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3화 〉93화
카앙!
휘두른 칼을 에네스타가 주먹을 받아쳤다. 그런데도 주먹은 멈추지 않고. 그대로 주먹을 휘둘러져왔다.
빠르다. 그리고 무지막지하게 강했다. 칼을, 맨손으로 쳐낸다니 상상도 할 수 없는 짓거리였는데, 그걸 에네스타는 아무렇지도 않게 저질렀다.
괴물이다.
검주라는 이름은 거저 얻는 게 아니라는 것처럼. 푸른빛으로 둘러싸인 주먹이 내 코앞까지 다가왔다.
하지만 그전에. 주먹이 아직 나에게 닿기 전에.
나는 이미 에네스타의 주먹을 보고 있었다.
그리고 보였다는 건, 즉 피할 수도 있다는 거였다.
후욱!
허리를 뒤로 젖혀 에네스타의 주먹을 피했다. 그러고서는 곧장 자세를 바로하고서, 다시 검을 휘둘렀다.
멈춰버리면, 여기서 멈춰버리면.
그대로 두들겨 맞고 먼지투성이가 된 채 끝나는 거였다.
이길 순 없지만, 이기기 위해서는 검을 계속해서 휘둘러야했다. 가능성이 0%가 아니게 하기 위해서는, 그저 그것뿐만.
그것밖에 할 수 없었다.
캉! 캉! 카아앙!
내가 휘두르는 검과, 에네스타의 주먹이 부딪히면서 불똥을 튀겨댔다. 살로 이루어진 주먹과 금속으로 만든 검이 부딪혀서 어째서 불똥이 튀는지 묻고 싶을 지경이었다.
그런데 그게 일어나고 있고, 내게 생각할 시간 따윈 없었다. 나는 그저, 계속해서 내가 익힌, 에네스타를 이길 수 있는 최선의 수단을, 검술을 펼칠 뿐이었다.
더 빠르고. 더 날카롭게.
보다 확실하게, 약점을 파고들어서. 집요하게 공격하고 공격한다.
만인지상이란 특성 덕분에 내 육체의 재능은, 그 이름 그대로 만 명에 한 번 태어나는 재능을 갖고 있었다. 그리고 개변자. 언제나 최상의, 최적의 몸을 만들어주는 특성. 그 둘이 합쳐지면서 발휘하는 시너지는 어마어마했다. 내 육체는 검을 휘두를 때마다, 더욱 강해지고, 더욱 싸우기 좋게 최적화되는 거다.
지금 이 순간에도.
더 빠르고. 더 날카롭게.
나는 내가 배운 두 검술을 더욱 빠르고, 날카롭게 다듬었다. 보다, 방금 전의 것보다, 더욱 완성시켜갔다.
내가 배운 검술은 두 가지였다. 하나는, 처음으로 이 세계에서 와서 배우게 된 기능이자, 에네스타와의 훈련을 통해 C랭크까지 올릴 수 있었던 라이어스 제국검술.
다른 하나는 이 세계에 백 명 안팎 밖에 존재하지 않는다고 알려진 검주, 에네스타가 만들어낸 검술... 이제 겨우 배운지 일주일 정도 밖에 지나지 않은 ‘시오니스 검술’이다.
나는 여태까지 그 두 검술들을, 따로따로 나눠서 사용했다. 빠르고, 그리고 끊임없이 몰아치며 이어가는 라이어스 검술과, 그저 하나하나 치명적인 약점을 향해 빠르게 휘두르고, 공격을 받았을 때는 재빠르게 검을 회수해서, 최소한의 급소만을 막고서, 다시 공격해가는 시오니스 검술.
둘은 비슷하면서도 달랐기 때문이었다.
어느 쪽이든 훌륭한 검술임은 틀림없었다. 단지, 내가 그 둘을 전부 활용하는 것이 불가능했을 뿐이다.
내 머리는 하나니까 하나만 생각하는 것 밖에 할 수 없는 거다. 아니, 그 하나마저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저성능이었다.
그런데 이번은 달랐다.
보였기 때문이었다.
라이어스 검술의 초식 사이로, 시오니스 검술을 집어넣고, 다시 라이어스 검술로 이어 연계할 수 있는 길이.
검의 길이 보였다.
