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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4화 〉104화 (104/370)



〈 104화 〉104화

“주인님, 일어나실 시간입니다.”

귓가에 속삭이듯이 말을 걸어오는 목소리에 차츰 의식이 돌아왔다.

“주인님? 일어나셔야 됩니다.”


에루나의 목소리였다. 거기까지 생각할 수 있을 정도로 정신이 돌아온 내가 생각했다.


일어나라니. 대체  일어나란 걸까.


...일어나?

“......”


벌떡, 몸을 일으킨 내가 주위를 둘러봤다. 평소와 다를  없는 내 방의 모습이 보였다.


그래, 내 방이었다.

문제는 내가 어째서  방에 있냐는 거였다.

그야, 방으로 돌아온 기억이 전혀 없었으니 그런 거였다. 기억을 더듬어봤다. 온천에서... 거기까지는 기억이 났다. 나를 유혹하는 루시아에게, 냅다 넘어갔던 것까지는 기억이 났다.

그런데 그 이후로는 기억이 나질 않았다. 그 이후부터, 내가 어째서 침대 위에서 자고 있었는지까지. 중간과정이 싹 사라져 있었다.

“일어나셨습니까, 주인님?”

그리고 내가 잃어버린 기억을 알고 있을 유일한 사람, 아니 골렘인 에루나가 그렇게 말하며, 내게 고개를 숙여보였다. 덕분에 새하얀 살결의, 저게 정말로 만들어진거라고는 생각되지 않는 가슴이 훤히 보였다.


“넌 뭔데 옷을 다 벗어놨냐?”


“주인님께서 일어나지 않으시기에 그만. 기회라고 생각했습니다.”

태연한 얼굴로, 앞섶을 풀어헤친 에루나가 그렇게 대답했다.

머리가 지끈거렸다.


내가 조금만 늦게 일어났으면 무슨 짓을 하려고 했던 걸까, 이 골렘은...


“에루나.”

“네, 주인님.”


덕분에 잠이 확  내가 에루나를 부르자, 그런 내 부름에 고개를 숙이며 대답한 에루나가 준비해둔 대사라도 있는 것인지, 주르륵 말하기 시작했다.


“아침 봉사를 원하십니까?  입으로 해소해드립니까? 아니면, 가슴으로? 그것도 아니면...”


살짝, 치맛단을 잡아올리며. 하얀 살결과 그에 대비되는 검은 가터벨트 끈이 보이는 속옷을 내게 보이며 에루나가 말을 이었다.

“마침내 저의 처음을 받아주시겠습니까? 아, 골렘이니 처녀막은 없습니다만, 원하신다면 오늘중으로 만들어오겠습니다.”

에루나가 날 두통으로 죽일 작정인 듯했다.

나는 지끈거리는 관자놀이를 짓누르면서 말했다.


“됐으니까 일단 내려가. 옷도 제대로 입고. 그리고 어째서 내가 여기에 있는 건지 말해. 그리고 그거 만들 수도 있어?”


내 명령에 따라 침대에 내려간 에루나가 앞섶을 여미며 대답했다.

"기억이  나시는 모양이군요. 자세한 사정은 저도 모르겠습니다만 그거라도 좋다면 말씀해드리겠습니다."


그렇게 말하고서, 에루나가 말을 이었다.

"그리고 처녀막이라면 만들 수 있습니다. 말하자면 주인님이 원하신다면 언제든지, 몇 번이든지 저의 처음을 가져가실 수 있으시다는 겁니다. 무려 평생동안 무상으로 AS까지 해드리겠습니다."

만들 수 있구나 그거... 하긴 골렘이니까... 거기에 평생 무상 AS라니. 엄청나다.

“...아니, 이게 아니지. 그건 됐고, 내가 어째서 여기에 있는 것부터 말해줘.”


잠이 깼다고 생각했는데 덜 깼던 모양이었다. 고개를 흔들고서, 마저 잠기운을 떨쳐낸 내가 빨리 대답하라는 듯이 에루나를 보자,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태연한 얼굴의 에루나가 보였다.

“주인님께서 귀축처럼, 루시아 아가씨를 농락하시고 나서, 흥분을 주체하지 못하고 밖으로 뛰쳐나와 휴식을 취하고 있던 저와 에네스타를...”

