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3화 〉73화
“물론 방법이 전혀 없다는 건 아닙니다.”
“방법이라니?”
방법이 있으면 먼저 그것부터 말해주지. 아니, 애당초 방법이 있으면 드리아데스의 즙이니 뭐니 다 필요 없는 거잖아. 해결할 방법이 있으면서 먼저 그것부터 이야기하지 않는 에루나를 보고서 평소답지 않다고 생각했다.
평소의 에루나였다면 내가 죽어도 싫다고 빽빽거리지 않는 이상 필요하다고 여기자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강행하는 무시무시하기 짝이 없는 골렘이니 말이다.
“예, 가장 효과적이고 빠른 방법이 한 가지 있습니다. 단지... 주인님께서는 꺼려할 일인지라 이야기해드리지 않았을 뿐입니다.”
에루나의 말에 불안감이 치솟아 올랐다. 에루나가 말하는 방법이 뭔지는 모르겠지만, 저 말이 입 밖으로 나오게 된다면 큰일이 벌어질 것이란 예감만이 내 머릿속에서 경종을 울려댔다.
“다행히, 주인님께서는 저를 포함해서... 도움을 줄 수 있는 자들이 아주 많으니, 주인님만 결정을 내리신다면 당장 오늘에라도 가능합니다.”
“그 방법이란 게 혹시...”
물어보면 안 된다.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입이 지 멋대로 열렸다. 영화 속에서 흔히 나오는 주인공의 심정이 이럴지도 몰랐다. 돌아보면 안된다는 걸 알면서 자기도 모르게 뒤를 돌아보는 그거 말이다. 나도 딱 그랬다. 물어보면 안 된다고 생각하는데, 입은 지 멋대로 움직인 뒤였다.
그리고 그런 내 예상을 전혀 고맙지도 않게, 에루나는 최악의 대답으로 부응했다.
“주인님이 생각하고 계신 그대로입니다. 자고로 능력이 부족한 것을 메꾸는 것은 기교와 기술이였습니다. 체력이 부족하다면 체력을 메꿀 기교를 익히면 그만입니다. 힘이 부족하다면 그 역시 메꿀 방법을 찾으면 그만입니다. 그리고 그 모두를 효과적으로 해내려면... 역시나 경험이 최고죠. 경험을 쌓을수록, 자연스레 터득하기 나름일 테니 말입니다.”
그렇게 말한 에루나가 고개를 숙여 보이며 말했다.
“다행히 남성과 여성의 관계에는 순서가 있습니다. 넣고 흔들고 싸고, 세 박자로 나눠지는 짐승의 그것과는 조금 다르지요. 물론, 주인님께서는 아가씨들과 아이를 만드셔야하는 몸입니다. 그것도 많으면 많을수록 좋으니 그 정을 여럿에게 나눠주기에는 너무나도 아깝겠죠.”
“그, 그렇지?”
내가 예상했던 대로의 말을 하는 에루나였지만, 그나마 상식적인 선에서 끝나는 듯해서 안심했다. 하긴, 내가 할 말은 아니지만 사람은 저마다 한계라는 것이 있는 법이었다. 제아무리 건장한 남자라도 몇 번하고 나면 하고 싶어도 못하게 되는 법이다. 그런 점에서 이미 과다할 정도로 많은... 드래곤들을 임신시켜야한다는 사명을 갖고 있는 나로서는 이런 짓을 불가능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한사람도 벅찬데 무려 일곱이나 된다. 하루에 한명씩이라고 해도 일주일이 꽉 차는 거다. 아니, 하루에 한명씩 번갈아가면서 한다는 것도 미친 짓이기는 하지만. 가능하다면 하고 싶지도 않고.
이유는 별거 없었다. 그렇게 되면 내 자유 시간이 없어지잖냐. 무슨 종마가 된 것마냥 하루 종일, 일주일 종일, 한 달 종일, 그 짓만 하면서 지낼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거기까지 체력이 받쳐주지도 못할 거고.
