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2화 〉92화
무녀랑 무희들로 구성되어 그런지 버프를 주는 단체로 바뀌어버렸다.
이걸로 내 가신에 속해있는 단체는 세 개가 됐다. 에루나를 필두로 한 마야, 니아가 있는 시녀들... 딱히 이름은 없는 단체가 하나.
에네스타를 필두로 함과 동시에 에네스타밖에 없는 기사단. 역시나 이름은 없는 기사단이 하나.
그리고 나타 에오시스를 필두로 한 에샤 에오시스와 모네 에오시스로 구성된 무녀와 무희들. 이름은 무녀단인 엄청 대충 지은 이름의 단체가 하나.
이렇게 셋이 생겨난 거다.
시종인 바록과 바쿠, 집사인 슈슈의 경우에는 이렇다 할 단체가 없긴 하지만... 그렇다고 대충 단체를 만들어봤자 아마 별 효과는 없을게 뻔했기 때문에 그 셋은 지금처럼 그냥 내버려두기로 했다.
애당초 셋의 경우에는 단체의 장이 될만한 직업을 가진 이가 없어서 무리기도 했다. 물론, 바록과 바쿠의 경우에는 당장 시종장이던 집사장이던 골라서 직업을 바꿔줄 수도 있긴 했지만... 그래봤자 시종장 하나뿐인 단체와 집사장과 집사 하나만 덜렁 있는 단체가 만들어질 뿐이라서 관뒀다.
기사장 혼자만 있는 기사단의 에네스타도 있기는 하지만... 에네스타는 혼자서 기사단만큼의 무력을 갖고 있으니 제외했다.
이걸로, 내 가신이 한층 더 복잡해졌구나. 그런 생각을 하고 있자니 귓가에 알림이 들려왔다.
띠링~
[새로운 가신을 18명까지 추가하실 수 있습니다.]
...아니, 추가 안할 건데.
그보다, 또 늘어나지 않았어? 내가 능력치가 오른 탓이려나...
어째 알림이 마구 늘리라고 권유하는 것 같아서 무서웠다. 늘릴 수 있을 만큼 늘리다가는 내 머리가 이름조차 외우지 못할 테니까 안할 거고, 당장 추가할만한 사람도 없지만.
“...베헤노스님?”
그런 나를 부르는 목소리에 정신을 차려 목소리의 주인을 확인하자, 나타였다. 불안해하는 눈으로 나를 보고 있는 나타가 보였다. 그 옆에 있는 에샤와 모네도.
그런 에오시스 자매들을 보며 내가 말했다.
“뭐, 이제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그 말씀은...”
“이제 안 떠나도 된다고. 너희들 모두, 그냥 내 옆에 남아있어도 된다. 내가 책임지마. 그렇게 하기로 했으니까. 그래야만 하겠지.”
“책임...”
내 말에 얼굴들을 붉히는 에오시스 자매들을 보며 생각했다.
아니, 그 책임을 말하는 게 아니니까. 착각하지 말아줬으면 좋겠다. 아까, 분명 제대로 말했었지...? 분명 말했다? 너희들이 바라는 형태는 안될거라고 말이다.
...어쩐지 엄청 불안해졌지만, 나는 일단 기뻐하는 에오시스 자매들을 그저 지켜보았다.
“주인님, 괜찮아?”
에오시스 자매들의 방을 나서서, 이제 할 일도 없겠다 방으로 돌아가고 있던 나에게 로로가 말했다.
“괜찮냐니, 뭐가?”
“그냥, 아파보여서.”
“그러냐.”
아파보인다라.
딱히 아프거나 하지는 않은데. 오히려 그 반대였다. 그 반대... 다행히 어찌저찌 잘 해결하긴 했네,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동시에 로로의 말 그대로였다.
앞으로 일을 생각하면 머리가 지끈지끈 아파오는 것만 같으니까.
어쩌지. 지금부터라도 루시아를 달랠만한 방법을 찾아둬야 하는 걸까. 이럴 줄 알았으면 얀데레 속성이 나오는 게임이라도 해둘... 아니다. 또 게임으로 도피하는 버릇은 나쁜거니까 고쳐야겠지. 그리고... 루시아만이 아니였다.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내게 드래곤인 연인들이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지뢰가 더욱 늘어만 가는 거다.
애당초 루시아는 얀데레가 아니기도 하고. 음... 뭐라고 정의해야할지 도통 모르겠다. 진짜 뭐냐고 묻고 싶었다. 그런 만큼 머리가 아플 수밖에 없었다.