“장난 그만 쳐라.”

내가 그럴 리가 없잖아.

...아니, 진짜로 없을 걸? 기억이 안 나니까 불안했다. 그런 나를 보며, 에루나가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죄송합니다.”

내게 사과하는 에루나의 모습에 내심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아니, 나는 나 자신을 믿고 있었다. 설마하니 그럴리가 없다고 믿고 있었다… 내 하반신은 못 믿었지만 그런 나를 보며 고개를 꾸벅하고 숙였던 에루나가 말했다.

“사실대로만 말하자면, 주인님과 루시아 아가씨가 온천에서 지나치게 오래 계신 덕분에, 두 분  탈진한 것을 제가 천공성까지 모셔왔습니다.”

에루나의 말에 내가 물었다.

“나는 둘째 치고, 루시아도?”


“네, 루시아 아가씨가 온천의 열기 때문에 탈진할 일은 없겠지만 말입니다.”


그렇게 말하는 에루나의 시선이 나를 향했다.

정확히는,  하반신으로 향했다.


“뭘 보냐.”


“실례했습니다. 대체 무슨 짓을 하면 루시아 아가씨가 탈진까지 하셨을지 궁금해서 말입니다.”


“그만 봐라.”


“알겠습니다.”

 말에 다시 한 번 꾸벅하고 고개를 숙였던 에루나가 말했다.


“그런데 주인님, 저는 대체 언제쯤에야 주인님의 성은을 입을 수 있는 겁니까?”

오늘 따라 엄청 끈질기네...

이대로라면 끝까지 물고 늘어질  같아서 대충 대답하기로 했다.

“내가 죽을  같아지면 생각해볼게.”

“...알겠습니다.”


뭔가 불안해져서, 고개를 숙이며 그렇게 대답하는 에루나에게 말했다.

“그렇다고  음식에 이상한거 타지 마라.”

“......저를 뭐라고 생각하시는 겁니까?”

그렇게 말하는 에루나에게 어째서 대답이 늦었는지는 묻지 않기로 했다. 괜히 물어봤다가 스트레스만 받을 것 같았다.

“그래서, 루시아는?”

나랑 같이 탈진해서 에루나가 데려왔다는 루시아가 보이지 않아 그렇게 묻자 에루나가 대답했다.


“루시아 아가씨는, 주인님보다 조금 일찍 일어나셔서. 영지로 돌아가셨습니다. 아, 그리고... 주인님께 전언을 남기셨습니다.”

“루시아가? 뭐라고 했는데.”

내 말에, 에루나가 샐쭉한 표정으로 날 흘겨봤다. 가끔, 루시아가 뾰루퉁해할 때 내게 보여주는 표정 중 하나였다. 그렇게, 루시아의 표정을 똑같이 표현한 에루나가 입을 열었다.

“...변태. 두고 보세요.”

“......”

 루시아에게 변태라는 소리까지 들었다니, 대체 뭘 한 걸까. 그리고 두고 보라니. 내가 대체 뭘 했기에.


그리고 그건 에루나도 마찬가지였는지 오묘한 표정으로 날 보며 말했다.


“대체 뭘 어떻게 하시면, 루시아 아가씨께서 변태라고 하셨는지 정말로 궁금합니다.”


“그거 우연이네, 나도 궁금하던 참인데.”

“그런 의미에서, 어제 있었던 일을, 제 몸으로 재현해보는 것은 어떠십니까? 기억이 나는데 도움이 될지도 모릅니다.”

“일 없다.”


진짜 무슨 짓을 한 거지. 기억은  끊겼고?

도통 모르겠다. 모르겠으니까, 넘어가기로 하고서. 에루나에게서 옷을 받아 갈아입으며 말했다.


“그래서, 오늘은 무슨 일을 하면 좋을까?”


루시아가 없어진 이상,  하루 일정을 정해주는 것은 에루나의 일이였다. 내 일정이니 내가 정해야하는 것이 맞겠지만, 내가 정하면 하루 종일 방에 처박혀있을게 분명했기에, 에루나에게 전적으로 위임한 결과였다.


뭐, 그래봤자 내가 할 일이라고는 평소처럼 에네스타나 바록, 바쿠와 수련을 하거나 책을 읽거나, 뭐 그런 것뿐이리라. 그런 생각을 하고 있던 나에게 에루나가 태연한 얼굴로 말했다.