아무튼 적당한 선에서, 우려했던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고 생각하면서 내심 안도하고 있을 때였다.
“하지만 굳이 몸을 섞지 않더라도 배울 수 있는 것은 많으니 괜찮습니다. 짐승들의 그것과 다르게, 지성체들의 관계에서는 여성을 즐겁게 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으니 말입니다. 아, 안심해주시길. 주인님도 충분히 즐기실 수 있으니 말입니다. 거기에 마침 저를 포함해서 에네스타와 에오시스 자매들. 그 밖에도 니아, 로로, 마야까지. 다행히 아가씨들과 체격이 비슷한 자들, 각각 개성과 성격이 다른 이들이 많으니 연습 상대로써도, 다양한 경험을 쌓기에도 적격이라고 생각됩니다.”
“...?”
하고 싶은 말은 많은데, 도무지 입이 벌어지질 않았다. 내 귓구멍으로 들어온 게 대체 무슨 개뼉다구를 두들기는 소리인지 이해가 가질 않아서 그랬다. 그리고 그제야 떠오른 것에 주위를 둘러보자 얼굴이 새빨갛게 된 에네스타며, 에오시스 자매며, 니아와 마야의 얼굴이 보였다.
“어떻습니까, 주인님? 주인님이 원하신다면 당장 오늘 밤에라도 가능합니다. 일단 시녀장인 몸으로써, 또, 훗날 주인님을 모실 이들을 위해서라도 모범이 될 겸 처음은 제가 주인님을 모시는 것을 추천 드립니다.”
“추천은 얼어 죽을!”
너 때문에 지금 분위기가 이 꼴이 났는데 그런 말이 나오냐고 묻고 싶었다. 어쩔거야 이거.
흘끔흘끔, 나를 바라보는 에오시스 자매들의 시선이 부담스럽다.
목까지 새빨개져서 고개를 푹 숙인 에네스타의 모습이 신경쓰였다. 아니, 신경쓰인건 그것보다 자꾸 좌우로 움직이는 귀쪽이기는 하지만.
나이도 어린 것이 대체 뭘 아는건지는 모르겠지만 꺅꺅 거리고 있는 니아와 마야도 엄청 신경 쓰였다. 둘이 자꾸 뭘 속닥거려서 더욱 그랬다.
어쩔 거냐고 이거.
이와중에 혼자만 멀쩡한 얼굴로 소시지를 집어먹고 있는 로로도 보였지만... 아, 눈 마주쳤다.
“...왜?”
눈이 마주친데다가, 말까지 걸어온 로로를 무시할 수는 없었다. 하는 수 없이 입을 열었다.
“...그거 맛있니?”
열기는 했지만 딱히 말할게 없어서 문제지. 먹는걸 보고 있다가 왜 보냐고 묻는 애한테 뭐라고 하면 좋은데.
“...응, 짜고, 달아.”
그런 고민이 담긴 한 마디였지만 로로는 그런건 아무래도 좋다는 듯이 그렇게 대답하고서, 아직도 더 말할게 있냐는 듯이, 손에 소시지를 들은채로 나를 바라봤다.
바쁘니까 용건이 있으면 빨랑 말하라는 무언의 압박이 느껴졌다.
“...그래, 많이 먹어라.”
“응.”
...먹으라고는 했지만 이 분위기에서 그게 들어가나? 내 말에 고개를 끄덕인 로로가 한손에 집어든 소시지를 입에 넣는 것이 보였다.
잘만 들어가는 모양이구나.
정말로 저대로 크면 에루나와 똑같아질 것 같아 무서웠다. 아니, 에루나랑 다른 방향으로 자라도 무서울 것 같긴 한데...
“...오늘 밤은 로로가 시중을 드는 것으로 알면 되는 겁니까?”
“제발...”
그런 나와 로로를 지켜보던 에루나의 말에 나는 기어코 머리를 부둥켜안았다.
제발 입 좀 닫아주라.
