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72화 〉72화 (72/370)



〈 72화 〉72화

정말로 땀을 핥아주겠다는 듯이 다가오는 에루나와 그런 에루나를 피해 누운 채로 기어서 도망치는 주종간의 기묘한 대치상황이 이어지다가, 결국 방구석까지 몰린 뒤에야 에루나가 입을 열었다.


“장난은 여기까지 하도록 하겠습니다. 마야, 주인님의 땀을.”

"네! 시녀장님! 주인님, 잠시 실례하겠습니다."


에루나의 말에 스윽, 하고 다가온 마야가 무릎을 굽혀 누워있던 나를 수건으로 더듬더듬 어색한 손놀림으로 닦아내기 시작했다. 수건 있었잖아... 근데 왜... 아니다. 더 이상 이런 걸로 대화를 이어나갔다가는 정신 건강에 해롭다.


그냥 그러려니 하기로 하고서 에네스타와의 대련과 에루나의 장난 덕분에 심신이 피폐해진 나는 더듬더듬 땀을 닦아내는 마야의 손길을 느끼면서 에루나를 바라봤다.

뭔가 부족한데...? 문득 든 위화감에 주위를 둘러보다가 곧 위화감의 정체를  수 있었다. 부족하다고 여긴 것은 다름 아니라 사람의 숫자였다.

"니아는?"

분명 에루나와 같이 있어야할 니아가 보이지 않아 에루나에게 묻자 에루나는 그런 내 물음에 살짝 고개를 숙여 보이며 말했다.


"니아는 욕탕의 물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그나저나..."


보기 드물게, 에루나가 얼굴을 찡그리며 시선을 옮겼다. 그런 에루나의 시선을 따라가자 에네스타에게 호승심이 생겼는지 바록과 바쿠가 에네스타에게 대련을 신청하는 모습이 보였다.

내가 바록이나 바쿠였다면 죽어라 얻어터지던 날 봐서라도 저런 짓은 안할 텐데. 왜 사서 고생을 하려는 걸까.


내가 안쓰럽게 바록과 바쿠를 바라보고 있자니, 그런 나랑은 다른 생각을 하고 있던 에루나가 못마땅하다는 듯이 말했다.

"주인님이 뻗어있는데 시종이라는 자들이 신경도 쓰지 않는군요."


"그건 너도 똑같잖냐."

니가 할 말은 아니지. 너도 내가 뻗어있던 말던 신경도  쓰면서. 그런 생각을 하며 말했더니 에루나가 천천히, 연극을 하는 것처럼 손으로 얼굴을 가리며 말했다.

"저의 충심을 의심하시다니... 너무하십니다. 주인님."

에루나를 모르는 사람 봤더라면 정말로 우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완벽한 연기였다.

"손 치워봐."


나한텐 전혀 통하지 않았지만. 연기가 완벽하면 뭐하나. 에루나가 지금 무슨 감정을 하고 있는지 뻔히 느껴지는데. 참고로 말하자면 지금 에루나가 느끼고 있는 감정은 즐거움이었다.


세상 천지에 주인을 놀려먹으면서 즐거워하는 시녀는  뿐일걸? 아니, 내가 모를 뿐이지 이 세계의 시녀란 존재가 전부 에루나와 같을 지도 모르겠지만. 그렇다면 엄청 무서울 거니까 더 이상 그런 상상은 하지 않기로 했다. 아무튼 내 말에 에루나가 얼굴을 가린 손을 살짝 내리고는 힐끔 시선을 마주한 채 말했다.


"주인님께 눈물을 보이기 싫습니다."

할 거면 지금 것도 제대로 연기하던가. 방금까지 울먹거리던 목소리는 어디가고 평소의 에루나와 다를 바 없는 목소리로 그렇게 말하는 에루나를 짜게 식은 눈으로 바라보고 있자니 얼굴을 가리고 있던 손을 치운 에루나가 말했다. 손 뒤에 감쳐져 있던 얼굴은 여느 때와 같은 얼굴이었던  말할 것 도 없고.


아무튼 태연한 얼굴을  에루나가 한 말은 이거였다.

"무슨 문제라도 있으십니까?"

너무 뻔뻔하지 않냐 너?



"그런데 루시아는 언제 쯤 온데?"


어젯밤에 에오시스 자매의 일로 일이 있다며 떠났던 루시아였지만 니아가 준비해놓은 욕탕에서 몸을 씻고 점심식사까지 마칠 무렵에도 보이지 않아 묻자 에루나가 대답했다.

