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58화 〉58화 (58/370)



〈 58화 〉58화

난장판도 이런 난장판은 드물 거다. 그렇게 생각했던 것이 눈 깜짝할 사이에 정리되었다.

그도 그럴 것이, 어딘가에서 무척이나 달콤한 향기가 난 것이었다.


시선을 돌려, 향기가 나는 곳을 바라보자 양 손에 쿠키가 가득 들어있는 바구니를 들고 있는 로로와 마야, 니아가 보였다. 그리고 그런 셋을 앞에 세워두고서, 찻주전자를 들고 있는 에루나도.

어라? 에루나가 왜 저기에. 아니, 그건 그렇다 치고서 언제부터?

생각해보니까 내가 이야기를 하던 도중부터 에루나가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았었다는 걸 깨달았다. 그야 시시콜콜한 일로 이야기가 끊기거나 해서 워낙 정신머리가 없었으니까 여태 신경을  겨를이 없었으니 언제부터 없었는지까지는 모르겠지만.

그만큼 혼돈  자체였다고 해도 좋았다. 그랬던 것이 달콤한 향기가 풀풀 나는 쿠키들을 앞세운 에루나가 도착하니까 단숨에 모두의 관심이 한 곳에 모인 것이 보는 것만으로 알 수 있었다. 신기할 지경이었다.


“이야기를 끊어 죄송합니다. 주인님의 명으로 단출하게나마 다과를 준비해왔습니다. 이야기가 길어지는 듯하니 잠시 쉬었다 하심은 어떻겠습니까?”

시선이 자신에게, 정확히는 지금 이 순간에도 치명적으로 달콤한 향기를 풍기고 있는 쿠키로 향하자 에루나가 그렇게 말하고는, 나와 눈이 마주치자 살며시 고개를 숙여보였다.


꿀꺽, 하고 누구의 것인지 모를 침 넘어가는 소리가 조용해진 방 안에서, 작게 울렸다.

하지만 섣불리 누군가 말을 꺼내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아, 이거 알고 있다. 이런 일을  자주 겪었지. 여기가 아니라, 이전의 세계에서. 그리고, 이렇다 할 사회생활이라고는 전혀 해본적은 없는 나였지만, 일단 남자로 태어난 이상 건강하면 누구나 다녀오는 군대에서.


즉, 이거 그거다. 누군가 총대를 메지 않는 이상 서로 눈치만 보는 상황이란 거다.

 수 없지. 이럴 때는 가장 짬이 낮은 사람이 먼저 나서야하는 법이었다.


“...일단, 나머지는 먹고 이야기할까?”


내 말에 야호! 하고 손을 번쩍 들어 올리며 아샤와 아냐가 기뻐했다. 루시아나 크리샤같은 다른 드래곤들은 그렇게까지 기쁜 티를 내지는 않았지만. 그 크리샤마저도 내 말에 토를 달지 않은  보니까 반대하는 사람은 없는  했다.


뭐가 됐던 식후경이란 것은 이 세계에서도 통용되는 말인가 보다.

순식간이라고 할  있을 정도로, 정확히는 에루나가 손가락을 튕기는 것으로 나타난 테이블에 마야와 니아가 쿠키를 올려놨다. 대충 준비가 끝나자 테이블을 두르며 도란도란 앉은 그녀들에게 에루나가 차를 따라주고서는 내 옆에 다가왔다.

물론, 나에게도 차를 따라주기 위해서였다. 조르륵, 하고 찻잔에 향기로운 차가 채워지자 달콤한 쿠키와 차향이 어우러져 이세상의 것이라고 생각되지 않는 감미로운 향기가 풍겼다.


그래서일까, 방금까지 짜증으로 가득해있던 크리샤의 표정도 한결 누그러져있는 것이 보였다.


“...이게 대체 어떻게  일이래.”

순식간에 얌전해진 그녀들을 보고서 그렇게 중얼거리자, 자연스레 내 옆에 선 에루나가 귓가에 속삭였다.


“아가씨들이 아직 어릴 적부터 배가 고프면 자주 짜증을 부리셨습니다.”


그러니까, 방금까지 그게 배고파서 그런 거라고?

에루나의 말에 얼이 나갈  했지만, 내 귓가에 속삭이는 에루나에 모두의 시선이 내게 모이자 나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표정을 지으면서 찻잔으로 입을 가렸다.

눈이야 그렇다 쳐도, 입가에 띠려는 웃음을 참기가 힘들어서 그랬다.

아니, 웃기잖아.