그래서 그렇게 했다. 상식적으로 검의 길이 보인다느니 뭐니, 믿기지 않는 일이라는 것을 제쳐두고서. 나는 보이는 대로 검을 휘둘렀다.
나는 내 머리보다, 내 본능을 더 믿었다.
카아앙!
검을 휘두른다. 에네스타의 손에 막힌다. 멈추지 않고, 그대로 찔러 넣는다. 다시 막힌다. 하지만, 아직도 검을 휘두를 수 있었다.
에네스타와의 훈련을 통해 내가 배운 것은, 발을 묶이지 말라는 것과, 공격을 멈추지 말라는 것과, 끊임없이 움직이라는 것이었다.
발이 묶이지도, 검이 잡히지도 않았다. 그러니까 움직인다.
“으응?!”
띠링~
[플레이어 ‘이지경’님의 기능 ‘라이어스 제국검술(C)’가 승급합니다!]
띠링~
[플레이어 ‘이지경’님이 기능 ‘검리’를 습득하셨습니다!]
띠링~
[플레이어 ‘이지경’님이 특성 ‘투기’를 습득하셨습니다!]
우웅...!
우우웅!!
검이 떨렸다.
정확히는 검 끝이. 푸른빛과 함께 떨렸다. 예전에 봤던 것처럼, 에네스타가 했던 것과 같이 검 전체가 푸르게 변한 것과는 달랐다.
검 끝.
오직 한 점에 불과한 푸른 빛.
하지만, 내가 처음으로 뽑아낸, 이 세계의 근간을 이룬다는 힘. 마력과 대등한 위치에 있는 힘. 투기였다.
나는 투기가 피어오르는 검 끝을 에네스타를 향해 밀어넣었다. 그리고 휘둘렀다.
그와 동시에. 에네스타의 움직임이 달라졌다.
빠각!
에네스타의 가슴 안쪽에서, 팔 쪽으로 휘둘러지던 검이 부러졌다. 에네스타의 양 손은, 나를 공격하고, 또 방어하기 위해 쓰이고 있었다. 내 검을 부러뜨린 건 에네스타의 주먹도 뭣도 아니었다.
그저.
에네스타를 베려던 검을, 겨드랑이 사이로 끼어, 그대로 몸을 돌리는 것으로 부러뜨려버렸다.
진짜 저거 한 대 치는 거 못하는 건가.
정말로.
내 소원인데.
그런 생각을 하면서 검과 함께 휘둘러졌다.
“축하합니다, 나의 주. 이제 곧... 이라고는 생각하긴 했지만, 제가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빠르셔서 놀랐습니다.”
대짜로 뻗어있던 내게 다가온 에네스타가 그렇게 말했다. 엄청 얄미웠다. 얄미운 김에, 지금 너 팬티 다 보인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참았다.
나름 복수였다.
나는 누운 상태로 훤히 보이는 에네스타의 속옷을 보면서 말했다.
“그런데 어떻게 한 대도 맞아주질 않냐?”
“아직 제가 더 강하기 때문입니다.”
말은 잘했다.
정말로 나보다 아직 훨씬 강해서 그런 거긴 하지만...
“그나저나 이게 투긴가.”
우웅, 우웅...!
기능으로 습득해버린 이상, 어떻게 사용해야하는지는 알 수 있었다. 나는 쥐락펴락 움직이는 손바닥을 기준으로 퍼져나가는 푸른빛을 바라봤다.
마력과는 달랐다.
무척이나 달랐다.
마력이 주변에게 영향을 끼치며, 자신의 색으로 덮어가는 느낌, 마치 종이에 색칠을 칠하는 물감 같은 느낌이라면 투기는 달랐다. 투기는 굳히고, 고정시킨다. 마력을 물감에 비유했다면, 이쪽은 코팅제를 칠해대는 것과 비슷할지도 모르겠다.
나라는 존재를. 일정한 형태로. 일정한 모습으로. 고정시키고 변해버리는 것을 막아준다.
그런 느낌이었다.
스윽, 하고 뻗어 나오던 투기를 갈무리했다.
“하루에 몇 시간씩 수련했더니 습득하긴 했네...”
내게 투기를 가르친 바록과 바쿠는, 좋게 말해도 좋은 스승이라고 할 수는 없었다. 낙시안이기 때문이었다.