“우선 가장 급한 건 크리샤 아가씨와의 아침식사군요. 30분 전부터 식당에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그걸 왜 지금 말해?”


“아까도 말했지만, 곤히 잠들어계시는 주인님을 보고 기회라고 생각했기에.”


당당하게 그렇게 대답하는 에루나를 보고서, 욱신욱신 쑤셔오는 관자놀이를 눌렀다. 이 빌어먹을 변태 골렘 시녀를 대체 어쩌면 좋은 걸까...





에루나를 어쩌면 좋을지 생각하는 건 나중으로 미루기로 하고, 나는 서둘러 식당으로 향했다. 이미 지각인건 변하지 않겠지만.

그렇게 식당 앞에 도착하자니, 내가 오는 것을 기다리고 있었던 모양인지 식당 문 앞에서 쪼그려 앉아있던 나를 보고서는 활짝, 하고 주인을 반기는 강아지처럼 표정이 밝아졌다가, 허겁지겁 몸을 일으키는 게 보였다.

아니, 나를 보고 허겁지겁 일으켰다기보다는 내 뒤에 있는 에루나를 보고 그런 것 같지만.

그런 마야와 니아를 보며 쓴웃음을 짓고서는, 에루나에게서 마지막으로 옷을 확인받았다.

“어때?”


“훌륭하십니다. 이제 제가 없어도 제대로 입을 수 있게 되셨군요.”

“...칭찬이지?”


“당연히 칭찬입니다.”

불안해서 확인한건 나지만, 이제 혼자서도 옷 잘입는다는 소리를 들으니까 기분이 묘했다. 혼자서 입으라고 만든건가 싶을 정도로 복잡하게 생긴 이 세계의 예복이 잘못한거다. 아무튼, 옷차림도 문제없다는 걸 확인하고서, 다시 마야와 니아를 바라봤다.

‘지금 열까요~?’

그런 표정으로 나를 보고 있었다.


그래서 그런 둘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부탁하마.”

“에헤헤... 그럼, 열게요~”


“영~차!”

귀여운 기합소리와 함께, 그런 둘의 몇 배나 되는 커다란 문이 드르륵, 하면서 열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대체 언제까지 기다리게 할 셈인가 생각했어.”

무척이나 기분 나쁘다는 듯이, 나를 흘겨보며. 식탁 앞에 앉아있던 크리샤가 그렇게 말을 걸어왔다.


...아니, 잠깐만.


자세히 보니  보는 게 아니였다.

“어딜 보면서 말하는 거야?”

“...흥!”


흘겨보는  아니라, 아예 딴 곳을 바라보며 그렇게 말하는 크리샤에게 물어봤지만 돌아온 것은 홱하고 고개를 돌려버리는 크리샤의 모습뿐이었다.


어지간히 기분이 상한 모양이었다. 아니, 그렇게 약올렸던 게 바로 어제였으니까 서로 웃는 얼굴로 볼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지만. 얼굴조차 제대로 보지 않으려고 할 줄은 몰랐는데.

“...아무튼, 늦어서 미안.”

어쨌거나 늦은 건 내가 잘못한 거니까, 그렇게 말하고서 얌전히 식탁 앞으로 걸어갔다.

“대체 내가 어째서 너 따위를 기다리는데, 내 소중한 시간을 허비해야하는 거야?”

의자에 앉으려고 할 때, 툴툴거리는 크리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내가 이렇게까지 늦은 이유가 딱히 내 탓이라기보다는 크리샤가 기다리고 있는 와중에 자기욕심을 채우려고 했던 에루나의 탓이기는 했지만, 그걸 또 크리샤에게 말해봤자 변명으로만 들릴게 뻔했다.

말해봤자 안한 것만 못한 거다.

이럴 땐 되려 뻔뻔해지는 게 최고였다.

“그러게 말이다.”

대충 대답하고서. 자리에 앉은 내가 에루나를 보며 말했다.

“그래서 오늘 아침은 뭐야?”


내 말과 함께, 딱하고 손가락을 튕기는 에루나가 보였다.

그러자 순식간에 비어있던 식탁 위가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음식들로 가득 채워졌다.

수프와 빵, 그리고 고기와 고기와 고기.