단순히 배가 고파서 그런 것치고는 엄청 살벌하기는 했지만.  이유가 단순히 배가 고파서 그랬다는 걸 알게 되면 우스운 것이 당연했다.


“그나저나, 쿠키는 언제 준비한 건데?”

찻잔을 입가에 댄 채로 웅얼거리듯 그렇게 말했다. 덕분에 발음이 뭉개졌지만 용케 알아들은 에루나가 내 질문에 대답하는 것이 아니라 모두에게 말하듯이 말했다.

“주인님께서 모두에게 간식을 나눠줬으면 좋겠다하여 준비해봤습니다만, 맛은 어떻습니까?”

에루나의 말에 대충 사정이 어떻게 돌아갔는지 눈치 챘다. 나 혼자서만 에루나가 준비해준 에이그라의 열매를 먹는 게 조금 그래서 로로나 마야, 니아에게도 먹을 만한걸 준비하면 어떻겠냐고 그렇게 말했을 때, 이미 이럴 작정이었던 모양이었다.

우연인지 아닌지는 몰라도 타이밍 한 번 좋았지만.

“...흐응, 뭐. 인간치고는 제법 센스가 좋은걸.”

오독, 하고 쿠키를 한 입 베어 문 크리샤가 그렇게 말했다.


“그렇지만~? 에루나가 한 것 치고는 조금 어설픈데~?”

이번에는 아르카가 차와 함께 쿠키를 먹고서는 그렇게 말했다. 그녀들의 말에 나도 하나 집어다가 입에 넣어봤지만 대체 뭐가 어설프다는 건지 모르겠다. 맛만 좋구만.


“실은, 주인님께서 시녀로 임명한 이 아이들이 저를 도와줬습니다. 부족하다면 제가 다시 해오겠습니다만...”


“아니, 그 정도는 아니에요. 정말로 맛있으니까, 에루나가 다시 해올 필요는 없어요.”

“...달아. 맛있어.”

“아르카가 입맛이 까다로운 거니까아, 너무 어리광만 받아주지 말라고오.”

에루나의 말에 루시아와 샤르, 카르네가 그렇게 말하며 옹호하자 괜히 투정을 부린 셈이 된 아르카가 그런가~? 하고 오독, 쿠키를 베어 물었다. 세 명에게 한 소리 들은 셈으로 봐도 좋았는데도 별로 기분이 상하지는 않은 모양이었다.


어찌됐건 아까보다 훨씬 화기애애해진 분위기라서 한숨 덜고서, 금세 하나 다 먹고서, 다음 쿠키를 집어 들려고 했을 때였다.

“그것보다아 아까부터 궁금했던 건데에, 저 녀석들. 낙시안 맞지?”

꿀꺽, 하고 쿠키를 삼킨 카르네가 에루나와 마찬가지로 내 옆에 나란히 선 로로와 마야, 그리고 니아를 보고서 그렇게 말했다.


“전에 이야기는 들었는데 말이지이? 일단은 아무래도 좋아서 허락은 했지마안, 저렇게 두어도 괜찮은 거 맞아?”

“무슨 뜻인가요?”

“그야아 그렇잖아? 루시아, 네가 알아서 조치해놨겠지마안? 쟤네들이 여기에 있는  자체가 우리들에게 있어서는 금기잖아아? 하물며, 인정하고 싶지 않은 아이도 있는 것 같지마는? 저 인간의 곁에 낙시안을 두는  위험하지 않을까아 싶어서 말이지?”

 시작이었다. 이번에는 크리샤가 아니라 카르네였지만. 하지만 그런 카르네의 말에 루시아는 꿀 먹은 벙어리처럼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그런 루시아의 반응에 나는 고개를 돌려 에루나를 봤다.


위험한 거야?


그런 시선으로 에루나를 보자,  시선을 받은 에루나가 애매하게 옆으로 고개를 까닥였다. 그건 고개를 끄덕인 거냐, 아니면 가로저은 거냐.

하나만 좀 해라.

그렇게 쳐다보고 있자니, 에루나가 입을 열었다.

“그건 걱정하실 필요 없습니다.”


“그야아, 뭐. 에루나가 있으니까 별로 걱정할 것도 없겠지마안. 그래도, 만약이라는 게 있잖아아?”

에루나의 말에 카르네가 그렇게 말하고서, 빤히 나를, 그리고 내 뒤에서 시선을 받자 오들오들 떨기 시작한 마야와 니아를 바라봤다. 로로는 대체 무슨 깡인지는 모르겠지만 혼자서만 태연했다.


왠지 저대로 크면 에루나를 복제한 것처럼  것 같아 무서웠다.