낙시안들이 본능적으로, 그리고 자연스럽게 습득하는 당연한 것을 남에게 가르치는 게 쉬울 리가 없었다. 그저 자신들의 수련법을 알려주고, 투기라는 녀석을 사용할 때의 감각이나 느낌을 내게 알려주고, 끊임없이 대련했을 뿐이었다.
바록과 2시간, 그리고 바쿠랑 또 2시간. 그게 끝나면 에네스타와 4시간.
지옥 같은 시간이었지만.
일주일.
본격적으로 투기를 배우기 시작한지 일주일 만에 투기를 습득하는데 성공했다.
그러고 보니... 지금 천재중의 천재라고 불리는 천검의 주인이라는 이름을 갖고 있는 검주가 열넷이라는 나이에 검주가 되었다던가. 에루나에게 참고삼을만한 이야기가 없는지 물어봐서, 역대 검주들... 약 300년전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의 검주들의 이야기를 머릿속에 때려넣었을 때의 일을 떠올리며, 나는 내 손을 바라봤다.
방금까지 푸른빛이 삐죽거렸던 게 거짓말처럼. 그냥 평범한 손이었다.
과거랑은 달리, 울퉁불퉁 굳은 살이 잔뜩 배겨있는 그런 손. 나는 주먹을 꾸욱 쥐었다.
일주일.
천재중의 천재라고 불리는 이도, 십 수 년... 아니, 검을 쥔 나이가 언제인진 몰라도. 그렇더라도 적어도 수년은 걸렸을 일을 겨우 일주일 만에 해낸 것이다.
알고는 있었지만.
정말이지. 말도 안 되는 몸이었다. 나야 좋지만.
“...어디보자.”
「이름 : 투기」
「등급 : 초보(F)」
「효과 : 신체의 능력을 크게 활성화시켜줍니다. 장비에 투기를 흘리는 것을 통해 장비의 능력을 상승시킬 수 있습니다. 마력에 대한 저항능력이 소폭으로 증가합니다.」
「설명 : 수많은 수련과 재능을 가진 자들이 얻을 수 있다. 신체의 능력이 100%까지 증가한다. 투기에 둘러싼 장비의 성능을 50% 추가로 끌어올릴 수 있다. 마력에 대한 저항능력이 10%만큼 증가한다.」
“...이야. 이러니까 당연히 지지.”
에네스타의 신체 능력치, 근력과 민첩, 체력들은 수치상으로 내 2배에 달했다. 수치상으로 그렇다는 거지, 정보창으로 표시되는 수치가 맛탱이가 가있다는건 이미 알고 있었다.
능력치가 100을 넘으면, 그 이후부터, 즉 101부터는 100까지 올렸던 능력치가 10은 있어야지 겨우 1이 오르기 때문이었다.
덕분에 에네스타의 생명력은 내 2배정도의 체력을 지닌 주제에 내 수십 배가 넘었다. 그런데 투기, 그것도 겨우 F랭크에 불과한 것이 배율이 장난이 아니었다.
고작 F랭크인 주제에, 사용하는 것만으로도 내 능력치가 단번에 두배로 뛰어버리는 거다. 그러니까, 에네스타에게 상대도 안된 게 당연한 일이었다.
안 그래도 어마어마한 차이가 있던 나와 에네스타인데, 투기를 사용한다면 거기서 배는 더 벌어지는 거다.
상대가 될 리가 없었다.
정작 에네스타는 주먹을 제외하면 투기를 사용하지도 않고 날 제압해버린 것 같지만... 그래, 뭐... 내 능력치에서 두 배라고 해봤자 에네스타의 발끝에도 못 미치니까 당연한 일이었다.
“그리고, 검리라...”
「이름 : 검리」
「등급 : 초보(F)」
「효과 : 검을 사용할 때, 최적의 경로를 찾아냅니다. 또한 검에 의한 피해를 높여줍니다. 검과 관련된 모든 기능의 효과가 증가합니다.」
「설명 : 검을 보다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 검으로 공격시 추가로 15%만큼의 피해를 줄 수 있다. 검을 사용하는 모든 기능의 효과가 10%만큼 증가한다.」
검리라는 녀석은 몇몇 게임에서 흔히 볼수 있는 일종의 마스터리같은 기능인 듯 했다. 습득하는 것만으로 모든 검과 관련된 기능의 효과가 증가하는데다가 소소하게 피해량 증가까지 붙어있었다.