"늦어도 오늘 저녁에는 오실  있다고 연락을 받았습니다만... 혹, 침실의 준비라도 필요하신 겁니까? 걱정 마십시오. 언제든 주인님과 아가씨의 합방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만전의 준비를 해두고 있습니다."

"그런거 아니거든? 그보다 만전의 준비는 또 뭔데."


기껏해야 침실을 그 뭐시기, 가끔 여러 매체를 통해 볼 수 있었던 로맨틱 룸이니 뭐니하는 해괴한 꼴로 꾸미는 걸 상상하고 있던 나에게 에루나가 충격적인 사실을 밝혔다.


"아무래도 주인님께서 아가씨들과 적절한 관계를 맺기 위해서는 다소 준비가 필요할 듯싶어 마련해놓은 것들이 있습니다. 수십 년을 금욕한 성자도 한 모금만 마시면 오크처럼 발정이 난다는 드리아데스의 즙. 남성의 물건을 수십 시간이나 세워둘 수 있게 한다는 천마, 페가수스의 피..."

"아니, 잠깐만 멈춰봐."


분명 숲의 정령의 일종으로 알고 있었던 드리아데스나,  세계에서도 신화에서나 나올 법한 천마, 페가수스의 이름이 나오자 당황했다. 아니, 당황한건 이름 때문만이 아니지만. 즙이니 피니 엄청 수상쩍은 이름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설명이 엄청 이상하지 않아? 그거 그냥 발정제나 정력제잖아.


그리고 일반적으로 내가 알고 있는 것과는 클래스조차 달랐다. 수십 시간이나 세워둔다니. 말이 수십 시간이지 사람의 거시기가 그렇게 오랫동안 서있으면 썩어 문들어진다고.


그보다 아직 그런 약물의 힘을 빌려야할 정도로 허실함 몸은 아니거든? 지금도 매일 아침이면 가동하는 쓸데도 없는데 성능 좋은... 내가 무슨 소리를 하는 건지 모르겠다.


아무튼 정리하면, 나는 아직 저런 거를 써먹어야할 정도로 쇠약하지는 않다는 거였다.


그런 나를 에루나가 빤히 쳐다보며 입을 열었다.


"...주인님께서는 가끔 잊으시는 모양입니다만, 아가씨들은 드래곤입니다. 설령 인간의 몸을 하고 있고, 그만큼 본래의 몸일 때보다는 모든 면에서 약하시다고는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드래곤일 때와 비교하면 그렇다는 것이지, 일반적인 궤로 보시기에는 무리가 있습니다. 특히나 체력의 회복력에서는 어마어마한 차이가 있으니 말입니다."

그리고 천천히 손가락을 움직였다. 그러자 뭔가 다리 사이가 오싹한 모양새를 하고 있는 것이 에루나의 손바닥 위로 나타났다.

그것을 천천히 쥐어들어 올린 에루나가 말을 이었다.

"간단하게 설명하기 위해 시각적 자료를 준비해봤습니다. 참고로 모양새는 이러하지만 인간 미식가들 사이에서는 없어서 못 먹는 진미라고 하더군요. 이름이 다소 특이합니다만... 일단 버섯입니다."


"알겠으니까 흔들지 마라."

눈앞에서 흔들흔들 거리는 버섯을 보니까 기분이 이상했다. 모양새가 그렇고 그래서 그런지 더욱 이상했다. 하필이면 이 버섯을 흔드는  좌우가 아니라 양 손으로 잡고 위아래로 흔들어 대서 이상함을 넘어서 뭔가 다른 기분까지 들었다.


일부러 하는 거지?

그만  놀려라.


"그럼 계속 설명 드리겠습니다. 예를 들어, 주인님께서 설령 평범한 인간 여성을 만족시킬 수 있는 능력을 가진 분이시라고 가정하더라도..."


"가정이라니?"

날 뭘로 보는 건데. 가정이 아니라 사실이거든?

"죄송합니다. 물론 주인님께서는 제가 감히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대단하실 거라고 믿고 있습니다. 다만, 설명을 위해 어디까지나 기준이 될  있는, 예시를 표현하고 싶어 이리 말하고 있는 것이니 기분 나빠하지 말아주시길."


"그렇다면 뭐..."


사실 나도 조금 애매하기도 하고.


써먹은 적은 한 번 뿐이고. 그것도 어떻게 하긴 했지만 뭐가 뭔지도 모르던 와중에 끝나버렸으니까... 어라, 나 혹시?