“아뇨, 그런 의미가 아닙니다. 말 그대로,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의미입니다.”


“헤에~? 그건 나도 조금 궁금한데. 그렇게까지 확신하는 이유가 뭔데~?”

에루나의 말에 흥미를 가진 듯 아르카마저 그렇게 묻자, 에루나는 두 명의 시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말했다.


“주인님께서는 그렇게 하실 힘이 있기 때문입니다.”


제가요?

저기요.  그런 거 없는데요.

너무 과한 기대는 하지 말아줘라.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나는 평범... 하지는 아니었지만 이렇다 할 굴곡이 없는 인생을 살아가고 있던 소시민이었을 뿐이니까. 평범하다고 말할 수 없는 건 나 같은걸 평범의 기준으로 두면 내가 있던 세상이 글러먹게 돼서 그랬다.


죄다 집구석에 틀어박혀서 게임이나 하고 있을 테니까. 그런 세계는 진작 망했을 거다.

“헤에~ 에루나, 네가 주인이라고 너무 치켜세워주는  아니고~?”

평소의 태도를 보면 그런 것 같지도 않지만, 가끔 그런 면이 없지 않아 있기는 하지. 아르카의 말에 무심코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정작 본인인 내가 이러는데도, 에루나는 아르카의 말에 여느 때처럼 태연한 얼굴로 장담하며 말했다.

“믿지 못하시겠다면, 직접 보는 것이 좋겠지요. 일이 끝나면 주인님께서 어떤 분이신지 보여드리겠습니다.”

“어?”


그걸 네가  장담하고 그러냐? 그런 마음을 담아서 에루나를 바라봤지만, 그런 내가  것은 명백하게 내 시선을 피해 고개를 돌리는 에루나의 모습뿐이었다.


“흐응... 직접 보여주겠다고? 망신이나 안당하면 모르겠는데.”


에루나의 말에 퉁명스레 그렇게 말한 크리샤였지만 지금만큼은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 정말로, 내가 보여줄 거라고는 아무것도 없으니까. 뭣하면 여기서 배운 라이어스 제국 검술이라도 펼쳐 보일까? 그렇게 하면 확실히 망신살을 뻗칠 것 같기는 한데.

난감한 얼굴로 어쩌면 좋을지 생각하고 있던 내 귓가에 다시 한  에루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두고 보시면 됩니다.”


“아니, 저기...?”


탈출할 낙하산도 없이 스카이다이빙을 시킬 작정인지 자꾸만 나를 높이 추켜세우는 에루나를 말리려고 했지만 이미 늦었다.


“뭐어, 에루나가 저렇게까지 나오는 걸 보니 정말로오 뭔가 있나보지. 시간도 제법 남았으니까아, 이 일만 끝나면 다 같이 보러 가면 되잖아?”


아니... 그냥 돌아가면 안 될까요?

그렇게 말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그런 카르네의 말에 몇 명을 제외한 드래곤들이 흥미가 동했는지 고개를 끄덕이는 모습만이 보일 뿐이었다. 몇 명이라고 해봐야 루시아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는 샤르,   뿐이다만.


즉, 둘을 제외한 나머지는 재미있겠다는 듯이 나를 보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녀들에게서 쏟아지는 별로 받고 싶지 않았던 관심에 대체 어쩌자고 이런 건지 에루나에게 묻고 싶었다. 답답한 마음에 꿀꺽하고 찻물만 들이킬 뿐, 내가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지만.


다과를 끝마치고 다시 재개된 의논은 놀랍도록 빠르게 진행되어 여태까지 대체 뭘 하느라 그렇게 늦어졌는지 모를 만큼 금방 끝나버렸다.


이유는 별  없었다.


단지 속전속결이라고 할 만큼 제시된 의견마다 땅땅, 가부가 결정되고, 그렇게 몇 개 추려진 것 중에 골라서 확정되었기 때문이었다.


갑자기 이야기가 이렇게까지 빠르게 진행된 이유가, 배가 불러서 머리가  돌아가기 시작해서 그런 건가. 다과 중에 나왔던 이야기 때문이 아니길 바랄 뿐이었다.


내 옆에서 빨리 보러가자~ 어서~ 하고 팔을 잡아당기고 있는 아샤와 아냐를 보아하니 그딴 기대는 저리 치워버려야 될  같기는 했지만.


그리고 그렇게 만든 사람, 정확히는 골렘인 에루나는 상황을 그렇게 만들어놓고서, 지금은  뒤에 서서 여느 때처럼 속을 알 수 없는 표정으로 있을 뿐이고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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