피해량 증가.
좋지.
맞출 수만 있다면 말이지.
내가 너무 강한 상대하고만 싸워서 그럴지도 모르겠지만, 내 전적은 전패무승이였다. 어딘가의 칭호 같았다.
근데 이게 칭호라면 효과는 엄청 구릴 게 분명했다.
싸우는 족족 지고 이긴 적은 없다는 거니까...
...뭐, 바록과 바쿠는 단순 수치로 내 능력치의 1.5배 정도다. 에네스타보다는 못하지만, 100을 넘긴 능력치 이후로는 그렇지 않은 능력치랑 어마어마하게 차이가 난다는걸 생각하면 바록과 바쿠 역시 괴물이라는 거였다.
거기에 바쿠의 경우에는 투귀화, 투기로 상승한 능력치에서, 다시 한 번 어마어마한 수치가 증가하는 사기적인 기능까지 있었다. 나도 갖고 있는 기능이긴 했지만, 나랑 달리 바쿠가 가진 투귀화는 진짜 투귀화였다.
한번 제대로 붙어봤다가 뼈도 못추릴 뻔했다. 10분간, 한정된 시간이었지만 투귀화한 바쿠는 에네스타에 맞먹는 힘을 갖고 있게 되니 말이다.
물론, 그 투귀화를 쓴 바쿠를 에네스타는 아무렇지도 않게 공격을 피하고있다가 10분이 끝나마자 두들겨 패긴 했지만.
응, 도핑으로 강해지는거랑 원래 그냥 강한거랑의 차이란걸거다. 검주, 검으로써 최고 수준까지 이르른 에네스타의 기술도 한 몫하겠지만.
마지막으로...
“이게, 드디어 올랐구나.”
나는 마침내, B랭크라는 벽을 허물고 승급한 라이어스 제국 검술을 확인해봤다.
「이름 : 라이어스 제국 검술」
「등급 : 전문(B))」
「효과 : 하나의 동작으로 시작하여 끊임없이 연계되는 기교계 검술. 공격한 대상에게 연속으로 기술을 성공시킬 때마다 효과가 증폭합니다. 3번 연속으로 기술을 성공시킬 때마다 증폭의 폭이 증가합니다. 최대 21회까지 적용됩니다.」
「설명 : 검을 사용하여 공격을 성공시킬 때마다 추가적인 피해량이 20%만큼 증가합니다. 3번 연속으로 성공시킬 때마다 추가되는 피해량이 20%만큼 추가됩니다. 마무리 일격의 성공 시에 이제까지 추가된 피해량을 더한 일격을 가합니다.」
“...와우, 이전이랑 차원이 달라졌네.”
B랭크의 벽이 더럽게 단단했던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추가적인 피해량은 두 배로 늘어난 데다가, 피해량이 증가되는 시점이 5회에서 3회로 줄어들었다. C랭크였을 때는 고작 4번 가산했던 거에 비교하면 어마어마한 차이였다.
“나의 주, 확인은 끝났습니까?”
성장한 기능이나, 새로 습득한 기능을 확인하는걸 지켜보던 에네스타가 그렇게 물었다.
“응, 뭐... 대충?”
“확실히... 그 능력은 부럽군요. 자신이 얼마나 성장했는지, 한 번에 알아볼 수 있다니.”
“그렇긴 하지.”
대신 단점, 이라고 할 순 없지만, 상대랑 나랑 얼마나 차이 나는지도 알 수 있어서 여러모로 속이 쓰리기도 했다.
그렇게 에네스타와 이번에는 어디가 좋았느니, 어디가 나빴는지 이야기를 했다. 에네스타의 이번 평은, 대체로 움직임이 좋은 편이었고, 투기마저 발현한건 대단한 일이었지만. 그렇다고 방심해서 공격의 도중에 생각을 멈췄다는 것이 흠이라고 했다.
응, 나도 그렇게 생각했다.
검 끝에서 푸르게 피어나오는 투기를 보자마자 헤까닥해서, 이거라면 될거라고 생각했던 건 사실이니까.
그렇게 에네스타로부터 어떻게 고치면 좋을지 듣고 있을 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