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6화 〉106화
체감상으로는 고작 몇 분 사이에, 터무니없는 이야기를 들은 내가 곰곰이 생각하고 있을 때였다.
“그럼, 슬슬 원래대로 돌릴까.”
그렇게 말하고서, 크리샤가 손가락을 튕기는 순간이었다.
“주인님...!”
파앗, 하고 내 주위에 펼쳐진 보랏빛의 마력이, 나를 보호하는 결계가 되었다. 곧이어 에루나가 내 앞을, 크리샤로부터 보호하듯이 서고서는, 이내 고개를 휙하고 돌려 나를 바라봤다.
“주인님, 몸은 괜찮으십니까?!”
에루나의 뺨을 타고, 주르륵 흘러내리는 땀이 보였다. 골렘도 땀을 흘리는 구나. 에루나가 이렇게까지 당황한 것도, 에루나가 이렇게까지 긴장한 것도 처음 보는 일이라서 뭔가 색다른 기분이었다.
그런 생각을 하느라, 에루나의 물음에 대답하는 게 조금 늦었다.
“주인님...?”
대답이 없던 나를 걱정하듯이 바라보고 있는 에루나에게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응, 난 괜찮아.”
거짓말은 아니었다. 실제로, 내 몸은 멀쩡했다. 에루나가 뭘 걱정하는지는 알겠지만, 크리샤는 내 몸은 일절도 건드리지 않았다. 아니, 애당초 그녀도 나를 어떻게 할 수 있는 상태는 아니었다. 나만큼은 아니었지만, 그녀도 제대로 운신할 수 있던 상태는 아니었으니까.
그런 대답에도 에루나가 내 몸 상태를 확인하듯이, 더듬어보고는 이내 안도했다는 듯이,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곧 크리샤를 노려봤다.
“지금, 무슨 짓을 하신 겁니까? 크리샤 아가씨.”
“...슬퍼라. 내가 그 녀석한테 무슨 짓이라도 할 줄 알았어? 에루나, 날 그렇게 믿지 못한 거야?”
“대답해주십시오.”
“아무것도.”
크리샤가 이죽이면서, 옆머리를 검지에 걸고 빙글빙글 돌리며 말을 이었다.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어. 단지, 조금 이야기를 했을 뿐이야.”
“이야기...?”
“그래, 그리고, 저 녀석도 내 이야기에 꽤나 관심을 가져준 모양이고.”
그러니까, 크리샤가 에루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에루나, 너는 신경 쓰지 마. 네 주인과, 네가 과거에 모셨었던 일곱 중 하나였던 나, 둘만의 이야기니까.”
네가 낄 자리가 아니야, 그렇게 말하듯이. 크리샤가 에루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주인님...”
그런 크리샤의 말에 에루나가 나를 봤다. 하지만 나 역시 에루나에게 방금 전에 내가 겪었던 일을 말해 줄 수는 없었다. 그래서는... 안된다고 생각됐다.
그래서, 나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걱정하지 마. 별 일 아니니까.”
에루나가 나를 빤히 바라보는 시선이 느껴졌다. 시선에서 그걸 믿으라고 하는 말이냐고 따지는 게 느껴졌다. 엄청 따가운 시선이었다.
“그냥... 크리샤 녀석의 영지에 퍼져있는 오해를 풀어주기로 한 것뿐이야. 에루나, 넌 신경 쓰지 않아도 돼.”
“그건, 명령입니까?”
명령.
거듭해서 신경 쓰지 말라는 내 말에, 에루나는 명령이냐고 되물었다. 그런 에루나에게서, 고의적으로 내게 감정을 전해져오는 것이 느껴졌다.
명령이라면 따르겠다고.
그런 게 아니라면...
평소에는 미약하게 전해져오기만 했던 에루나의 감정과 생각이, 강압적이다 싶을 정도로 전해져오고 있었다. 지금 내가 느끼는 슬픔과 걱정이 에루나의 것인지, 아니면 내 것인지도 착각될만큼.
하지만 그런 에루나를 보면서, 나는 고개를 저었다.
“명령은 아니야, 하지만, 정말로 신경 쓸 일은 아니니까.”
“...알겠습니다. 주인님.”
내 말에 에루나가 고개를 숙이고서 그렇게 말하고서는, 크리샤에게 말했다.
“결례를 저질렀군요. 크리샤 아가씨께도 실례가 많았습니다.”
“응, 신경 쓰지 않으니까 괜찮아. 에루나. 너는 이제 저 녀석을 주인으로 모시고 있는 몸이니까. 갑작스런 내 행동에 화를 내는 것도 이해는 하고 있어.”
그렇게 말하고서, 크리샤가 나를 바라봤다. 입가에 미소를 지으면서.
“그럼, 당장 내일부터 오해를 푸는 걸 도와줬으면 좋겠는데. 괜찮겠지?”
“아, 그래.”
크리샤의 말에 대답하고서 미리 썰어뒀던 스테이크 조각을 입에 넣었다. 공간의 시간을 멈췄다는 게 사실이었던 모양인지, 꽤나 시간이 흐른 뒤인데도 스테이크는 전혀 식지 않고, 처음과 마찬가지로 따듯했다. 그렇다면, 크리샤가 내게 했던 말 역시 사실인걸까.
아니지, 그건 아직 확인되지 않은 일에 불과했다. 아직까지는, 그저 크리샤의 가설에 불과했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내가 입을 열었다.
미리 크리샤와, 에루나의 앞에서 이야기하기로 했던 것을.
