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5화 〉105화
빠직,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소리가 들려온 곳을 굳이 찾을 필요도 없었다. 크리샤였다. 그녀의 앞에 있는 식탁을 바라봤다.
“후우... 후우...”
호흡을 고르며, 식탁의 가장자리를 부여잡은 크리샤가 나를 노려봤다. 뿌드득, 하고. 크리샤가 손가락을 움직일 때마다 식탁이 빠직빠직하고서 금이 가는 것이 보였다.
잘만 통하는데?
그렇게 한참을 어깨를 들썩이며, 호흡을 고르던 크리샤가 말했다.
“후, 후후... 어디 계속해보시지? 그 빈약한 머리로는 그런 것 밖에 생각나지 않는 모양인데, 내가 그런다고 눈 하나 깜빡할 것 같아?”
살짝 눈물이 맺힌 눈으로 나를 노려보는 크리샤가 보였다. 눈은 몰라도 손은 엄청 부들거리고 있었다.
진짜로 계속해볼까, 하다가 식어가는 음식들을 보고서는 이내 고개를 저었다.
“아니, 일단 밥부터 먹자.”
그런 내 말에 크리샤가 코웃음 치면서 말했다.
“...흐흥, 내가 넘어가지 않으니까 당황했나보지?”
아니, 너무 잘 먹혀서 조금 안쓰러워서 그런 거다. 하기는, 대체 어떤 놈의 간이 배 밖으로 튀어나와서 크리샤의, 드래곤의 심기를 대놓고 거슬렀을까. 생각 이상으로 이 방법이 잘 먹히는 이유도 아마 거기에 있을 거다.
크리샤만이 아니라, 다른 드래곤에게도 먹히지 않을까 싶었다. 하지만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였다. 내가 따로 대답하지 않자 기고만장해하는 크리샤의 모습을 보니 마음에 들지 않았다. 가슴 안에서 무언가가 꿈틀거렸다. 그래서 대충 스테이크를 썰어 입에 넣으면서 말했다.
“아니, 밥이라도 잘 먹어야지 그 가슴이 조금이라도 크지 않겠어? 그러니까 우선 밥부터 먹자고.”
“...?!”
“걱정 마,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르다는 말도 있잖아. 그래도...”
나는 크리샤의 가슴을 바라봤다. 그런 내 시선을 느낀 크리샤가 가슴을 가렸다. 음... 한손으로도 충분히 가려졌다. 루시아의 가슴과 비교하면 터무니없는 일이었다. 루시아는 양 손을 써도 가릴 수 없으니 말이다.
“...뭐, 그런 말이 있다는 거지, 너한테 해당될지는 모르겠지만.”
부들부들 떨면서, 간신히 분노를 참고 있는 크리샤를 보니 입맛이 돌았다. 아니, 그냥 에루나가 한 요리가 맛있어서 그런 걸지도 모르겠지만. 씹을 때마다 배어나오는 육즙을 혀로 음미하고 있자니, 그런 내게 에루나가 말했다.
“실례하겠습니다.”
자연스레 고개를 숙이며 다가온 에루나가 내 입술을 티슈로 닦아주었다. 그리고 재차 고개를 숙이고서 물러나면서, 에루나가 내 귓가에 작게 속삭였다.
“이쯤 하시는 게 좋을 듯합니다.”
작은 목소리였다. 그 말만하고서 뒤로 물러가서 서는 에루나를 바라봤다.
슬슬 위험한가?
그런 질문을 머릿속으로 하면서 에루나를 보고 있자니, 작게 고개를 끄덕이는 에루나가 보였다. 더 이상은 위험한가보다. 게다가, 지금은 루시아도 없었다. 거기에 에네스타도 없었다. 에루나가 있기는 한데...
나는 에루나의 옆에서 침을 꼴깍 삼키면서 식탁 위에 차려져있는 음식들을 손가락을 빨며 바라보고 있는 마야와 니아를 봤다.
여기서 크리샤가 폭발하면, 내 몸 하나 간수하기 힘든 판에, 마야와 니아를 어떻게 해줄 수 있을 리가 없었다. 내가 말을 이었다.
“그리고, 아직 네가 여기 온 이유도 말해주지 않았고. 그러니까, 일단 식사나 하면서 그거부터 이야기해보자고.”
자연스레, 일상 이야기를 하듯이. 나이프를 들어 미노타우로스의 등심 스테이크를 먹기 좋은 크기로 썰으면서 말했다.
“불과 어제만 해도 바쁘셨던 크리샤가, 대체 무슨 일로 여기까지 납셨는지 엄청 궁금하기도 하고.”
그런 내 말에 크리샤가 보인 반응은 내가 예상했던 것과 조금 많이 다른 것이었다.
“...조금, 너한테 흥미가 생겼으니까.”
그렇게 말하고서, 옆머리를 빙글빙글 돌리는 크리샤를 보고 있자니, 내가 뭔가 잘못 들은 것 같았다.