아니다. 자신감을 갖자. 지금은 에네스타와의 수련 덕분에 몸도 좋아졌으니까 그때랑은 다를 거다... 그렇다면 그때는 아니었다는 말이 되는데.


 어떻게 하더라도 나락에 빠져드는 함정에 빠진 기분이 들었다. 거기에 나 스스로 그 나락으로 기어들어가는 기분이었다.

에루나란 이야기하다보면 항상 이랬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이리저리 휘둘려 버린다. 그렇게 따지면 루시아와 이야기할 때도 그런 경향이 없잖아 있기는 했지만, 루시아의 경우에는 자신이 바라는 방향으로 이야기를 움직인다면 에루나는 그냥  놀려먹기 위해 이리저리 화술이라는 무기를 휘둘러댄다고 해야 할까. 입만 좀 닫고 있다면 정말 좋을 텐데.

그런 생각을 하고 있던 나에게 에루나는 천천히 버섯을 매만지며 말했다.

"어쨌거나, 예시로 든 20대에서 30대쯔음의 인간 남성의 경우입니다만, 처음에는 그럭저럭 쓸 만합니다. 다행히 아가씨들은 처녀이십니다. 설령 다소 어설프더라도 그런 걸 눈치 챌  있는 경험이 모자라지요. 지식이야 있겠습니다만...  정도야 엎어뜨리고 얼버무리면 그만입니다.“


하지만, 하고 에루나가 말을 이으면서 꾸욱, 하고 버섯을 쥐어짰다.


“중요한 것은 경험이나 지식, 그런 복잡한 문제가 아닙니다. 일차원적 문제, 체력과 정력의 차이입니다. 처음 한  번의 경우에는 아가씨들도 경험이 없어 이끄는 대로 끌려가시겠지만... 드래곤의 미지와 지식에 대한 집요함과 집착, 그리고 호기심을 얕보시면 안 됩니다. 눈 깜빡하는 사이에 공수가 역전되고 말겠죠. 그리고 그렇게 되면...”

괜히 불안하게 뜸을 들이는 에루나를 보고 있자니, 그런 에루나가 예의 버섯을 눈앞에서 흔들어 보이며 말했다.


"그 뒤는 끝장이라고 할  있겠죠. 힘으로도, 체력으로도, 어떤 면에서도, 아가씨들에게서 이길만한 구석이 없으니 말입니다. 결국 그대로 쥐어 짜이게 되고 말겁니다. 그렇게 한 번."

꾸우욱, 에루나의 손에 쪼그라드는 버섯이 보였다.

"두 번."

다시 한 번, 에루나의 말에 맞춰 꾸욱, 하고 쥐어 짜여 쪼그라드는 버섯을 보고 있자니 기분이 엄청 이상했다. 에루나가 세고 있는 숫자의 의미랑, 쪼그라드는 버섯이 대체 무슨 연관이 있는 건지 알 수 없지만.

응,  모른다. 에루나가 어째서 저런걸 보여주고 있는지 나는 전혀 모른다.

"세 번."

마침내 버섯이 완전 쪼그라들어서 추욱 늘어져 대롱거리자 에루나가 입을 열었다.


"기껏해야 세 번이면 이 버섯처럼..."

"……“


추욱 늘어진 버섯이 어쩐지 엄청 초라해보였다. 에루나는 그런 버섯을 흘끔 쳐다보고는 아무렇게나 내버려두고서는 입을 열었다.


"실례, 어쨌거나 20대에서 30대 쯔음의 인간 남성들의 경우에는 기껏해야 세 번 정도면 시들시들해지기 마련이죠. 하지만 드래곤인 아가씨들은 다릅니다. 오히려 그쯤부터 슬슬 시동이 걸리시겠죠."

말의 의미를 전혀 모르겠는데.


굳이 나를 보면서 20대에서 30대 사이의 인간 남성이라고 콕 집어 말하는 이유도. 그보다 시동이라고 하지 마라. 엄청 천박해보인다.

아무튼 에루나가 하고 싶은 말을 알겠다. 별로 알고 싶지는 않았지만.


결국 전부터 각오를 다져왔던 ‘종의 차이’라는 문제점이었다.


“근데 그게 그걸로... 드리아데스의 즙이니 뭐니 하는 것들로 해결이 돼?”

“도움은 되겠지만, 해결책은 되지 못하겠죠.”

딱히 그걸로 어떻게 할 작정인건 아니지만... 알아둬서 나쁠  없다고 생각해서 물어보자 에루나가 단번에 부정해버렸다.

어쩌라는 건지 모르겠다. 나보고 뭐 어떻게 하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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