마지막에 가서 여러 가지로 엉망이 된 점심시간이었지만, 일단은 무사히 끝났다.
로로를 제외하면 다들 식사를 마쳐가던 시점이기도 했고, 마지막에 던져진 에루나의 말에 죄다 힐끔힐끔 내 눈치나 보고 있는 와중에 점심시간이고 뭐고 이어질 리가 없었지만 말이다.
나도 루시아가 올때까지 책이나 읽고 있겠다는 핑계로 무사히 에루나와 떨어질 수도 있었고 아무래도 좋았다. 기어코 따라오겠다는 에루나를 마야와 니아를 교육시키라는 명목으로 억지로 떼어놓은거긴 하지만 말이다.
어쨌거나, 머리를 아프게만 하는 것들이 모두 배제한 나는 내 방의 책상 앞에 앉아 멍하니 책을 들여다봤다
책의 저자는 몇 백년전인지는 모르겠지만, 검술로 초월자가 된 이였다. 그것도 인간에 비하면 드문 편인 엘프 초월자였다. 엘프들은 개개인의 인간과 비교하면 모든 면에서 인간보다 뛰어난 편에다가 수명도 길었지만 초월자들이 나타난 빈도로 따지면 인간들에 비해서 적은 편이었다.
당연하다면 당연했다. 애당초 숫자가 어마어마하게 차이가 나니까 말이다. 엘프가 백만에 한명 꼴로 초월자가 나타나고 인간이 천만에 한명꼴로 나타난다쳐도 인간이 더 많은 초월자가 생기기 마련이니까.
아무튼 저자가 아무래도 여성인 모양인지, 아니면 다른 이유에서인지. 알몸의 여성 엘프가 자세를 잡고 있는 삽화가 그려져 있었다. 그 옆에 서술된 내용을 볼 때 단순히 설명을 더욱 알아보기 쉽게 그려 넣은 것 같았다.
아마 방금 전의 일이 아니었더라면, 나도 그러려니 넘어갔을, 그런 단순한 삽화 한 장에 머릿속이 복잡스러웠다.
자꾸만 이 알몸의 엘프가 에네스타나 에오시스 자매 중 한명의 얼굴로 보였다. 그녀들과 비교하면 가슴은 그림 쪽이 훨씬 작지만. 아니, 딱히 그림쪽이 작은게 아니라 에네스타나 에오시스 자매들의 유전자 쪽이 우월한 것 같지만. 요정향에서 봤던 다른 엘프들은 죄다 그림쪽 엘프에 가까웠고.
“물론 주인님이 원하신다면 언제 어느 때라도, 저희들 중에 누구를 안으시더라도 괜찮습니다. 훗날, 아가씨들 중의 누군가가 다소 질투를 하실 지도 모르겠습니다만... 그건 주인님이 하시기 나름일 테니까요. 옛말에도 여자는 남자가 하기 나름이라는 말도 있잖습니까?”
머릿속에 웅얼거리듯, 점심 시간 때 에루나가 했던 말들이 귓가에 웅얼거리듯 들려오는 것만 같았다. 이리저리 머리를 흔들고나서, 다시 책을 붙들어 잡았다. 그리고 최대한 삽화에 신경 쓰지 않고 내용을 읽어내려고 했다.
...삽화가 무지 많은데? 무슨 한 장 넘길 때마다 나오고 그러냐.
아니, 알고 있었다. 딱히 이 책만 그랬던 게 아니란 것쯤은 말이다. 라이어스 제국검술을 얻었을 때 읽었던 책은 이것보다 더하면 더했지 못하지는 않았으니 말이다. 심지어 그건 거의 의학서나 다를 바 없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내장의 기능이나, 인체의 해부도 따위까지 세세하게 그려져 있었다. 오히려 그쪽이 삽화가 많으면 많았지 적은 건 아니란 거다.
그냥 이쪽이 엘프고, 알몸이어서 그런 거지. 왜 알몸인데. 그냥 옷 좀 입혀.