“미안, 뭐라고?”
내가 여기 있으면 안 되기라도 하냐고 윽박지르거나, 그것도 아니면 대놓고 무시하거나. 둘 중 하나라고 생각했던 것과 다른 반응. 예상하지 못했던 반응에 그렇게 되묻자 그제야, 처음으로 나를 마주본 크리샤가 입을 열었다.
“뭐가 이상해? 그 루시아가, 네가 무슨 수작을 부렸는지는 몰라도... 너한테 헤롱헤롱하게 된 ‘이유’에 대해서, 조금 흥미가 생겼다는 것뿐이잖아.”
그런 말을 해오는 크리샤를 빤히 바라봤다. 그러자 내 시선으로부터 피하듯이 고개를 돌린 크리샤가 말을 이었다.
“착각하지 말아줬으면 좋겠는데... 흥미가 생긴 건 어디까지나 네가 루시아를 그런 꼴로 만들 수 있었던 것에 대한 거거든? 단지 그걸 알고 싶은 것뿐이니까? 그리고... 대체 어떻게 한 건진 몰라도, 나한테도 그게 통할 거라고는 생각하지 말고.”
“아니, 딱히 나는 아무것도 한 게 없는데...”
무언가를 한 것은 나보다는 루시아 쪽에 더 가까웠지. 이렇게 말하면 조금 그렇지만, 나는 딱히 정말로 한 게 아무것도 없었다.
먼저 다가온 것도 루시아, 먼저 입을 맞췄던 것도 루시아. 전부 루시아가 먼저 다가오고, 먼저 움직였다. 루시아 때의 나는 그저 끌려다기니만 했다고 해야하나. 주도적으로 뭔가 했을 때는... 응, 솔직히 밤 때 밖에 없었던 것 같다.
“그걸 내가 믿을 것 같아?”
하지만 그런 내 말에 크리샤는 딱 잘라서 그렇게 말했다. 그런 크리샤를 보고서 할 말이 없었다.
못 믿겠다는데 뭐라고 할 수도 없었다. 증명한답시고 루시아한테 하듯이 똑같이 할 수도 없으니 말이다. 지금의 크리샤한테, 루시아때처럼 먼저 다가오길 바라는 건 욕심은커녕, 무리한 소리였다.
“뭐, 그건 그렇다 치고. 그래서 어쩔 건데?”
흥미가 생기고 뭐고, 어디까지나 그건 크리샤의 입장이고, 주장이었다. 나랑은 아무런 상관도 없는 일 인거다.
그렇게 생각했다.
“그러니까, 너. 나랑 좀 어울려줘야겠어.”
엉? 어울린다니. 뭘?
그렇게 물으려고 했을 때였다.
“크리샤 아가씨?!”
비명과도 같은 목소리. 고개를 돌리자 당황한 에루나의 표정이 보였다. 그래, 그 에루나가 당황한 표정이 말이다. 시선이 마주친 에루나가 내게 손을 뻗었다.
우웅, 보랏빛 마력이. 에루나의 마력이 나에게 솟구쳤다.
“주인님...!”
하지만 그보다도. 더 빨리.
우웅...!
시력을 상실한 눈으로부터, 검은 마력이 나를 감싸는 것이 보였다. 그런 나를 보며, 크리샤가 입을 열었다.
“자, 우리,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진솔하게’ 대화해볼까.”
우뚝, 하고 내게 손을 뻗어왔던 에루나의 몸이 멈춰 섰다. 아니, 에루나뿐만이 아니라, 멍하니 이쪽을 보고 있던 마야도, 니아도 멈춰선 채로 움직이지 않았다.
오직 크리샤와 나만이.
모두가 멈춰버린 이 공간에서 유이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현실적으로 이해가 가질 않는 현상을 보고서, 내가 입을 열었다.
“뭘 한거야?”
“...별건 아냐. 나는 흑색용이야. 대지계열의 마법과 공간계열의 마법은 특기분야라는 거지. 그리고... 나는 보옥을 지배하는 자.”
정말로 별거 아닌 것을 말하는 것처럼. 크리샤가 송곳니를 드러내며 미소 지었다.
“거기에 이곳은 나의 영지, 슈페리아야. 대지를, 공간을, 그 안의 ‘시간’을 멈추는 것 정도는 가능하다고?”
“그게...”
가능한 일이라고?
터무니없는 일을 당했다. 그런 느낌이었다. 시간을 멈춘다니, 말도 안 되는 짓이었다.
“물론, 어디까지나 이 공간의 시간만을 멈췄을 뿐이야. 그리고... 사실, 나한테도 꽤 힘이 드는 일이기도 해. 움직일 수 있는 것도 조금 뿐이기도 하고. 멈출 수 있는 시간도 몇 분 정도가 한계거든.”