“...아침부터 이게 다 뭐냐.”


엄청 무거운 식단인데.

그게 끝이 아니였다. 쿵, 하고 커다란 스테이크까지 식탁 위에 나타나고서야 에루나가 말했다.


“수프는 평소와 같은 것에 레드 갈릭과 천년초로 더해서 맛을 냈고, 빵은 에이그라의 과육을 반죽에 넣어서 만들어봤습니다. 그리고 차례대로...”


무슨 고기, 어쩌고 고기. 별의 별 처음 들어보는 고기들의 이름들이 에루나의 입을 통해 나열됐다. 아무튼, 고기였다.


마지막으로 엄청난 크기의, 존재감을 자랑하는 스테이크를 가리키며 에루나가 말했다.

“끝으로 미노타우로스의 등심을 사용한 특대 스테이크입니다. 이번은 특별히, 주인님께서 평소 즐겨 드시는 드리아데스의 즙과 향초를 사용해서 소스를 만들어봤습니다. 전부 정력에 좋은 음식들이니 아무쪼록 많이 드셔주시길.”


이야.

아침부터 엄청나게 내온다 싶었더니 전부 정력에 좋은 음식들이었나 보다.


근데 그걸 왜 지금 말하는 거냐.


나만 있는 거라면 상관없지만, 지금 여기에는 크리샤까지 있었다. 고개를 돌려 크리샤의 눈치를 살펴봤다.

“......”

듣지 못한 건가?


여전히 딴 곳을 바라보며 머리카락의 끝을 빙글빙글 돌리고 있는 크리샤의 옆모습이 보일 뿐이었다.

듣지 못한 거라면 상관없지만...


그나저나 이렇게 보니 크리샤 녀석도 미인이긴 하구나. 아니, 미인인거야 처음부터 알고 있었지만, 항상 심통이 난 표정을 짓고 있던 크리샤였기에 제대로 얼굴을 본  이게 처음이였다.


뭐, 이것도 옆모습만 보고 있을 뿐이긴 한데.

그렇게 보고 있다가, 힐끔하고 나를 보는 크리샤와 눈이 마주쳤다.


"뭐, 뭘보는 거야?!"

화악, 얼굴을 붉히며 크리샤가 가슴을 가렸다. 아니, 딱히 거길 본  아니었는데. 너무 예민한 반응이지 않아?


"딱히 네 작은 가슴 같은  본 게 아니니까 착각하지 말고."

"뭐...?!"

내 말에 다른 의미로 얼굴을 붉히며 발끈한 크리샤가 보였다.

하지만 이내 호흡을 고른 크리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하, 됐어.  때문에 자꾸  자극하려는 건진 모르겠지만. 네 뜻대로 될 것 같아?”


그렇게 말하며, 크리샤가 나를 빤히 바라봤다.


“아니면 뭐야? 혹시 그게 루시아나 옆에 있는 그 녀석들을 꼬신 방법이라도 되는 거야? 지배나 장악이 아니라, 침식 같은 건가? 뭐가 됐던 간에, 그게 나한테도 통할 거라고 생각하지는 말라고? 나는 루시아처럼, 허투룬 성격이 아니니까.”

쩌적, 갈라진 크리샤의 눈이 나를 바라봤다. 짐승의 눈. 루시아를 닮은, 하지만 칠흑처럼 어두운  눈이 나를 탐색하듯이 바라봤다.


루시아가 뭐라고? 이 세계에서는 허투루다는  다른 의미로 사용하고 있는 걸까.

아무튼 중요한건, 크리샤가 뭐라는 건지 하나도 모르겠다는 거였다. 지배? 장악? 그게 대체 뭔데. 일단 지배는, 예전에 루시아가 나한테 했던 정신 지배 같은걸 말하는 것 같긴 한데... 내가 그걸 썼다고? 말도 안됐다. 자랑은 아니지만, 나는 마법은 젬병이란 말이지. 쓰고 싶어도 못쓴다.


그야, 마력이 0이니까. 정신 지배니 뭐니하는 것도 당연히 못쓴다는 거다. 즉, 크리샤가 뭐라고 하는 건진 몰라도, 터무니없는 오해라는 거였다.


그래서 그냥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뭐래, 루시아보다 가슴도 작은 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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