“...아니, 이런 생각하지 말고...”
재차 머리를 흔들고서 책을 들여다봤다.
책의 내용은 최근에 에네스타에게서 배우기로 했던, 에네스타의 검술. 그 근간이 되는 검술의 내용이 수록되어있는 검술서였다.
책을 읽는다고 전부 기능으로 얻어지는 것은 아니었지만, 안하는 것보다는 읽어보는 게 나았다. 혹시라도 기능으로 얻어진다면 수련이라는 이름의 고문을 조금이나 덜 당할 테니 말이다.
하지만 한 페이지 한 페이지 계속 넘겨도 도무지 내용이 머릿속에 들어오지 않았다.
원한다면 아무나 안아도 좋다는 에루나의 말이 계속 귓가에 메아리치는 것 같았다.
아무리 그래도 내가 내 발로 지옥문을 열어젖히고 기름을 몸에 둘둘 두른 채로 튀김옷까지 입어서 번지 점프하라는 것과 다를 바 없는 소리를 하는 에루나의 말을 들을 생각은 없지만 말이다.
이게 나만의 문제도 아니고 말이다.
예의 질투가 문제였다. 내가 갖고 있는, 드래곤들의 기억 중에는 특별히 구분되는 것들이 몇 가지인가 있었다.
예를 들어, 내가 무언가를 보거나, 느꼈을 때. 그제야 떠오르는 기억이나 지식들이 있는가하면 딱히 의식하지 않았는데도 명확하게 떠오르는 것들도 있었다.
그리고 후자 쪽의 종류로, 드래곤들의 질투라는 내용으로 머릿속에서 또렷하게 떠오르는 기억들이 몇 가지인가 있었다.
드래곤들은 질투, 혹은 집착이나 독점욕이 매우 강했다.
그냥 종족적인 특성이었다. 성별이나 그런 것 관계없이 그냥 다들 그런 거다. 최후의 남아있던 드래곤들... 고작 여섯이었다는 것도 문제가 됐지만 그들은 딱 반반으로 성별이 나뉘어 있었다. 그런 그들이 진작 짝을 맺고 아이를 가지지 않았던 이유 중 하나가 이 드래곤들의 질투가 원인이었다.
그냥 대부분의 드래곤들이 그랬듯이 그런쪽에 아예 관심이 없었던 경우도 없지는 않았지만. 몇 명이 서로 다른 상대에게 호감을 갖고 있었던지라 이리치고 저리 치던 와중에 솔로 드래곤이 여섯이나 되어버렸던 것이다.
그것 때문에 내가 이런 꼴이 됐다고 생각하면 엄청 억울하지만... 그나마 이 여섯은, 덕분에 세계가 멸망할 위기가 되기는 했지만, 딱히 이들이 원인이어서 그런건 아니니까 크게 뭐라고 할 수는 없었다.
문제는 드래곤들 역사상 있었던 몇 가지 사건이었다. 당연히 원인은 드래곤의 질투였다.
간단하게 말해서... 드래곤의 역사상 10번밖에 없었던 광룡화. 드래곤이 드래곤으로써 가지고 있는 이성이 완전히 파괴되어 미친 듯이 날뛰었던 사건 중에 6번이 질투에 의한 것이었다. 그중 하나는 나라가 몇 개인가 지워졌다는 것까지 지식으로 내게 전해져 있었다.
이런 지식이 왜 있을까. 내게 주어진 드래곤들은 내가 이세계에서 살아가기 위해서 필요하다 싶은 것들만 전해준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살고 싶으면 알아서 조심하란 의미인가.
나야 그렇다 치더라도, 내가 누군가를 건드린다 치면 지금은 몰라도 나중에 이걸로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거다. 지금도 나라는 남자를 일곱이서 공유해야한다는 상황 자체가 엄청나게 위험천만한 일이고.
“질투라...”
그런 드래곤들에게서 만들어진 골렘인 에루나가 이런 것도 모를 리가 없을텐데. 대체 왜 그러는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