“...다시는 이런 짓 안해야지”
나름 마음 단단히 먹고 에오시스 자매들을 만나러 갔는데, 결국 이 모양이었다. 아니, 나도 조금은 변했다고, 변하고 있다고는 생각했는데, 아직 물렁물렁했던 모양이다. 이러다가 머리까지 털이 다 빠져서 물렁물렁 가죽만 남을 것 같았다.
계속 이런다면 내 머리카락이 남아나지 않을 거다. 그런 생각이 들었다. 애당초 나랑 어울리지 않는 짓은 하지 않는 게 아니었다. 그런 생각마저 들었다. 차라리, 이렇게 된 게 낫다는 생각까지.
그리고.
“어쩌다 이렇게 된거려나.”
또 이렇게, 책임도지지 못할 약속을 한게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또 다시, 바보 같은 짓을 하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나에게 로로가 말했다.
“괜찮아.”
“...뭐가 괜찮다는 거니?”
내가 대머리가 되는 게? 아니, 로로가 내 생각을 읽었을 리가 없으니 그걸 말하는 건 아닐 거다.
괜히 찔려서 퉁명스럽게 되물은 나에게 로로가 대답했다.
“주인님이니까. 아마 괜찮을 거야. 주인님은... 응, 조금 변태지만.”
한 치의 의심도 없이. 진실로 그럴 거라고 믿는다는 것처럼. 확신에 찬 눈으로 나를 보며 그렇게 말하는 로로를 보자, 어쩐지 눈이 부셨다.
아...
마침내 내 주위에 진짜로 착한 천사가 나타난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어쩐지 로로의 등 뒤로 후광이 보이는 것 같았다. 평소의 두 배는 귀여워보였다. 뒤의 변태같다는 말만 뺏으면 천사가 눈앞에서 강림한 줄 알았을 거다.
변태가 뭐냐 변태가.
“그러냐...”
동시에.
그런 로로의 신뢰를, 내가 받아도 되는 걸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그렇게 대답하고서 딱 좋은 위치에 있는 로로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었다. 그런 내 손길에 로로가 지그시 눈을 감았다.
나타의 말대로였다. 지금은 마냥 어린 로로도 금방 크고... 지금처럼 머리를 만져주는 것도 힘들어질 거다. 그야, 못할 정도로 자라지는 않겠지만... 다 큰 처자의 머리카락을 마음대로 쓰다듬는 것도 뭐할 테니, 아마 나중가면 불가능하겠지.
그 말은, 로로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을 수 있는 기회는 지금, 이 시간에 한정된 특별한 일이라는 거다.
나는 로로의 부드러운 머리카락의 감촉을 느끼면서 말했다.
“로로야.”
“응?”
“너는, 그리고... 이곳의 누구도 모르겠지만.”
그런 로로의 머리카락을, 안정제로 대신해서, 나는 고해성사를 하는 죄인처럼 말했다.
“난... 정말로 개새끼야.”
“……”
너희는 모를 거다.
이 세상에서 오직 나만이. 나의 죄를 알고 있었다. 그 누구도 아닌, 오직 나만이.
이곳이 아닌, 다른 세계에서. 내가 살고 있던 세계에서 지은 죄를. 오직 나만이 알고 있었다.
그런 의미에서, 지금 내가 한 고백은 진실로 옳았다.
나는 개새끼다.
개의 자식이라는 의미가 아니라, 개 같은 새끼라는 의미로. 나는 정말로 개새끼였다.
누군가는 그런 나를 보고, 지나치게 자기애가 강하다고 했고.
또 다른 누군가는 너의 잘못이 아니라고 했으며.
또 다른 누군가는, 그런 나의 말마따나 개새끼라고도 했다.
즉, 과반수로 나는 개새끼가 된 셈이었다. 고로, 나는 개새끼다. 완벽한 논리였다. 나와 타인이 나를 개새끼로 인정했다. 즉, 난 개새끼다. 나는 그런 녀석이었다.
하기는, 개새끼가 아니더라도.
일정하지도 않은 수입에 빌어먹으면서. 그런 주제에 앞일도 생각하지 않고, 끼니조차 거른 채 방에 틀어박혀서 게임만 주구장창 했던 놈이었다. 개새끼가 아니더라도 다른 말로도 욕할 거리는 차고도 넘쳤다.
폐인.
오타쿠.