크리샤의 말에, 의자에서 일어나보려고 했지만 움직이지 않았다. 내가 움직일 수 있는 범위를 확인해봤다. 손가락, 움직였다. 단지, 큰 동작은 불가능했다. 고작 해봐야 손가락을 까딱할 수 있을 정도에 불과했다. 마찬가지로 다리도, 머리도, 뭣도 크게 움직이는 것은 불가능했다.
이런 상황에서 검을 휘두르는 것은커녕, 뭔가 날아오면 피할 수도 없었다.
당장, 품에 챙겨왔던 콜 드래곤을 사용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식은땀이 주르륵, 하고 등 뒤로 흘렀다.
“뭘 원하는 거야?”
최대한 태연한 체하며, 크리샤에게 물었다. 그런 나를 보며, 크리샤는 보란 듯이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시간이 얼마 없으니까. 본론만 말할게. 지금, 이 순간에만 가능한 일이니까. 아무래도... 너, 루시아한테 꽤, 아니... 진짜로 마음에 든 모양이라, 이 방법이 아니면 그 녀석의 눈을 피해서 말하는 건 힘들 것 같았거든.”
여기서 루시아는 또 왜 나오는 걸까.
그런 생각을 하며, 크리샤의 말을 기다렸다. 아니,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나는 옴짝달싹도 할 수 없는 와중이었다. 어디까지나 주도권은 크리샤에게 있다는 거였다.
그런 나에게, 크리샤가 말했다.
“너, 원래 세계로 돌아갈 방법이 있다면, 어떻게 할래?”
“뭐...?”
“아까부터, 제대로 들어놓고 못들은 척하는 것 좀 그만둬주지 않을래? 몇 번이고, 계속 말하는 것도 짜증나니까.”
“못들은 척하는 게 아니라 이해할 수가 없어서 그런 것뿐이야. 그보다, 원래 세계로 돌아갈 수 있다니... 정말로?”
“정확히는, 돌아갈 수 있다는 게 아니라 방법이 있다는 거야.”
그 말이 그 말이지.
“어떻게? 혹시 내가 소환됐던 마법진으로?”
“눈치는 좋네. 맞아, 그 마법진을 사용해서 돌아갈 수 있어.”
“하지만...”
처음 이곳에 왔을 때, 루시아도 그런 이야기를 했었다.
내게 정신지배 마법을 사용하면서. ‘시간’이 조금 걸리겠지만 목적을 달성한 뒤에는 나를 되돌려 보내주겠다고. 그런 이야기를 했었다.
굳이 내색할 필요도 없고, 돌아갈 방법이 있다고 해도 내가 어떻게 할 수 있는 것도 아닌데다가, 루시아, 드래곤의 입장에서도 ‘시간’이 걸린다고 한 일이었다. 그러니까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해서 잊고 지내왔던 사실을.
그 드래곤 중 하나인 크리샤의 입으로 말해왔다.
그 사실에, 나는 크리샤에게 물었다.
“내가 없으면, 이 세계는 어쩌고?”
마왕의 저주로 남자가 태어나지 않게 된, 멸종 위기의 드래곤. 거기에 그 드래곤이 멸종하는 순간, 이 세계는 무너지게 되어있다.
그런 시스템으로 이루어져 있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해결책으로 소환된 것이 나였다. 내가, 크리샤가 말한 대로 원래 세계로 돌아가게 된다면. 그 뒤는 어떻게 될지는 뻔했다.
드래곤은 나 같은 인간에게 있어서는 불멸하는 존재라고 생각되어질 만큼, 오랜 세월을 살 수 있지만 정말로 불멸하는 존재는 아니었다.
최강의 생물이지만, 생물인 것이다.
유한한 수명에, 결국 죽기 마련이었다.
그런 내 말에 크리샤가 코웃음을 쳤다.
“뭘 걱정하는 거야. 어차피 이 세계는 네 ‘세계’인 것도 아니잖아?”
“그걸, 말이라고 하는 거야?”
이 세계는 내 세계가 아니다. 크리샤의 말대로였다. 하지만, 이제와서 나랑 아무런 상관도 없다고 내팽개칠 수 있는 세계인 것도 아니었다.
여기에는 루시아가 있다.
에루나가 있다.
에네스타가 있다.
로로가, 마야가, 니아가, 바록과 바쿠가, 슈슈가, 에오시스 자매들이. 나랑 관계되고, 나랑 인연이 생긴 이들이 살고 있다. 그런 세계였다. 이제와서 버릴 수는 없었다.
이제와서 버리라고 말한들, 알겠다고 대답하고서 홀라당, 원래 세계로 돌아갈 수 있을리가 없었다.
그런 나를 크리샤가 바라봤다.
“그리고, 네가 걱정한 일은 일어나지 않아. 전에, 내가 말했지. 다른 방법을 찾을 거라고.”
“......”
설마, 하고 크리샤를 보자, 그런 내 표정을 보고서, 크리샤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표정을 보아하니, 이해한 모양이네. 응, 맞아. 찾았어. 네가 없어도, 이 세계가 멸망하지 않는 방법. 그리고 드래곤들이 멸종하지 않는 방법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