“오해는 풀어야지. 네 영지에 퍼져있는, 너랑 내가 서로 사랑하는 사이라는 오해는, 같이 풀어 줄 테니까 걱정 마.”
내 말에 크리샤가 미간을 찌푸렸다.
“...굳이 말로 할 필요는 없는데?”
“뭐가? 우리 둘이 서로 사랑한다는 사실?”
“...됐어, 오해나 제대로 풀어주기나 해.”
“그래, 그럴 거니까 걱정하지 마.”
약속한 대로, 네 말이 사실이라면. 그렇게 할 거니까 걱정 마라.
식사를 마치고서, 크리샤 녀석은 준비를 해놓겠다면서 천공성을 떠나갔다. 나 역시, 에루나에게 오늘은 쉬겠다고 말하고서 침대에 드러누웠다.
“...돌아갈 수 있다라.”
크리샤의 말이 정말이라면.
나는 원래 세계로 돌아갈 수 있다. 내가 돌아간 뒤에도, 이 세계가 멸망하는 일도 없다.
여전히 믿기지 않는 이야기이기는 하지만.
나는 눈꺼풀 위로, 오른쪽 눈을 매만졌다.
시력을 잃은 대신에, 다른 것들을 볼 수 있게 된 눈. 주시자의 눈을.
편린.
“이 눈이 정말로 편린의 파편이라면...”
이 세계를 유지하고 있는 힘. 보옥들의 힘을 훨씬 능가하는 것의 일부라면.
이 세계를 처음으로 창조했던 신들이 남겨두고 간 힘의 이름이 편린이었다.
보옥이 이 세계를 유지하고, 보존하고, 또는 바꾸기도 할 수 있는... 게임이라면 환경 설정이라던가, 옵션 같은 것이라면, 편린은 에디터였다. 혹은 그 게임의 본질 자체를 이루고 있는 툴.
아예 세계 자체를 뜯어고칠 수 있고, 아예 별개의 세계로까지 만들어버릴 수 있는 힘.
보옥이 이 세계의 근간, 법칙의 안에 들어가는 것이라면. 편린은 법칙의 위에 있는 것이었다. 법칙에 속해있는 보옥과, 그 법칙조차도 바꾸고, 새로 만들 수도 있는 편린. 무엇이 더 대단한지는 말할 필요도 없었다.
그 말은, 편린만 있다면.
이 세계가 갖고 있는 대명제.
드래곤이 있어야만, 이 세계를 유지할 수 있다는 것 자체도 고쳐버릴 수 있다는 것이었다. 또는 드래곤만이 보옥을 지배할 수 있다는 사실 자체를.
나아가서는 드래곤에게 메여있는 인과와 맹세. 세계를 위해, 종족 그 자체를. 개인을 무시한 채로 ‘희생’하는 본능 자체를.
크리샤의 가설이 사실이라면.
정말로, 이 눈이 그것과 반응한다면.
나는 어떤 선택을 하려나. 그런 생각이 들었다.
원래 세계로 돌아갈 수 있게 된다. 내가 없더라도 이 세계가 멸망하는 일도, 내가 알고 있는 누군가가, 세계가 멸망한다는 터무니없는 이유로 죽게 되는 일도 없다. 드래곤들, 그리고...
루시아에게도.
굳이 내가 필요해지지 않게 된다.
그렇게 된다면. 나는 대체 어떤 선택을 할까. 아니... 내가 아니라.
루시아는?
에루나나... 에네스타, 그 밖에도 많은 이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필요’하기에 여기에 소환했던 이가 ‘필요’없게 되었을 때. 그녀들은 대체 무슨 생각을 할까. ‘필요’했기에 모시고 있던 이가 ‘필요’없게 되었을 때. ‘필요’해서 끌려왔던 이들이 ‘필요’하지 않게 되었을 때.
나로 인해서, ‘희생’했던 이들이 너무나도 많았다.
나를 위해서.
내게 필요하니까, 내가 필요하니까, 그래서... 자신의 의지가 아니더라도, 내 곁에 있게 된 이들이, 내 주위에 있는 모두였다.
만약, 내가 필요하지 않게 되었다는 것을 그녀들이 알게 되었을 때는...
‘저리가.’
머리가 욱신거린다.
상처 입은 소녀가, 피를 흘리던 소녀가 내 팔을 뿌리치며, 그렇게 말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비가 내리는 날이었다.
축축하게, 땅을 적시는 비가. 차갑게, 그녀의 몸을 식히던 날이었다.
‘네 도움 같은 건 필요 없으니까 저리 꺼져버려.’
죽어가면서까지, 나를 거부했던 그녀가, 마지막으로 내게 했던 말. 나를 ‘필요’로 하지 않았던, 그녀의 유언이 떠올랐다.
아니, 그것이 그녀의 마지막 말이었던 것은 아니었다.
다만, 그것이 그녀가 ‘나’에게 했던 마지막 말이었던 것은 틀림없었다.
그녀는 그 말만 남기고, 나를 떠나갔다. 내 손을 뿌리치고, 내 도움을 뿌리치고, 나를 ‘필요’로 하지 않고서, 나에게서 멀어져갔다.
그리고 그녀는...
꾸욱, 하고. 심장이 아파왔다.
심장을 누르듯이, 가슴을 눌렀다.
두근두근, 심장이 격하게 뛰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한나...”
잊으려했던, 하지만 잊히지 않았던 소녀의 이름을 부르며. 나는 머리를 끌어안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