기도 하고...

난데없이 돋아나버린 뿔을 만지는 와중에도 아직 실감이 나질 않았다. 저렇게 대놓고 마왕, 이라는 말을 들어도 내가 정말로 마왕이  건지 아닌지 전혀 모르겠다.

하지만 확실한 건...


“크리샤.”

“또 왜?!”

재차 영창을 방해받은 크리샤가 제대로 화가  얼굴로 나를 바라봤다.

“미안한데,  녀석은 내가 상대하면 안 될까?”

아리스를 가리키며 그렇게 말하자 크리샤가 나를 봤다.

“...왜?”

무슨 소리를 하냐는 듯이 나를 바라보는 크리샤에게 내가 말을 이었다.

“솔직히 칼 맞은 것도 나고, 가슴팍에 구멍이 난 것도 난데. 너보다는 내가 화나는  정상이잖아.”

내 논리는 완벽했다.

완벽한 나머지 크리샤가 눈살을 찌푸리더니, 휙 하고 고개를 돌려버리고는 말했다.

“그래, 네 마음대로 하시던지.”


“고마워.”


“닥쳐.”

고맙다해도 짜증이야.

틱틱거리는 크리샤를 재차 고맙다고 하고서, 나를 보는 아리스에게 다가갔다.

“당신은... 마왕인가요?”


“글쎄다.”

아리스의 물음에 어깨를 으쓱였다.


“지금 확인해보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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