사지 멀쩡한 병신새끼.
불효자
이것저것... 나를 지칭할 수 있는 욕이 너무도 많았다. 나는 그런 새끼다. 그 중에서도, 개새끼가 가장 어울리는 그런 놈이었다.
“하지만... 적어도 너희들에게는 그런 녀석이 아니고 싶다.”
이번의 일로 깨달았다.
내가 변하고 싶다면, 정말로 변하고 싶은 거라면. 이러고 있으면 안 된다고.
또 다시, 나는 편한 쪽으로 선택하려고 했으니까. 쉬운 길로 도망치려고 했으니까. 그렇다면 똑같을 게 분명했다. 또 다시 그때처럼 실수를 저지를게 뻔했다.
그렇지 않으려면 변해야만 했다.
또 그런 선택을 하지 않기 위해서.
또 다시 내 선택이 누군가를 상처 입히는 일이 되지 않기 위해서.
그러기 위해서는...
“아무래도 강해져야겠다.”
치트라고 생각했다. 남들의 수년, 십 수 년을 노력해야만 가능한 것을 아무렇지도 않게 얻을 수 있다는 것을.
남들의 노력의 몇 만분의 1만으로도, 강해진다는 것을.
개버릇을 남 준다고, 또 현실과 게임을 혼동해서. 바보 같은, 그리고 아무 가치도 없는 자존심만 꾸역꾸역 살찌우고 있었다.
하지만 이대로만 있다면, 나는 또다시 그런 선택을 해야만 했다. 내가 약하니까, 내가 지켜줄 수 없으니까. 적어도 나로 인해서 다른 녀석들까지 휘말리는 것이 싫어서라도, 나에게 매달리는 녀석들을 나 스스로 선택해서 버린다는 짓을 또 다시 해야만 했다.
나 혼자.
단순히, 나 혼자만의 일이었다면 아마 지금같이 있어도 상관없었을 거다. 내가 조금만 더 주의하고, 조금만 더 조심하면, 나로 인해서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을 테니까.
하지만 나는 그럴 수 있는 존재가 아니었다.
내 위치가. 그리고 나라는 존재가 어떤 존재인지.
드래곤의 반려라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이번의 일로 확실히 와 닿았기 때문이었다.
나는 나 혼자만의 몸이 아니었다.
내 행동이나, 내 말 하나까지. 여러 가지로 주변에 영향을 줘버린다. 나는 드래곤이 아니지만, 드래곤보다 더하면 더했지 못한 존재는 결코 아닌 것이다.
단지 드래곤의 반려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이렇다 할 능력도 없는, 그저 다른 차원에서 소환된 인간일 뿐일지라도 그런 존재가 되어버린거다.
나는 이미 평범한 인간 남캐라고 주장할 수 없게 된 거다. 이미 지금도 가볍게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고, 가볍게 다른 누군가를 휘말리게 할 수 있는 존재였다.
아마, 내가 원하지 않더라도. 내가 아무리 조심하고 주의하더라도. 지금같은 일이 또, 몇 번이고, 앞으로 일어날게 분명했다.
또 다시 선택해야만 하는 순간이 오게 될 거다.
내가 지금 이대로만 있다면.
그리고 그때가 되면, 나는 분명 또다시 고민할 거다. 또, 선택하겠지.
누군가를 버린다는 선택을.
그러니까.
그러지 않기로 했으니까. 그렇게 하기로 했다.
“강해져야겠다. 응, 적어도... 마누라한테 잡혀만 살 순 없잖냐.”
하필 마누라, 그리고 그 예정인 분들이 세계최강의 생물인 드래곤이란건 차치하고.
강해져야만 했다. 대체 얼마나 강해져야하는지는 상상조차 가지 않지만.
그런 내 말을, 뜬금없이 내뱉은 고백을, 그리고 다짐을 들은 로로가 고개를 갸웃하며 말했다.
“...잘은 모르겠지만, 응원할게?”
딸한테 응원까지 받은 이상 아버지로써 있는 힘껏 다해야겠지. 그렇겠지? 응?
아니... 로로는 딸은 아니지만...
뭐 어떠냐. 일단 비슷한거였다.
운명공동체라고도 할 수 있으니까. 가족이란 게 별거 있나. 피가 이어진 것만이 가족인건 아니었다.
딸은 아니더라도, 딸같은 존재이니까 비슷한 거다.
“그래. 열심히 할게.”
나는 마구 로로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으며 그렇게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